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봤어요.
'이사'(1993년)
이번 주에 개봉한 소마이 신지 감독 영화 보고 왔어요. 스포일러성 내용이 있습니다.
작년에 상영했던 '태풍 클럽'을 놓쳐서 이 감독님 영화는 처음 보았어요. 잘 모르지만 청소년 시기를 다룬 영화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 영화도 '렌'이라는 여자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아이에게는 부모를 중심으로 한 어른들이 만든 일상이 세계의 전부이고 어린 시절은 가족이 형성한 이 일상 세계와 자아가 선명하게 분리가 안 됩니다. 하지만 이 세계는 곧 흔들리게 되고, 변형되고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 가족이 만든 일상 세계와 자아를 분리시키는 고통이 따르는 과정이 '성장'일 것입니다. 사람마다 분리 과정에 다양한 흉터가 남기도 하겠습니다. 이 영화는 '렌'의 경우를 따라가 봅니다. 한 가정의 흔들림 속에서 주인공 '렌'이 분리의 과정을 겪어 나가는 것을 시간을 들여 들여다 보게 하여 관객이 충분히 공명에 이르게 합니다.
가정은 이미 금간 상태로 영화가 시작됩니다. 영화는 처음에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하던 렌이 벌어져 있는 부모 사이를 점차 확인하고 이것이 분명한 변형이며 파탄임을 깨달으면서 자기 안에서도 혼동과 분리를 겪는 것을 따라가고 있어요. 저는 영화 내용도 감독의 특징에 대해서도 아무 사전 정보가 없었어요. 그래서 렌의 반응과, 수위가 점점 높아지는 일탈이 조금씩 원을 확대시키는 것처럼 반복되자 어떤 영화인지 그제야 알게 되었어요. 그간 본 이혼하는 부모와 자녀의 드라마들 영향인지 그래서 다음에 이어질 사건은 무엇인지, 이건 흔한 일 아닌가라는 마음으로 진척되는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지기를 기다렸던 거 같아요. 이 영화는 그런 식으로 새로운 사건을 내놓는 영화는 아니었네요.
관객이 렌의 입장에서 확실히 겪기를 바라고 있었어요. 영화 속 어떤 장면을 빌어 말하자면 영화는 불이나 물의 이미지와 경험을 동원해서 강렬한 내적 부대낌과 떠나 보낼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충분히 겪어나가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체가 주 내용이었어요.
우리가 어릴 때 겪은 이런 비슷한 아픈 일을 떠올려 보면 이 영화의 렌이 한 만큼 자신을 들여다 보고, 주변을 이해하려 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부모의 이혼, 별거나 무관심함 속의 결혼생활, 다툼, 이 정도가 아니라도 누구나 경험하는, 어느 날 부모에게 확인하는 볼품없는 개인성 등등은 다 이 영화가 다루는 고통의 범주에 들어가는, 가족의 세계가 깨지게 되는 요인들이겠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렌의 나이가 궁금했어요. 학급 친구들을 보면 몸도 작고 어려 보여서 4학년 전후일까 싶었는데 후반에 혼자 다니는 장면들은 나이 짐작을 어렵게 했습니다. 검색해 보니 6학년 설정이라는 것 같아요. 사실 3,4학년 나이라면 렌보다는 훨씬 의존적이고 수동적이라 고통에 그런 반응을 보이기는 어려울 것 같거든요.
오늘 봤는데 본 직후보다 이 글을 쓰면서 영화가 좀더 좋아진 거 같아요. 영화의 성격을 알고 쓸데 없는 기대없이 다시 보면 더 나을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중에 가장 좋아하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 떠올랐어요.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등장하고 가족 구성원도 더 있기 때문에 완충이 되는 경향이 있지만 두 작품에 공통점은 분명 있는 느낌입니다.
좀더 잘 소개하고 싶으나 역량도 부족하고 오늘 본 영화를 오늘 써서 올리고 싶은 마음에 그냥 올려 봅니다.


사실 이 감독님의 영화들 중 가장 보고 싶은 것은 '세일러복과 기관총'인데 과연 그럴 날이 올 수 있을지 모르겠구요. ㅋㅋ
이런 주제를 다루는 영화나 이야기들을 볼 때마다 늘 '나는 참 별 생각 없이 속 편하게 자랐구나'라는 생각을 해요. 아주 어릴 땐 뭘 눈치 챌 능력도 되지 않았고 좀 크고 나선 가족에겐 거의 관심이 없었죠. 지금 갖고 있는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생각이란 거의가 성인 된지도 한참 후에나 떠올리게 된 것이었고... 어찌보면 이렇게 조숙(?)하지 못한 것이 살기엔 오히려 편한 것인가!! 라는 속 편한 생각을 하게 되네요. 하하.
소문으로 듣던 영화들이 다시 손질을 받고 재개봉하는 걸 보면 말씀하신 영화도 기대할 만하지 않을까요..
'조숙하다'는 단어가 그렇게 긍정적으로 쓰이지는 않는 것 같아요. 아마도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맥락이 들어간 단어라 그렇지 싶어요. 그러니 철없고 속편하네라는 말을 들었는데, 다 커서는 이렇게 제 몫을 잘 하는구나라고 반전의 칭찬을 듣는 건 좋은 일이 맞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