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바낭] 조 힐 단편집 '20세기 고스트' 대충 잡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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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조셉 힐스트롬 킹. 이라구요. 좀 특이하네요.)
다들 아시다시피 공포 소설계의 원탑 히어로 스티븐 킹 할배의 아들이죠.
아빠의 그 무시무시한 명성이 부담스러워서라도 호러 작가는 안 하고 싶었을만도 한데 그걸 하고 있고. 또 호평까지 받아낸 훌륭한 아들이구요.
전에 게시판에서 oldies님께서 '단편은 아빠보다 낫다'고 극찬하신 걸 보고 호기심에 구입했던 책을 깨작깨작, 한 번에 한 작품씩 읽다가 얼마 전에 끝을 봤습니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느린 속도였지만 책의 재미와는 관계 없고 그냥 제 게으름 때문에. ㅋㅋㅋ
암튼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편은 아빠보다 낫다'는 평가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재밌게 읽었습니다.
뭐 아빠의 리즈 시절 단편집들에서 베스트로 수작들만 쏙쏙 뽑아다 컴필레이션으로 한 권 만들어서 맞짱을 뜬다면 모르겠습니다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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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표지만 놓고 보면 절대 사고 싶지 않은 수준... 이긴 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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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쪽 센스라고 그렇게 탁월한 것 까진 아니구나... 했습니다. ㅋㅋ 물론 이게 한국판보단 낫지만요.)
일단 기본적으로는 아빠 작품들과 비슷한 느낌이 많이 들어요.
칙칙한 시골 동네 배경 이야기가 많고. 그런 미국 시골 라이프의 디테일 같은 게 참 세세하게 들어가구요. 거기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대략 아빠 소설들에서 한 번쯤 비슷한 걸 본 듯한 기분이 많이 들고 그렇습니다만.
그냥 이렇게만 말 해 버리면 사실 공정한 비교는 아니죠. 아빠가 이미 50년이 넘게 활동하면서 (게다가 아직 현역!!) 총 80여권의 책을 내놓았고 그 중에서 단편집만 해도 10종이 넘는데 이 중 상당수는 또 두 권 짜리란 말이죠. 조 힐이 아닌 그 누구라도 미국에서 호러 소설을 쓰면서 '스티븐 킹 영향 받았네!'라는 평가를 벗어나는 건 불가능한 수준인지라. 아빠랑 닮았다는 얘긴 적당히만 해 두고 넘어가는 게 모두에게 행복한 일일 듯 하구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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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나오면 표지 갈이 버전으로 새로 책을 내는 건 만국 공통이겠죠)
그리고 아빠 작품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포인트들이 충분히 많이 있어요.
일단 아저씨 느낌(?)이 덜합니다. ㅋㅋㅋ 아무래도 1940년대생과 1970년대생이니까요. 말하자면 킹은 제 아버지 세대이고 힐은 제 세대. 이 세대 차이에서 나타나는 사고 방식, 어조의 차이가 확실히 느껴지더라구요. 인용되는 음악이나 문화 아이템들도 비교적 요즘에 가까운(그래봐야 20세기 말이지만;) 것들이 등장하구요. 뭐 70년대생이라고 해 봐야 이미 50대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확실히 요즘 세대에 가까운 느낌이 들어요. 물론 할배스런 이야기는 또 그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이니 뭐가 낫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구요. 다만 힐의 글이 좀 더 편하게 읽힌다는 느낌은 있었습니다.
킹의 작품들이 워낙 많이도, 정말 줄줄이 영화가 되고 드라마가 되고 그랬지만 킹의 작품들 속에서 영화의 영향 같은 게 느껴지진 않았는데요. 힐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이 양반의 영화 사랑이 많이 느껴집니다. 유명한 영화들에 대한 언급도 많고, 영화판에 대한 이야기도 있구요. 아예 구체적으로 모 유명 영화 촬영 현장을 배경으로 하 이야기까지 나와요. ㅋㅋ 소설이 나온 연도를 생각하면 거기 등장하는 분들이 다 살아 계실 때였는데. 아빠가 워낙 유명한 사람이고 하니 그 분들과 조 힐도 원래 인연이 있었던 걸까. 이런 호기심을 가지며 읽었네요.
그리고 뭣보다... 감성 자체가 훨씬 섬세하고, 뭔가 소년 느낌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냥 호러에 전념할 땐 잘 안 느껴지는데, 수록 작품들 중에 감성 터지는 류의 작품들 읽을 때면 확실히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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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랬던 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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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동종 업계 종사자, 선후배로 살아가고 있네요. ㅋㅋ 암튼 보기 좋은 사진 같아서 올려 봤구요.)
뭐 대충 정리하자면...
조 힐이 아빠의 클래스를 넘어설 일 같은 건 절대 벌어지지 않겠죠. 이미 본인 나이도 50살이 넘었으니 더더욱 그럴 확률은 적어 보이구요.
하지만 아빠 능력에 묻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본인 능력으로 성공한 작가가 되었고. 또 아빠와는 차별화 되는 본인의 개성과 스타일도 보이구요.
그래서 킹 할배는 자식도 잘 키우셨네... 하면서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아마 '킹 소설은 재밌긴 한데 좀 아재스럽게 낡은 느낌이 거슬려'라는 분들이라면 아들 소설이 더 취향에 맞을 수도 있으니 한 번 고려해 보세요. 전 그냥 둘 다 좋아하는 걸로... ㅋㅋㅋ
+ 그냥 끝내기 아쉬워서(?) 수록작들에 대해 정말 간단히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스포일러는 전혀 없어요.
1. 신간 공포 걸작선 : 사실 스티븐 킹과 아무 연관이 없지만 자꾸만 스티븐 킹 생각이 나던 영화 '매드니스'랑 살짝 닮은 이야기입니다. 소수에게 구전되는 전설의 호러 소설 '신간 공포 걸작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긴데요. 출판 업계와 특히 공포 소설 업계 & 팬들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서 메타 픽션 느낌이 드는 게 재밌었구요. 또 그걸 블랙 코미디 느낌으로 풀어냅니다. 사실 이야기 결말까지도 자첸 별 거 없는데 읽다 보면 재밌어요. 이런 게 이야기꾼의 재능이란 거겠죠.
2. 20세기 고스트 : 제가 위에다 적어 놓은 아빠와의 차이점들이 좋은 방향으로 엮여 나온 작품.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폐관 위기의 낡은 극장을 배경으로 하는 인간 소년과 귀신 소녀 이야기인데요. 으스스하면서도 낭만적이고, 영화 이야기도 참 많이 나오고... 특히 참 낭만적이면서도 동시에 호러의 본분을 잊지 않는 마무리가 참 맘에 들었습니다.
3. 팝 아트 : 위의 두 편은 그래도 '킹도 비슷한 이야기 만든 적 있다고' 라고 얘기할 수 있는 작품들이거든요. 근데 이건 정말 킹이 절대로 쓸 리가 없는 이야기랄까... 그렇습니다. ㅋㅋ 읽기 시작하는 순간 '어라? 이게 비유적 표현이 아니고 그냥 작중 설정이라고?' 싶을 정도로 황당한 아이디어로 시작하는 이야기인데. 읽다 보면 감정 이입 되고 슬프고 짠하고 기특하고 막 그래요. 굳이 비교하자면 킹 작품들 중엔 '스탠 바이 미'랑 아주 쪼끔은 닮은 정서를 다룬다고 우겨볼 수 있겠네요. 암튼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4. 메뚜기 노랫 소리를 듣게 되리라 : 카프카의 '변신'을 호러 스토리로 바꿔 놓은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대충 비슷합니다. 사실 아주 재밌진 않았는데, 인상적인 장면들이 좀 있어서 언급해 보구요.
5. 집 보다 나은 곳 : 공포 요소는 거의 없는 훈훈한 이야기들 중 하나인데요. 아, 역시 아들도 야구 참 좋아하는구나. 라며 혼자 키득거리며 훈훈하게 잘 읽었습니다.
6. 검은 전화 : 넷플릭스에 영화로 올라와 있는 '블랙 폰'의 원작이죠. 제가 영화를 먼저 봤다 보니 계속 둘을 비교하면서 읽게 됐는데... 결론은 원작도 재밌지만 영화가 또 아주 모범적으로 각색을 잘 했다. 였습니다. 이 소설은 단편 소설이라는 자신의 본분에 맞게 짧고 굵은 이야기를 하면서 살짝살짝 '니들이 상상해 보렴' 이란 느낌으로 떡밥들을 뿌려 놓거든요. 영화는 그런 떡밥들, 원작 속에 존재하는 가능성들을 알뜰하게 캐치해서 다 적절한 방향으로 불려 놓았어요. 그래서 원작에서 어긋나는 건 없으면서도 장편 영화에 어울리게 풍성하고 또 더 감정적인 힘이 큰 이야기가 되었죠. 둘 다 안 보셨다면 소설 먼저 -> 영화 감상... 이렇게 보시는 게 좋을 것 같구요. 귀찮으시면 그냥 영화만 보셔도... ㅋㅋ
7. 협살 위기 : 단편집이라는 게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작품들을 위한 게 아닌가 싶네요. 정말 간략하고 큰 스토리 같은 건 없는 이야기거든요. 그냥 서너 줄로 정리될 법한 설정 하나를 던져 놓고 그걸로 수십 페이지를 펼쳐 놓은 건데, 오랫 동안 기억에 남을 류의 이야긴 아니지만 읽는 동안은 충분히 흥미롭고 긴장도 되고 그렇습니다. 역시 이야기꾼의 재능이란... x2
8. 마법 망토 : 제가 느낀 조 힐과 아빠 단편들의 차이점 중 하나가 '대체로' 조 힐 작품들은 좀 덜 못됐다... 라는 거였는데요. 이건 좀 예외입니다. 동화처럼 시작해서 싸이코 스릴러처럼 끝나는 이야기인데 상당히 맘에 들었습니다. ㅋㅋ
9. 마지막 숨결 : '환상특급' 느낌이 많이 나는 이야기에요. '블랙미러'에서도 비슷한 소재를 한 번 다뤘던 것 같기도 하고. 걍 무난했습니다.
10. 나무의 유령 : 앞뒤로 한 장 짜리 초초단편입니다. 아빠 작품들 중에도 비슷한 게 있었던 것 같은데 제목이 기억 안 나서 화가 나네요. ㅋㅋㅋ 암튼 무난!
11. 과부의 아침 식사 : 이건 솔직히 별로 재미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영상화 하면 나을 것 같기도 한데, 이런 짧은 이야기가 영상물로 만들어질 일은 없겠죠.
12. 바비 콘로이. 죽은 자의 세계에서 돌아오다 : '시체들의 새벽' 촬영에 좀비 엑스트라 역할로 찾아간 바비 콘로이라는 남자가 그 곳에서 자신의 첫사랑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배경은 이렇지만 매우 평범한 러브 스토리입니다. 하지만 심리 묘사 같은 게 좋고, 또 저런 특별한 배경 덕에 이야기의 평범함이 살짝 가려져서 재밌게 봤구요. 조지 로메로와 톰 새비니가 실명으로 등장합니다. ㅋㅋ
13. 내 아버지의 가면 : 부부 관계 파탄과 그걸 바라보는 아들의 심리를 공포 버전 이상한 나라 앨리스 같은 느낌으로 그렸달까... 뭔가 좀 괴상한 이야긴데요. 뭘 굳이 이런 얘기를? 이란 생각에 확인해 보니 조 힐이 이혼 경험이 있군요. 그냥 그랬구나... 하고 납득했습니다(...)
14. 자발적 감금 : 여기 수록작들 중 아마 가장 길 겁니다. 평범한 형과 자폐 성향 동생의 이야기인데. 킹도 이런 형제 이야길 즐겨 썼던 것 같은데 아들도 그런 취향을 물려 받았나 보죠. 제게 여기 작품들 중 가장 아빠가 쓴 것 같은 작품 하나를 골라 보라고 하면 이걸 고르겠습니다. 뭔가 정서가 비슷해요. 어쨌든 재밌게 읽었구요. 호러 앤솔로지에서 대략 50분짜리 에피소드 하나로 만들면 딱이겠다 싶었네요.
끝입니다.
그렇죠. 킹 아들 본명이 힐이라니 이 무슨 폐륜적인 삑사리를 냈단 말입니까. ㅠㅜ
사실 책 다 읽은지 좀 되긴 했지만 오랫 동안 읽은 것도 사실이구요... 하하. 한 번에 좌라락 읽은 게 아니라 이야기 하나 읽고 며칠 쉬다가 또 하나 읽고 며칠 쉬다가... 를 반복해서 그랬습니다. 흑. ㅠㅜ
결국 다 '이야기'를 만드는 쪽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군요. 아빠의 영향력이 무시무시했나봐요. ㅋㅋㅋ
그냥 취향 문제 아닐까요. 하하.
전 만족스럽게 읽었다 보니 본문에는 거의 칭찬 뿐이긴 한데, 아빠의 단편들에 비하면 아이디어가 그렇게 확 꽂히는 경우가 적긴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역시 아빠의 잘못이라 생각하며... 도대체 어떻게 뭘 더 생각해내야 한단 말입니까. 이미 아빠가 만들어 놓은 이야기가 수백 편인데! ㅋㅋ
부자가 책 읽는 사진은 쏘맥 님 댓글 느낌 딱 맞네요. 진지함과 약간의 의아심이 섞인 표정.
아버지의 직업을 그대로 잇는 사람 많지만 호러스릴러 소설 장르는 드문 일 아닐까요. 말씀대로 아버지가 그 분야의 그냥 작가 1도 아니고. 틀림없이 고민도 많았을 거 같고 작품은 안 읽어 봤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픽노블 작가로도 활동한다네요. 배경 안 밝히고 성공하셨다고 하니 아버지도 뿌듯하실 것 같습니다.
어차피 설정 사진이겠지만 둘 다 뭔가 컨셉을 잡고 표정 연기를 하는 걸로 보여서 귀여운 사진입니다. ㅋㅋ
결국 아빠의 명성은 넘지 못하겠지만 정말 드라마틱하고 갸륵한(?) 성공담이잖아요. 정말로 아빠가 엄청 자랑스러워할 것 같습니다. 그럴 수 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