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시작 전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
원제가 간단히 [Lee]인 영화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리 밀러의 전기 영화입니다. 그 당시 성차별 등 온갖 난관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활동했던 여성 인물의 관점을 통해 익숙한 역사적 소재들을 들여다 보는 것 자체는 흥미롭긴 한데, 전반적으로 좀 평탄한 인상을 주는 게 아쉽더군요. 참고로 케이트 윈슬렛을 비롯한 출연배우들이 보는 재미가 있는 편인데, 윈슬렛이 노에미 메를랑과 마리옹 코티야르와 나란히 화면에 나오는 것도 좋지만 주로 코미디 영화들로 알려져 온 앤디 샘버그의 진지한 연기도 더 눈이 띠는 편입니다. (**1/2)

[홍이]
윤가은의 첫 장편 영화 [우리들]의 제작에 참여한 황슬기의 장편 영화 데뷔작 [홍이]를 보면 김세인의 장편 영화 데뷔작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와 비교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양 쪽 다 비호감 모녀의 문제 많은 관계를 다루고 있는 가운데 심지어 후자의 조연 배우인 이유경을 유사한 역을 맡게 했잖습니까. 하여튼 간에 후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순한 맛인긴 하지만, 올해 또 다른 인상적인 데뷔작인 건 분명합니다. (***)

[올 오브 유]
얼마 전 애플 TV 플러스에 올라온 [올 오브 유]는 아주 익숙한 유형의 멜로드라마입니다. 소울메이트 확정 기술이 나온 근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그냥 가까운 친구로 지낸 남녀 주인공이 소울메이트 테스트 이후로 서로와 멀어진 싶은 듯 하지만, 당연히 곧 그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서로와 엮이게 되지요. 전체적으로 뻔하긴 하지만, 잔잔하게 감정선을 잘 잡은 가운데 두 주연 배우 간의 연기 호흡도 좋으니 살짝 추천하겠습니다. (***)

[미러 넘버 3]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신작 [미러 넘버 3]은 꽤 날렵한 소품이었습니다. 척 봐도 두 주인공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뻔하지만, 영화는 짧은 상영 시간 동안 담담하게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섬세한 심리극을 유도하지요. 페촐트의 다른 전작들에 비해 많이 가벼운 편이지만, 이 정도만 해도 괜찮은 편입니다. (***)

[그저 사고였을 뿐]
올해 깐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자파르 파나히의 신작 [그저 사고였을 뿐]은 [죽음과 소녀]와 [고도를 기다리며]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옛날에 자신들을 고문했을 작자였을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주인공들을 갖고 영화는 블랙 코미디와 진지한 복수극 드라마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데, 결과물은 상당히 재미있으면서도 상당한 감정적 힘이 있기도 합니다. 참고로, 본 영화에서는 몇몇 장면들에서 음향이 상당히 중요하니 가급적이면 영화관에서 보시길 바랍니다. (***1/2)

[파르테노페]
파올로 소렌티노의 신작 [파르테노페]의 가장 주목한 점은 평소에 인생의 후반에 접어든 남성들을 주인공으로 하던 소렌티노의 전작들과 달리 한창 젊은 여성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홍상수가 지난 몇 년간 했던 것처럼 소렌티노도 새로운 걸 시도해 보려고 하는 건 이해가 가는데, 유감스럽게도 최종 결과물은 너무 좀 느릿하고 얄팍한 편입니다. 적어도 시각적으로 보기 좋았지만, 이보다 더 잘할 수 있었을 겁니다. (**1/2)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모 블로거 평
“Paul Thomas Anderson’s latest film “One Battle After Another” is a full-throttle political genre mix to captivate and then entertain you in unexpectedly various ways. As he has always done during last three decades since his first feature film “Hard Eight” (1996), Anderson takes another surprising turn for his diverse filmography, and it is quite compelling to observe how ambitiously and brilliantly the movie swings back and forth across many different genre modes while also unabashedly wielding its political ideas on the screen.” (***1/2)

[워킹맨]
데이빗 에이어의 신작 [워킹맨]을 보면서 기시감이 절로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이야기 설정부터 [테이큰]과 [존 윅]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작년에 나온 에이어의 전작 [비키퍼]를 비롯한 수많은 제이슨 스테이섬 액션 영화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지요. 전반적으로 새로울 건 없지만, 시간 때우기 용으로는 나쁘지 않았다는 건 인정하겠습니다. (**1/2)
'CGV압구정 아트하우스'에서 한창호 선생님의 '아트톡' 프로그램으로 영화를 '배웠어요'. 10년 전 쯤 그분이 소렌티노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제 2의 펠리니'라고 불린다네요.
이번 영화에서는 대학교 '구두 시험' 장면이 재미있었어요 :)
크리스티안 페촐트와 자파르 파나히의 신작은 모르고 지나칠뻔 했네요. 감사합니다.
최근에 본 몇몇 작품들 때문에 '그저 사고였을 뿐'에 관심이 가는데요. 이 감독님이 당국의 규제와 탄압을 피해 영화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참 안타까우면서도 경이로운데... 신기한 건 그래서 결국 완성된 작품을 해외에서 검열도 없는 버전으로 공개하면서도 계속 활동을 지속하고 계시다는 거네요. 하나 하나 공개할 때마다 압박감이 엄청날 텐데. 정말 여러모로 존경스러운 사람이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