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d바낭] 이란이라는 나라는 대체... '신성한 나무의 씨앗' 잡담입니다
- 2024년작입니다. 런닝 타임은 무려 2시간 48분!! ㅋㅋㅋ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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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국내 공식 포스터도 멋지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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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은 좀 덜 나도 이 쪽이 좀 더 정확한(?) 포스터가 아닌가... 싶었네요. 다 보고 나서 생각으론요.)
- 영화가 소재로 삼는 시위가 무엇인가 찾아 보니 2022년에 벌어진 히잡 반대 시위였다는군요. 그러니 배경은 그 즈음이겠구요.
주인공은 '이만'이라는 이름의 중년 남성입니다. 나랏 일 하는 사람인데 아마도 수사관 일을 오래 하다가 저는 처음 들어보는 '수사 판사'라는 직책으로 진급이 되었어요. 20여년을 인생의 목표로 삼아왔던 그냥 '판사'까지는 이제 한 단계만 남았고. 자부심 뿜뿜하려는 순간에... 검찰 측에서 보낸 서류들을 읽지도 않고 신속하게 도장 쾅쾅 찍어 보내라는 압박을 받게 됩니다. 문제는 그 서류들은 사형을 구형하는 것들이었고. 결국 읽지도 알지도 말고 사람 죽이는 데 동참하라는 건데 그래도 이 때까지는 양심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일을 해왔다고 자부해 온 이만은 번뇌에 빠집니다만. 사방에서 들어오는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도장을 찍어요. 정확히는 찍기 시작하죠.
문제는 이만의 가족들, 그 중에 참으로 전통적으로 가족적이고 순종적인 성격의 아내는 별 문제가 없지만 딸 둘이 문제입니다. 이제 갓 대학생이 된 첫째와 사춘기 반항기 폭발 중인 둘째. 이들이 자꾸만 히잡 시위 쪽을 '안 반대하는' 입장을 내비치니 이만도, 이만의 아내도 곤란하구요. 그러다 첫째의 친구가 큰 부상을 입으면서 집안 분위기는 대폭발. 그리고 그 순간에... 수사 판사가 되면서 정부에서 호신용으로 지급 받은 권총이 사라집니다. 이게 상부에 알려지면 바로 좌천에 다시는 재기를 못하게 될 거란 공포와 가족에 대한 의심, 배신감에 사로잡힌 이만은 이걸 어떻게 해결하려 하냐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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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가족이구요. 가족이 함께 나올 땐 이와 비슷한 구도가 자주 나옵니다. 인물들의 관계, 특히 아빠 캐릭터의 위치와 태도를 보여주려는 것이었겠죠.)
- 역시 제목이 멋져서 봤습니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처럼 낭만적이고 시적이진 않지만 이것도 뭔가 고풍스럽게 멋지잖아요? 무려 두 시간 사십 팔 분짜리 이란 영화를 지니 티비가 올려 놓았다는 건 어디선가 큰 상도 받아서 작품성도 보장이 되는 작품일 거라는 보장도 되고. 또 시놉시스를 보니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 스타일 전개도 있을 듯 하고. 그럼 재밌겠지 뭐! 하고 틀었습니다. 그랬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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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과 '스마트폰만 붙들고 사는 요즘 애들'이 이렇게 긍정적으로 그려진 영화가 또 있었을까... 싶었네요. ㅋㅋ)
- 돌이켜 보면 제가 어쩌다 보니 근 1년간 이란 영화를 네 편이나(?) 봤는데요. 그게 '세일즈맨(2016)', '성스러운 거미(2022)', '배신자(2022)'... 그리고 이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담고 있는 메시지가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이란은 사람 살 곳이 아니다' 라는 거죠. 하하하; 아니 뭐 어느 나라든 자국의 이런저런 부분들에 대해 비판하는 영화들은 많잖아요. 한국 영화들만 봐도 그렇구요.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디테일이 문제인 것인데, 그나마 상대 평가로 '세일즈맨'은 그 정도까진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나머지 세 편은 정말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이야기들이고. 그 중에서도 최강자가 바로 이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입니다. 네, 압도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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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 인물인 건 맞지만 주인공은 아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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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사람. 세 여성의 이야기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위에 올린 짤과 비교해 보면 아빠가 있을 때랑 없을 때 그림이 아주 다르죠.)
-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일단 아빠인 '이만'은 전형적인 이란의 아버지... 정도로 묘사가 되는 듯 해요. 비록 정부의 일을 하며 일반 시민들을 탄압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시작부터 어느 정도 비호감인 건 어쩔 수 없겠지만. 본인 주장대로 '일생 동안 정직 하나로 살아 왔다'라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 듯 하고. 또 윗사람들의 불합리한 지시에 저항하고 싶어하는 모습도 보이니 시작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딸들은 뭐 그냥 평범한 그 나이 또래 아이들로 묘사가 됩니다. 좀 즉흥적이고 생각이 그리 깊지는 못하고 그렇지만 상식적인 아이들이고 부모에 대해서도 대략 좋은 감정 갖고 있구요. 마지막으로 엄마는 일단은 아빠 편입니다. 근데 뭐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먹여 살리느라고 20년 넘게 뼈 빠지게 고생한 가장을 존중해야지!' 정도의 적당히 보수적이면서도 상식적인 이유에서 그래요. 그런데...
현대 이란의 상황이 그냥 자연스럽게 이 가족을 해체하고 파괴해 버리는 거죠. 이 나라의 보수적인 가치를 그대로 몸에 체화하고 있는 아빠와 자식들의 사고 방식 차이로 인한 일상의 갈등부터 시작해서, 극중의 현실 이슈인 히잡 시위와 시위대에 대한 양측의 인식 차이가 기름을 붓고. 거기에 아빠의 직업이 불을 지릅니다. 그리고 일단 불이 붙으니 온 가족이 다 함께 폭주하는 가운데 그 과정을 통해 '그래도 본성은 착하고 가족에겐 좋은 사람' 으로 보였던 아빠의 민낯이 사정 없이 드러나기 시작하구요.
그래서 분명 '한 가족의 이야기'이긴 한데, 그 가족의 상태가 그냥 현재 이란 사회의 축소판이니 이야기 전체가 상징적인 성격을 띄게 됩니다. 단순 무식하게 말 하자면 아빠가 이란 정부 & 남성들이고 엄마는 기성세대 여성이고 딸들은 젊은 여성들인 동시에 그냥 젊은 세대인 거구요. 그리고 이런 상징은 이야기가 클라이막스에 도달했을 때 정말 노골적으로 드러나요. 거의 '이래도 못 알아 볼 테냐!!!' 라는 느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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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캐릭터의 배치와 그림만 봐도 대략 분위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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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이 되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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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느낌이죠. ㅋㅋㅋ)
- 무려 168분에 달하는 영화잖아요. 무슨 대하 서사시 쯤 되는 원작이 있어서 그런 경우라면 모를까. 보통은 이쯤 되면 '난 내가 하고 싶은 얘기 다 할 테니 끝까지 보든 말든 니 맘대로 하렴' 이란 식으로 만든 이야기이게 마련이고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의 느낌도 그러합니다.
이 영화의 이야기에 불이 붙고 가족들의 갈등이 본격화되며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고 들리는 무언가가 벌어지기 시작하는 건 대략 두 시간이 지난 후입니다. ㅋㅋ 영화 썸네일에 붙어 있는 시놉시스에도 적혀 있는 권총 분실 사건으로 인해 영화에 스릴러 분위기가 가미되는 것만 해도 거의 런닝 타임 절반이 지난 후거든요. 그런데 영화가 전혀 지루하거나 늘어지지 않아요. 왜냐면... 그렇게 불이 붙기 전의 '일상 파트'로 줄줄이 보여지는 이란의 사회상과 억압적 문화라는 게 참으로 버라이어티하구요. 그게 하나 하나 빠짐 없이 정말 상상과 상식을 초월하기 때문이죠. 그냥 나라 자체가 스릴러 국가(...)니까. 굳이 본론으로 돌입하려고 서두르지 않아도 계속해서 경악과 긴장이 이어집니다.
본인 나름대로는 가족을 생각하는 성실한 가장일 뿐이었던 아빠가 서서히 맛이 가는 모습이 무섭고. 아빠와 아이들 간에 건널 수 없는 강을 만들어 버리는 그 '히잡 시위' 사태와 그에 대한 정부의 대처가 무섭고. 아빠가 아직 제정신(?)일 때 조차 숨쉬듯 뿜어져 나오는 맹목적 신앙 기반 여성 혐오가 숨 막히구요. 그렇게 균열이 벌어지며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가족의 모습이 안타깝고. 점점 맛이 가는 남편과 함께 불타오르는 자식들 사이에 껴서 어떻게든, 자신을 희생해 버리더라도 이 가족을 지켜 보려는 엄마의 몸부림이 애잔하고 그렇습니다. 따지고 보면 참 슬픈 가족 드라마인데 나라 꼴 때문에 슬픔은 저 멀리 숨어 버리고 호러 무비가 되어 버리는. 대략 그런 이야기였어요. 이 '호러 무비'라는 게 농담이 아니에요.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보면 이게 영락 없이 중동 버전 '샤이닝'이거든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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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가 괜찮을 때에도 이 둘이 만드는 그림은 대체로 이런 식입니다. 시선 차이 말이죠.)
- 제게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엄마였습니다. [구세대 - 젊은 세대]의 단순한 도식으로도 대략 설명이 되는 아빠 - 두 딸에 비해 포지션이 선명하지 않아서 역동적인 느낌을 주거든요. 처음엔 분명히 아빠 편에서 자식들을 대하고. 또 아빠가 출세해서 벌 돈으로 식기 세척기도 사고 더 좋은 집으로 이사도 가고 싶고 이런 소망을 솔직하게 계속 털어 놓는 데다가 남편의 직업과 하는 일에 대해 일말의 비판적, 부정적 인식이 없어요. 그래서 그냥 [아빠=엄마] 라는 이미지로 시작합니다만. 말로는 늘 그렇게 아빠 편을 들면서도 딸이 데려온 부상자를 일단 치료는 해 준다든가. 아빠에게 대드는 딸들을 꾸짖으면서도 또 아빠에게도 자식들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요구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인간적인 면모를 꾸준히 보이면서 점점 남편과 거리감이 생기면서 어느샌가 중간에 서 있는 존재가 되고. 그래서 이 캐릭터가 마지막에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가 상당한 긴장감을 유발합니다. 어떻게 되는지는 스포일러니까 생략하구요. ㅋㅋ
아빠 캐릭터와 연기도 참 대단합니다. 앞서 적었 듯이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는 양심적이고 가정적인 남자... 로 출발해서 점점 맛이 가는데요. 보다 보면 이게 정말로 맛이 가는 과정을 보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랬던 양반이 외부 사정을 핑계로 일생 동안 걸쳐 왔던 허울을 벗어 던지는 것인지 애매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이걸 보며 쌍욕을 해야 하는지 씁쓸해 하며 안타까워해야 하는 건지 막판까지도 헷갈리게 되는데, 그래서 좀 더 이야기와 캐릭터에 집중하며 보게 되더군요.
마지막으로 신세대를 대표하는 딸래미들은... 그 와중에 언니랑 동생도 티어(?)가 나뉘어져 있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근데 이 분들에 대해선 뭐든 자세히 말하려고 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생략하구요. 개인적으론 막내딸 캐릭터가 참 인상적이었다는 얘기만 적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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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젊은이가 나라의 희망이다!' 라는 고대 교훈을 전해주는 이야기라고 우겨 볼 수도 있겠구요.)
- 이 기나긴 런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틈이 거의 없었던. 내내 집중해서 보게 만드는 흡입력 쩌는 영화였는데요.
다만 문제는 그 집중력 유도의 근원이 '너무 충격 삭막 암담함'이었다는 거죠. ㅋㅋㅋ 매우 부정적인 포스로 넘쳐 흐르는 영화이고 그러니 편히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큰 관심도 없던 남의 나라 사정 이야기인 데도 이렇게 확 끌어가며 집중하게 만든 것만 봐도 매우 잘 만든 영화라는 건 부인할 수 없겠구요.
강렬한 드라마도 있고, 스릴도 있고, 또 남의 나라 이야기라지만 당연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과 연결 지어 생각해 볼만한 부분도 많구요. 대체로 폭 넓게 추천할만한 좋은 영화였습니다만... 대신 참으로 편안한, 그리고 긴 시간 집중할 수 있을만한 환경이 조성 되었을 때 보시는 쪽을 추천합니다. 엄청 피곤한 얘기니까요. ㅋㅋㅋ
그렇습니다. 잘 봤어요. 끝.
+ 그래서 저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 무엇인지는 시작할 때 자막으로 설명이 나옵니다. 그냥 나무는 아니고 무화과 얘긴데 번역은 걍 '나무'라고 하는 게 더 폼이 날 것 같았을까요. 아무튼 감독님의 소망을 담은 제목이라 할 수 있겠구요.
++ 애초에 내용이 이렇다 보니 영화를 촬영할 때 시내 장면들 같은 경우엔 몰래몰래, 사람들을 속여가며 촬영했다고 하더군요. 공개 후엔 약속된 '너님 구속!' 크리가 날아 왔고, 그래서 현재 감독님은 고국을 등지고 프랑스에 살고 계시답니다. 비슷한 테크를 탄 능력자 이란 감독, 배우들만 모아서 영화 만들어도 좋겠단 생각을(...)
+++ 스포일러 구간... 인데 런닝 타임이 이 모양이다 보니 아주 대충 요약합니다.
그래서 아빠는 처음엔 상부의 부당한 지시에 저항도 해 보고, 호소도 해 보고 합니다만. 그러다 진급이 멀어짐은 물론 배신자로 찍혀서 아예 쫓겨날 수도 있다는 상황 때문에 결국 시키는대로 하게 돼요. 그 업무의 내용인 즉 검찰 측이 마구잡이로 만들어 보내는 사형 구형 서류에 도장을 찍어주는 것이니 결국 사람 죽이는 일에 동참... 이구요. 그래서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아내에게 고통을 호소하기도 하지만. 저 시위대가 무슨 죄냐며 버럭버럭 대드는 딸래미들 앞에선 또 '잘못한 놈들만 벌 받는 거다!' 라며 화를 내고 권위로 찍어 누르고. 이렇게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첫째 딸의 대학생 친구가 시위에 휩쓸려 들어갔다가 얼굴에 샷건(...)을 맞고 쓰러진 걸 딸이 집으로 데려 옵니다. 하지만 어찌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병원 데려가면 시위대라고 구속 당할 거라고 벌벌 떨다 결국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는데요. 애초부터 자유로운 태도의 그 친구가 맘에 안 들었던 엄마지만 그 처참할 꼴을 보고는 결국 정성들여 소독해 가며 산탄 파편들을 꺼내는 정도로 열심히 치료를 해 줘요. 하지만 그러다 죽을지도 모르니 여기 계속 둘 순 없다. 쟤네 부모에게 연락해서 데려가라 해라. 해서 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보내 버리는 엄마구요. 아빠에겐 이건 절대 비밀로 하라 그러죠. 하지만 그 친구가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딸들이 부탁하자 또 본인이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 친구의 행방을 수소문도 해주는, 알고 보면 따뜻한 엄마였습니다...
그 외에도 소소하게 이런저런 말다툼, 가치관 차이로 집안 자식들과 아빠의 사이엔 점점 건너기 어려운 강이 생기구요. 그러다 드디어 중심 사건이 시작됩니다. 아빠의 권총이 사라져요. 직속 상사에게 이걸 보고하자 '너 이거 걸리면 끝장이야!' 라며 일단 그건 비밀로 하고 얼른 찾으란 얘길 듣고요. 아무리 집을 뒤져 보고, 딸들을 마구 몰아 세우며 따져 봐도 답이 나오지 않자 아빠는... 직장 상사의 조언대로 자기랑 같은 일을 하는 프로 심문관에게 딸들은 물론 아내까지(!) 취조를 받게 합니다. 정말 살 떨리게 삭막한 취조를 받고 난 딸들은 더욱 더 아빠에게 마음이 멀어지고. 딸들만 취조 받는 거라 생각하고 데리고 갔다가 난데 없이 본인까지 취조를 받은 아내의 마음도 크게 흔들립니다. 설마 남편이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거죠.
그동안의 상황을 볼 때 이게 큰 딸의 소행일 거라 확신한 아빠는 계속해서 큰 딸을 어르고 달래고 몰아 세우고 난리를 치지만 큰 딸은 정말 세상 억울하다는 반응만 보이구요. 그러다가... 청천벽력이 떨어집니다. 아빠의 이름과 사진, 신분과 그동안의 행적들까지 아주 상세하게 탈탈 털려서 온라인에 올라와 버린 거죠. 당연히 테러의 표적이 될 수 있게 되어서 극심한 압박감과 공포에 시달리던 아빠는 땀을 뻘뻘 흘리며 번뇌하다가... 아내와 딸 둘을 모두 데리고 아무도 찾을 길 없는 시골 외딴 곳의 낡아 빠진 집으로 떠나요. 그곳에 가서 안전도 도모하고 가족 간의 화합도 회복하자꾸나! 라며 길을 서두르지만 그 와중에 편의점에서 자기 얼굴 알아 보는 사람들을 마주치는 바람에 매우 긴장되고 폭력적인 장면이 한 번 나오구요. 그 과정에서 갑작스레 진실이 밝혀집니다. 총을 숨긴 건 막내 딸이었구요. 이유는 설명하지 않고 암튼 아빠 차에 숨겨 놓고 계속 시치미를 떼요. 그리고 잠시 후 도착한 그 집에서 아빠는...
어차피 이 셋 중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 니들끼리 얘기해서 끝을 보라며, 이게 마지막 기회라면서 아내와 딸 둘을 한 방에 가둬 두고 나가 버립니다. 아직도 사태 수습의 희망을 버리지 않은 엄마는 딸들을 설득해 보려 하나 야속한 딸들은 눈치만 보다 입을 다물고. 결국 엄마는 그럼 자기가 다 뒤집어 쓰겠다며 남편에게 자기가 총을 훔쳤다고 말하네요. 그러자 남편은... 취조할 때 쓰는 캠코더를 설치해 놓고 그 앞 의자에 앉아서 말을 하라고 시킵니다(...) 사실 엄마는 자기가 그렇게 얘기 하면 그래도 남편이 자길 사랑하니 설마 이쯤에서 난리 그만 떨고 집에 돌아가겠거니 했던 건데. 그딴 거 없이 오히려 자기까지 죄인 취급을 하자 엄마는 더욱 충격을 받고 남편에 대한 믿음과 사랑도 흔들리게 되고... 암튼 그래서 자긴 절대로 그 의자에 앉지 않겠다고 울며 우기는 엄마. 화내고 자기 말 들으라고 겁박하는 아빠. 그 꼴을 보다 못해 이번엔 첫째 딸이 거짓말에 도전합니다. 그 총 내가 숨겼어 아빠. 아빠 차에 있으니 가지러 가자. 그래서 둘이 차로 갔지만 차에는 이미 총이 없네요? 앙증맞은 막내가 진작에 꺼내다 숨겨 뒀던 것이구요. 분노 폭발 모드의 아빠가 돌아왔을 때 막내 딸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더 더 더욱 분노한 아빠는 급기야 아내와 큰 딸을 창문도 없는 감옥 독방처럼 생긴 곳에 가두고 자물쇠를 채워 버린 후 막내 딸을 찾으러 다니지만 못 찾아요. 하지만 춥고 배고프면 지가 어쩔 거야... 하고 농성 모드에 들어가는 아빠.
(이후에도 뭐가 한참 있지만 생략하구요)
그 집 창고에 있던 스피커와 앰프를 이용해서 아빠가 다정했던 시절의 폰 영상 소리를 커다랗게 틀어 놓아 아빠를 유인하는 막내구요. 아빠는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 감정 없다는 듯이 계속 화만 버럭버럭 내며 뛰쳐 나오고. 막내의 함정에 빠져 창고에 감금 되고. 막내는 언니랑 엄마를 구해내서 도망을 치는데... 멀리 갈 수가 없어서 인근의 정말 오래 된 폐허로 가서 숨습니다. 잠시 후 창고 문을 뜯어내고 뛰쳐 나온 아빠가 그 곳으로 따라 오고. 참으로 딱하면서도 비정하고 끔찍한 숨바꼭질이 이어지다가... 아빠가 잡은 건 아내였구요. 아내의 머리채를 질질 잡아 끌며 딸래미들에게 투항을 요구하지만 막내딸은 권총을 들고 나와서 엄마 놓고 저리 꺼지라고 외쳐요. 하지만 니가 날 쏠 거야? 니가 쏜다고?? 이러면서 험악하게 거침 없이 다가오는 아빠. 막내는 한참 망설이다가 아빠의 발 밑 땅을 쏘는데, 여기가 폐허라고 그랬잖아요. 그 충격으로 발 밑의 바닥이 무너져 내리며 아빠는 땅 속에 처박혀 위풍당당 반지가 끼워진 손 하나만 내밀고 사망. 엄마와 딸들은 부둥켜 안고 기뻐하며 슬퍼하고...
화면이 바뀌며 실제 이란의 히잡 시위 영상들이 하나 하나 보여지는데 이번엔 뭔가 아름답고 희망차고 힘찬 느낌의 영상들이에요. 그런 영상 몇 개를 보여주다 암전입니다.
+ 덤으로. 저 막내 딸 캐릭터가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게... 첫째나 막내나 사실 뭘 많이 알고 제대로 판단하고 사고하는 캐릭터는 아니거든요. 특히 첫째는 대학생인데도 생각 자체는 많이 어리면서... 동시에 엄마 아빠가 그동안 가르친 가치관이 이미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서 그렇게 끝까지 저항하지는 못하는 모습을 자꾸 보여요.
근데 이 막내딸 놈은 뭐 딱히 불만이나 비판을 드러낸 적도 없으면서 대뜸 아빠 권총을 숨기고. 거기에 대한 이유도 거의 마지막까지 설명을 안 하고. 아빠가 아직 이성의 끈을 붙들고 착한 아빠인 척 하며 설득할 때도 뻔뻔하게 잡아 떼서 일을 키우고... 거의 빌런 같은 짓들을 하는데. 결국엔 막내의 감(?)대로 아빠는 뼛속까지 이란 사회 가치관을 내면화한, 나쁜 아빠이자 남편이었고 그러니 막내가 옳았던 거죠? ㅋㅋ 게다가 마지막에 홀로 활약해서 엄마랑 언니를 구해내는 것도 막내구요.
그러니까 혹시 감독님은 이 막내를 통해 굳이 뭘 배우고 그러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이란 사회가 잘못됐다는 걸 느끼는. 그리고 능동적으로, 이전 세대들은 상상도 못했을 저항을 실천에 옮기는 뭐 그런 젊은 세대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만. 아니면 말구요. ㅋㅋㅋㅋ
영화가 감동적인 만큼 제작진들의 후일담이 궁금해지는 영화라 찾아보았습니다. 감독과 젊은 주연 여배우들은 무사히 이란을 빠져나왔다고 하고요. 십대여야 할 이 여배우들을 캐스팅할 때 일부러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을 골라 섭외했다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 공개 이후의 위험을 고려했을 때 자신의 일신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연령대의 사람에게 역을 맡겨야 했다고요. 영화 내용에도 나오지만 이란 여자들은 공공 장소에선 머리 수건을 반드시 써야 하는데, 가족들만 있다는 설정인 집안 장면에서는 머리 수건을 벗은 모습으로 촬영했거든요. 실제로는 촬영기사나 스크립터도 있는 공공장소인 영화 촬영장에서 머리를 드러내고 있었다는게 알려지면 이 분들도 법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영화 내용이 이런 법에 대해 비판적인 걸 따지기도 전에요.
아 배우들 캐스팅에 또 그런 비화가 있었군요. 그렇네요. 10대들에겐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될 테니까요. 머리를 드러낸 것만으로도 처벌 같은 부분은 상상을 못 했어요. 대체 어떻게 견디며 살고 있을까요. 정작 사회 지도층 자식들은 해외 나가서 프리하게 잘 살고 있다는데 말입니다. 참 해도 해도 너무한 나라 같아요. ㅠㅜ
간혹 팔레비 왕조 시절 이란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오지요. 이런 게시글을 볼 때마다 그냥 그대로 계속 갔었으면 굉장히 좋은 영화나-문학 작품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가끔 생각합니다.
전 그런 걸 본 적이 없어서 검색해 보니 쇼킹하네요. 동시대 한국 여성들 대비 완전 세련되고 잘 나가는 이란 여성들 일상 사진이 막 나와요. 뭐 결국 그 왕조가 잘못해서 이 모양 이 꼴을 소환하게 된 것이라지만 암튼 그런 시절을 누렸던 여성들 입장에선 요즘이 더 힘들겠단 생각이 듭니다. 허허...
밑에 언급된 '페르세폴리스'를 보면 그 왕조가 끝났을 때 이란 국민들이 드디어 봄날이 오겠구나 하고 희망을 가졌다가 훨씬 더 암울한 세상에서 사는 현재가 참 안타깝습니다.
이란의 거장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내한해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하고 마스터클래스도 진행한답니다.
이 분 영화는 초기작들 몇 편 밖에 본 게 없어요. 이번 기회(?)로 근래에 만든 영화들도 한 번 보고 싶어졌는데 볼 수 있는 곳을 찾아봐야겠네요. ㅋㅋ 말씀 감사합니다!
후반만 요약해도 긴(..) 작품 내용과 감상은 너무 잘 써주셔서 거의 동감이구요. 저는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를 시작으로 이란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정말 접하면 접할수록 답답하고 깝깝하고 암울하고 답이 없구나 싶은 나라입니다.
내란수괴 치하 정권의 망해가는 조국을 보면서 거의 자포자기 수준으로 살았지만 그래도 우리보다 더 바닥이 있구나 이런 생각도 하구요. 물론 그 밑에는 지금 당장 폭격이 오가는 분쟁지역도 있겠죠.
'성스러운 거미'의 두 주연배우님들도 그렇고 일찌감치 유럽으로 피신한 골쉬프테 파라하니 배우, 자파르 파나히 감독님 등의 사정을 보면 기껏 자국의 문화성을 빛낼 훌륭한 인재들을 낳아놓고도 다 쫓아내버리는 꼴이 얼마나 웃픈지 모르겠어요. 그 탄압을 받는 와중에도 파나히 감독님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후계자에서 세미 다큐멘터리 감독 겸 주연배우로 변신하여 그래도 어떻게든 이란에 남아서 게릴라로 영화를 찍어가며 결국 올해 칸 황금종려상까지 수상하는 끈기를 보면 존경스럽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조국은 조국이라는 것 같아요. 참...
이번에 이스라엘이랑 치고 받고 할 때, 이스라엘이 하도 상상 초월 진상을 부리니 이란이 이겼으면 좋겠다... 하다가도 이런 나라 꼬라지를 생각하니 그런 생각도 못 하겠더라구요. 말씀대로 한국 사람인 게 다행이라고 안도 & 만족(?)하게 되는 효과도 있었구요. ㅋㅋ
그렇게 훌륭한 사람들이지만 그 능력으로 자기들을 공격하니 쫓아내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하겠죠. 다 그렇듯이 이란 높으신 양반들이 나라 생각을 할 리도 없고 본인들만 편하면 되는 거니까.
최근에야 이란 감독들 수난사를 알게 되어서 저도 파나히 감독이 참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안 쫓겨 나면서도 하고픈 얘기는 꾸준히 만들어내는 그 의지와 능력이 놀라워요. 하하;
그게 별로 나아지고 있지 않은 것 같더라구요. 영화의 소재가 되는 '히잡 시위' 사건처럼 국민들이 들고 일어난 사건도 있긴 한데 그 결말이 시위대에게 샷건 발사(...)에 체포, 감옥, 사형 등등이니까요. 그래도 영화의 결말처럼 희망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끝난 건 아니겠죠.
저도 예전처럼 오랫 동안 집중해서 달리는 건 못 하게 된지 오래인데요. 어쩌면 다른 취미도 좀 찾아 보라는 몸의 계시(?)인 것 같기도 합니다. ㅋㅋ 몸 쓰는 취미를 좀 가져보면 좋을 것 같은데 반백년을 지켜 온 게으름 때문에 쉽지가 않네요...
사실 우리야 뭐 우리 나라 걱정만 하기도 벅찬 보통 사람들이니까요. 일부러 뉴스도 덜 보며 살고 있는데... ㅋㅋ
감사합니다. 그리고 문득 쏘맥님의 찜 리스트가 궁금해지네요. 사실 저만큼 쌓아놓고 살고 계신 건 아닌지!!? ㅋㅋㅋ
잘 읽었습니다. 옛날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가 떠오르기도 하고 그렇네요. 지금 Btv+에서 무료로 볼 수는 있네요. 나중에 챙겨봐야 겠네요… :DAIN_
제가 그 유명한 페르세폴리스를 안 본 사람입니다만. ㅋㅋ 언급해주시니 기억이 되살아나서 이제라도 한 번 봐야 하나 싶네요.
이런 돈 안 될 영화들을 요즘엔 '다양성 영화'라고 카테고리 붙이고 상당히 높은 확률로 무료로 해주더라구요. 뭐 좋은 일... 이겠죠? 하하.
저는 어째 보게 되는 이란 영화들이 거의 다 이런 소재, 이런 분위기들이라서요. 혹시 '그냥 재밌는' 이란 영화들이 국내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이 있을까요? 이 동네 사람들은 대중 영화 같은 건 대체 어떻게 만들고 사는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물론 키아로스타미 감독 작품들이 재밌긴 한데 '그냥 재밌는' 쪽은 아니니까... ㅋㅋ
추천해주신 '노 베어스'는 유료 vod로만 있는 것 같은데, 이 영화 보고 삘 받은(?) 김에 조만간 결제해서라도 한 번 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페르시아 거대한 문화제국의 현재 민낯. 항상 고통받는 여성들, 그럼에도 믿을 건 젊은 여성들이죠, 네...
영화의 메시지를 굉장히 함축적으로 멋지게 요약해주신 것 같아요. 결국 고통 받는 건 여성, 믿을 것도 여성들. 그리고 현 체제에 적응 & 순응해서 살고 있는 기성 세대 여성들에게도 각성을 촉구하는 듯 했구요. 어차피 여러분들 처지도 전혀 다르지 않아요... 라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