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마지막 밤(산 책 몇 권)
또 하나의 10월을 보내면서 오늘 도착한 책 중심으로 잡담을 합니다.
두 권은 소설이고 두 권은 넓게 인문사회학으로 묶을 수 있겠네요.
[생의 한가운데]는 고등학교 때 읽은 책입니다. 고등학교 때 입시 공부에 집중을 흐트러지게 한 책들이 몇 권 있어요. 공부하기 싫어지게 만든?이라고나 할까요. 지금 생각하면 공부하기 싫은 차에 한눈 팔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책인데, 그건 지금 생각이고 그때는 그 책들의 영향을 받는 바람에 '이렇게 갇혀서 하는 공부따위 지겹고 내 인생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나름 진지한 마음이었겠죠. [생의 한가운데]는 [이방인], [개선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과 더불어 그런 책 중 한 권이었어요. 제목을 나열해 보니 요즘은 이런 책들의 인기가 별로 없는 것 같네요. 라떼는 소설 읽는 친구들은 다들 읽었죠. 그 중 [이방인]은 깊은 의미는 생각 못했으면서 '냉담'이나 '무감함', '무의미' 같은 표면적인 스타일만 취해서 제 경우에는 인생에 나쁜 쪽으로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 책입니다.
최근에 [생의 한가운데]를 읽는다는 사람을 우연히 봤더니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들까 궁금해졌습니다. 지금도 주인공인 니나에 매력을 느낄까, 이 소설이 지금도 힘이 남아 있을까, 궁금합니다. 그때도 전혜린 번역으로 읽었는데 이번에도 같은 역자의 책으로 샀습니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을 좋아했습니다. 왜 과거형이냐면 안 읽은지가 오래 되어서 지금도 좋아하는지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이분의 소설은 기본 설정이나 분위기가 비슷합니다. 책마다 다음 단어들이 제목의 일부로 들어가 있어서 제목을 보면 짐작이 됩니다. '기억, 추억, 잃어버림, 신원미상, 거리, 길...' 그러니까 잃어버린 기억이나 추억이나 사람이나 기타 등등을 찾아 거리나 길을 헤매고 다니는 내용인 것입니다. 현명한 사람들은 입을 모아 중요한 것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눈 앞의 현실이라고 하는 마당에 이분은 끊임없이 과거를 추적하는 내용을 써왔습니다. 그래서 그 분야의 전문가인 탐정이나 추리작가가 등장하는 작품도 있고요. 다음 내용이 궁금한 종류의 재미를 기대하면 실망할 수는 있는데 저는 좋아했었고, 지금 다시 읽어도 그런 뭔가 정처없는 분위기를 누릴 수 있을지, 마음이 움직일지 역시 궁금해졌습니다. 안 읽고 갖고 있는 책이 있으면서도 이분의 책 중에 재미있게 읽었다는 최근의 후기가 보여서 [잃어버린 거리]를 또 들였네요.
소설 두 권은 과거의 기억들에 의지해서 지금도 그런지 두고 보자,라며 고른 책들이 되겠습니다.

[죽음정치]는 2016년 책을 최근에 번역하여 나온 책입니다. 아마 저자 아쉴 음벰베가 작년에 인문학 분야의 큰 상을 받아 소개가 되나 싶네요. 저자 이름이 어려운데 카메룬 출신이라고 합니다. 읽었다는 분들은 죄다 최고!를 외치는 화제의 책이라 일단 샀는데 어렵지 않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 중 일부를 옮겨 봅니다.
'근대 권력이 생명을 ‘인구’로써 관리하는 차원을 넘어, 어떻게 죽음을 조직하고 배치하는가를 추적한다. 음벰베에 따르면 주권은 더 이상 단순히 생명을 보호하거나 관리하는 권력이 아니라, 누가 살아야 하고 누가 죽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식민지의 폭력, 인종주의, 분리와 배제의 정치 속에서 주권은 죽음을 관리하는 체계로 변모해 왔으며, 그 흔적은 오늘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등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음벰베는 민주주의가 애초부터 배제된 타자를 전제로 작동해 왔음을 드러내며, 근대성의 이면에 자리한 폭력의 구조를 비판한다.'
언제나 세상은 수상했다고 하지만 제 느낌상 요즘은 좀더 격변기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눈에 들어왔고 기웃거려 보려고요.

[21세기 자본]은 아시는 분은 다 아실 책이죠. 저도 책장에 있는 줄 알았는데 없었어요.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이제 알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경제학자들의 추천사를 보니 그래도 어려운 모양이네요. 통계표 같은 건 넘어가면서 요령껏, 시간을 들여 읽으면 머리에 새겨지는 바가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이틀 전 일상 잡담에서 경제를 모르며, 동전 하나가 되어 일희일비하기는 싫고, 그런데 기분은 나쁘고...뭐 그런 의미의 글을 썼었습니다. 그래서 화풀이의 의미로다가 이 책을 샀습니다.
제목에 맞추어 10월이 가기 전에 글을 올리기 위해 출판사 제공 소개를 붙이는 걸로 마무리합니다.
'우선 경제적 불평등을 배태하는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를 명료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소득 불평등의 근본 원인으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늘 높다는 이론을 제시한다. 즉, 자본이 스스로 증식해 얻는 소득(임대료, 배당, 이자, 이윤, 부동산이나 금융상품에서 얻는 소득 등)이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임금, 보너스 등)을 웃돌기 때문에 소득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진다는 것이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 연구에서 세계적 권위자인 피케티는 소득이 소수의 경제 엘리트들에게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세습자본주의’로 다시 향하고 있고, 그곳에서는 부유층 안에서도 상속자들이 경제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재능이나 노력보다는 태생이 중요해진다는 점을 드러낸다'(폴 크루그먼)

책 도착하고 서론 두 페이지만 읽었는데 첫인상이 좋았어요. 쓰고자 하는 내용에 어울리는 이러저러한 형식으로 쓰게 되었다는 시작 글이 예사롭지 않은 듯합니다.
글 잘읽었어요. 감사합니다. 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 유명했어요. 저는 읽지않았지만요.
전혜린 하니 정말 시간이 엄청 빨리 지나가네요>_<
[개선문]이 칼바도스 라는 술 나오는 소설이었던가요?
파트릭 모디아노는 집에 책이 한두권 정도 있는거 같아요. 찾아보니 작품이 많으시네요.
"나는 천천히 읽을 수 있는 아름답고 낯선 글을 좋아한다. 주변이 소란스럽거나 삶이 뻔하게 느껴져
신물 날 때, 나는 프랑스 소설 몇 권과 함께 틀어박히는 일로 멋을 부리곤 한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었다.
기억을 상실한 주인공은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지만, 그렇게 해서 찾아간 존재의 마지막 지점은 바스러진 그림자나
무(無)일지도 모른다는 것. 매혹적인 소설이다. - 은희경(소설가)
동명의 배리 매닐로의 오리지널은 잘 아실거같아 모니카 맨시니의 아름다운 커버를 들려드릴게요.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140&v=lmJA-jg5-rY&embeds_referring_euri=https%3A%2F%2Fx.com%2F&source_ve_path=Mjg2NjY
맞습니다. 칼바도스ㅎ.
은희경 작가가 어디에 썼던 글인지 몰라도 나무위키에 저렇게 인용되어 있군요. 은희경은 미셸 우엘벡의 책을 즐겁게 읽고 있다고 한 글을 전에 어디서 보고 글의 특징이 비슷한 느낌이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모디아노도 좋아하시나 보네요. 모디아노의 책은 많이들 좋아할 거 같아요. 2차 대전과 관계 있는 기억이 나오지만 전개는 아주 내성적이고 사적인 느낌이 들어서 저도 깊이 빠져 읽게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10월을 보내면서 아쉬움에 글을 올리고 싶었던 저의 마음과 어울리는 곡 잘 들었습니다...
아니 생의 한 가운데라니. 루이제 린저라니. 저거 정말 세기말 필독서였잖아요. ㅋㅋㅋㅋ 사실 내용은 다 까먹었습니다만 그냥 너무 반갑네요. 당시에 학교든 카페든 그냥 책 많이 사는 지인 서재든 간에 어디에든 꼭 한 권 씩 꽂혀 있었던 기억이 나요. 갑자기 저도 궁금해지네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들 좋아했던 것인가... 제가 찾아 읽기엔 의욕이 모자라니 다 읽으시면 꼭 후기 남겨주세요! 하하.
그렇죠. 늘 하수상한 세상이었지만 요즘엔 정말 이상하고 걱정이 되고 그렇습니다. 옆방에서 세상 편하게 자고 있는 자식놈들에게 그냥저냥 살만한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지를 생각할 때 별로 긍정적으로 보이질 않아서 더 그렇구요. 왜 낳았냐고 욕 먹고 싶진 않지만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네요... ㅠㅜ
지금 읽는 소설이 있어서 이거 끝나면 '생의 한가운데'부터 읽을까봐요. 이 소설이 그렇게 두루 좋아할 성격은 아님에도 참 많이 알려졌던 거 같습니다. 다시 읽고 확인해 보는 걸로...
그나마 이 나라가 물리적인 전쟁통은 아님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싶어요. 뭔가 사는 게 큰 사건 사이의 잠깐의 휴지기인 느낌도 있고요. 이 생각을 하면 하루를 더 소중하게 보내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습니다. 로이배티 님의 자제분들 시기가 마구 사랑을 밖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고점이 아닌가 해요. 조금 더 자라면 그런 표현을 부담스러워 할 나이...더 많이 표현하시길.
둘 다 뛰어난 책임은 확실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집중해서 읽어줘야 하는데 그런 마음이 잡히면 시작하려고요.
고등학교 야자 시간의 교실이란 장편 소설을 읽기에 최적화된 곳 아니겠습니까. 조용하지, 돌아다니지 못하게 감시하지, 집보다 더 효율적인 읽기 공간이에요. 긴 호흡으로 읽기에 정말 낙원이었던 것입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