(스포) [F1] 보고 왔습니다

아주 큰 기대를 갖고 가지 않아서 재미있게 본 영화였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팝콘무비라고 해야할까요.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해 크게 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아이맥스로 이 영화를 봤지만 확실히 아이맥스 비율의 조금 더 길다란 화면이 이 영화에서 추구하는 속도감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돌비는 돌비만의 맛이 있겠죠?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탑건: 매버릭]이었습니다.
일단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전작이고 오락영화로서 추구하는 게 '속도감'이라는 점에서도 두 영화는 많이 닮아있습니다.
왕년에 이름을 날리던 60대 남성들이 고집불통의 성격을 매력이자 장점으로 승화시켜서 위기를 극복한다는 것도 유사합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명예이고 자신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안위를 먼저 챙기는 '굿보스'의 드라마도 깔려있습니다.
부에는 큰 관심이 없고 이들은 자신만의 목표의식이 뚜렷합니다.
조셉 코신스키의 중년 남성들은 사회로부터 자유롭고 반항적이며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무모합니다.
모두가 안된다고 할 때 그들은 기어이 목표를 성취해냅니다.
그 과정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거부감을 갖지 않을 아름다운 여성 파트너도 얻게 됩니다.
정말이지 전형적인 현대의 카우보이들이죠.
이 영화를 보면서 조셉 코신스키의 작품들을 떠올려봤습니다.
제가 이 감독의 이름을 먼저 기억했던 건 [트론]이었습니다.
스토리는 좀 전형적이지만 사운드와 영상에는 분명히 힘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 다음 [오블리비언]을 보면서도 동일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좀 꼼꼼하게 따지면 영화가 허술한데, 어떤 장면들이나 액션에서 꽂히는 느낌을 준달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SqSuRdkglxM
이 감독은 계속해서 속도감을 영화 속에 집어넣어왔죠.
특히나 [트론]에서 제일 흥미로웠던 장면은 바로 이 바이크 격투씬이었습니다.
어떤 물체의 직선 운동을 가시적으로 표현해서 그 운동이 하나의 선을 그리게 하는 부분입니다.
조셉 코신스키는 앞으로 뻗어나가는 그 운동에너지를 스크린에 담는 걸 좋아하는걸까요.
이 부분이 후에 [탑건: 매버릭]과 [F1]에 고스란히 담겼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는 최적의 배우들이죠.
감독의 입장에서 이만한 티켓 파워를 가진 배우들을 만나는 것도 나름 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으로는 [탑건: 매버릭]과 [F1]의 캐릭터들이 지닌 차이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기본적인 뼈대는 같지만 추구하는 방향이 다릅니다.
매버릭과 쏘이 헤이즈는 모두 과거의 상처가 있고 그걸 이겨내기 위해 싸운다는 설정이지만 세계관이 좀 미묘하게 다르죠.
[탑건: 매버릭]은 주인공이 아날로그의 과거를 지켜내고자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첫번째 갈등으로, 무인조종기 드론의 시대에 이제 나이든 사람들은 사라져야 한다는 현장의 압박이 나옵니다.
매버릭은 아직은 그 때가 아니라고 항변하죠.
그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것을 계속 지켜가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F1]은 반대입니다.
자신의 과거는 엉망진창이었을지라도, 새로운 미래를 향해 도전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에게 과거는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고, 실패로 얼룩져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차이점이 두 영화의 주인공들이 주연배우들의 삶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https://youtu.be/BA-1w0vC7S4?si=m2vMiK5Chfl2Ao1s&t=200
[탑건: 매버릭]에서 매버릭은 아이스를 찾아가 대화를 나눕니다.
과거의 상처를 이제는 떠나보내야 한다고 하자 이런 대사를 하죠.
"It's not what I am, It's who I am."
"그건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그게 나란 사람이야."
이 장면은 누가 봐도 매버릭의 마음이 아니라 톰 크루즈의 마음입니다.
영화배우는 자기가 하는 일이 아니라 그냥 자기 자신이라고요.
헐리우드에 계속 들어오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AI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자신은 배우로서 존재해왔고 그걸 포기하는 순간 자신이라는 사람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 할 수 밖에 없다는, 어떤 소명에 대한 고백으로 들렸습니다.
[F1]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쏘니 헤이즈가 케이트 매케나와 하룻밤을 보낸 뒤 악몽을 꾸다 깨서 발코니에 서있죠.
케이트가 쏘니에게 다가가서 이야기를 하다가 쏘니가 고백성의 답변을 합니다.
자기 과거는 엉망진창이었지만 꿈은 여전하고, 자기는 레이싱을 사랑한다고요.
이 대사는 브래드 피트라는 배우 자신의 자전적 고백으로도 들립니다.
안젤리나 졸리와의 가정 생활을 파탄낸 이력이 있고 사회적으로도 지탄받는 사건들이 제법 있죠.
그렇지만 영화 배우로서,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다는 브래드 피트의 선언처럼 들립니다.
톰 크루즈는 소파 방방 사건으로 욕을 먹긴 했지만 그게 무슨 도덕적 실패는 아니었습니다.
사이언톨로지 신도로서도 욕을 먹지만 그건 이미지의 문제이지 이 사람이 직접 법에 휘말리는 그런 부류의 사건은 없죠.
그리고 톰 크루즈는 그런 자신의 과오를 직접 언급하는 걸 매우 꺼려합니다.
토크쇼에 나가든 인터뷰를 하든, 영화배우로서의 결과물이나 좋은 부분만을 이야기합니다.
브래드 피트는 공식적으로 가정 생활에 실패를 한 사람이죠.
알콜 중독도 자신이 인정을 했고요.
이 사람은 곧잘 셀프디스도 하고 인터뷰도 매우 털털하게 하는 편입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의 주요 출연자 세명이 인터뷰를 하는 영상에 보면 레오와 브래드의 태도가 정말 반대됩니다)
기본적으로 좀 히피 끼가 있는 사람이라고 저는 보는데, 그게 이번 캐릭터에 고스란히 반영이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실제 F1 경기라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전략이 영화의 메인 스토리로 채택된 것도 그런 영향이 있었던 것 같구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계속 성실하게 영화인으로서 살고 싶다는 배우.
개차반으로 살았지만 이제라도 정신차리고 할 수 있는 걸 하고 살겠다는 배우.
두 배우의 이런 태도나 삶의 차이가 영화에서도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 흥미로웠습니다.
@ 물론 어느 쪽에 손을 들어주냐면 저는 [탑건: 매버릭]입니다.
배우의 전작이 있는데다가 '스피드광'과 '활공 매니아'로서 배우의 실생활이 캐릭터에 훨씬 더 몰입시키는 부분이 있거든요.
[F1]은 뭔가 스피드의 감각을 위해 나머지 모든 게 너무 전형적으로 흘러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 영화를 큰 화면으로 즐기는 건 충분히 영화적 쾌락을 즐기는 경험이라 생각합니다.
ㅎㅎ 브래드 피트 본인에게도 이 정도 사이즈의 영화는 별로 안들어올 것 같아요. 그래도 이 정도면 연기를 자주 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