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중순의 책과 잡담

어제는 걷다가 이제 가을 맞는가...라고 공중에 대고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설레발치다가 지구가 다시 버럭할까봐.

나날이 길어지는 여름 더위와 스콜을 연상시키는 비가 한반도는 확실히 동남아시아 기후가 되어 가는 거 같습니다. 

짧은 가을을 하루하루 느끼며 보내고 싶네요.

다행스럽게 책은 계속 사고 싶어서 어제도 도착했습니다. 다행이라는 건 사고 싶은 책이 있다는 게 느리나마 책을 보고 있어서 꼬리를 물고 다른 책이 등장한다는 뜻이고 그리고 모든 게 심드렁한 상태는 아니라는 뜻이기도 해서요. 방바닥에 쌓인 책 무더기들을 꽂아놓을 책장이 필요한데, 창쪽으로 놓고 싶어서 키가 낮으면 좋겠네요. 여기에 더해서 이동이 가능한 책장이면 더 좋겠지만 그런 게 있을라나.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최근에 읽었습니다. 

1927년에 출간된 책인데요, 제가 미처 못 알아본 고전이었습니다. 작가 손턴 와일더는 미국인이지만 소설의 배경이 페루입니다. 1928년, 이 책에 상을 주기 위해 퓰리처상의 수상 기준을 미묘하게 수정했다는 후문이 따르는 책입니다. 

1714년에 페루의 리마와 쿠스코 사이에 있던 다리가 무너지면서 다섯 사람이 죽습니다. 이들의 죽음은 우연인가, 신의 의도인가. 그 질문이 인물들 사연 앞뒤에 붙어 있고 중간에 세 파트로 사연 그러니까 죽은 사람들의 삶을 소개합니다. 마지막에 이들을 잘 알고 있던 원장수녀가 깨닫는 바 내용을 말합니다만 유일한 답이자 미약한 소망으로 느껴집니다. 그런 답은 짐작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 소설이 주는 감동과 부피감은 중간에 자리한 인물들의 삶으로 인한 것입니다. 인물들 한 명 한 명이 한없이 크게 느껴집니다.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생기면 온갖 답안이 전면에 내걸리고 시끄러운 반면 인물들 한 명 한 명의 삶은 흐릿하게 처리되고 거품이 꺼지듯 잊혀지는데 소설은 그 반대로 작용합니다.    

아주 단정한 구성으로 오래 전 사람들의 모습을 지척에서 느낄 수 있도록 쓴 작가의 능력이 놀라웠어요. 게다가 이 소설은 손턴 와일더가 서른에 발표했다고 하니 더욱 놀랍습니다. 길이도 짧은 편이라 안 읽으셨다면 추천드립니다. 제가 추천하는 책은 지루할 거라고 생각지 마시고ㅎ 아래 추천자의 면면을 보십시오.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는 감정적으로 격찬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 큰 따옴표 속의 "성경에 비견되는 -"이라는 말은 작가 러셀 뱅크스가 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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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좌반구]는 이제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비판이론의 지도 그리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비판이론'이란 책 속의 소개에 따르면 '총체적인 방식으로 기존 사회질서를 문제삼는 이론'이라고 하는데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좌파 사상에 뿌리를 둔 여러 사상가들이 현재 어느 위치에서 어떤 이론을 제시하고 있는지 좌표를 그리는 것 같아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소련 붕괴 이전까지의 좌파와 구분해서 신좌파, 신비판 이론이라는 말을 씁니다. 기존 좌파와 중요한 변별 지점은 노동자 계급이 중심에 있는, 다수에 대한 경제적 문제만이 아니고 다양한 문화적 차원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성, 인종, 페미니즘 등 다양한 소수자에 대한 '정체성' 개념을 가져오고 있었어요.

이렇게 앞 부분 복기하며 쓰고 있자니 제법 이해를 술술하며 읽고 있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용어도 그렇고 세부적인 부분은 잘 모르는 게 더 많고 짐작으로 넘어가는 게 많습니다. 앞 부분일 뿐인데 말입니다. 사상을 지도 그리는 식으로 소개하는 정도라 어렵지 않다는 말이 있어서 문학 외의 책을 보고 싶을 때 보려고 샀습니다.(책장에 오래 머물고 있는 문학 외의 책들이 내려다 보며 어이없어 하네요) 막힐 때는 예상했던 어려움이라 그냥 넘어가면서 읽어 보려고 합니다. 다른 이들의 소개에 의하면 이 책을 읽다가  자신이 더 알고 싶은 사상가 저자의 책을 만나게 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효용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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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책들은 루시 바턴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하는 연작 소설 세 권입니다. 올리브가 주인공인 작품 세계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는 거 같아요. 루시가 올리브와 친구라던가? 얼마 전에 쏘맥 님의 추천으로 시리즈물 '올리브 키터리지'를 보고나서 이 작가의 소설을 더 읽어 보겠다는 마음이 불끈해서 사들였네요. 책 한 권이 귀퉁이 두 곳이 찌그러져 와서 마음이가 안 좋네요. 하드커버가 충분히 하드하지 않으면 오히려 찌그러지기 쉬운 것 같아요. 


드라마 '올리브 키터리지' 역시 좋았습니다. 소설에서 주변 인물들 파트는 다 들어내고 올리브 이야기 부분만 집중해서 만들었더군요. 그러니 인물 특성과 인생 굴곡이 더욱 선명하게 표현되었어요. 저에게 올리브적인 면이 있어서 이만하면 훌륭한 사람이야라는 쪽으로 기웁니다. 저는 얼핏보면 모르고 자세히 볼수록 올리브적이랄까요. 아무나에게 대놓고 저렇게 하진 않아서 먼 지인은 모르고 가까운 사람들만 알지만요. 

제가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인, 올리브가 헨리에게 당신은 괴물같은 여자와 결혼하게 되고 평생 약국 카운터를 지키다가 병이 와서 눕게 되고....이 독백이 책에서는 헨리 죽음 이후에 사진 정리 중에 나오는데 드라마에서는 병실에서 헨리 곁에 누워 말하더군요.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중얼거리는 대사로 들으니 좋았네요. 쿠팡에 있는 시리즈 저도 추천드립니다. 이 드라마의 프랜시스 맥도먼드 연기를 안 보시면 자기만 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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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은 거의 안 삽니다. 오래 전에는 사 보고 좋아했던 시인들도 있었는데 인내심이 없어졌는지 여유가 없어졌는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시에 관심이 멀어졌어요.(시를 읽어야 사람이 된다는데...)

그런데 몇 년 전에 심보선의 산문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를 읽었고 이후에 이분 시집을 한 권 사봤고 최근에 또 책이 나왔길래 샀습니다.

시집의 제목은 [네가 봄에 써야지 속으로 생각했던]이네요. 아직 읽기 전이라 이 시집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어요. 집에서는 안 읽게 되네요. 외출할 때 들고 나가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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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브에 올라온 '화성특급'을 보았습니다. 

프랑스에서 만든 최근 애니메이션인데 어디선가 들은 영화라 클릭해서 봤어요. 화성에 사람과 로봇이 사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미래 시간이 배경이고 탐정과 조수가 주인공입니다. 미국이나 일본 쪽 보다 그림도 내용도 쿨하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건조하기도 하지만 이게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는데 내용 전개가 현실적인 느낌이 있었습니다. 평소 잘 안 보는 sf 애니메이션이라 낯설고 신선하여 그런지 괜찮게 보았어요. 하지만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 괜찮게 보았다는 감상 이상을 쓰기가 어렵네요. 사실 내용 파악도 빨리 안 되어서 되돌려 보곤 했습니다.ㅎ 봄에 개봉했었나 본데 평이 좋으니 극장에서 놓치셨으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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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전기 요금을 보며 '아, 이젠 놀라지도 않는구나'라며 이 요금과 이 날씨에 강제로 적응당해 버린 현실을 개탄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에어컨이 필요 없는 날씨가 되어 버리다니 참 다이나믹하기도 하죠. 이러다 또 반짝 하고 더운 시기가 한 번은 올 것 같으니 방심은 하지 않으려구요. ㅋㅋ




      손턴 와일더라니 얼마 전에 적었던 히치콕 '의혹의 그림자' 쓰신 분이잖아요! 책 설명도 흥미롭게 해주셔서 일단 찜을... 하지만 아시다시피 제 게으름은(...)




      '화성특급' 저게 프랑스 애니메이션이었군요. 전 OTT의 썸네일만 봐서 당연히 일본 애니메이션일 줄 알았는데 올려주신 큰 이미지를 보니 확실히 그쪽 느낌이 나네요. 이것도 찜 해두고... 먼저 찜할 책보다는 분명히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ㅋㅋ 소개 감사해요.

      • '의혹의 그림자' 각본에 참여하셨군요. 손턴 와일더의 번역된 책이 이 소설과 희곡 하나 뿐이에요. 소설이 짧으면서 묵직한 느낌이었어요. 읽으신다면 보람이 돌아오지 않을까 합니다. 인물들 이야기가 본격 펼쳐지면 너무 생생하고 여운이 남고, 계절과도 어울리네요.ㅎ


        '화성특급'은 저보다 아주 풍부하게 보실 거고, 역시 추천드릴게요.

    • thoma님 추천 책의 제목과 작가를 메모장에 옮겨 놓다가 어느 순간 포기했습니다. 하염없이 늘어만 가는 목록을 보면 더 포기할 거 같아서요ㅋㅋㅋㅜㅜ

      그치만 이번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책 꼭 봐야겠어요. 드라마도 좋았는데 책은 더 좋다니 그저 봐야죠. 드라마도 잘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가을이라 좋은데, 비염이 도져서 아침에 왕 재채기를 연거푸 해요. 그래도 가을은 좋습니다. 하루하루 잘 누려야겠어요!!
      • 스트라우트 책 꼭 챙겨 보셔요. 도서관에도 다 있을 겁니다. 화제작, 인기작인 거 같더라고요. 드라마에 나온 메인 주의 쓸슬한 분위기를 떠올리시면 더 즐기실 수 있을 거 같아요. 드라마를 보셨으니 다음 내용으로 이어지는 '다시, 올리브'로 시작하셔도 될 거 같아요. 


        그리고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좋아하실 거 같아서 추천드립니다. 길이도 길지 않고요. 

    •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보셨군요. 저는 엉뚱하게도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원저자인 데이비드 미첼의 동명 소설을 본 후, 이 작가가 맘에
      들어서 찾은 그의 다른 소설인 유령이 쓴 책의 원서 앞머리에
      손튼 와일더 인용구가 있는데 그게 궁금해서 와일더를 읽게 되었습니다. “……Some say that we
      shall never know, and that to the gods we are like the flies that the boys kill
      on a summer's day, and some say, to the contrary, that the very sparrows do not
      lose a feather that has not been brushed away by the finger of God.”
      제가 이
      책을 찾을 무렵엔 옛 번역본은 절판이고 얄팍한 원서가 가격도 합리적이라 구입했는데, 받고 보니 분량은
      중편 소설에 가까운 것 같아요. 와일더는 우리 읍내희곡이 너무 유명해서 소설은 뭐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비교적 짧은 분량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내용이 탄탄해서 감탄했습니다.

      • 평론가 신형철이 예전에 인생(에 대한)책,이라며 신문에 소개한 책들이 있었는데 이 책이 그 중 한 권이라 제목은 들었습니다만 소개된 책들 중 시바타 쇼의 책이 큰 감흥이 없어서 이 책도 잊고 있었어요. 얼마 전에 새로 출간된 걸 알게 되어 읽었는데 이 책은 명불허전이란 말이 맞구나 싶어요. 




        데이비드 미첼의 책은 읽은 게 없어요. 번역된 책이 여러 권 있네요. 저는 [야코프의 천 번의 가을]은 몇 년 전에 좋은 평을 듣고 찜해 놓기만 했어요. [유령이 쓴 책] 비롯 읽은 책들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원서로 읽으실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부러워요...

    • 가을이 오고 있는데 아직 습하네요. 제습기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책 읽으시는 걸 보니 눈이 좋아지셨나 봐요. 화성특급 끌립니다!
      • 비문증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닌데 피로하고 찝찝한 느낌이 덜해졌습니다. 안경을 다시 맞춰서 그런 것 같아요. 책 읽고자 하지만 책 읽기가 참 고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화성특급은 하드보일드 느낌이 있고 막 과장하거나 분위기 잡는 건 없어서 저는 괜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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