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어글리 시스터] 보고 왔습니다
* 평어체로 씁니다. 양해 바랍니다.

<어머니는 딸을 미치게 한다>
[어글리 시스터]의 전술은 확실하다. 현실에서 여성은 아름다워지라는 압력을 받고 지독한 신체변형의 과정을 겪는다. 이 과정을 영화는 신체적 감각으로 증명하려 한다. 영화 초반부 주인공 엘비라는 시술대에 눕는다. 그 다음 의사는 엘비라의 코 위에 정을 놓고 망치로 때려서 코를 깨버린다. 엘비라는 비명을 지른다. 이것은 참을 수 있거나 참야아 하는 종류의 고통이 아니다. 여성의 신체는 미완성의 목재나 돌덩이처럼 깎여나가고 끼워맞춰지는 사물로 전락한다.
성형 혹은 아름다움에 대한 경고는 종종 여성 개개인을 향해 잘못 겨냥된다. 아름다워지기 위해 이런 과정까지 "자처"하지 말라는 훈계로 여성의 어리석음만을 강조한다. 영화는 분명한 전제를 깔고 간다. 이것은 개인의 충동이나 중독이 아니다. 일단 엘비라는 처음부터 자기가 아름다워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왕자와 결혼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엘비라는 왜 왕자와 결혼하고 싶어했나. 영화에서는 이를 돈의 문제로 직시한다. 엘비라의 어머니는 어떤 남자와 재혼한다. 그 남자는 재혼 첫째날 죽는다. 다음날 바로 죽은 양아버지의 재산에 대한 몰수가 시작된다. 양아버지의 딸 아그네스는 너희의 돈만 아니었다면 아버지가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고 독설을 뱉는다. 엘비라는 자기 집안에 돈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엘비라가 이 집을 지킬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뿐이다. 무조건 공주로 간택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이 집에서 쫓겨날 것이다. 그리고 영화 초반의 성형수술부터 어머니는 빚을 지기 시작한다. 엘비라는 이제 물러설 수 없는 게임에 돌입했다. 무조건 왕자와 결혼을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 모두가 길거리에 나앉게 될 것이다. 엘비라가 수술을 겪는 이 모든 과정은 결국 생존 투쟁이다. (언니 역시도 연인이 있지만 왕자와 결혼해야한다는 것을 말하면서 공주가 되는 것이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 영화의 원제는 Ugly Stepsister이다. 한글제목에서는 step이라는 접두사가 빠지면서 '이복동생'의 뉘앙스가 사라졌다. 영화는 주인공 엘비라를 이복동생으로 칭하며 가족의 태생적 구성원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으로 규정한다. 혈통이라는 의미에서 엘비라는 '정통 가족'이 아니다. 어머니가 재혼을 하자마자 아버지가 죽어버리면서 그 자리에 공백이 생겼다. 엘비라는 가부장제 안에서 '가부'가 사라진 그 공백에 당황한다. 무도회를 알리는 병사가 와서 언니와 엘비라의 이름을 물었을 때, 언니는 성을 포함해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그러나 엘비라는 성을 묻는 질문에 어쩔 줄을 몰라서 '스텝시스터'라고 얼버무린다. 가부장제 안에서 여자는 한명의 개인으로 온전해질 수조차 없다. 반드시 주인이 되는 남자가 있어야한다. '엘비라 스텝시스터'는 패밀리 네임의 이 일시적 결여를 반드시 메꿔야한다. 왕자와 결혼한다는 것은 엘비라에게 실존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영화는 남성중심적 사회를 지적하는데서 멈추지 않는다. '여성은 파괴적으로 외모를 바꾸도록 압력을 받는다'는 이 명제에서 압력의 주체는 누구인가. 영화가 가장 먼저 지목하는 것은 엘비라의 어머니다. 영화는 엘비라에게 가해지는 그 압력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보다 명확하게 밝힌다. 엘비라는 자신이 성형외과를 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가 성형외과에 엘비라를 데리고 갔고, 수술을 받을 것을 결정했다. 이 영화는 '여성은 "어머니"로부터 아름다워질 것을 요구받는다.'를 고발한다. 엘비라는 계속해서 어머니의 지도 아래 외모를 여러 방식으로 꾸민다. 즉 이 영화는 딸과 어머니의 이야기이며 어머니 세대와 딸 세대 여성의 세대 갈등이다. 이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은 순진한 피해자로 남지 않고 대물림을 통해 여성들을 계속 복속케 하는 적극적 공모자이다.
전세대 여성이 어떻게 후세대 여성을 남성중심적 사회로 끌어들이는지를 보여주는 영화 속 캐릭터가 또 있다. 그는 엘비라를 포함해 다른 공주후보들에게 궁정수업을 하는 여성교사다. 그는 수업중에 엘비라를 대놓고 무시하며 모욕한다. 이후 엘비라는 무도회 공연에서 왕자의 시선을 받기 용이한 '센터 멤버들'의 자리에 발탁된다. 그러자 교사는 엘비라의 어머니가 로비를 한 덕분이라며 엘비라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다. 그는 엘비라의 '자격없음'을 계속해서 지적하며 엘비라를 위축시킨다. 이 캐릭터에서 특이한 건 그의 행위가 아니라 레즈비언이라는 성정체성이다. 영화는 그가 다른 여자교사와 애인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교사는 성애적으로 남성의 욕망에 부역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 교사는 '남자에게 사랑스러운 여자'가 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이 교사는 엘비라에게 아름다워야한다고 끝없이 학대한다. 남성에 대한 욕망없이도 여성은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다른 여성을 억압하는 주체가 된다. 영화는 여성을 외모강박의 무조건적인 피해자로 놓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이야말로 외모강박의 가해자의 위치에 가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후 이 교사의 애인은 엘비라에게 살이 찌지 않는 비법을 전수한다. 그것은 촌충 알을 삼켜서 뱃속에서 아예 기생충을 키우고 영양분을 계속 흡수당하라는 것이다. 엘비라는 촌충 알을 삼키고 이후 끝없는 허기에 시달린다.
엘비라의 가족은 이 세대간의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어머니는 엘비라에게 아름다워지기 위한 자기 학대를 종용한다. 의붓언니인 아그네스는 아름다워져야한다는 목표를 먼저 성취한 표본이자 시기의 대상이다. 그리고 엘비라를 바라보는 동생이 있다. 동생은 엘비라를 기이하게 바라보고, 촌충알을 먹는 엘비라에게는 대놓고 미쳤다고 말한다. 이후 어머니는 엘비라의 발가락을 다 자르고 동생은 그런 엘비라를 말에 태우고 집을 떠난다. 어린 여자를 아름다워지라고 학대하는 전세대 여성과, 학대당하는 여성을 기괴하게 바라보면서도 그 사회를 벗어나려는 더 어린 여자로 구도가 나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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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m & Dick>
엘비라의 어머니가 재혼한 남편이 죽고 나면, 그 시체를 오른쪽으로 훑으며 [어글리 시스터]의 오프닝 크레딧이 뜬다. 시체 옆에 장식된 과일들 옆으로는 구더기로 추정되는 애벌레들이 기어다닌다. 이 영화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가부장의 죽음에서 비롯된 벌레의 이미지에서 시작된다. 이 벌레는 때로는 남성의 성기로 치환되며 영화의 곳곳을 파고든다.
엘비라는 동생과 산으로 소풍을 간다. 그곳에서 엘비라는 살이 빠지는 비법을 배웠다며 촌충의 알을 동생에게 보여준다. 동생은 왜 그렇게까지 하냐며 경악하고 말을 타고 돌아가버린다. 혼자 남은 엘비라는 어딘가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왕자의 일행을 발견한다. 왕자가 오줌을 싸느라 바지를 내린 채 노출된 엉덩이가 엘비라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다. 왕자 일행은 엘비라를 발견하고 그를 희롱하며 모욕한다. 이후 엘비라는 촌충약을 삼키고 걸어서 집까지 돌아온다.
집에 돌아온 엘비라는 마굿간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고 또 다시 몰래 훔쳐본다. 마굿간에서는 의붓언니 아그네스가 잘생긴 마부와 섹스를 하고 있다. 이 때 영화는 마부의 성기를 전면으로 노출하고 정액이 튄 아그네스의 얼굴도 보여준다. 촌충의 알이 각성제인 것처럼 엘비라는 남성성이 불쾌한 살덩어리의 벌레로 꿈틀거리는 세계로 진입한다. 이 세계는 다정한 왕자와 그렇지는 않은 평범한 남자들이 있는 게 아니라, 벌레의 살과 언어가 여성을 더럽히는 그런 곳이다.
이후 엘비라는 아그네스의 성관계를 어머니에게 말하고 아그네스는 집안의 하녀로 전락한다. 그 이유는 계급이 낮은 남자와 몸을 섞었다는 이유이다. 즉 이는 순결이란 개념이 자본주의적, 계급주의적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아그네스가 귀족 남자와 성관계를 했다면 이토록 가혹한 벌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아그네스는 궁정 교육에 더 이상 참여하지 못하고 그 스포트라이트는 촌충약과 더 뾰족해진 콧대를 갖게 된 엘비라에게로 돌아간다.
무도회 날이 되지만 무도회에 갈 수 없어서 아그네스는 슬퍼한다. 이 때 아그네스는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슬퍼하는데 이 때 마법처럼 하늘색 드레스가 만들어진다. 다름아닌 애벌레들이 뱉어내는 실에 의해. 영화는 이 애벌레들이 실을 뱉어내고 천으로 만들어가는 장면을 확대해서 보여준다. 아그네스가 '신데렐라'로서 비장의 도구를 획득하는 이 장면이 이렇게 기괴하게 그려져야 할 필요가 있을까. 엘비라가 체내에서 벌레의 힘을 빌리고 있다면 아그네스는 체외에서 벌레의 힘을 빌리고 있다. 이 장소가 아버지의 시신이 뉘여있는 곳이라는 걸 상기한다면, 아그네스의 드레스는 남성적 욕망이 그를 인도하는 상징처럼 보인다.
이후 아그네스가 결국 왕자와 결혼하고, 발가락을 모조리 잘라낸 엘비라는 집에 남겨진다. 그는 걷지 못하고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기어다닌다. 그의 동생은 촌충을 뱉어내라고 약을 주고 그걸 삼킨 엘비라는 엄청난 양의 촌충을 뱉어낸다. 뱃속에서 입 바깥으로 끝도 없이 늘어지는 그 벌레의 이미지는 앞서 나왔던 벌레와 남성 성기의 이미지와 다시 연결된다. 아름다워지기 위한 욕망은 결국 남성에게 선택되고 벌레에 몸을 잠식당하는 과정에 다름아니다. 이후 엘비라는 동생과 떠나기 전 이들은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본다. 어머니는 무도회에서 만난 젊은 귀족 남성의 성기를 정신없이 빨고 있다. '삼키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뱉어낸' 엘비라는 동생과 함께 집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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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속에서 누가 행복해졌는가. 아그네스는 신데렐라 동화의 주인공으로 왕자와 결혼에 성공했다. 그러나 영화는 왕자가 어떤 사람인지 낱낱이 보여주었다. 아그네스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무도회에서 왕자의 눈에 들기 위해 발까지 자른 엘비라는 말할 것도 없다. 집에 남겨진 어머니는 결국 홀로 쓸쓸히 늙어갈 것이다. 남성과의 결혼에 매달리지 않았던 동생만이 자신을 온전하게 지켜내고 있다. 이 영화는 동화가 가정하는 로맨스의 세계를 어른의 상처로 부숴버린다. 이 세계에 남성의 구원은 없다. 그걸 꿈꾸다가 무슨 꼴을 당하는지 정신을 차리라고 영화는 여성에게 토사물과 핏덩이를 던진다. 그 이미지 범벅이 된 채로 또 환상에 젖어들 수 있을까. 벌레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다.
@ 에필로그에서 남겨진 아버지의 시체는 동화책의 happily ever after를 비웃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아버지는 묻히지도 못한 채 계속 썩어가기만 했답니다.
그렇네요. 아예 여성호모소셜에서 스스로 탈락하는 것처럼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