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연휴 잡담...


 1.오늘은 추석 당일이죠. 명절이고 해서 서울에 가족모임이 있어 찾아온 '커피맨'을 만났어요. '제길, 요즘은 대체휴일에다 징검다리 휴일에 뭐 그렇게 많은지.'라고 투덜거렸어요. '우리가 어렸을 때 이랬다면 좋았을걸. 우린 이제 연휴가 필요 없게 됐는데 말이야.'라고 볼멘소리를 했죠.



 2.다들 그렇겠지만 어렸을 때는 연휴가 좋은 법이예요. 어렸을 때는 매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데, 연휴에는 그러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연휴는 기다려지는 것이긴 했죠. 뭐 그땐 다들 그렇게 살았더랬죠.


 그러나 어른이 되니 연휴는 정말 좋지 않아요. 연휴란 건 무언가를 '안 하는' 날로서 가치가 있는거지 무언가를 하는 날이 아니니까요. 



 3.게다가 어이없게도 이제는 연휴가 맨날 길어요. 그놈의 대체휴일에 징검다리 휴일까지 칼같이 따지기 시작하면서, 추석 연휴는 이제 일주일이 기본이 되어버렸죠. 내가 어렸을 때 그렇게 좀 할것이지...왜 이제와서 이러는지.



 4.휴.



 5.어쨌든 커피맨은 조카 근황도 알려 줬어요. 큰 조카는 일을 몇개월전에 그만두고 놀고 있다고 해요. 그래서 커피맨의 형은 조카가 계속 놀지나 않을지 걱정이라더군요. 조카는 일하는 걸 정말 싫어한다더군요.


 그래서 말했어요. '뭐 이해는 돼. 그 나이엔 일을 하고 싶지 않으니까. 오직 돈을 위해 일을 하는 건,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



 6.남자란 게 그래요. 남자에게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네가 필요하다'라는 한마디거든요. '야! 너 없으면 안돼.'라거나 '너 없이는 회사가 안 돌아가.'같은 말을 들어야 일할 맛이 나는 거예요.


 문제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한 40대는 되어야 그런 말을 듣는다는 거죠. 그쯤이면 슬슬 거의 다 써먹고 잘릴 나이인데, 40대가 되었는데도 자르기는커녕 더 일해달라고 한다는 것...그건 그가 이제 본인의 분야에서 베테랑이 되었다는 거니까요. 그쯤 되면 돈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감과 소속감 때문에 일을 하는 게 너무나 재밌어지죠.


 한데 그렇게 되려면 20대 때부터 그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포텐셜을 개발해야 해요. 그리고 그 기간동안 몹시 힘들죠. 당장은 존중받지도 못하고, 오직 월급을 위해서 회사를 다니고 하기도 싫은 일을 하는 거라고 느낄 수밖에 없어요. 한데 그렇게 만개하려면 열심히 하는 건 기본. 본인에게 재능도 있어야 하고 사람도 잘 만나야 하고 프로젝트 운도 좋아야 하죠. 그렇게 성장하면 돈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죠.



 7.어떻게 보면 백수에게도 사실 돈은 중요하지 않아요. 돈 많은 백수들조차도 '네가 필요하다'라는 한마디를 듣기 위해 사는 거니까요. 아무도 불러 주지 않아서 혼자 있는데, 클럽에서든 술집에서든 연락이 와서 '오빠, 여기 지금 개털들밖에 없어. 오빠가 와서 기강 좀 잡아줘.'라는 영업 멘트에 뛰어나가게 되니까요.


 아니면 인터넷방송 bj에게 '오빠, 오늘 풍이 안 터지는데 오빠가 와서 바람 좀 잡아줘 ㅠㅠ'이라는 문자를 한 통 받으면 그곳에 접속하게 되고요. 일반인들이 보기엔 한심해 보이겠지만 그들 또한 '네가 필요하다'라는 단 한마디가 듣고 싶어서 살아가는 거죠.


 그렇게 달려가서 헛돈을 써 주면 '역시 너밖에 없어.'라는 말 한마디로 보답받는 거거든요. 참 실없는 일이지만 아무 일도 없이 하루가 지나가는 것보다는 그렇게 이용당하고 '너밖에 없어'라는 말 한마디를 듣는 게 외로운 남자들에게는 시름을 잊는 일일 수도 있는거죠. 그렇게 보면 백수들에게도 사실 돈은 '너밖에 없다'라는 말을 듣기 위한 매개물일 뿐인 거예요. 



 8.나는 어떠냐고요? 나도 비슷하긴 해요. 나는 '네가 이겼어'라는 한마디를 듣기 위해 살죠. 어제의 나에게 말이죠.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에게 '네가 이겼어. 네가 더 부자야.'라는 말을 듣고,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네 승리야'라는 말을 계속 듣기 위해서 살아요. 다만 그게 일이 아니라 도박이라는 점이 약간 문제이긴 하지만요.


 한데 이렇게 연휴가 와버리고 평일에 놀아버리게 되면 그걸 할 수가 없거든요. 주식장이 열지 않으니 어제의 나를 오늘의 내가 이겨볼 일이 딱히 없단 말이죠. 그래서 연휴가 싫어요.


 글을 쓰다 보니 그냥 운동을 하러 가면 되겠네요. 어제의 나보다 땀을 많이 흘리고 폐활량이 높아지고 근육량이 많아지면 오늘의 나의 승리겠죠.



 




    • 연휴를 대하는 마음가짐의 차이를 말씀하셨는데 젊었을 때와 나이먹은 것 때문에 달라지는 게 아니라 노동소득자와 자본소득자의 차이로 보이는군요. 일반 직장인에게 이런 연휴는 꿀같은 휴식기간일거고, 노동하는 자영업자라면 추석 당일 혹은 전후 3일만 쉬고 남은 휴일은 장사하느라 바쁘겠죠. 반면 여은성님처럼 벌어놓은 자본을 스노우볼처럼 굴릴 궁리를 하는 분들한테는 이런 연휴가 애매하게 느껴지는 거 아닐까 합니다.




      자본소득의 증가속도를 노동소득으로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게 된 요즘이 저는 사실 좀 이상해요. 물론 자본소득으로 수익을 올리는 분들도 다 리스크를 걸고 그런다는 건 알지만요. 그런데 앞으로는 로봇과 AI가 그런 노동 마저 대체하게 되는 것일지? 그런 세상이 오기 전에 자본소득으로 굴릴 기반을 노동소득으로 마련해놓아야 하는 것인지? 그런 뻘 생각을 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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