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발레리나] 보고 왔습니다....

저는 이 시리즈를 크게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존 윅4]는 나름 즐겁게 본 기억이 있어서 작은 기대를 안고 [발레리나]를 봤습니다.
아네 드 아르마스의 작은 팬이기도 하구요.
존 윅 시리즈 전 작품을 다 봤기에 기대해야 할 것과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은 이미 숙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발레리나]는 좀 너무하다 싶네요.
보는 내내 김성모 화백의 근성론만 생각났습니다.

김성모 만화에서 누가 얼마나 힘이 세고 체급이 얼마나 차이가 나고 어떤 기술을 쓰느냐 이런 걸 따지는 건 바보같은 일이 됩니다.
아무리 두들겨맞아도 주인공이 포기하지 않고 일어나서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겠다는 그 근성 드라마가 유일한 작품성의 척도가 됩니다.
그러니까 보는 사람도 어느 정도는 '얼탱이'를 내려놓고 낄낄대며 보게 됩니다.
이번 [발레리나]도 코어는 유사합니다.
암살이 어쩌고 저쩌고 이런 건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빗발치는 총알을 피해
타오르는 불길을 피해
번쩍이는 칼날을 피해
어떻게든 한방 먹이면 되는 것입니다.
봤나... 이것이 나 이브 마카로의 근성이다...!!
이 영화의 장르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액션장르로 기대하고 보러갔던 저는 여러번 실소를 터트렸고 때로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일단 주인공 캐릭터의 액션이 처참합니다.
정말 기이하게도 존 윅 시리즈는 주연배우가 액션을 가장 못하는 액션 영화였는데 스핀오프 작품마저 그 지점을 확실하게 계승했습니다.
[존 윅 3]의 최후의 결투 장면을 보신 분들이라면 아마 많은 분들이 동의하실 겁니다.
액션 영화의 새로운 효시를 열었던 레이드 시리즈의 주연격 배우들이 메인 빌런으로 나오는데요.
이들이 날쌔고 사납게 액션을 하려고 하면 키아누 리브스가 굼뜨게 움직이고 그가 일어날 때까지 악당들이 기다려주는 촌극이 발생합니다.
[발레리나]는 거의 모든 액션이 이런 식으로 돌아갑니다.
몸놀림이 날렵한 액션 배우들이 자기 액션을 뽐내다가 몸놀림이 굼뜬 아나 데 아르마스의 한방에 리타이어하는 황당한 일이 계속 벌어집니다.
영화 초반, 이브 마카로의 첫번째 임무인 클럽시퀀스에서부터 이 문제는 감춰지지가 않습니다.
정두홍씨와 그의 부하들이 화려한 몸놀림을 보여줘도 쇠파이프질에 맥없이 나가 떨어집니다.
할슈타트에 가면 이 액션씬의 황당함은 그 정도가 더 세집니다.
총기를 들고 있으면서도 이브에게 맞아 죽기 위해 암살자들이 이브에게 달려듭니다.
존 윅 시리즈는 종종 게임을 영화로 구현했다는 느낌이 들곤 하는데, 그렇게 따졌을 때 [발레리나]는 난이도를 매우 낮춰놓은 게임처럼 보입니다.
쫄따구 캐릭터들이 주인공에게 맞아죽기 위해 가까이에서도 어슬렁거리다가 죽어줍니다.
액션은 기본적으로 춤 같은 것입니다.
총기나 다른 화기 같은 도구를 아무리 사용하더라도 몸짓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춤을 춰도 남은 한 사람의 춤실력이 가려지진 않습니다.
[발레리나]는 이 치명적인 약점을 가리기 위해 어떤 전술을 쓰고 있습니다.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몸을 빠르고 힘있게 움직이는 게 어렵다면, 그 몸에 가해지는 충격을 훨씬 더 강조하는 것입니다.
움직임이 아니라, 타격을 더 강조하는 것이죠.
이 전술은 두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주인공이 더 많이 두들겨맞고 구르는 것입니다.
상대를 화려하게 제압하는 장면을 찍기 어렵다면, 본인의 신체가 어떤 터프한 과정을 겪는지를 더 강조합니다.
아네 다 아르마스는 정말 계속해서 구르고 두들겨맞고 충격에 몸을 던집니다.
이런 장면이 주는 효과가 없다고는 못하겠네요.
또 하나는 상대방의 신체를 최대한 훼손하는 것입니다.
액션의 과정이 어떻든 그 결과는 최대한 화끈하고 "쩌는 것"으로 보이게끔 상대의 신체를 부숴놓는거죠.
저는 이 작품이 액션보다는 고어/슬래셔 장르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영화의 모든 하이라이트는 주인공이 상대를 얼마나 더 잔인하게 죽이느냐에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트 메어]의 프레디 크루거나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 부히스와 같은 역할을 [발레리나]에서는 이브 마카로가 맡고 있는 거죠.
어떻게 하면 상대를 더 끔찍하고 지독하게 죽여버릴까?
이게 이 영화의 가장 주요한 고민입니다.

영화는 정말로 사람이 사람 도륙내는 걸 열심히 보여주더군요.
시나리오도 당연히 문제가 많습니다만 크게 따지고 들 부분은 없습니다.
일단 시작하면 이 영화의 초반부, 자기 딸을 데리러 온 총장이 그 소동을 피워놓고도 이후에는 그 딸을 전혀 찾지 못하는 것부터 총체적 난국이기 때문이죠.
이 시리즈의 서양판 무협세계를 그리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게는 됩니다만...
제일 큰 문제는 그 설정을 제대로 묘사도 못한다는 부분입니다.
전부 다 주인공의 살인을 위해 복무하는 피살자들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김성모 만화의 세계는 '남깡여창'으로 불립니다.
남자는 다 깡패, 여자는 다 창녀라는 뜻을 가진 밈같은 건데요.
[발레리나]의 세계는 '남킬여킬'이라고나 할까요.
할슈타트의 주민들은 전부 다 킬러라는 게 좀 웃기긴 했습니다.
저는 액션 장르에서 주연배우로 설득력 있는 액션을 보여줄 여성배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지점에서 아나 데 아르마스의 액션은 영 시원치않아서 안타까웠네요.
폼 클레멘타인이 이 발레리나 시리즈에 나오면 어떨까 괜히 기대해보게 됩니다.
제 기준 현세대 여성배우 중 액션을 제일 잘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웃으면서 읽었습니다. 제목에 어울리는 액션의 우아함도 한 점 없었는지요...
호옹이~ 김성모 화백과 비교하니 더 흥미가 생기는 겁니다? ㅋ
액션 여성배우로는 우리 테론 누나 계시지 않습니까?!!
액션 장르를 향한 샤를리즈 테론의 사랑은 킹정하지만, 액션배우로서 평가하자면 이제 좀 나이가 드셨죠...
격투기계에서 하나 섭외해올 순 없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