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책 잡담
책을 또 많이 샀습니다. 읽고 있지만 읽는 속도는 느려터졌고 사재기 욕심은 끝이 없네요. 막 쌓이고 있네요. 흐뭇합니다. ㅠㅠ.
읽은 책 두 권과 산 책 소개합니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소설의 세부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와 세 번째로 만난 책입니다.
이번 책은 직업이 작가인 루시 바턴이라는 인물이 화자이자 주인공입니다. 루시는 척박한 시골 동네에서 자랐는데 그 동네에서도 극빈한 가정의 막내였고 그런 이유로 어린 시절 내내 모멸감과 외로움에 시달립니다. 그런데 단지 가난하기만 했던 것이 아니고 부모가 둔하고 무심한데다가 애들을 때리기도 했고, 문제가 좀 있습니다. 다행히 장학금으로 대학을 가며 그곳을 벗어났어요. 이제 자신의 가정을 가졌으며 갓 작가가 되었는데, 이 즈음에 맹장수술합병증으로 오래 입원을 합니다. 이 입원 기간도 더 나이든 루시에 의해 회상되고 있지만 소원했던 엄마가 난생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와서 병실에서 며칠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 이야기의 주무대가 됩니다. 모녀가 띄엄띄엄 대화를 나누고 그 사이에 루시가 지난 기억을 더듬는 내용이 섞여가며 나오는데 더 나이든 화자(루시)가 그 모든 것을 돌아보며 정돈을 한다고나 할까, 그런 전개입니다. 전체 분량의 삼분의 일 정도의 후반은 퇴원 후와 나이든 현재에 이르는 내용이고요.
소설은 220페이지 정도로 길지 않아요. 호평을 보면 감추면서도 드러냄, 침묵의 울림, 정제된 감정의 충만함 등을 언급합니다. 절제된 느낌이 있는 소설임은 분명한데 그것이 훌륭하게 느껴졌는가를 생각해 보면 고민이 됩니다. '절제'는 그 안에 상상의 여지와 여운이 풍부하게 펼쳐질 품이 있어야 의미가 있을 것인데, 잘 모르겠어요. 어쩐지 파헤치는 것을 절제했다기 보다, 정면으로 제대로 파고들지 못한 것은 아닌가라는 느낌이 남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면, 어릴 때 루시는 트럭에 갖혀 있곤 합니다. 부모가 일 해야 하고 오빠와 언니는 학교에 갔으니 어린애 혼자 집에 그냥 둘 수 없어서 그랬을 거라고 성인이 된 화자는 짐작합니다. 트럭에서 울다가 지치고 해질 무렵에 다시 울고 있으면 아빠가 꺼내 주었다고. 심지어 어느 날은 그 트럭에 긴 갈색 뱀과 '같이 있었다'는('지나갔다'가 아닙니다) 것이고 루시는 이후로 '뱀'이라는 단어에 트라우마가 생깁니다. 뱀이 있어서 어떻게 견뎠나, 뱀이 스스로 트럭 밖으로 나가 주었나, 이러한 다른 정보가 없어요. 이런 일을 겪었는데, 루시 평생을 따라다니는 공포가 아무런 후속 정보 없이 그냥 지나갑니다. 그리고 엄마가 자신의 구체적인 잘못을 기억 못 하거나 안 하려는 태도를 보일 때(눈을 감고 안 뜹니다. 마치 어떤 동물이 그러는 것처럼 자는 척, 죽은 척하며 자기 보호를 하듯이) 루시는 그냥 받아들입니다. 사려 깊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과 타인의 기억이 동일하다고 단정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루시는 엄마가 어떤 기억을 지니고 있었는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은 인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 망신거리가 되었을 때 그 사람의 실수를 덮어주어야 한다'라며 엄마를 밀어붙이지 않습니다. 루시 스스로도 망신거리가 되었음을 인식하는 순간이 많았음을 떠올리면서요.
정보가 제한적이라고 느낀 부분이 여러 번 나오는데 스트라우트가 이 소설 시작하면서 애초부터 후속작을 내고 시리즈를 만들려는 계획이 있었을까 생각했네요. 실제로 이 세계와 인물들로 세 권의 작품이 더 나와 있습니다. 그러거나 어쨌거나 한 작품은 그 자체로 완결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좋은 부분도 있었고 잘 읽긴 했으나 다른 호평만큼의 만족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소설 속에 루시가 만난 기성 작가가 한 명 등장하는데 이 작가에 대해 루시가 느낀 것이 저의 느낌과 비슷합니다. 다음과 같이 쓰고 있거든요. '나는 그녀가 쓴 책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녀가 뭔가를 비켜서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인간의 감정과 관계에 대한 표현력이 섬세하고, 쓴 맛을 포함한 이야기 능력을 가진 작가임은 맞는 것 같은데... 후속작들을 더 읽어 보겠습니다. 이미 사 둔 루시의 남편 윌리엄이 주인공인 듯한 '오, 윌리엄!'과 루시 고향 동네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무엇이든 가능하다'가 기다리고 있네요.

[아르테미스]
[마션]과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예전에 읽었을 때도 둘 다 읽는 동안 무척 즐거웠습니다. 앤디 위어라는 작가의 능력에 이번에도 감탄을. 어릴 때부터 sf를 탐독한 컴퓨터공학 전공자라는데 매 작품마다 (아마도 개인 기질일 듯한)낙천과 유머가 가득해서 sf 계의 스타작가라 해도 기꺼이 인정하고 싶어요. 후속작 쓰고 계실까요?
과학 지식을 장착한 그리고 끈기 있는 그리고 낙천적인, 무엇보다 도덕적인, 이런 인물들은 내 주변에 없으니 소설 속에서라도 만나야 되지 말입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마션]도 재미있지만 소설이 더 재미있었지요. 이번에 [프로젝트 헤일메리]도 아무리 라이언 고슬링이 주연이라도 책이 판정승일 것이라는 데 겁니다.
[아르테미스]는 남성 주인공이었던 두 작품과 달리 달에 건설된 인공 도시에 사는 젊은 여성 배달원(밀수가 주수입원인...맥주 좋아하는...왈패 같은)이 주인공인데요, 이 인물의 매력에 완전 빠져서 읽었습니다.
3부작 중 이 소설 마저 읽는다는 게 잊고 있었는데 환기시켜 주신 잔인한 오후 님께 감사 드리며. 긴 말은 줄이고 추천 드립니다.

[사탄 탱고]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작가 이름 쓰면서 몇 번 확인했어요. 헝가리여...
이 작가는 한 문장이 한 페이지 이상이라는 소문이 있던 책도 그렇고 작가 사진도 예사롭지 않아서 한 권도 읽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대세를 따라 샀습니다. 다른 책 두 권과 같이 구매했는데 이 책만 빼고 나머지는 도착했어요. 출판사가 공급이 딸리나 봐요. 노벨상의 위력이 크네요. 어려워도 이 기회에 읽겠다는 이들이 생기는 건 두루두루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412페이지라고 하는데요, 벨라 타르 감독은 이 소설로 7시간 넘는 영화를 만들었다니 음...정지 화면이 많을 거라고 추측해 봅니다. '토리노의 말'을 볼 때 그냥 바람 부는 벌판에 멈추어 있던 화면이 기억 나거든요.ㅎ 영화는 보기가 힘들 것이고 책은 씨름을 해 보겠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요. 올해가 2.5개월 남았음을 알립니다.

[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요코.
관심이 갔던 작가였는데 개정판이 나오기도 하고 이분 책 중에선 접근이 쉬운 책이 아닐까 해서 골랐습니다. 와세다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는데 왜 함부르크 대학으로 가서 독문학 석사를 그러고는 취리히 대로 가서 박사를 받았는지요. 아무튼 그러하다고 합니다. 뭔 일이래...
독일어와 일본어로 병행해서 책을 쓰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언어와 사고의 관계, 언어가 달라지면 인식도 달라지고 사고도 확장되고...그런 깨달음들이 에세이와 소설에 담기는 것 같아요.

산 책이 더 있지만 다음에 읽고 소개드리고, 줄입니다.
연휴가 끝나가는 저녁입니다. 제가 있는 곳은 오늘 종일 바람 불고 비도 곁들여 흩뿌리는 날씨였네요. 벌써 어둑어둑합니다.
재밌는 일 하시면서 맛 있는 거 드시는 저녁이 되시길 바랍니다!
글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저희 어머니는 여든이 넘으셨어요. 오늘도 자는데 제가 발로 찬 이불을
원래대로 덮어주시더군요.
[마션]은 원작이 훨씬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프로젝트 헤일메리]도 영화로만 봐야겠네요.
라이언 고슬링이 1980년 생이어요! [드라이브]를 만든 니콜라스 빈딩 레픈의 [온리 갓 포기브스] (2013)에도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테국 부패경찰에게 영화 내내 흠씻 맞기만 해요. 한대도 못 때렸을 거여요>_<
벨라 타르가 '롱테이크'로 유명해졌잖아요 :) [사탄 탱고]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보았어요. 4부로 나누어서 상영했어요.
입장료도 따로 받았을 거여요ㅎ 오후 한시에 시작해서 축 늘어져있는데 이동진의 강연도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ㅠ.ㅠ 강연이 먼저 있었는지 가물가물 하네요.
어머니께서 건강하시길. 저의 엄마는 아프신 데가 많아요...
라이언 고슬링은 점점 좋아지는 배우입니다. 내년 봄에 개봉한다죠. 2026년이라 해서 까마득했는데 얼마 안 남았네요. 산드라 휠러도 나온다고 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드라이브는 좋아했지만 온리 갓 포기브스는 평이 안 좋아 넘어갔는데 맞기도 많이 맞았군요.ㅎ
말씀대로 큰 그림을 그리고 일부러 첫 작품에서는 좀 답답하게 그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드네요. 언급해주신 극중 작가에 대한 평가 같은 게 그런 암시일 수도 있겠구요. 하지만 역시 말씀대로 저도 한 작품에서 보여줘야 할 건 다 보여주는 걸 좋아하는 편입니다. ㅋㅋ 작가님들 너무 큰 그림은 자제요... ㅠㅜ
마지막에 언어 능력 관련 얘길 하시니 듀게 유저 한 분이 떠오르네요. 국어, 한글 관련해서 남다르게 해박한 지식으로 재미난 글 종종 써주셨던 분이었는데 나중에 언론 타신 걸 보니 외국어를 거의 열 개였나... (하도 오래 전이라 기억이 안 납니다. ㅠㅜ) 그것도 거의 유창한 수준으로 하는 분이었던. 닉네임은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게시판 검색 기능도 망했고 아마 그 분이 활동 멈추신 후로 게시판 서버를 이전해서 글들이 안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뭐 잘 지내시겠죠...
만약 처음부터 이 세계를 상황과 인물을 달리해서 여러 권의 책으로 계획했다고 해도 저처럼 뭔가 미진한 느낌을 가지지 않도록 독자를 잘 속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족 문제는 파고들어 봐야 모두가 손상을 입는다는 점도 있지만 주인공의 마음에 남은 게 있다면 풀어내는 일이 필요한 것 같아요. 아마 막내인 자신만 거기를 빠져나와 뉴욕에서 잘 산다는 마음의 짐도 있나 봅니다.
저도 글을 자주 올린 건 몇 년 전부터이지만 눈팅은 수십 년 전부터라 그 옛날 듀게에 능력자 분들이 무척 많았음을 알지요. 말씀하시는 분은 누군지 안 떠오르는데, 즐겨 읽었던 글 올리시던 분 중에 돌아가신 분도 한 분 기억나고 외국에 계시던 분 글도 생각이 납니다. 저는 특히 장르 책들 정보를 듀게에서 많이 얻은 거 같아요.
이승우 작가님 북토크에 간적있었는데 최근 읽고 계신 책을 물어봤어요
<사탄탱고>와 <이달의 이웃비>를 꼽으시더라구요
<사탄탱고>를 아주 재미있게 읽고 계시단 얘기에 바로 구입했지만 한장도 펼쳐보지 않았어요.....;;;;;
제목만 듣고 종교적인 책인가 하고 말았던 기억이...
이승우 작가님 책 좋아하시나 봅니다. 저는 오래 전에 한 권 읽었어요. 이분 정도로 긴 시간 계속 작품을 내는 작가도 드문 거 같아서 더 존중 받을 만한 것 같아요.
사탄탱고는 아직도 도착을 안 하네요. 작가께서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저도 어떻게든 완독을 목표로 해야겠습니다.
네 이승우작가님 책 좋아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의 단편집을 보고 반하게 되었지요....
작가들의 시선으로 보는책은 대체 무엇인가 해서 북토크에서 추천책들을 몇권 샀는데...
성해나 작가님 북토크에서 <전태일평전>이 학창시절을 잡아준 책이라그래서 신기했던 기억이...
성해나 작가는 팟캐스트에서 박정민 배우가 추천을 강력하게 한 젊은 작가라 알게 되었어요. 저는 읽지 않은 작가이지만 저역시 전태일 평전을 젊을 때 읽고 감동을 받았던 터라 친밀감이 느껴지네요.
아 저도 읽어봐야겠네요... 배우 조현철의 삼촌이 썼다고 하시면서 추천하더라구요....
북토크 끝나고 집에 가는길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산 기억만 있어요..ㅋ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이름이 낯익어서 찾아보니 7년 전에 읽었더라구요. 그런데 하나도 기억도 안나고, 기록도 난해해서 뭔 말인지도 모르겠어서 당혹했네요. thoma 님의 글을 읽으면서 상기시켜보려해도 손에 잡히는게 하나 없고. 이렇게까지 잊어간다는게. 당시의 저는 그게 3권 중 한 권인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옛 글에 이 구절을 인용하고 있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상상해봅니다.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절대 알지 못하며, 앞으로도 절대 알 수 없을 것임을.'
아르테미스, 읽으셨군요. 저번에 댓글을 너무 대충 읽고 단 게 부끄러워서 종일 생각이 떠나질 않더라구요. 오랜만에 그런 상황에 빠져서 자신이 좀 웃기기도 했습니다 ㅋㅋ. 저도 주인공 매력이 좋았던 기억이 은은하게 남아 있네요. 고증을 위해 아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도 있던가 싶고.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