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28년 후] 관람 후기 - 1

  • 영화는 제작사 로고와 함께 텔레토비 프로그램의 나레이션이 나오면서 시작한다. 관객이 제일 먼저 접하는 건 이 아동용 프로그램의 소리다. 그리고 나오는 첫번째 화면은 아이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텔레토비 프로그램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후 방문이 열리고 어떤 여자가 다급하게 아이를 하나 방 안에 들여놓는다. 방 바깥에서는 누군가 싸우는 듯한 소리가 나고 아이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텔레토비를 본다.

 

  • 이윽고 감염자들이 아이들의 방 안에 침입한다. 텔레토비가 나오던 티비 스크린에 피가 튄다. 방 안은 아수라장이 된다. 얼떨결에 문 뒤에 있던 남자아이만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이것은 20세기에 상영되었던 [28일 후]와 비교해보면 차이점이 뚜렷하다. [28일 후]는 청년 남성이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상을 둘러보는 이야기였다. [28년 후]는 프롤로그 격의 도입부에서 아이들의 세계를 먼저 보여준다. 텔레토비를 보는 아이들의 세계는 완전히 파괴된다. 이제 이 세계에 착하고, 다정하고, 다 같이 평화롭게 같이 노는 아이들의 세계는 없다.  [28년 후]는 아이들이 아이로 자라나는 시기는 이제 없다고 전제한다. 이제 어떤 아이든 피가 튀는 세계에서 살아가야한다.

 

  •  아이는 아버지가 있는 교회로 간다. 감염자들은 풀밭을 기어오르면서 교회로 향한다. 아이는 아버지에게 엄마와 다른 사람들이 죽은 것 같다면서 울먹인다. 아버지는 아이를 안심시키는 대신 예언의 때가 왔다면서 감염자들이 자기를 물게끔 몸을 내어준다. 아이는 교회 바닥 아래쪽에 숨는다. [28년 후]에서 아이가 기댈 수 있는 '아버지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진다. 생물학적 father, 종교적 father의 세계는 동시에 붕괴되었다. 이 세계에는 믿고 기도할 신이 없으며 아이가 자신과 가족을 지켜달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도 없다. 이 프롤로그로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이런 세계에서, 아이는 어떤 존재로 자라날 것인가. 

 

  •  제이미가 자고 있는 스파이크를 깨운다. 이 시퀀스에서 관객들은 자연스레 그 때 도망친 그 아이가 시간이 지난 후 제이미로 자란 것은 아닌지 작은 의문을 품게 된다. 그러면서도 텔레토비 프롤로그 영상이 자고 있는 스파이크의 꿈인 것처럼도 보인다. 스파이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파워레인저로 보이는 피규어를 챙겨가려다가 자리에 놔둔다. 문명은 파괴되었지만 아이가 아이답게 좋아하는 무언가는 계속되고 있다. 이 아이에게도 정의에 대한 기대와 영웅적 활약에 대한 꿈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제이미는 스파이크의 '출정' 날이라고 하고 베이컨을 차려준다. 분노 바이러스로 모든 게 파괴된 곳에서 베이컨은 분명히 귀한 음식일 것이다. 그만큼 스파이크의 '출정'은 이 베이컨을 먹고 나가야할만큼 어렵고 위험한 무엇일 것이다. 

 

  • 스파이크가 식사를 시작하려던 찰나 계단 위의 방에서 괴성이 들린다. 윗층에서 병을 앓고 있는 스파이크의 엄마가 일어나면서 옆에 있던 물병을 떨어트린다. 프롤로그 이후 이 장면은 가장 먼저 감염자의 소리인지를 의심하게 한다. 영화는 스파이크의 엄마, 아일라의 이 발작 씬을 마치 감염자가 난동을 피우는 것처럼 찍었다. 여기서 희미하게 질문이 나온다. 분노 바이이러스에 감염된 외부의 감염자들과, 다른 병에 감염되어 난동을 부리는 가족 관계의 감염자는 얼마나 다른 존재인가?  만약 감염자들이 병에 걸려 이성을 잃고 발작을 일으키는 빈도가 아주 높을 뿐인 '인간'이라면 어떡할 것인가?

 

  • 아일라는 스파이크가 학교를 갔냐고 물어본다. 제이미는 스파이크가 오늘 본토로 나간다고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일라는 광분하며 어떻게 아이를 그 위험한 본토에 보낼 수 있냐고 마구 욕을 한다. 이 때 제이미는 욕 좀 하지말라고 하며 아일라를 말린다. 이 영화에서 '욕설'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 처음 나오는 장면이다. 이 때 아일라는 제이미에게 '살인자'라고 비난한다. 정확히는 baby murderer라는 단어를 쓴다. 이것은 제이미가 아들인 스파이크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뜻처럼 들리면서도, 이후 사냥을 나갔을 때 '슬로우 로우'의 어린 개체들까지도 거리낌없이 죽이는 행위 자체에 대한 분노처럼 보인다. 이 때부터 한 가정 안에서 사냥에 대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반응이 갈린다.

 

  •  스파이크는 아버지와 함께 사냥길에 나선다. 마을 사람들은 스파이크를 축복하고 응원한다. 누군가 스파이크에게 사과를 한 알 건네준다. 기독교 신앙이 무너지는 것으로 시작했던 이 영화에서 사과는 단순한 먹거리로만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스파이크가 자기도 모르게 깨무는 선악과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섬이 에덴동산이고 스파이크는 자기도 모르게 추방되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   썰물 때만 드러나는 외길을 걸으면서 스파이크 부자는 본토로 향한다. 이 때 루디야드 키플링의 시, BOOTS 가 오래전 전쟁영상들에 곁들여져 교차편집으로 나온다. 그 오래전 영상 속에서 중세시대 군인들이 화살을 쏘거나 계속 행군한다. 그런데 이 영상들은 스파이크가 하는 상상이 아니다. 분노 바이러스가 퍼진 후 영국은 아예 격리가 되었고 이들에게는 어떤 디지털 매체도 없다. 이것은 스파이크가 보고 들은 영상들이 아니다. 이것은 영화 바깥의 현실을 재료로 영화 밖에 있는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영상이다. 감독이 아예 의도적으로 관객들에게 경고문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 스파이크는, 부츠를 신고, 전쟁을, 나가는, 소년병이다. 이 때의 교차편집 영상은 해맑게 걸어나가는 스파이크의 영화 속 상황과 대조되며 신경질적인 강박을 일으킨다. 이것은 단지 스파이크가 위험한 상황에 맞닥트린다는 경고가 아니라, 그가 전쟁에 출정하는 소년병과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경고다. 이 사회는 지금 어린 아이를 전쟁에 내보내고 있다.

 

  •  제이미는 스파이크에게 지금이라도 돌아갈 거냐고 묻는다. 스파이크는 그러면 겁쟁이 취급을 받을거라고 말하고 제이미는 그런 스파이크를 대견해한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용감해져야한다'면서 전쟁터로 내모는 이 상황은 영화 바깥에서 더 심각해보인다. [28년 후]는 계속해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주는 남성적 미덕에 대해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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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들이 본토에 도착했을 때, 통로 길을 지나온 것과는 대조적으로 화면이 어둡고 음침하다. 이 부자는 벌목의 흔적이 남아있는 나무 밑둥들 사이를 지나간다. 이것은 후에 스파이크가 아일라와 같이 나갔을 때의 광경과 명백하게 대조된다. 스파이크가 제일 처음 보는 자연의 이미지는 인간이 뭔가를 채취하고 통제하는 곳이다. 이것은 서양이 자연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시선, 이성을 가진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알맞게 사용하면 된다는 시선을 떠올리게 한다. 

 

  • 이와 동시에 '자연은 위험하다' 는 이미지가 계속 삽입된다. 스파이크는 아직 감염자 무리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는 적외선 촬영이 된 붉은 화면 속에서 감염자들이 자신들끼리 떼를 지어있는 이미지들이 계속 나온다. 이것은 스파이크가 감염자들에 대해 말만 듣고 상상한 이미지일 수도 있고, 관객들이 지레 겁을 먹고 상상한 이미지일 수도 있다. 이 화면으로 본토, 즉 자연이란 곳은 위험한 다른 존재들이 숨어있고 인간을 언제든지 습격할수도 있으며 인간은 자연 속에서 긴장을 놓지 않고 '이것들'을 물리쳐서 안전을 지켜야 한다. 결국 인간은 자연을 올바르게 통제할 수 있어야한다는 같은 주장과 다른 이미지다.

 

  •  숲 속에서 부자는 첫 감염자를 마주친다. 멀리서붙어 육중한 몸을 끌고 기어다니며 지렁이를 먹는 '슬로우 로우'라는 개체다. 제이미는 스파이크에게 어떻게 하면 저 감염자를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아직 힘이 부족해서 가슴을 꿰뚫을 수 없으니 목 쪽을 노리라고 한다. 스파이크는 들은 그대로 슬로우 로우의 목을 맞혀 죽인다. 이 때 화살을 맞은 슬로우 로우는 피를 내뿜으며 고통스럽게 소리를 지른다. 뒤쪽에서 다가오는 슬로우 로우를 제이미가 죽이고, 또 다른 개체가 소리를 지르자 제이미가 또 쏴서 죽인다. 

 

  • 제이미는 스파이크의 이 사냥을 기특해하지만 영화는 이 사냥장면을 통쾌하게 찍지 않았다. 카메라는 화살을 맞고 고통스러워하는 감염자에 초점을 맞춰 그가 쓰러져 죽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장면은 감염자들이 죽을 때마다 유사하게 반복된다. 영화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감염자들이 인간에 의해 죽는 장면들을 집중해서 보여준다. 인간이 감염자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죽는 생명체로서 감염자들이 조망된다.

 

  •  이 장면에서 영화는 작은 질문을 한다. 이 슬로우 로우 감염자들이 그냥 숲을 돌아다니며 밥을 먹는 자연 속 생명체인데, 제이미와 스파이크가 무고한 이 생명체들을 죽인 것은 아닐까. 인간에게 감염자는 경계의 대상이다. 특히 이 슬로우 로우는 다른 포유류처럼 그렇게 아름답거나 친근해보이지도 않는다. 이들을 가만 놔두면 이 부자가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 고민 없이, 어떤 훈련을 위해 이 감염자들을 죽여도 되는가.

 

  • 영화는 이 슬로우 로우들이 가족일수도 있다는 걸 암시한다. 개체들의 크기나 생김새를 볼 때 이 슬로우 로우 가족을 제이미 부자가 아버지, 어머니, 장남의 순서로 차례차례 쏴죽인 것처럼 보인다. 제이미는 가장 어려보이는 여자 개체에게 활을 겨눴다가 중지한다. 영화는 그 순간 어린 슬로우 로우가 순진무구하게 서있는 걸 보여줬다. 감염자들이 정말로 위험하기만 한 존재이고 인간이 당연히 죽여도 된다면, 왜 제이미는 그 마지막 슬로우 로우에게는 활을 쏘지 않았을까. 제이미조차도 죽이지 못했을만큼 슬로우 로우를 약한 생명으로 봤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다른 슬로우 로우, 다른 감염자들에 대해서도 같은 시선을 적용할 수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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