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발론'

'아발론'

단편들 소개하면서 세부 내용은 생략하고 쓰고 있지만 이번 글은 내용 소개와 주제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스포일러 주의해 주시길.


23세기인 현재, 지구는 멸망을 경험했고 '아발론'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인공도시(요새)의 이름입니다. 

주인공은 이 도시의 과학 교사이면서 필명으로 소설을 쓰는 여희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쓰는 소설은 아발론 바깥에 흩어져 사는 '무색인'을 주인공으로 한 것이에요. 무색인은 (추측컨대)핵으로 인한 멸망 때 살아남은 조상을 갖고 있고 그 후유증으로 색소결핍 같은 외모 이상이 온 이들입니다. 무색인은 아발론에 사는 사람과 크게 보면 다를 바 없는 인간이지만 오랜 세월 문명 밖에서, 폐허가 된 땅에서 생존에 급급하며 살아 왔으므로 삶과 사고 방식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전통적인 인간과 외모가 좀 다르다는 점도 있고, 무엇보다 서로 엮이면 이익이 될 게 없다는 판단하에 아발론 사람들은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합니다. 무색인에 대해서는 풍문으로만 듣고 싶을 뿐 현실을 함께하고 싶지는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울타리 바로 근처에 현격한 수준 차이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고생이 존재하고 그들이 도움을 청한다면 언제까지 모른 척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무슨 이야기인지 짐작하실 것 같습니다. 타자에 대한 혐오와 분배에 대한 소시민적 대응 같은 걸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였어요. 여희는 정치적 입장이 흐리멍덩한 대부분의 보통 시민을 대표합니다. 소설 속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면 적당히 급진적으로 들리는 말을 종종 내뱉지만 정작 무색인에 대한 급진적 정책이 채택되면 움찔할 부류'입니다. 여희는 교사이면서 또한 무색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소설의 작가이기도 합니다. 여희는 자기 정체성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고민에 들어갑니다. 


음...타자에 대한 혐오니 소시민성을 다룬 소설이라고 내용면만 보고 정리하자면 찜찜하기도 합니다. 저의 소설 취향이 좁아서 한 편의 작품을 보면서도 좁은 눈으로 들여다 보고 취사선택하는 경향이 있는 거 같아서요. 낯선 세계와 인물이 등장하면 자꾸 비유로 바꾸어서 제 손 안에 넣으려는 경향이 있거든요. 듀나 님의 작가의 말에도 나옵니다만, sf에 나오는 낯선 무언가는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그다음 비유의 가능성을 보라고, 말입니다. 저의 이번 짧은 감상들은 작품들이 지닌 세계의 외부와 설정 자체의 특이성은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 후기라는 점을 말하고 싶네요. sf를 좋아하고 많이 본 독자들에게는 더 변별적으로 눈에 들어올 수 있겠지만요. 쓰고 보니 중언부언인 듯. 

이번 책을 읽으면서 '설정'을 생각하게 됩니다. 현재와 현실을 배경으로한 소설이라면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sf 소설에서는 이 설정이라는 것이 아주 큰 비중을 갖는 거 같습니다. 어쩌면 설정이라는 것이 이 장르 작가에게는 가장 크고 중요한 작업 같기도 하네요.  





 


      • 잘 들었어요...저는 모르던 음악이랍니다.


        아발론은 아서왕 전설에 나오는 신비한 섬이라네요.

    • 인기 많고 고전 대접 받는 SF들은 대체로 어떤 현실의 비유이거나 일종의 '사고 실험' 같은 성격을 띄는 것들이 많죠. 그렇다보니 설정이란 것도 중요해지는 것이고... 뭐 그렇게 생각합니다. 근데 또 그게 너무 선명해져 버리면 이야기가 딱딱해지거나 재미가 없어지는 경우도 많아서 일부러 조금씩 어긋나게 그 설정이란 걸 잡는 것 같기도 하구요. ㅋㅋ '먼저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그 다음에 비유를 찾아라' 라는 말씀이 참 멋지게 들리긴 하는데 그게 잘 안 되죠. 이게 다 소설, 시 하나 배울 때마다 '이 작품의 주제가 뭐냐!!!'는 질문을 받으며 자라 온 우리들의 한계입니다!! ㅋㅋㅋ

      • 제가 그런 경향이, 설정이든 장면이든 다 주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듀나 님의 말씀, 작품이 제시하는 공간과 설정 자체를 받아들이라, 먼저 그 세계를 인정하라는 것인데 이게 낯선 세계일 때는 특히 의미의 방어막을 찾는 것 같아요. 영화를 볼 때보다 책을 읽을 때 이 경향은 더 강해지고요.    

    • 책을 빨리 구해야겠어요 ㅋㅋ. 읽고 나서 댓글을 달아야 할 것 같아서. 다만 '무색인'이란 말에 빵 터졌네요. 유색인종Colored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을 대놓고 맥이는 거잖아요 ㅋㅋ. 진짜 무색인을 만들어주신 듀나 님.

      • 더 정확하게 읽고 후기를 쓰실 수 있는 분들이 게시판에는 많을 텐데, 겉핥기 감상만 짧게 올려서 주인장에게 좀 미안하기도 해요. 읽으시고 후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작가의 댓글도 받았으니 막가파로 쓴 게 잘 한 건지도요.ㅎㅎ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9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0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1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7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2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4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31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9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5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1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4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9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8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4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6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