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사일생' 찐 오우삼의 시작?

장철의 후계자로 알려진 오우삼은 인디 영화로 장편 데뷰했습니다. 장철의 스피릿이 살짝 느껴지는 싸나이들의 영화였습니다.
그치만 그 데뷰작은 모종의 이유로 개봉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 영화가 추문회 사장님의 눈에 들어 오우삼은 (데뷰작과 함께) 가화전영공사-골든 하베스트에 들어가게 됩니다.

가화에 들어가서는 그시기쯤 거기서 일하고 있었던 정창화 감독의 영화에 조연출로 참여했다고 하고, 정창화 감독이 보기에 성실하고 능력도 있는 것 같아 이 재능있는 친구의 '데뷰작'을 한국에서 찍을 수 있도록 주선해줬다고 합니다.(진짜 데뷰작은 창고에 박혀있었기 때문에 그런 게 있다는 사실을 모르셨다는 듯....)

그 두번째 데뷰작 [위험한 영웅]이 오우삼의 공식 데뷰작이 됩니다. 먼저 찍었던 영화는 재가공 후 나중에 개봉되었고.... 그 뒤로도 꽤 오랫동안 홍콩 개봉 순서 기준으로 [위험한 영웅]이 데뷰작인 걸로 되어있었죠.
하지만 흥행엔 부진. 그 뒤 무협영화를 한편 찍었지만 흥행 부진. 뒤늦게 개봉한 진짜 데뷰작도 흥행 부진. 이렇게 오우삼이 만든 싸나이 영화들이 줄줄이 기대 이하 성적을 내고나서...

황매조 영화를 찍고는 오우삼도 처음으로 히트란 걸 해보게됩니다. 그 뒤로 코미디 영화를 찍었더니 또 히트, 계속해서 코미디를 찍었는데 연달아 히트. 오우삼은 본의 아니게 코미디 전문 감독이 됩니다.

하지만 가슴 속에 장철을 품고있는 분인데, 코미디물만 줄줄이 만드는 거에 좀 질렸나봐요. 회사에다 자기가 만들고 싶은 거 만들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해요. 그렇게 싸나이들의 무협영화를 만들었습니다.(여담으로 이 영화 내용이 [영웅본색]하고 대충 비슷합니다)
하지만 흥행 부진.

그래서 오우삼은 다시 코미디 영화를 줄줄이 만들게되었다고 해요.

80년대쯤 되면 오우삼과 가화와의 사이가 벌어지게 되고, 83년에 오우삼은 골든하베스트에서의 마지막 영화로 싸나이들의 액션영화를 선택합니다. 이번에도 부진하면, 코미디를 평생 찍어야할 팔자일지도....?

중국인으로 구성된 특공대가 금삼각지대의 마약왕을 때려잡는다는 이야기이고, [람보2]보다 몇년 앞서는, 베트남(실제로는 태국) 정글에서 중화기를 사정없이 쏴대는 무차별 폭력물입니다. 오우삼이 처음 시도하는 총싸움영화이기도 하죠.
제목은 [황혼전사]. 

영화를 찍으면서 엄청 고생한 모양이예요. 사고도 나고 오우삼의 멘탈도 나가고.... 그리고는 다 찍은 영화는 성공은 고사하고, 개봉도 못했습니다. 가화는 영화를 창고에 넣어버렸어요. 그렇게 오우삼의 가화생활은 창고에서 시작해 창고로 끝났습니다.

상심 속에 가화를 떠난 오우삼은 자기처럼 이제는 한물간 왕년의 스타 적룡과 손잡고 두번째 총싸움 영화를 만듭니다.
퇴물감독에 퇴물배우, 거기 더해 TV 연속극 주인공으로 엄청 떴지만 영화 출연작은 모조리 부진하면서 보증된 흥행부도수표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배우까지 합세해 마치 본인들의 신세를 반영하기라도 한듯한 (왕년에 잘나가던 깡패들이 몰락해 바닥까지 떨어졌다 재기하려고 용쓴다는) 내용이었던 이 영화는 잘 아시는대로 어마무시한 성공을 했죠.

그제사 뜨끔해진 가화는 재빨리 창고에 있던 [황혼전사] 필름을 꺼내서 재편집하고는 '[영웅본색]의 감독이 만든 영화'라고 선전하며 개봉시켰다고 합니다.
[영웅본색] 감독이 만들었는데 당연히 제목엔 영웅이 붙어야겠죠. 제목은 [영웅무루]라고 고쳤습니다. '영웅은 울지 않아!' 이게 현재 이 영화의 공식 제목입니다. 




근데... 여기까진 홍콩내의 사정이고....
실은 [영웅무루]가 나오기 한참 전에 영화가 이미 개봉했더랬습니다. 한국에서요.(오우삼 초기 영화 중에 홍콩보다 한국에서 먼저 개봉한 것들이 은근히 있어요.) 원래 이게 한국의 동아수출공사(80년대에 가화의 성룡 영화를 단골로 수입하던 곳이죠)가 한발 걸치고 있던 프로젝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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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됴껍데기엔 청불이라고 써져있지만 극장개봉시에는 중고생 관람가였습니다. 극장과 비됴의 심의를 별도로 받던 시절이라...)



동아수출공사는 [황혼전사]의 제목을 [구사일생]으로 바꾸고 한국어로 더빙해서 84년에 개봉시켰습니다. 한국어 더빙이라는 건 합작영화 취급이란 소리죠.
크레딧에는 오우삼 이름은 빠지고 신위균 감독 단독 명의.(근데 이 신위균이란 분은 그시기쯤 유난히도 한중합작영화에 감독이라고 이름이 자주 올라온 분이라서... 딱히 실제로 연출에 참여했을 거라는 믿음은 가지 않습니다.)

첫번째 가화 영화였던 [위험한 영웅]도 한국에선 진짜 감독인 오우삼의 이름은 쏙 빼고 한국 감독 명의로 개봉했었거든요. 글고 마지막 가화 영화인 [황혼전사]도 오우삼의 이름이 빠진채 다른 사람 명의로 개봉된 거죠. 그밖에도 뭐...  오우삼과 한국의 인연이 뭔가 좀 기구합니다.

한국에서 찍은 영화도 아니고, 동아수출공사가 과연 영화가 만들어지는데 얼마나 공헌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국배우들이 중요한 역할로 몇명 나오긴 합니다.(근데 원래부터 홍콩에서 활동하던 사람들) 글고 몇몇 부분은 한국판과 홍콩판이 같은 장면을 조금 다르게 찍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한국의 검열을 감안해서 수위 낮은 버전의 장면을 따로 만들어주지 않았나 싶기도...(근데 꼭 한국 뿐 아니라도 검열 빡센 나라 전용 장면을 따로 찍어두는게 홍콩영화에서 드문 일도 아니었어서...)

정확한 합작 관련 여부가 어찌되는지는 늘 그랬듯이 잘 모르겠지만.... 한국배우가 몇명 출연하고 프랑스 배우도 두어명 나오고 촬영장소는 태국이라 현지 스태프들이 다수 참여했고 촬영감독은 일본사람인 등... 상당히 인타나쇼날한 프로젝트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근데 영어 잘하는 사람은 없었다는 듯...)


글고 영화속에서 주인공들이 싸우는 주적이 월남군이기 때문에 동아수출공사는 이 영화를 '반공영화'로 포지셔닝합니다. 합작영화란 것 만으로도 꽁으로 점수 따는데 반공영화 점수까지 따게되었으니(정부에서 반공영화는 특별우대해서 여러모로 편의도 봐주고 대종상도 반공영화 작품상을 따로주던 시절) 따블로 꿀빨게 되었달까...
반공영화라서 중고생들 단체관람도 받고, 학교/강당같은데 돌아다니며 상영도 하고 뭐 그랬나봐요. 수위상으론 청불급 영화이지만 노출장면은 한국판 전용 장면으로 톤다운되었고 폭력성은 당시에는 뭐 고려대상도 아니었으니....


[구사일생]과 [영웅무루]는 기본적으로는 같은 영화ㅂ니다.
합작영화인 경우 보통 한국판 크레딧에는 한국 각본가 이름을 올리던데 [구사일생] 크레딧에는 하관창(성룡영화 크레딧에서 맨날 보던 그 이름)이 각본가라고 올라있는 걸 보면 뭘 크게 바꾸진 않았겠죠. 그래도 군데군데 디테일이 좀 다릅니다.

홍콩판은 태국 정부가 마약왕을 때려잡으려 중국인 용병들을 고용한다는 이야기인데, 한국판은 인터폴이 마약왕 '나이롱'(!)을 잡으려고 한국인 용병을 고용한다는 이야기ㅂ니다.
홍콩판에는 용병팀중에 유추생과 전월생이 도박에 미쳤다는 설정인데, 한국판에서는 둘이서 서로 사람 죽인 수를 경쟁할 뿐 도박하는 장면은 안나옵니다. 주요 인물 한명이 죽는 장면은 두 버전에서 아예 완전히 다릅니다.
메인빌런인 월남군 중령은 한국판에서 더 미친넘같이 나옵니다.

거기다 홍콩판은 불필요한(오우삼 영화답지 않은) 섹스장면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가족의 유대나 용병들 사이의 끈끈함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홍콩판에선 많이 잘라냈습니다. 그래서 한국판이 상영시간도 더 깁니다.

뭐 대충 느낌이 한국판이 좀 더 오우삼 영화같다는 분위기가 납니다.
일단 시기상으로 봐도 오우삼이 회사를 나가고 한참 지나서 가화에서 독자적으로 편집한 버전 보다는 영화가 촬영된 직후 시기에 개봉한 한국판이 좀 더 오우삼의 비전에 가깝다고 봐야겠죠. 그래서, 양덕들은 한국판을 감독판으로 쳐주는 모양이네요. 홍콩판엔 오우삼이 찍은 적 없는 장면들이 들어가 있다고도 하고...

뭐 한국판이건 홍콩판이건 간에 썩 잘만든 영화는 아닙니다. 오우삼은 한참 나중에 세계적인 거장의 지위에 오른 다음에 만든 [윈드토커]에서도 전쟁영화는 잘 못만든다는 걸 재증명했지만.... 이 영화는 아직 오우삼의 스타일이 제대로 자리잡기도 전에 나온 테스트 버전 같은 거니까요. 그래도 이후 영화들에서 (좀더 세련되게 다듬어져) 나오는 오우삼의 인장들이 여기저기 보이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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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일생]과 [영웅무루] 둘 다 국내에 비됴로 나왔었습니다. 하지만 [영웅무루]의 경우는 오우삼 팬들의 레이더 바깥에 있던 영화이고, [구사일생]은 아예 오우삼 영화란 사실을 몰랐더랬어서... 두 타이틀 다 비됴 전성시절에 국내에서 그닥 관심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해외에서는 [황혼전사]는 실전되었거나 아예 미완성인 걸로 알려져있었습니다(오우삼이 완성본을 본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다 인터넷 시대가 온 뒤로 [구사일생]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어 지금은 영상자료원에서 고화질 복원도 하고 해외에서 [구사일생]과 [영웅무루]가 합본된 버전도 출시되고  뭐 그렇게 되었네요. 

이 해외에서 출시된 [구사일생]은 영어제목을 'Sunset Warriors' 즉 '황혼전사'라고 붙여놨습니다. [황혼전사]의 중국어 더빙판을 구할 길이 없기에(아예 만들어진 적이 없을 수도 있고...) 출시업체에서 [구사일생]의 한국어와 [영웅무루]의 광동어를 섞어서 편집한 트랙을 만들어붙이기도...(서로간에 내용 충돌이 좀 있을텐데....)




바디카운트가 3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진가신이 제작과 각본 관련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고웅. 
당시 악역으로 잘나가던 고웅의 보기 드문 주연작인 것 같네요.

고웅의 동료로 전월생, 유추생, 주금강 등이 나오고
베트남군 또라이 중령역에 임정영.
아마도 임정영이 그때까지 맡았던 배역중 제일 비중이 큰 역할이 아니었나 싶네요.

나이롱 장군역에 장일식, 추격대 대장역에 김호곤, 고웅의 처제역으로 이해숙 등 한국 배우가 나옵니다.

두 버전의 크레딧을 비교하면 재미있는 점이 있는데
한국판 크레딧에는 고웅이 하요심, 임정영이 임근보라고 예명이 아닌 배우의 본명으로 표기되어있고
홍콩판 크레딧에는 장일식 선생이 장두희라는 본명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장일식은 장망이란 중국활동명이 따로 있는데...)

한국판에선 각본쓴 사람이 하관창인 걸로 되어있고, 홍콩판은 오우삼 각본이라고 되어있습니다.(걍 제생각으로는 하관창이 오리지날 각본 혹은 기획자이고 오우삼이 거기 가필수정한 것 같습니다. 글고 아마도 한국판이 오우삼 각본에 더 가까운 내용일듯...)

한국판엔 촬영감독 이름도 한국사람으로 바꿔치기 되어 있고요. 한국장면이 하나도 안나오는 영화인데, 한국 촬영기사가 태국까지 출장가서 찍을 일은 아마 없었을테고 걍 일본이름이 금기이던 시절이니 바꾼게 아닌가 싶네요.

이렇다 보니 각종 데이터베이스에서 영화의 캐스트 표기가 카오스상태입니다. 특히 한국 관련으로...
아옘디비만 살펴봐도
장일식, 장두희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두 이름이 따로 기재가 되어있고,
주인공 고웅도 홍콩식 이름과 한국식으로 표기한 하요심이 같이 올라와있는 등...

이해숙은 더 유명한 배우인 이혜숙으로 잘못 알려져서 아옘디비에도 이혜숙이 링크되어 있는데...
홍금보의 [비룡과강]에도 나왔던, 그시기쯤 홍콩에서 활동했던 한국배우입니다.








인타나쇼날 버전 80분~85분(살짝 살짝 시간이 다른 몇몇 버전들이 있는데 큰 차이는 없다는 듯)
홍콩판 88분
한국판 97분입니다.
(88필름에서 출시한 부루레이 기준)





502_Heroes_Shed_No_Tears_(IVL).jpg
중국어 제목 및 영어 제목까지도 똑같은 초원감독의 쇼부라다스 무협영화가 있습니다. 혼동하지 마시길(전 자주 헷갈려요...ㅎㅎ)


    • 90년대까지면, 오우삼 이름 없이도 재밌게 봤을 듯 하네요.




      • 예고편을 보면 어지간하면 재미있을 것 같긴 하죠ㅎㅎ

    • 저 시절 홍콩 영화 뒷얘기들은 정말... ㅋㅋㅋㅋㅋ 




      뻘소리지만 오우삼도 참 대단한 사람 같긴 합니다. 결국 그 '영웅본색'과 이후에 내놓은 영화들로 다시 전성기 맞았던 게 엄밀히 말해 10년 정도인데 그걸로 아직까지 버티며 활동을 하고 있으니 말이죠. 그만큼 그 시절에 쌓아 놓은 게 많아서 가능한 것이니 그것도 본인 능력이겠지만, 작년의 그 첩혈쌍웅 리메이크 같은 걸 더 만드느니 그냥 연출 그만 하시고 제작 쪽으로 가보셔도 좋지 않을까... 하는 뻘생각을 해 봅니다.

      • 오우삼은 우직하게 한길을 가고 있는데 요즘 사람들 입맛이 바뀌어서 더이상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된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ㅎㅎ 오우삼의 전성기적 영화들도 지금 처음 보는 사람한테는 괴작으로 비칠 확률이 꽤 높다고 생각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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