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콕바낭]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는 제 기억보다 훨씬 명작이군요

 - 1959년작이니 이제 곧 50년대도 졸업이네요. 런닝 타임은 2시간 16분이나 되구요. 스포일러는 신경 안 쓰고 마구 적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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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케리 그란트와 히치콕의 조합만이 킹왕짱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뭉쳐 봤습니다! 라는 저 카피는 정말 그 시절 카피일까요. ㅋㅋ)



 - 광고 회사 직원으로 잘 나가는 뉴-요커 로저 쏜힐씨의 바쁜 일과를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근데 이 분이 점심 시간에 비즈니스 만남을 진행하다가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온 두 남자에게 권총으로 위협 당해서 교외의 커다란 별장으로 끌려가요. 그러고는 다짜고짜 우리는 니 정체를 알지롱 이 조지 캐플란씨야!! 라며 겁을 주는데 당연히 쏜힐씨는 인생이 억울합니다. 난 그런 사람 모른다고 아무리 외치고 사정을 해도 들은 척도 안 하고 쏜힐을 제거해 버리려는 나아쁜 사람들. 도망을 쳐도 해결이 안 되고 경찰을 찾아 가도 보탬이 안 되고 오히려 범죄자로 몰려 처벌이나 당할 처지가 된 쏜힐씨는 위대한 아메리카의 전통대로 결국 스스로 살아 남기에 도전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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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대단히 세련된 오프닝을 보여주는데요. 특히 '패닉룸'의 그 전설의 오프닝 크레딧이 여기에서 온 건가? 라는 생각이 들어 신기했습니다.)



 - 이 '북북서'가 엄청 인기 영화이긴 한데 어째 세월 갈 수록 덜 언급되는 느낌이죠. 예전엔 히치콕 영화를 얘기할 때 싸이코나 현기증, 이창과 나란히 언급되곤 했던 것 같은데 요즘엔 그 중에서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는 상대적으로 좀 존재감이 떨어진 느낌이랄까요. 영화를 다시 보고 나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하는데...


 그러니까 이 영화는, 말하자면 '작정하고 재밌자고 만든 오락물'이잖아요.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블럭버스터 액션 스릴러라고나 할까요. 단순 명쾌하게 씐나는 오락물인 데다가 심각한 상황에서도 내내 대놓고 던지는 개그들이 꾸준히 깔려서 부담 없이 가볍게 즐겨 달라는 주최측의 의지가 팍팍 느껴지구요. 현기증 흥행이 망해서 그랬나 배우들의 연기도 그런 컨셉에 딱 맞춰져 있어서 진지 심각하게 들여다볼 생각이 덜 들구요. 케리 그란트의 연기도 어떤 디테일한 심리 표현 같은 것보단 이 양반의 스타 파워와 매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쪽으로 맞춰져 있죠.


 뭐 그 전설의 비행기 습격씬 같은 걸 컷 단위로 분석해서 히치콕의 긴장감 조성 기술에 대해 논한다거나... 히치콕이 평생 동안 다뤄 온 본인의 고유 스타일이나 소재 같은 부분들이 거의 다 들어가 있는 영화이니 그런 측면에서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비평들도 많이 존재합니다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좀 그런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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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열심히 사람 잘못 잡아 왔다고 증명해도 들을 생각도 않고 낄낄 웃기만 하는 저 무능 빌런 놈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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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놔 내가 안 했다구요!!! 라는 누명 전문 배우 그란트씨. 이게 히치콕과의 마지막이었다는 게 참 아쉽습니다.)



 - 근데 저는 '현기증'을 볼 때보다 오히려 이 영화를 다시 보며 더 많이 감탄을 했는데요.

 왜냐면... 이게 정말 너무나도 명백하게 현대 어드벤쳐/스릴러 물의 효시격이 되는 영화라는 게 팍팍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후로 지금까지도 단골로 활용되는 이야기 구조, 연출, 캐릭터 묘사와 배치... 들이 거의 몽땅 등장해요. 역시 아주 옛날에 볼 때는 그냥 '응 딱 이런 영화다운 스타일이네'라는 식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요소들이 이제사 다시 보니 하나하나가 다 감탄스럽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전에도 수 없이 만들었던 '누명 쓴 남자의 모험' 이야기의 반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데, 그게 구현된 방식이나 퀄리티를 보면 이전의 같은 류 영화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현대적이라는 거죠. 아주 살짝만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 영화 이후로 60여년간 쏟아져 나온 비슷한 설정과 소재의 영화들은 싹 다 이 영화에 큰 빚을 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까지 진지하게 하고 그랬습니다. 다들 날로 먹고 있었어!!!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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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어찌 보면 나중에 나온 액션 스릴러들에 많이 나오는 인간 vs 암튼 과하게 크고 센 것. 대결 장면들의 원조 같기도 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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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인데도 진지 심각하게 봐 주기엔 쏜힐과 엄마의 표정부터 망했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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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음주 운전 카체이스 장면도 정말 즐겁게 봤습니다.)



 - 도입부에서 경쾌한 음악과 함께 뉴욕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분주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러다 그 중 한 명으로서 주인공이 짠. 하고 등장하고. 이 사람의 직업, 성격, 가족 관계 같은 걸 일상 대화들로 자연스럽게 전달하며 빌드업 해주고. 그렇게 바탕 쌓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납치를 당하면서 스피디하게 본론으로 들어가고... 이런 오프닝 정말 수백 번은 보지 않았습니까. ㅋㅋ 근데 이게 이미 흠 잡을 데 없이 깔끔하게, 완벽한 리듬으로 전개가 되구요. 이후의 전개들도 거의 다 이쪽 바닥의 모범 답안처럼 착착 흘러갑니다.


 적극적으로 유머를 활용하는 부분도 좋았어요. 일단 이 쏜힐이란 양반 자체가 이쪽 장르의 단골 캐릭터인 '언제나 여유만만 농담쟁이 일반인 히어로' 그 자체인지라 그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농담을 툭툭 던지며 웃음을 주고요. 조금 있다 등장하는 쏜힐의 엄마 캐릭터는 정말 걸작이더라구요. 아들래미 인생이 다 꼬여서 당장 범죄자 되게 생겼는데 옆에 착 붙어서는 계속해서 드립이나 쳐대고, 결국 아들에게 매수 당해서 협조하고... ㅋㅋㅋㅋㅋ 그리고 이런 개그들이 정말 시기 적절하게 탁 탁 들어가서 이야기의 접착제 겸 윤활제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아시다시피 이게 진짜 말도 안 되고 개연성도 모자란 전개들이 많은데 그렇게 뭔가 빈틈이 느껴질 때마다 여지 없이 개그가 하나씩 들어가며 관객들이 그런 부분들을 신경 쓰지 않고 넘길 수 있게 해줘요.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딱 적절함. 그런 느낌이었구요.


 부분부분으로 봐도 기억에 남는 재미나게 잘 찍은 장면들이 참 많은 영화입니다. 초반에 나오는 음주 운전 탈출 씬은 긴장감과 코미디가 참 적절하게 어우러진 명장면이었구요. 기차에서 그놈의 금발 미녀를 만나고, 숨고 도망치는 장면들도 참 매끄럽기 그지 없고. 허허벌판에서 경비행기 자객(...)을 만나는 장면 같은 건 거의 긴장감 연출의 교과서 수준. 거기에 경매장에서 진상 부리며 위기 탈출하는 장면도 이후에 여기저기서 참 많이도 참고했구나... 싶은 익숙하게 좋은 장면이었고요. 죽은 대통령들 얼굴에 매달려 벌이는 최종 액션은 후대 영화들이 따르게 된 '명승지 액션 클라이막스' 전통의 원조격이라고 부르고 싶더군요. 사실은 '파괴 공작원'의 자유의 여신상 씬이 먼저 있긴 했지만 이쪽이 연출은 훨씬 좋아서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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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스튜디오에다 만들어 놓고 찍었다네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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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의 금발 여인님도 참 매력적이고 좋았습니다. 1924년생이시니 당시에 35세셨던 건데... 아직 살아 계십니다!! 2019년까지 영화 출연도 하셨고... 어라. 슈퍼맨 리턴즈의 엄마 역할이 이 분이었네요;)



 - 그래서 뭐 더 할 말이 있겠습니까. '현기증'의 차기작이 이 영화인데 이 영화의 차기작이 '싸이코'라니. 뭐 이런 괴물 같은 양반이 다 있었을까요. ㅋㅋㅋ

 이미 적었듯이 후대에 미친 지대한 영향력을 확인하는 재미도 좋았고, 또 '히치콕 스타일 총정리 편'으로서 즐기기도 좋은 영화였지만 그냥 작품 자체가 참으로 요즘 봐도 재밌게 볼 수밖에 없도록 잘 뽑힌 오락물이었어요. 그러니 그 시절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더 신나고 재밌게 봤겠습니까.

 제임스 스튜어트와는 '현기증'의 흥행 실패 때문에 좀 훈훈하지 못하게 작별했다지만 이 영화는 흥행도 성공했으니 케리 그란트와의 작별은 그래도 괜찮지 않았을까... 라는 뻘생각을 하며 즐겁게 잘 봤습니다. 네, 그러합니다.




 + 히치콕 아저씨는 초반에 아주 티나게 나와서 살짝 웃겨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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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게시판에 오기는 하는데 글을 읽지는 않고 제목만 보고 나가는지라 오랜만에 댓글 달아봅니다ㅎㅎ

      짧은 후기글도 겨우 쓰는 저로서는 정말 대단하신 로이님!!! 늘 잘 보고 있습니다. 히치콕 시리즈는 몇편이 남은 걸까요? 왓챠가 망하는 건 슬픈일이지만 망하기라도 해야 로이님의 오랜 다짐 하나가 이렇게 해결되는군요ㅎㅎㅎ(근데 이제 진짜 진지하게 글 백업도 생각하셔야 하는거 아닐까요. 히치콕 시리즈 날린다고 생각하면 제가 다 속이 상합니다)


      이건 확실히 본 거네요ㅎㅎㅎ 칼라 화면도 반갑구요ㅋㅋ

      그간 글 제목만 보면서 지니 티비에서 열심히 찜하고 있었으니 저도 조만간 봐야겠어요!!!
      • 슬프게도 히치콕 시리즈는 이제 곧 끝입니다. OTT나 IPTV에 올라와 있는 게 '싸이코'가 마지막이어서요... 후기작들이 인기가 덜한 건 알고 있었지만 '새' 조차도 없군요. 지니 티비에 예전에 있었는데!! 작년인가에 업데이트하면서 옛날 영화들을 내려 버렸어요. 흑흑.




        글 백업이야 뭐... 저도 하고 싶지만 귀차니즘이... ㅋㅋㅋㅋ 그렇구요.




        솔직히 지금 봤을 때 히치콕 영화들이 다 재밌는 건 아니었습니다만, 제가 재밌게 본 것들은 다른 분들께서도 어지간하면 재밌게 보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중에 천천히라도 꼭 즐겨 보시길!

    • 한두번 댓글 올리기도 했지만 이 시리즈 정말 잘 보고 있어요! 이 영화는 옛날에 TV에서 몇 번 봤지만 아마도 처음부터 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기회가 되면 꼭 한번 제대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항상 응원하고 감사합니다!

      • 아이고 말씀 감사합니다. 이런 뻘글에... ㅠㅜ


        제대로 보신 적이 없다면 한 번 쯤은 각 잡고 제대로 감상해 보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옛날 영화 티도 많이 안 나고 정말 즐겁게 봤어요!!

    • 미드 [매드맨]의 오프닝 크레딧이 본 영화와 [현기증]에 영향을 받은 티가 철철 나지요. 






      • 아 정말 저 추락하는 남자 그림자는 영락 없이 '현기증' 그 장면이네요. ㅋㅋ 역시 뭐든 폼 나고 멋진 걸 만들어 내려면 고전들을 잘 알아야... 라는 생각이 듭니다.

    • 위에 올린 포스터 러쉬모어 산 미국 대통령 4인 얼굴 옆에 히치콕 감독 얼굴이 추가되어 있네요. 포스터 맨 아래 이미지 중 둘은 영화 스틸이지만 맨 오른쪽은 역시 히치콕 감독이 손가락 표지를 옆구리에 낀 광고 사진이고요. 깨알같이 귀엽기도 하지^^

      • 말씀하신 귀여운 포인트들 때문에 후대에 만들어진 포스터가 아닐까... 의심했었는데 좀 더 검색을 해 보니 실물 포스터 사진도 나오고 그래요. 진짜였나 봅니다... 1959년에 참 센스들도 좋았네요. 하하.

    • 한참 오래전에 봐서 장면 장면만 기억에 남는데 그래도 오래전 영화인데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하면서 본 기억이 납니다. 다시 볼 기회를 찾아 봐야 겠어요.

      이 영화가 지금 한국에 새로 개봉하는 신작이라면 제목을 어떻게 지을지가 궁금합니다.

      “노스웨스트“ 라고 달아버릴거라는데 5천원 걸어 봅니다. 아니면 다섯글자 기피하는 경향이니 줄여서 “노스웨트(…)“. 그 시절 그때의 멋진 제목이 착 달라 붙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 일단은 왓챠에 있고 iptv vod 서비스들에도 있긴 할 겁니다. 다시 봐도 분명 재밌게 보실 것 같아요. 하하.




        이게 애초에 번역이 불가능한 제목이라서 (사실 별 뜻이 없기도 하고...;) 말씀대로 부분만 음차해 버려도 욕은 안 먹을 것 같구요. ㅋㅋ 그래도 지금 통용되는 번역제가 폼 나고 좋은 것 같아요. 일본 개봉 제목을 살짝만 고친 거라고 하긴 하지만 어쨌든 좋습니다... 하하;

    • 그냥 재미있는 모험 활극 이미지로 남아 있는데 로이배티 님 글을 읽어 보니 다시 보면 새롭게 보일 거 같네요. 언제 다시 봐야겠습니다. 이번에 히치콕 감독 님 영화 대장정도 슬슬 마무리를 향해 가네요. 뒤에 무서운 영화들 몇 편 후기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근데 사실 그냥 재미있는 모험 활극인 건 맞는 듯 해요. ㅋㅋㅋ 다만 시대를 생각할 때 정말 많이 앞서갔고 또 완성도까지 빼어나다는 게 포인트라고 느꼈구요.


        저도 '몇 편' 글을 적고 싶지만 왓챠에 남은 건 이제 '싸이코' 하나네요. 이후 영화들은 나이를 덜 먹어서 아직 저작권도 살아 있는 듯 하니 유튜브에도 없구요. 아쉽습니다. ㅠㅜ

    • 이 영화를 티비로 봤을 때는 재미있는데 마지막 큰바위얼굴 액션이 역시 너무 오래된 영화라 참 맥빠지는 건 어쩔수 없구나 싶었어요.


      나중에 시네마테크에서 봤는데 그 큰바위 얼굴 장면이 스크린으로 보니까 상당히 박진감 있는 액션이었더군요. 극장 스크린의 위력이란 걸 새삼 느꼈더랬습니다.

      • 아. 사실 저도 그 장면의 박력은 좀 아쉽다고 생각하며 봤는데요. 역시 극장이 답이었던 것이로군요... ㅠㅜ 당연한 일이지만 슬퍼집니다. 이걸 또 언제 극장에서...

    • 제가 처음 본 히치콕 영화가 EBS에서 틀어준 새였나, 싸이코였던 거 같은데 이 영화는 그때 네이버에서 직접 다운로드받아서 봤었죠. 상당히 재미있게 봤던 영화입니다. 나중에 알고보니까 이 영화가 007시리즈보다 먼저 나와서 히치콕이 만든 최초의 007영화라는 말도 있었군요. 복엽기 시퀀스는 요즘 같으면 미션임파서블3에서 톰 크루즈가 오마주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폭탄 기압때문에 차유리에 부딪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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