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인생...(허튼 소리입니다)

다와다 요코의 책을 조금 읽다가 졸았어요. 책 내용이 피곤해서는 아닙니다. 아니 책 내용이 피곤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렵거나 복잡한 내용은 아니었고 오히려 흥미롭고 읽는 맛이 있었지만 많은 에너지를 쓰게 했다는 점에서 피곤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보다는 전날 밤에 평소보다 잠 잔 시간이 조금 줄어서 그런 것 같아요. 어쨌든 그래서, 책을 바꿔 봤습니다. [오, 윌리엄!]으로요. 며칠 전에 읽은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의 주인공 루시의 갈라선 남편 윌리엄이 중심되는 소설인데 화자는 역시 루시입니다. 


책을 바꾸고 술술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의 인생을 구경하는 것을 인간은 왜 재미있어 할까. 자기 인생은 들여다 보는 시간을 잘 내지도 않고, 생각하기를 골치 아프게 여기고 관심을 기울여 뭔가 모색하는 것을 힘들어 하면서, 남의 인생은 아주 호기심을 갖고 즐깁니다. 웃기도 하고 마음으로 훈수도 하면서 봅니다. 그러다가 문득 자기 인생을 소환하는 장면이나 문장을 만나면 뜨끔하여 멈추기도 하지만 대체로 다른 사람의 인생은 가볍게 구경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책에서 이혼 후에도 원만하게 지내는 두 사람이 만나 커피를 마시는데 화자인 루시는 윌리엄의 세련된 차림새를 묘사하기도 하고 윌리엄이 이 즈음 그를 찾아오는 한밤의 공포에 대해 털어놓자 그 내용을 주의 깊게 들으며 같이 걱정을 하기도 하네요. 윌리엄의 생일에 세 번째 아내와 살고 있는 그의 집에 초대되어 가서 그 아내의 미모와 어린 딸의 귀여움을 얘기하고 아파트의 실내 장식과 손님들의 옷차림을 평가하는 문장들, 이런 게 왜 재미있을까요. 어떤 때는 이런 것은 인간에게(저에게) 있는 참 속된 마음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만.


잡지나 인터넷에 실린 유명인의 사생활을 읽고 얘기하는 것, 모임에서 그 자리에 못 나온 특정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가족이 먼 친척의 기구한 인생 같은 걸 얘기하는 것, 모두 인물들 사연 위주의 소설을 읽으며 얻는 쾌감과 유사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은 현실에서 주고받는 유명인이나 지인이나 먼 친척들에 대한 이야기보다 훨씬 마음놓고 뒷말을 즐기는 듯한 쾌감을 가질 수 있는 것 같네요. 아니다, 그게 아니고 소설은 현실의 뒷담이 갖는 도덕적인 위험 부담을 제거하고 안전하게, 본격적으로 즐기고 따져보라고 만들어 놓은 놀이터란 생각이 드네요. 

애초에 인간의 본성에 이런 것이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보는 건 쾌감이 따르는 것이 분명하면서 좋은 일이기도 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내 인생의 굴곡을 보는 건 힘들고(말 그대로 잘 안 보이기도 합니다. 놓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자칫하면 자신의 마음과 건강을 해칠 수도 있고 주변에 끼치는 영향이 무섭기도 해서... 너무 부담이 큽니다. 재미도 없을 뿐더러요.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보는 과정에 내 인생의 무게를 덜어낸다는 생각이 드네요. 심리 치료 같은 것이라 할 수도 있겠어요. 무슨 수가 찾아진 것도 아니지만 마음의 풍경을 바꾸어준달까요. 그게 중요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마음의 풍경을 바꾼다! 


다와다 요코의 책을 읽다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책으로 갈아타면서 그냥 해 본 뻘생각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생각의 초입에서 쓰기를 멈춥니다. 심화과정은 없습니다.

 






    • 예전에 만화책에서 그런 대사를 본 적이 있네요. 사람은 자기 인생은 너무 지루해서 반드시 타인의 인생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고. 그래서 픽션은 절대 그 수요가 끊기지 않는다고... 

      • 그 말도 맞는 면이 있습니다만 지루함 말고도 다른 이유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직면하기 힘든 일에 안전 장치가 한 겹 있어서 도와 준달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렇죠... 대리경험이 주는 안락함이 있는데, 저는 요사이 그런 타인의 인생을 계속 대리체험하는 게 지배계급의 특징이자 중산층 특유의 여가가 아닌가 합니다. Sns의 발달과 유튜브 등의 유행으로 그게 더 커진 것 같아요
          • 저는 픽션을 통해 남의 인생을 구경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 재미 이상으로 뭔가가 있음을 표현해 봤어요.(당연히 재미 이상의 뭔가가 있지요.) 내 삶에서 잘 안 보이던 것이 보일 수 있고 어쩌면 내 문제를 직접 대면하지 않고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에 더 객관적으로 살필 여지도 있다고... 당연한 것일 텐데 그냥 또 떠오르기에 써봤죠. 저는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해봤는데 Sonny 님 이 댓글은 이해의 방향이 나보다는 남을 향할 때 쉬운 접근에서 생길 수 있는 부정적인 측면을 말씀하신 거 같습니다.     

            • 저는 아무래도 '남의 인생'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에서 좀 부정적 생각을 먼저 하게 됩니다. 그건 자기 것이 아닌 것이고 함부로 감상할 수도 없다는 느낌을 전제해서 그런 것일지도요. 요지에서 벗어난 댓글을 해서 괜히 죄송하네요
              • 제 표현이 좀 투박했나봐요.... 아닙니다. 댓글은 항상 감사하죠!

    • 최근에 본 결혼의 풍경과 좀 닿아있는 얘기라고 느껴집니다. 전 제 자신이 단단하지 못해서 저를 돌아보는 걸 못해요. 그러다 타인한테 뼈 맞으면 그 상처가 오래 가고 그럽니다. 언젠간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ㅎㅎ 그냥 이렇게 얄팍하고 철없이 계속 살거 같아요
      • 저도 단단하지 못해서 좀 강한 멘탈을 갖고 싶지만 이게 가능한가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이상하게 점점 받은 상처보다 남에게 준 상처를 자주 생각하게 되는데 이것이 자신에게 더 부정적인 것 같습니다. 마음 편하게 지내는 게 최곤데 말입니다...

    • 근본적으로 인간이란 게 상상력을 가진 동물이라 '이야기'에 집착하는 면이 있다는 게 포인트가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어린 아가들도 대충 말 알아 들을 정도 수준이 되면 주변 사람들이 들려 주는 아무 이야기에 다 흥미를 가지며 재밌게 듣고 영향도 받고... 그리고 그런 이야기 중에서도 궁극의 재미를 주는 것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 실화니까요. 나 자신의 이야기는 스스로 잘 안다고 생각(=착각이지만요)하기 때문에 별로 흥미가 안 생기지만 남의 이야기는 신선하고 흥분되는 것이고. 그래서 자기 이야기라고 해도 어쩌다 오래된 친구를 만나 수다 떨다 오래된 자신의 경험에 대해 관찰자의 입장에서 풀어주는 다른 버전의 이야기를 들으면 또 흥미가 콸콸 넘치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암튼 뭐 영화도, 드라마도. 하다 못해 요즘 영화랑 드라마 다 죽인다고 원성을 사고 있는 릴스나 쇼츠 같은 짧은 영상들도 결국엔 다 이야기니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면에서 '3000년의 기다림'은 참으로 좋은 영화였다는 쌩뚱맞은 결론으로 뻘플을 마무리 해 봅니다. 하하;;

      • 그렇습니다...자기 이야기도 친구를 통해 들으면 또 흥미가 넘치기도 한다, 라는 말씀이 바로 귀에 쏙 들어옵니다. 한 겹을 둔다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직면하는 현실은 뭐가 맞는지 모르겠고 다만 습관만 남아 있는 것 같고요. 




        '3000년의 기다림' 본격 이야기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영화... 후기를 다시 읽고 왔어요. 로이배티 님과 제 것도 있기에. 새삼스러운 것도 아닌데 어제는 또 한 번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 보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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