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정원' 봤어요.

'이사' 다음 해인 1994년에 나온 영화입니다.

'이사'와 연작으로 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고베가 나오는 걸 보면 아마도 앞 영화처럼 장소가 교토인가 싶기도 한데 아무튼 여름의 뜨거움으로 유명한 간사이 지방을 배경으로 세 친구의 여름나기 이야기입니다. 

소마이 신지 감독의 영화 두 편을 달랑 보고 무슨 특징을 말하는 건 섣부르지만 자주 그러듯이 마음 가는대로 나름의 감상을 두 작품을 견주기도 하며 짧게 써 봅니다.


두 영화가 모두 시작은 비 장면입니다. 작품 속에 쏟아지듯 퍼붓는 비가 몇 차례 나옵니다. 나머지 시간은 태양이 작열하며 내리쬡니다. 그리고 그 아래 아이들은 비에 젖고 몸을 다 태우면서 뛰어다닙니다. 요즘 우리나라 날씨와 비슷한 거 같네요. 살을 태우더니 물을 퍼붓고 다시 익히고 찌고...실제로는 이 날씨 시련으로 사람들이 성숙해지지 않지만 이 영화들에서는 여름 날씨가 아이들을 담금질하는 한 축을 맡는 거 같네요. 아이들은 이런 날씨에 정말 많이 뛰어다닙니다. 자전거도 타는 용도라기 보다 언덕길에서 죽기살기 끌고 올라가는 용도로 기능합니다. 

'이사'처럼 그것에 집중해서 다루지는 않지만 아이들에겐 가정사로도 고민이 있습니다. 거리를 쏘다니는 익은 얼굴을 보는 것도 숨차고 힘들지만 이 정도에서 만족하지 않는 것이 이 감독님의 영화입니다. 생각보다 조금 더 나갑니다. 많이 더 나갑니다. 이것이 한국인의 정서와 일본인의 정서의 차이인지, 그냥 소마이 신지 감독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어요. 답은 둘 다 관계 있다, 겠죠. 


반듯한 주택가 사이에 노인이 혼자 사는 오래 된 집이 있는데 그 낡은 집은 온 마당이 잡초로 뒤덮여서 폐가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노인은 그 집에서 본인을 돌보지도, 돌보아지지도 않고 외롭게 사는 것 같습니다. 세 친구 중 한 명의 조모상을 계기로 죽음에 관심이 생긴 주인공 애들이 죽음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노인의 집을 관찰하면서 관계 맺기가 시작되며 본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이사'에서도 렌은 여행지에서 홀로 돌아다니다가 노인 둘을 만나 그 집에서 잠시 쉬게 되고 위로 비슷한 감정을 얻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본격적으로 아이들의 여름 중심에 노인이 등장해요. 그런 것 같습니다. '성장과 죽음'입니다. 성장이란 결국 한 시기(세대)를 거름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란 뜻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다만 위에도 썼지만 이 감독님은 그런 이야기를 쉽게 가져오지 않고 생각보다 많이 나갑니다. 세 친구는 노인과 가까워지면서 노인의 집을 수리합니다. 노인을 다시 세상과 연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초등학생들 세 명이 넓은 마당의 잡초를 다 뽑고 문짝과 창과 지붕을 수리하고 페인트칠을 합니다. 그리고 정원에는 꽃씨를 심고요. '이사'를 보셨다면 렌이 후반에 떠돌아다니던, 예상 이상의 가혹한 방랑을 기억하시겠죠. 이 영화에서 아이들의 집수리는 그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어요.(거의 어린이 노동 착취가 아닌가 싶을 강도입니다.) 

간단하게 정리한다면, 아이들의 고민과 에너지는 한 노인의 집에 집중되고 노인과 집을 통과하면서 뜨거운 여름을 불사르며 성장에 이른다, 그리고 노인은 노인의 삶을 아이들 덕분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거 같네요. 노인의 이전 삶이 왜 그렇게 흘러갔는지 사연 부분은 별 재미도 없었고, 별로 다루어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하면 다 포함되지 않는 것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세월이 가는 것을, 그래서 집이 망가져 가는 것을 보여 주거든요. 시간이란 흐르고 주인이 떠난 집은 망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데 이게 또 아주 냉정한 마무리같아서 조금 더 영화가 좋게 보이던 지점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다시 한 번 일본의 여름 영화가 대단하구나 생각되었어요. 게시판에서도 종종 언급되지만 작품 수도 많고 뛰어난 작품도 많고. 지역적, 계절적 특징을 이렇게 영화 속에 잘 녹여서 계속계속 만들어 내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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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사실 이름도 못 들어봐서 전혀 모르는 감독인데 작년에 태풍클럽이었나요. 그거랑 이번에 이사 등이 국내에 개봉하면서 좋은 평을 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인지 갑자기 관심이 생깁니다.

      • 저도 이름만 들어보고 영화는 올 여름에 첨 보았습니다. 두 편 중에서는 '이사'가 인물 개성도 강하고 더 센 느낌이 있어서 이 감독님의 특징이 더 잘 드러나지 않았나 싶어요. ott에 올라오겠죠...

    • 대체 어떤 문화적, 역사적 차이가 있길래 이렇게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일본 사람들이 뭔가를 장르화 한다고 해야 하나요. 그런 쪽으로는 범접할 수 없을만큼 뛰어난 재능들을 갖고 있는 듯 합니다. 말씀대로 '여름 이야기'라고 하면 바로 딱 떠오르는 게 일본 만화, 영화들 속 장면들이고. '청춘물'이라고 해도 일본 쪽은 딱딱 컨셉과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뭔가가 구축 되어 있고... 그 외에도 이것저것 많죠. 참 부러운 능력 같아요. 

      • 모든 분야에 마니아 문화라는 게 있는 거 같고 그걸 장려하고 또 일상이 된 사회 분위기? 타고난 기질이 있는 것 같긴 해요. 저도 뭐 모르지만요.


        우리는 좀 유행 영향을 많이 받고 물결을 타면 확 집중해서 우수한 걸 만들기도 잘 하지만 식기도 잘 식는데 저쪽은 오래 깊이 파는 성질 같죠. 


        일본의 이런 점은 여러나라 사람들이 연구도 많이 한 걸 보면 특이하긴 한가 봅니다.  

    • 한국에는 잘 안 알려졌지만 일본에서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꼽히는 거장이지요.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도 많이 찍었던

      • 네 저도 이번에 그런저런 내용을 조금 알게 되었어요. 일찍 세상을 뜨셨다는 것도 안타까운 점일 거 같고요. 


        두 편을 보고 나니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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