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머티리얼리스트] 보고 왔습니다

이 영화에서 루시가 등장했을 때부터 한 30분간은 계속 홀려있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영화를 보면서, 어쩌면 거의 처음으로 장면이나 대사마다 기가 막히다는 감탄을 했습니다. 그 어떤 로맨스 영화도 [머티리얼리스트]에서 루시와 해리가 데이트하는 장면만큼 저에게 짜릿한 느낌을 준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이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습니다. 그 뒤의 흐름이 살짝 처진다고 느껴지는 건 아마 초반부의 흥분이 너무 고조되어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어떤 영화를 즐길 때는 해당 장르나 이야기에 좀 열려있어야 하는 게 있다고 믿는 쪽입니다. 그리고 저는 [머티리얼리스트] 류의 이야기를 한 때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어떤 여성이 두 남성 사이를 저울질하며 파트너를 신중하게 고른다는 이야기에서는 당연히 [오만과 편견]을 빠트릴 순 없을 것인데, 이 영화속의 게임이 조금 더 은밀하고 센슈얼하다는 점에서는 피에르 쇼 데를로스 드 라끌로의 [위험한 관계]와 더 맞닿아있다고 느꼈습니다. 여우들이 감칠맛나는 애태우기를 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달까요.


또한 공교롭게도, 저는 이 영화 속 존의 위치에 제가 가 본 적이 있습니다. 남자친구가 있는 제법 부유한 여자를 좋아해봤고 그 사람과 이런 저런 친밀한 관계가 되었으며 그가 심정적 궁지에 몰렸을 때마다 제가 달래주곤 했습니다만 당연히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가 살면서 본 사람 중 가장 부자였는데, 아버지가 사업을 하다 망해버린 결과 압구정의 유명한 모 아파트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종종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여생을 상상해보기도 했는데 그게 affordable하지 않아서 나중에는 마음을 접었고 또 성격차이(...)로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종종 영화 속 존의 입장에 심하게 공감이 갔습니다. 이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진짜인데, 그 현실적인 요건을 맞춰줄 수가 없는 것 또한 진짜라서 착잡하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역으로 이 영화의 존이 정말 순수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가 데이트 비용도 잘 못내서 헤어진 전 여친을 저렇게까지 또 좋아하고 고백까지 할 수 있다고...? 


제가 해리의 위치에 가 볼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텐데요 ㅎㅎ


그리고 저는 참 이상하게도, 한 때 열렬히 좋아했던 상대방을 시간이 흐른 후 재회했던 경험들이 있습니다. 총 세번정도 되는데 그 중 마지막은 거의 10년만에 다시 연락이 통했던 경우이고 마침 그 때 제가 그 전보다 상황이 괜찮아졌어서 정말 꿈같은 재회를 했습니다. 그 세번 모두 완전연소되지 않은 감정이 미련의 불씨를 남기고 있던 경우였는데 셋 다 잘 안되긴 했지만 재회한 순간이 너무 벅찼어서 루시와 존의 재회를 공감하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패스트 라이브즈]를 볼 때는 그 경험에 의거해 그 운명적 재회가 그렇게까지 대단한 건 아니라고 썼었는데, 이번 영화를 두고는 같은 경험을 다르게 말하니 좀 웃기기도 하네요. 그건 아마 전작이 그려낸 "인연"이라는 게 너무 거창하고 시공을 초월하는 것인 반면 이번 작품에서는 훨씬 더 현실적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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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두고 여러 관객들에게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왜 저 둘 중의 하나랑 굳이 결혼을 해야하냐는 불만족스러움 같습니다. 특히나 비혼이 대세가 되고 결혼은 어리석은 선택으로 여겨지는 지금 그 불만에 이견을 좀 덧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이 이야기는 셀린 송의 개인적인 로맨스 세계관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영화가 셀린 송의 전작인 [패스트 라이브즈]의 후속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작과 이번 작품을 다 합쳐서 생각해보면 셀린 송이 생각하는 낭만은 어떤 두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인데, 그건 이 사람이 변덕스럽거나 욕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운명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사람은 이 세상에 운명이 있다고 일단 전제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패스트 라이브즈]는 그 운명과 결국 헤어질 수 밖에 없는(그리고 이것은 한국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운명을 따르지 않고 다른 나라의 다른 사람으로서 살기로 한 결심과도 맞물립니다) 선택을 그려낸 것이고, 이번 작품은 그 운명을 다시 찾아낸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런 고로 어느 쪽도 운명이 아니라는 선택지나, 아예 알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건 셀린 송의 세계에서는 그렇게 합당한 전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로미오와 쥴리엣을 두고 왜 저렇게 사랑 같은 것에 목숨을 거냐면서 외재적인 접근을 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것이 이 작품에 끝내 초대되지 않은 채로 남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 영화를 두고 루시가 해리도 존도 선택하지 않는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그건 결국 운명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제시할 수 있는 선택지일 것입니다. 이 운명과 관해서는 딱 두 개의 선택지만 놓여있습니다. 운명을 따를 것인가, 운명을 따르지 않을 것인가. 그러니까 이 운명의 이야기를 단순히 두 사람 중 한명을 고르는 문제로 치환해버리면 당연히 이 결말이 그렇게 모던하지 않은 것으로 다가올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시얼샤 로넌이 주연했던 [브루클린]과도 좀 닮아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탈리아 이민자 남성과 아일랜드의 부자 남성 사이에서 주인공이 단순히 연애대상을 찾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것처럼요. 사랑을 믿으면서 살 것인가, 사랑을 믿지 않고 살 것인가의 질문 중에서 루시는 반드시 하나를 골라야됩니다. 어느 쪽도 고르지 않는다는 것은 이 영화를 의미없게 만듭니다. 어느 한 쪽을 고르면 어떻게든 행복해질 수 있는데 굳이 행복해지지 않는 선택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서 같은 전제를 이야기합니다. 데이팅은 사랑이 아니라고. 사랑은 훨씬 더 통제불가능한 것이고 그건 사람의 인생에 갑자기 들어왔다 나가는 것이라고. 그리고 이 내용을 대화한 직후 콜라와 맥주가 테이블에 놓이고 존이 불쑥 등장합니다. 이 영화는 이 부분에서 사랑이 그러는 것처럼 불쑥 찾아온 남자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셀린 송이 전작에서 보여줬던 운명적 사랑과 그 모서리에서 도외시되는 비운명적 사랑의 구도가 살짝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게 있는데, 그걸 우리가 찾아내지 못하거나 거기서 도망을 칠 뿐이고 만약 그 사랑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운명이라고 영화는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매칭 중에서도 루시의 입을 빌어, 그리고 데이트강간을 당한 소피의 입을 빌어서도 다시 이야기됩니다. 소피가 자신이 좋은 남자를 만날 지 모르겠다고 하자 루시는 대답합니다. 당신이 안믿을지 몰라도, 내가 믿는다고. 소피는 자기가 이런 일을 당했음에도 좋은 다른 남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면서 울고 웃습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셀린 송이 펼치는 개인적 판타지인 동시에, 그 판타지 안에서 사랑이란 운명을 믿느냐 안믿느냐로 결국 요약되는 질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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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정말 value와 love 사이의 양자택일인가? 라는 질문을 다시 해보게 됩니다. 주인공인 루시는 처음에 말합니다. 연애를 권장하는 직장 동료에게, 그는 독신으로 살 거라고 아예 못을 박아놓습니다.  이후 루시는 자신이 결혼에 골인시키는데 성공한 여자가 결혼하기 싫다고 하니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그리고 이 여자를 진정시킬 한마디를 해줍니다. 아, 그러니까 그 남자는 당신을 가치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니까 지금 결혼을 하려는 것이군요. 여자는 위로받았다는 듯이 결혼을 결심합니다. 


나를 가치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내가 평생의 반려자를 구할 수 있는 조건의 전부인가. 결혼은, 혹은 짝을 찾고 결정하는 것은 나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것인가. 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우리는 루시의 사려깊고 우아한 태도에 넘어가 제대로 답하지 못합니다. 영화는 가치에 의한 배우자의 선택을 딱히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루시가 스스로 다른 답을 찾는 길을 보여줍니다. 


루시는 존과 재회해서 그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며 구질구질했던  존과의 데이트를 회상합니다. 그는 주차비를 아끼기 위해 뱅뱅 돌면서 끝없이 스트레스를 주는 연애를 포기합니다. 루시는 사랑을 했지만, 사랑에 실패한거죠. 이후 그는 value의 세계에 뛰어듭니다. 그는 계속해서 남자와 여자를 외적 수치로 평가하고 재단하면서 이들의 적당한 짝을 맞춰줍니다.


이것이 영화의 대전제일 것입니다. 우리가 value를 찾는 것은 결국 사랑을 찾지 못한 결과 아닌가? 혹은 사랑을 이루는데 실패한 결과가 아닌가? 그러니까 value와 love는 양자택일의 가치가 아니라, love가 앞서는데 그에 실패한 결과로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는 자기기만의 전제가 아니냐는 것이죠. 이 정도 여자라면, 이 정도 남자라면. 


재미있는 건 이 영화에서 value를 기반에 둔 짝짓기는 어떻게든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루시에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말하는 남자고객과 여자고객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이를 꽤나 긍정은 하지 못하게끔 의문을 던집니다.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 이십대 중반(이십대 후반도 늙었다고 덧붙이며)의 여성을 찾는 남자의 욕망은 과연 합리적인가. 혹은 30대 중후반의 여성이 수입과 정치관과 머리숱을 다 만족시키는 남자상대를 찾는 것은 과연 객관적인가. value를 따지는 만남은 애초부터 이뤄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인들의 가치가 상대방에게 품는 욕망의 수준과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영화 속 인간군상들의 모습이 아니라 value를 따지는 행위 자체가 무조건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value를 따진다면, 안따지는 너그러운 사람들은 어떨까. 영화는 이걸 소피의 매칭 실패로 다시 보여줍니다. 소피는 아주 대단한 남자를 찾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 사람은 영화 초반에서부터 자기가 데이트한 남자를 만족스러워했지만 그 남자가 소피를 불만족스러워합니다. 그리고 이후 다시 매칭된 상대남자는 루시와 통화하면서 자기는 데이트가 만족스럽다고 했고 루시는 드디어 짝을 찾아준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남자는 소피를 강간했습니다. 욕망의 기준이 낮더라도 그 욕망을 통용시키는 상대의 기준은 더 낮습니다. 상대를 찾는 기준이 까다롭지 않으면, 까다로울 필요도 없을 만큼 저질스럽고 폭력적인 욕망을 가진 사람이라서 그랬던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까다롭든 안까다롭든 매칭은 무조건 실패합니다. 그러니까 소피가 강간을 당한 이 사건은 단순히 데이트 매칭이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위계를 다 고려하지 못하는 시스템적 한계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더 근본적으로는 그냥 value를 따지는 행위가 실패한다는 것이고, 때로는 아주 큰 실패까지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 루시는 큰 충격을 받고 자신의 업무 자체와 value에 기반을 둔 짝짓기에 회의를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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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일종의 사회적 실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왜 사랑을 택해야하는지 루시는 직접 경험해봅니다. 사랑이 있는 관계를 먼저 겪어봤다면(그래서 찾아올 사랑은 전남친이어야합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이 없는 관계를 겪어봐야합니다. 루시는 자기 자신을 매칭하고 있는 셈입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시피한 남자와 매칭이 되었을 때 사랑이라는 가치 없이 자신은 이 남자와 결혼할 수 있을 것인가. 루시가 소피의 매칭 실패 이후 자신의 매칭에도 회의를 갖는 건 당연해보입니다.


여기서 의미심장한 건 루시가 매칭 매니저로서 가장 커다란 실패를 한 이후 그 고통을 해리가 아닌 존에게 말한다는 점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해리는 루시가 내밀한 무언가를 고백할 수 없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해리는 좋은 사람이고 둘은 이미 어느 정도는 친밀해졌으며 해리가 그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을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루시가 존을 찾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루시가 삶의 어떤 부분을 해리와 나누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누군가 좋은 사람인 것과 마음이 찾는 사람인 건 전혀 다른 이야기죠.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루시는 해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연인으로서 끌리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루시가 해리를 매몰차게 거절하거나 박정하게 이별하지 않았을 뿐, 루시는 해리와 함께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제목값을 톡톡히 합니다. '머티리얼리스트'는 물질주의자란 뜻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유물론자란 뜻도 됩니다. 내가 어떤 관념이나 상상만으로 뭔가를 결론내릴 수 없습니다. 그걸 반드시 몸으로, 실재하는 물질적인 것으로 증명해야합니다. value만으로 나는 결혼을 해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루시는 이를 유물론적으로 경험합니다. 이 유니콘 남자와 연애도 해보고 좋은 식당도 가보고 여러가지 럭셔리를 누려보고 했지만 그게 결국 루시에게 대단히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value는 없지만 사랑만 있는 연애를 유물론적으로 겪어봅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가 이 둘을 잘 모르는 사람의 결혼식 하객으로 끌고 가는 것은 꽤 타당해보입니다. 이들은 결혼식을 예행연습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루시는 결혼을 하면 얼마나 흔해빠지고 속된 고충을 겪을지를 말로 시뮬레이션해봅니다. 이 과정에서 루시가 아니라 오히려 존이 무너집니다. 그럼에도 루시는 존을 선택합니다. 왜냐하면 그 value가 채워지지 않아도, 사랑이 지속될 거라는 걸 믿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루시가 둘 다 유물론자로서 실험을 해본 끝에 택하는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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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놀라운 점은 그 누구도 상대를 직접적으로 judge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나는 너를 사랑하고 싶었지만 너는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야, 라고 하지 않습니다. 너를 사랑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내가 미워, 라고 자기가 자신을 계속 판단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세 인물은 계속해서 자기 자신의 심리가 어떠하며 그게 얼마나 속되거나 혹은 진실되지 못한지를 고백합니다. 나머지 두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경솔해보이는 존조차도 자신의 모자람을 계속 인정합니다. 그는 나이 서른 중반인데 호텔에서 서빙 알바나 하고 있다며 까칠하게 굴다가 그게 열등감이라는 걸 금새 고백합니다. 루시도 자동차들로 막히는 길에서 이런 걸로 존을 미워하는 자신이 오히려 밉다고 고백합니다. 이들은 솔직하고 자신의 모자람을 상대 앞에서 인정하는 페어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해리가 루시와 원만하게 헤어지는 것은 자신의 다리 수술을 루시에게 들켰기 때문입니다. 루시가 해리의 다리 수술을 보고 너는 가짜 키를 가진 남자구나, 라면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자신감있고 온화화던 해리가, 그 사실을 들키자 루시 앞에서 침울하고 자신없는 면모를 내비춥니다. 즉 이것은 루시의 문제가 아니라 해리의 문제입니다. 이 남자는 자신의 모든 것이 완벽해야 짝을 고를 수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란 걸 들켰으니까 이제 그걸 아는 루시와 짝이 되는 게 본인에게 '메리트'가 없습니다. 즉 이것은 아주 세련된 나르시시즘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도 루시는 상대가 무안하지 않게 하기 위해 자기도 코와 가슴을 수술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은 한편으로는 연애를 결정하는 머티리얼리스트로서의 정체성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도 가리킵니다. 물질주의자로서, 물질의 어떤 부분에 자신의 매력을 근거하고 있는데 그 물질이 사라져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연애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해리의 조건을 가짜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결국 만들어진 허상이기도 한 것입니다. 돈도 많고 고급스러운 취향과 괜찮은 얼굴과 목소리와 태도를 다 갖춘 남자가 키라는 약점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완벽해보이는 남자조차도 '이 정도면'이라고 자신을 관용하지 못하고 다리를 부쉈다가 키우는 수술을 하고 나서야 유니콘으로 거듭납니다. 저는 키를 키우는 수술을 했어요, 라고 해리는 고백하지 못합니다. 상대방이 상처를 의아해하고 나서야 그걸 설명합니다. 


이 영화의 원제는 materialists 로 복수형입니다. 결국 여기 나온 세 인물을 가리킬텐데 여기에서 물질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극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남자친구가 돈이 없어서 사랑을 포기했던 루시, 다른 모든 조건을 갖췄지만 키 때문에 연애를 하지 못했다가 키늘리기 수술을 받은 해리, 서빙 알바를 하면서 생계를 간신히 유지하고 그걸 수치스러워하는 존... 그러니까 한편으로 물질주의적 기준을 따지는 것은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에 사로잡혀있다는 걸 영화는 가리킵니다. 이 value의 세계에서 타인에게도, 자기 자신조차도 영원히 만족할 수는 없으며 그것을 다 채우기 위해서는 엄청난 희생을 감내해야합니다.


그러니까 결국 두개의 답이 남습니다. 물질주의의 세계에서 어느 정도까지 채우고 타협할 것인가, 혹은 거기로부터 아예 벗어나버릴 것인가. 이 지점에서 영화는 해리를 유치한 악역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이런 수법은 정말로 심적인 조건까지 완벽한 상대방의 가정법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일 뿐입니다) 물질주의적으로 계속 답을 탐구합니다. value의 세계에서 만족은 있는가, 만약 자신이 만족한다면 왜 루시가 영화 초반에 설득했던 그 고객은 자신의 만족이 아닌, 타인(언니의 질투)의 만족을 빌어서 만족감을 충족해야했는가. 그러니까 루시는 첫번째 답은 여러 측면에서 오답이라는 판단을 내립니다. 


이 세 인물은 각자 자신이 물질적으로 얼마나 모자라며 약점이 있는지를 고백합니다. 존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돈이 없다는 걸 빼면 크리스 에반스의 외모는 상당히 괜찮은 편이고 해리가 갖지 못한 '키'가 있습니다) 루시 또한 영화 초반에 해리에게 자신은 나이도 많고 많은 가치가 쇠할 것이라고 했으며 해리는 자신의 키를 극복하지 못했음을 이야기합니다. 모두가 자신의 물질적 조건을 충족할 수 없더라도 그것은 결국 상대방의 양해, 합의에 따라 얼마든지 극복이 되는 문제이고 그걸 결국 자신이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는 꽤나 불교적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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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한국맞춤, 현실적으로 이야기해봅시다. 이른바 차은우가 자신에게 고백한다고 했을 때 조건이 괜찮다고 결혼을 수락할 수 있을까요. 많은 여자들이 물론, 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조건만 괜찮다고 해서 차은우와 결혼하는 게 무조건 행복해질 거라 믿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조건을 좋아하는 것과 사랑에 빠지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진실된 사랑 따위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물질주의에 기반한 데이트가 아무리 성공해도 그것이 공허하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가난해도 크리스 에반스인 순애남이 있어야하고, 다정하고 노련한 페드로 파스칼과 연애를 해본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평범한 우리는 유감스럽게도 그 두가지 조건을 모두 실험해보기 어렵기에 후반부 결론이 납득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걸 유물론적으로 경험해보는 루시의 입장에 공감하기보다는, 선망하는데서 그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 루시가 최종결정을 내린 데는 고객들을 매칭시키며 겪었던 대리체험이 데이터로 쌓여있기 때문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일반인은 그렇게 질릴 정도로 연애를 직접, 간접적으로 하지 못하니까 아마 선망의 여백을 여전히 남겨두는 것일지도요.  



    • 오, 정말 여러모로 살피고 쓰셨군요. 잘 읽었습니다. 


      쓰신 글에 공감 부분이 많았어요. 저는 루시가 해리와 주방에서 대화하며 '사랑'이라는 단어를 쓸 때 이전까지의 루시의 지론이 와장창하는 느낌이 워낙 강했습니다. 그 느낌이 끝까지 간 거 같아요. 




      위에 언급하신 열린 태도라든지 셀린 송 이번 영화의 전제를 받아들여 봐야한다는 제안 같은 부분에 조금 보태 쓰자면, 영화를 보고 나서 냉정해질 때도 있고 관대하게 받아들일 때도 있는데 여러 요소가 작용하겠으나 여기엔 장르취향도 꽤 개입하는 거 같아요. 감독이 만든 설정과 전제 속에서 접근한다는 문제도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긴 하지만 불만은 마음에 남을 수 있겠고, 그게 감독과 좀 안 맞는다는 뜻이 아닐까 싶어요. 이것과 그리 맞는 예는 아니지만 저도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말하면, '쟤네 왜 저래?'라면서 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도 있지 않겠습니까.(접니다) 대사를 읽으면서 아름다운 소리로다, 재치있는 비유로다, 생각하지만 그들의 중차대한 선택은 이해가 잘 안 가는 것입니다. 이 영화도 비슷한 거 같아요. 둘 중에서 꼭 선택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이 영화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저도 알겠더라고요. 그러자 셀린 송의 세계에 기꺼이 들어가지지 않는 어떤 껄끄러움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바깥에서 이리저리 찔러나 보는 식으로 감상하게 되고 만 것 같아요.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볼 게 아니고, 여러 가지 재 봤을 때 해리보다 존이 루시와 서로서로 물질적(자연 키와 나이도 여기 포함되겠죠), 감정적 합계자산이 더 잘 맞아떨어진 거 아닌가 합니다. 냉정한 루시가 깨달은 거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러셨군요. 저는 영화 초반에서 해리와 루시가 데이트와 사랑은 다르다고 명시를 했었기에, 후반부에 사랑을 언급할 때 루시가 방황을 좀 멈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전까지 value에 의해, 특히 여러가지 동질성에 의해 서로 맺어진다는 지론이 결국 데이트 매칭에서나 통하는 전법이고 그건 사랑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라는 걸 본인이 깨달았던 것 같았습니다. 




        장르적 선호가 겹치면 참 근사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의 길이 더 열렸으면 좋겠단 마음에 써봤습니다.




        저는 thoma님의 마지막 문장에는 좀 다른 생각인 게, 루시는 '재본다'는 태도를 어느 정도 떨쳐낸 것으로 봤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머티리얼리스트의 태도인데 그걸 버리고 결국 사랑을 따르기로 한 것 같았달까요. 아마 여기서 사랑이란 단어보다 충동이란 단어가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아마 제가 충동을 경험해봤고 또 그걸 일종의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사람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 쓰신 이 부분 '여러가지 동질성에 의해 서로 맺어진다는 지론이 결국 데이트 매칭에서나 통하는 전법이고 그건 사랑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라는 걸 본인이 깨달았던 것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본문에서 말씀하셨듯 사랑을 논하는 영화가 아니고 결혼으로 이어지기 위한 조건을 생각하는 영화입니다. 그래서 영화 초반과 마지막에 배치되었던 수렵채취인들 장면에서 자산 선보이기가 나오는 것이고요. 


          머티리얼리스트라는 단어가 물질주의자란 뜻도 있고 머티리얼에는 재료나 자료의 뜻도 있음을 셀린 송 감독이 말하더군요. 루시가 소피 일로 충격 받았을 때 화장실에서 상대 남자에 대해 본인이 수첩에 적어둔 메모를 들여다 봅니다. 그리고 아마도 크게 깨닫겠죠. 아무리 적어놔도 적을 수 있는, 계량할 수 있는 자료의 틈으로 중요한 것들이 빠져나간다는 것을요. 그렇다고 해서 '재보는' 것을 놔버리고 충동을 따른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머티리얼리스트로서 재보는 것이 전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해야 하겠죠. Sonny 님도 그래서 '어느 정도' 떨쳐냈다고 쓰셨습니다. 


          영화 밖 제 생각을 조금 곁들이면 결혼에 이르는 길은 사랑과 좀 다른 거 같습니다. 여기엔 인정하기 싫어도 어떤 동질감에서 오는 친밀감이 매우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연애에서의 사랑은 이와 달리 낯섬과 위험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거 같습니다. 루시는 해리에게 사랑이 없는 관계라서,라고 말했지만 이 영화에서 이 단어가 정확하게 쓰인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 생각인데 Sonny 님과 대립되는 생각은 아니지 않을까요... 





          • 충동이라는 게 이성과 대립된다기보다는 초월적 속성을 가진 에너지라는 의미에서 썼는데 그걸 제가 전달을 잘 못한 것 같습니다. 저는 thoma님이 루시의 마지막 선택 또한 계산의 일부이고 여전히 조건을 계산한다고 해석한다는 인상을 받는데, 특히 충동의 감각이 여전히 이성이나 계산 안에 머물러 있다고 보시는 것 같아서 좀 궁금하기도 합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느낀 부분이나 제 경험상 충동은 아예 통제가 안되는 감각처럼 받아들여지거든요. 그래서 루시가 해리에게 사랑이 없다고 말한 부분도 충동이라는 부분에서 (attraction이 아닌...)수긍이 가능하다고 느꼈습니다. 단지 저의 부연설명이고 thoma님의 의견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
    • 잘 읽었습니다. 저는 다층적인 영화를 봐도 이렇게까지 깊게 탐구해보거나 당연히 글로는 써볼 시도도 못하는데 항상 감탄하고 있어요. ㅎㅎ 




      시얼샤 로넌의 '브루클린'이 제가 팬이 된 계기가 된 작품인데 고개가 끄덕여지는 비교네요. 

      • 짬짬이 시간 빌게이츠 흉내를 내봅니다 ㅎㅎ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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