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바낭] 이건 매우 재밌습니다! '의혹의 그림자' 잡담
- 1943년까지 왔습니다. 런닝 타임은 1시간 48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 결말만 저엉말 간단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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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터 그 자체! 라는 느낌입니다. ㅋㅋ 이런 고대 유물을 이렇게 고해상도 디지털 데이터로 다 갖고 있는 게 참 부럽네요.)
- 수상할 정도로 많은 현찰을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리며 널부러져 있는 남자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잠시 후 이 남자를 찾아 두 사람이 나타나고. 남자는 줄행랑을 쳐요. 그리고 어딘가로 전보를 보내는데...
전보를 받는 쪽은 아주아주 평범하고 소박한, '전형적인 미국인 가정'에 가까운 어떤 가정집입니다. 아까의 그 남자는 이 집 딸래미의 삼촌 찰리라고 하구요. 평범한 일상이 지루하고 지쳤던 같은 이름의 조카 찰리는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삼촌이 집에 들른다는 소식에 매우 행복해하며 반깁니다만. 이미 조금 전에 보여줬듯이 이 삼촌 찰리는 매우 위험한 중범죄자일 확률이 매우 높은 데다가 신문에는 중년 여성 연쇄 살인마가 경찰의 추적을 받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실리고 있죠. 과연 우리 어른 찰리와 꼬마 찰리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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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기는 남자'가 주인공이 아니라 빌런인 경우도 이때까지 히치콕 영화들 치곤 흔치 않은 경우였던 듯 하구요.)
- 그 유명한 히치콕 작품이니 자연스레 제목은 몇 번 들어 봤지만 어떤 이야기인지는 전혀 몰랐던 작품입니다. '의혹의 그림자'라는 고풍스런 제목이 원제의 직역이었다는 것도 이번에 보면서 알았네요. ㅋㅋ 그런데 이게 뭡니까. 이번에 연달아 보고 있는 히치콕 영화들 중에 가장 재밌었어요! 동시에 가장 튀는, 그러니까 다른 히치콕 영화들과는 다른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대충 어떤 면이 그랬냐면요...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아주 현대적인 느낌의 심리 스릴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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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인공은 금발 아닌 미녀죠. 맡은 역할도 그냥 평범한 소도시 동네 처자구요.)
- 아주 시골도 아니고 대도시도 아닌 평범한 소도시의 평범한 미국 서민 가정집이 배경이구요.
누명 쓰고 수퍼 히어로화 되는 멋진 쾌남의 모험! 도 없고 수수께끼의 금발 미인도 없구요. 갑부들 등장 시켜 눈요기 시켜주는 요소도 없어요. 비밀의 거대 조직이 음모를 꾸미는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유람 다니며 명승지 구경 시키는 것도 없고... 그냥 평범한 배경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지지고 볶는 걸로 시작해서 그걸로 끝나는 이야기입니다.
등장하는 인물들도 다 현실적인 평범함을 장착한 가운데 그들의 성격이나 관계가 입체적이에요. 사실 이전 히치콕 영화의 빌런들은 대체로 '그냥 아주 나쁜 놈'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거든요. 그 캐릭터가 주는 재미와는 별개로 거의 단순 납작했는데 이 영화의 찰리 삼촌은 (물론 결국엔 궤변쟁이 연쇄 살인마이지만) 나름 들여다 볼만한 내면이란 게 있고 현실의 인간들이 갖는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대적해야 하는 조카 찰리 역시 영웅 같은 게 아닌 평범한 동네 젊은이인 가운데 삼촌 찰리에 대한 애정 때문에 관객들이 충분히 공감할만한 번뇌라는 걸 해요.
그래서 이전까지 히치콕 영화들이 즐겨 활용하던 화려하고 거창한, 그래서 비현실적인 치장들을 거의 걷어내고 극장에 와서 영화를 보는 평범한 관객들이 공감하며 몸서리 칠만한. 그런 현실적인 공포를 아주 섬세하게 다뤄낸 작품이었다... 라고 요약할 수 있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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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시트콤의 스틸샷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단란한 느낌을 의도한 주인공네 가족들. 맨 우측 둘째 딸래미가 꽤 웃겨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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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살인, 완전 범죄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는 아빠와 아빠 절친 캐릭터도 히치콕식으로 많이 웃겨 줍니다.)
- 가장 재밌는 부분은 역시 두 찰리의 관계 묘사와 그로 인한 공포, 스릴입니다.
관객들은 처음부터 삼촌이 잔악한 살인마라는 걸 알고 시작하지만 조카네 가족들은 전혀 상상도 못 하죠. 실제로 삼촌도 정말 사랑이 넘치는 가족의 일원으로 행동하구요. 그러면서 슬쩍슬쩍 어둡고 위험한 면모를 드러내고. 경찰들의 수사가 들이닥치는데 삼촌은 온갖 순발력과 잔머리를 굴려가며 가족들 눈앞에서 그걸 피해나가고. 그러다가 조카가 서서히 삼촌의 정체를 눈치 채게 되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데요.
이 가족 안에서도 삼촌과 조카, 두 찰리는 서로를 정말 끔찍하게 위하는 관계인 걸로 설정이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조카는 삼촌의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하고도 애써 외면하려 하고. 삼촌 역시 조카가 눈치 채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폭력적인 해결책은 뒤로 미뤄 두고서 일단은 속여서 덮고 넘어가려고 애를 쓰고... 그러는 가운데 같은 집에서 계속 얼굴을 마주치면서 벌어지는 오묘한 신경전 같은 걸 기가 막히게 잘 묘사를 해줘요.
후반으로 가서 조카가 삼촌의 정체를 확신하게 된 후로는 당연히 이게 훨씬 강화가 돼서 숨이 막히죠. 아무리 조카와 가족을 사랑한다 한들 자신이 잡히지 않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든 마다하지 않을 놈이라는 걸 확실히 보여주거든요. 그래서 아무 것도 모르고 태평한 가족들 사이에서 비밀스럽게 펼쳐지는 두 사람의 갈등과 대결이 정말 요즘 시대에 나오는 수작 스릴러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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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조카가 아니라 연인 관계 같은 분위기를 자꾸 조성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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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요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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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잔뜩 드리운 배경으로 대결을 하게 됩니다.)
- 보통 히치콕의 '대표작'으로 언급되는 작품들 중에선 좀 튀는 느낌으로 현실적이고, 진짜로 어두운 톤의 심리 스릴러였습니다.
화려한 겉치장이나 스케일 크고 튀는 아이디어 없이도 얼마든지 관객들 심리를 쥐어 짜고 농락할 수 있다! 는 히치콕의 능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구요.
뭐 당연히 유명 극작가를 모셔다 만들어낸 각본의 힘이 아주 크긴 하겠습니다만. 그걸 이렇게 근사하게 살려내는 건 당연히 감독에게 달린 일이니까요.
거기에 이런 입체적인 캐릭터들을 맡은 두 찰리 역 배우들의 비주얼이나 연기도 아주 설득력이 있구요.
여러모로 지금 보기에도 전혀 빠지는 데가 없는 수작 스릴러였습니다. 옛날 영화 안 좋아하시는 분들이 시도해 보셔도 후회할 일 거의 없을만큼, 오파츠급으로 잘 뽑아낸 작품이라 생각하며 아주 즐겁게 봤어요. 그러합니다. ㅋㅋ
+ 오늘도 히 감독님은

기차 속 카드 놀이 아저씨로 뒷통수만 간단히 등장해 주십니다. ㅋㅋ
역시 감독님 기차 사랑은 영원히...
++ 초간단 버전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조카는 삼촌이 집에 배달되는 신문에서 자꾸만 감추고 없애려고 하는 기사들이 돈 많은 미망인들에게 접근해서 목숨과 돈을 빼앗고 사라지는 연쇄 살인범 관련 내용들이라는 걸 깨닫고 의아해 합니다. 그러다 삼촌이 선물해 준 반지 안쪽에 주고 받는 사람 이니셜이 적혀 있었다는 걸 깨닫고, 잠시 후엔 살인마의 희생자들 중 한 명과 반지 속 사람 이니셜이 같다는 것도 깨닫구요. 그리고 이때 자꾸만 '가장 대표적인 미국 가정'을 인터뷰하겠다며 찾아오던 2인조 기자들이 사실은 형사들이었다는 것도 알게 돼요. 그 중 한 명이 대놓고 털어 놓은 후 협조를 부탁하는데, 조카는 그럴 리 없다며 거부하지만 둘이 눈이 맞아서 데이트는 하네요(...)
어떻게든 조카가 눈치 채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쓰던 삼촌은 결국 조카가 습득한 정보들이 선을 넘었다는 걸 깨닫고는 대놓고 털어 놓습니다. 하지만 난 너도 사랑하고 우리 가족도 사랑하니 해치고 싶지 않다. 그냥 조금만 더 여기 숨어 있다가 도망갈 테니 그 동안만 니가 입 다물어 주면 좋겠다. 라고 부탁 반, 협박 반으로 들이대니 입을 다무는 조카구요.
그런데 그때 삼촌 말고 또 다른 용의자가 먼 동네에서 도주하다가 그만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조각나서 죽어 버리는 일이 발생해요. 그래서 경찰은 그 쪽이 진범일 거라 생각하고 수사 종료. 조카와 데이트했던 형사가 찾아와서 작별 인사를 하는데, 삼촌은 이걸 보고 조카가 형사와 내통하고 있다고 의심을 하고. 또 자기가 혐의를 벗었다는 걸 알고 나니 이 마을, 이 집에 머무르며 정착할 생각을 하는데... 이미 본인에게서 자백을 다 들어 버린 조카가 '삼촌 필요 없으니 사라져 달라. 우리 가족과 어울리는 게 소름 끼친다'라고 말을 하니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일부러 망가뜨린 계단에서 조카 찰리가 굴러 다치는 일이 생기고. 찰리는 당연히 삼촌을 의심하고. 다음엔 아예 대놓고 찰리를 차고에서 질식 시키려는 시도가 벌어지지만 다행히도 살인 사건 매니아인 아빠 친구가 놀러 오다가 그걸 발견하고 구해줘요. 그리고 찰리는 삼촌이 집을 비운 사이에 이 놈이 범인이라는 걸 증명해 줄 증거인 피해자의 반지를 찾아내서 손에 끼고 보여주며 삼촌을 압박하고. 그걸 본 삼촌은 사람들 앞에서 갑작스레 작별 선언을 합니다. 마을을 떠나겠대요.
마지막 날, 가족이 다 함께 기차역으로 삼촌 송별을 하러 가구요. 이때 삼촌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조카를 달리는 기차에서 떠밀어 버리려 하지만 조카의 저항 때문에 어찌저찌 하다가 본인이 실족해 떨어져 맞은 편에서 오던 기차에 치여 죽습니다.
마을에선 마을의 자랑으로서 찰리 삼촌의 장례식이 거행되고. 조카는 썸 타던 형사를 불러다 '진실을 아는 사람이 나 혼자 뿐인 게 너무 힘들어서 불렀다' 며 이야길 털어 놓아요. 그리고 굳이 다른 사람들에겐 알리지 않는 걸로. 그렇게 엔딩입니다.
이건 못 본 것 같은데.........? 유튜브에도 있으니 봐야겠슴다. 무엇보다 배우들이 참 좋아하는 영화에 나왔기에... 여주는 우리 생애 최고의 해, 남주는 제3의 사나이
사실 제가 요즘 보고 있는 히치콕 영화들은 대부분 저작권이 만료되어서 유튜브에도 있더라구요. 하지만 전 영어 자막으로 영화 보려면 10초에 한 번씩 정지 시켜야 하는 인간인지라 그림의 떡일 뿐이고... ㅋㅋㅋ
맞아요. 그걸 적는다는 걸 깜빡했네요. 둘 다 잘 나가셨던 분이라는데 한국에서까지 유명한 영화는 딱 그렇게 하나씩인 듯 하더라구요. 하하.
오래 전에 본 거도...아닌데 가물가물하지만 가족 구성원이 다 재미있고 캐릭터가 생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 안경 친구는 늘 책을 끼고 다니며 뭐라뭐라 얘기하고 그랬죠. 가족들의 그런 생생한 캐릭터 때문에 삼촌이 더 위협적이고 이물질 같이 느껴지고 그랬어요.
맞습니다. 아빠는 추리, 범죄 덕후에 안경 딸래미는 시니컬 일침 쟁이. 엄마는 참으로 '옛날 미국적'인 느낌으로 좋은 엄마였고 비중 거의 없는 아들래미도 딱 그 또래 남자애들스럽게 귀여웠어요. 이렇게 평범하게 단란한 가정에 연쇄 살인마가! 라는 설정이 참 효과적이고 좋았네요.
대 걸작이지요. 조카 찰리가 도서관에서 삼촌 찰리의 정체를 확신한 순간 카메라가 삼촌에게서 받은 반지에서 출발해 쭉 빠져나오고 허공으로 솟아올라 찰리 주변에 드리운 그림자를 조망하더니 거기에 명랑한 과부 왈츠가 깔리는 대목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찰리 삼촌이 처음 마을에 도착할 때 기차에서 뿜는 연기가 유달리 새까만 색이었던까지도 모두 연출이었다고 해서 혀를 내둘렀어요.
DJUNA 님께서도 말씀하셨듯 모 유명 한국 감독이 만든 21세기 영화가 이 영화의 자장 아래 있으니, 바로 바로...
제가 즐겨 듣는 한 영화 팟캐스트의 진행자이자 대학에서 영화 가르치는 미국 영화 감독이 있는데요, 위의 한국 감독 작품을 학생들에게 먼저 보여준 다음 시간이 지난 뒤 〈의혹의 그림자〉를 보여주고 나서 "혹시 생각나는 영화 없어요? (미소)"를 시전하기를 즐긴대요. 학생들이 "???" 할 때 "Uncle Charlie...?"라고 운을 띄우면 학생들 표정이 "!!!"로 바뀐다고.
아 그 기차 연기 얘기 저도 읽었습니다. 일부러 검은 연기를 정상보다 훨씬 많이 뿜게 만들어서 '악마가 도착한다'는 이미지를 의도했다고. 이번에 영화들 다시 보면서 관련 글들 읽어 보니 그런 게 참 많더라구요 영감님. '의혹'의 빛나는 우유라든가, '오명'의 끝 없는 계단이라든가... ㅋㅋ
아 그렇네요. 그 영화가 대놓고 오마주를 했군요. ㅋㅋㅋ 전 비교적 근래 영화들 중에 '클로브히치 킬러' 라는 인디 스릴러를 떠올렸습니다. 사실 구체적을 따져 보면 전혀 닮은 구석은 없는데, 그냥 조용한 소도시를 배경으로 연쇄 살인마 아빠 때문에 맘고생하는 아들 이야기라서요. 그래도 영향을 조금은 받은 게 아닐까? 라고 우겨 봅니다... 하하;
덕분에 유튜브에서 즐겁게 잘 봤어요. 두 주연 배우 모두 아주 반가웠는데 특히 여배우는 아주 옛날에 좋아했던 배우를 오랜만에 봐서 좋았네요.
내친 김에 스토커도 볼까하고 찾아보니 디플에 있네요. 한번 봐야겠어요.
와 재밌게 보셨다니 보람이 차오릅니다! ㅋㅋㅋ
테레사 라이트는 요즘 나왔으면 훨씬 더 잘 나가지 않았을까? 싶게 현대적으로 매력적인 배우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도 '우리 생애 최고의 해' 같은 고전 명작에도 나와 아직까지 이름을 알리고 있으니 충분히 성공하셨다고 봐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