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독
오독은 맹독을 가진 것으로 이름난 다섯 축생을 부르는 말입니다. 오독의 멤버 구성은 시대나 장소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지만 대체로 뱀 두꺼비 지네는 필수포함인 것 같네요. 중국 일부 지방에선 오독을 피하라는 의미로 오독을 모에화한 캐릭터를 수놓은 주머니를 단오날 아이들에게 선물하는 풍습 같은게 있었다나 봐요.
현대의 도시인들은 오독을 접할 기회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오독을 모에화하는 전통은 남아서, 인터넷에서 五毒을 때려보면 귀여운 그림들이 꽤 나옵니다.(안귀여운 그림도 꽤 나올 수 있으니 주의...)
의/과학이 발달한 현대인들에게 오독의 위상은 과거에 비하면 많이 떨어지긴 했어도 아직도 오독이 위세를 떨치는 분야가 있으니, 무협입니다.
무협지에 보면 무슨 오독교니 오독신장이니 어쩌구 하면서 독하고 관련이 있다 싶으면 앞에다 걍 오독을 붙이잖아요.
글고, 무협과 인척관계에 있는 쿵후영화계에서 오독은...... 세기의 컬트영화의 제목입니다.
그니까 제가 이 영화를 처음 알게된 게 막 밀레니엄을 갈아치우려 하던 세기말이었죠. 그때 온갖군데에서 20세기의 베스트 뭐뭐뭐를 뽑았었잖아요. 그때 어떤 영화관련잡지에서 봤던 20세기의 컬트영화 베스트 어쩌구하는 리스트에 바로 이 [오독]이 들어가 있었어요. 거기서 말하기로는 스토리는 중요하지 않은 영화라나...ㅎㅎ 다 서양영화만 있는 리스트에 중국영화가 끼어들어 있어서 기억에 남았었죠.
장철이 국내에선 주로 60년대 무협영화의 거장이자 아주 무게있는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그 60년대 영화들이 서양에선 그닥 인지도가 높지 않았고(2000년대 리마스터판이 풀린 후로 인지도 급상승) 장철하면 커리어 말년에 막만든ㅎㅎ 영화들 위주로 알려져 있어서, 장철=컬트라는 이미지가 따라붙어있었죠.
예, 그러니까 [오독]은 양덕 쿵후팬덤에선 컬트영화의 왕으로 알려져 있었던 장철의 대표작중에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장철을 대표하는 영화가 [외팔이]였다면 서양에선 닥치고 [오독]이었죠.
장철은 60~70년대초까지는 쇼부라다스 제일의 블록버스터 감독이었다가 70년대 중반쯤엔 이런저런 사정상 대만으로 기반을 옮겨 거기서 영화사를 차리고 사장님이 되었습니다. 쇼부라다스에 있던 시절에는 잘나가는 감독이긴 했어도 윗사람 시키는대로 해야 하는 직원 처지였지만, 대만에서 차린 회사 '장궁전영'에서는 자기가 윗사람이란 말이죠. 그러다보니 폭주를 해버렸어요.
대만에서도 히트작을 몇편 내기는 했지만 벌어들인 것 이상으로 너무 일을 벌여서... 회사 망합니다.
근데 이 장궁전영이란 회사가 사실은 쇼부라다스 돈으로 굴러가는 곳이었어요. 실질적인 대만지사였죠.(장궁전영 영화는 당시로선 대만영화였고 그래서 장철의 홍콩 필모가 한동안 끊깁니다. 그래서 정보접근성이 떨어지던 시절의 한국 영화팬들은 그 시기에 장철이 활동을 접은 걸로 오해하기도....)
홍콩 복귀 이후 장철은 예전처럼 대형 프로젝트를 맡기는 어려운 처지가 되었겠죠. 그대로 몰락....하지 않고 새로운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저예산에 무명배우들이 잔뜩 나오는 삐끕 영화들로요. 그 신호탄이 [오독]이었습니다.
78년은 성룡이 등장한 해였습니다. 비인기 배우이던 성룡이 드디어 슈퍼스타로 떠오른 해죠. 성룡을 슈퍼스타로 만든 게 [사형도수]와 [취권]. 특정 권법을 메인 소재로 하는 영화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무술영화계에 X권 영화가 막쏟아져나왔죠. 실존하는 권법들은 이미 남들이 한번씩 다 써먹어봤으니 온갖 희한한 창작권법들이 쏟아집니다. 애초에 붐의 원조인 취권부터가 창작권법이었으니까요. 잠자는 권법, 강시권법, 어쩌구권법 저쩌구권법이 막 나오다 보니 심지어 병신권법에 문둥이권법도 있었어요(지금이라면 만든 사람이 매장되었을 아이디어...)
이런 흐름속에서 장노사와 오랜 창작파트너이던 예광은 박리다매 전략을 시전합니다. 한번에 무려 다섯가지 권법을 푸는 거죠. 그니까... 앞에서 오독의 의미에 대해서 이래저래 떠들긴 했습니다만, 그거하고 관계 없고ㅎㅎ, 걍 다섯가지 권법이 나오는 영화ㅂ니다.
일단 권법부터 대충 구상하고는 각본도 다 안나온 상태에서 찍기부터 시작했다나 봐요.
다섯가지 권법, 즉 이 영화에서의 오독은 뱀, 두꺼비, 지네, 도마뱀붙이, 전갈입니다.
그중에서 뱀은 뭐 이전부터도 사권이 유명했습니다만... 나머지는 대충 해당 축생의 특징을 잡아서 만들었습니다.
그게 기존의 이미지들과는 좀 달라요. 대부분 동물의 모습을 흉내내는게 보통이고 두꺼비의 경우 무협지에서 합마공이란 이름으로 단골로 나오긴 했는데, 무협지의 합마공은 두꺼비의 생김새와 뛰는 모습을 흉내낸 거라 실사화했을 때 매우 민망해진다는 문제가 있죠. 그래서 두꺼비의 피부가 단단하다는데 착안해 철포삼 계열의 방탄 무공으로 설정하고, 지네는 손을 아주 빠르게 움직여 발이 많다는 걸 표현하고, 도마뱀붙이는 중국어로 벽호, 벽호유장공할 때 그 벽호ㅂ니다. 벽에 붙어다닐 정도로 민첩하다는 걸 빗대 경공이 뛰어난 거(=아크로바틱)로 묘사합니다. 전갈은, 특유의 자세를 흉내내는 그런 게 아니고, 전갈의 꼬리를 발로 해석해서 발차기를 잘하는 무술(=태권도)로 그려냅니다.
이렇게 어찌보면 대충 짠 것 같으면서도 퀄리티는 또 나쁘지 않아서 개봉하고 나서 영화속 무술에 대한 평가가 꽤 좋았다는가 봅니다.
출연배우들도 박리다매... 여섯명의 배우들에게 분량을 배분하는 시스템을 채택합니다. 이야기 전개상 주인공팀과 나쁜넘 팀으로 갈리긴 하지만 두드러지게 리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배우들 한명한명이 스타성이 별로 높지않은(=외모가 겸손한) 사람들이어서요. 단독주연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을만한 스타성있는 배우가 한명도 안나오다 보니...
그런데 이게 먹혀서, 이 여섯명(금방 다섯명으로 줄지만)이 공동으로 출연하는 시스템이 그대로 이어지게 되죠. 그니까 잘나가는 스타 한명 대신에 여러명의 좀 덜나가는 스타들의 연합으로 승부를 보는....
그렇게 해서 아예 오독(베놈스)영화라는 장르가 만들어집니다.
이 배우들은 장철이 대만에 있는 동안 모은 신인들입니다.
곽추, 강생, 녹봉, 나망, 손건. 거기에 위백(곧장 빠지는 멤버)까지. 각자 개성이 달라서 각각의 역할을 나눠서 하게 됩니다.
장철의 전담 무술팀이던 유가량/당가가 빠져나간지도 꽤 되기 때문에 무술지도 역시 대만 시절에 새로 영입한 사람, 대철이 맡았습니다. 대철은 본명이 대기현이라는데, 장철한테 실력을 인정받아 이름의 철자를 하사받았다고 합니다. 근데 유가량한테 견제를 받았다는 모양이고요. 얼마후 대만으로 돌아가면서 그후 오독영화 무술지도는 주인공 멤버들이 직접 하게됩니다.
스토리는...
강호의 공적으로 소문이 난 오독문이라는 문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독문 장문인은 원래 나쁜사람이 아니었고, 제자라는 놈들이 하산한 뒤로 세상에 나가 온갖 나쁜짓을 하고다녀서 그렇게 된거라고....
병에 걸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게 된 오독문주는 문파를 없애버릴 결심을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받아들인 제자에게 강호에 나가 사형들을 찾아서 제거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근데 이양반이 성격 또 특이한 사람이라서,
다섯명의 사형이 있는데 이사람들이 입문시기가 다 다르고, 한번에 한사람씩만 받아서 제자들끼리 서로서로 얼굴도 모른답니다. 가르쳐준 무공도 다 다르고요. 그니까 한사람당 한가지 무술밖에 안가르쳐줬는데 제자들이 강호에서 다들 악명을 날리게 되었다니 사부님이 엄청난 먼치킨이죠.
그리고는 덧붙이는 말씀이, 네 실력으로는 사형들한테 절대 못이긴다고....
아니 이게 뭔 소리랍니까.
그 넓은 중국대륙에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가명을 쓸게 뻔하니까) 다섯사람을 찾으라는 것도 황당한데 이기지도 못하는 사람을 죽이라니요.
사부가 가르쳐준 승리 비결은, 다섯 사형중에 혹시라도 한사람 정도는 악당 아닌 애가 있을 수도 있으니 걔량 편먹고 같이 싸우라고....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리인지...
하지만, 사부가 죽으라면 제자는 죽어야하던 시절이니까, 속으로 욕나오더라도 따라야지 어쩝니까.
이게 사실적인 이야기였다면, 막내 제자는 사람 찾다가 늙어죽었겠지만...(어쩌면 그동안 공력이 늘어 이길 수 있는 실력은 갖추게 될지도...) 영화는 편리하게도 다섯사람이 조그만 마을에 다 모이게 만들어 막내 제자가 헤매고 다닐 수고를 덜어줍니다.
뭐 어쨌든 그렇게 무리수 설정으로 이야기가 일단 시작되는데,
다섯사람이 서로서로 누군지 모른다는게 꽤 괜찮은 설정인게 서로 다들 적대시하고 있는데 누가누군지 모르니 경계상태가 되어 나름의 서스펜스를 만듭니다. 그리고 한사람의 신분은 끝까지 숨겨서 나름 추리 비슷한 모드가 되기도 하고요(근데 포스터에서 누구인지 스포를 하고있다는....ㅎㅎ)
아니 뭐 그렇게 아주 잘짜여진 이야기라고 볼 수는 없지만, 급조해낸 것 치고는 꽤 괜찮다 싶은 이야기고요. 이게 쿵후영화라는데서 또 달라지죠. 아무도 쿵후영화에서 그런거 기대 안하던 시절이니까요. 그래서, 앞서 스토리 따위 중요하지 않다는 소개글을 봤다는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양덕들은 [오독]을 쿵후영화에는 스토리가 없다는 선입견을 깨는 영화로 꼽기도 합니다. 무술장면을 보는게 목적이니 애초에 기대치가 낮은데 액션 사이사이를 채워주는 역할만 하면 그만인 스토리가 나름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면 더 버프를 받게 되는 거죠.
나름의 사회풍자적인 면도 있어서, 부자가 죄없는 사람에게 누명을 씌워 해치고, 관에서는 거기 적극 협조합니다. 관리의 입으로 사람이 공부해서 출세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대사도 나오고...(이 영화 최고의 명대사라고 생각합니다ㅎㅎ)
뭐 이래저래해서... 서양에선 단순 컬트 이상의 명작으로 알려진 영화ㅂ니다. 미국의 문화계 특히 흑인(원래 미국 쿵후영화 팬덤의 중심세력이 흑인들이기도 하지만)문화에 끼친 영향도 상당해서 힙합이나 랩쪽에서 [오독]과 [소림삽십육방]을 모르면 간첩이었다던가...ㅎㅎ
국내에선 20세기에는 전혀 관심을 못받던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나왔던 당시에는 국내에 먹힐만한 얼굴이 전혀 안나온 영화라서 수입이 못된 것 같고(스토리상 당시 정부에서 껄끄러워했을 만한 부분도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비디오로도 나온걸 못본 것 같아요.
거기다 국내에서 장철하면 60년대 무협영화들로만 알려지고, 쿵후영화를 열심히 찍던 시기 작품은 거의 알려지지 않거나 무시당했기 때문에 국내에선 2000년대 셀레스촬 리마스터판이 나온 후에야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지금은 오독영화들이 꽤 알려졌고 팬들도 꽤 있는듯...
오독문 사부로 나오는 사람이 80년대 성룡영화에서 맹활약한 적위(당시 예명 도룡).
무술액션스타로 만들어주겠다고 꼬드겨 스카웃해놓고 엑스트라급 단역으로만 굴리다 나름 중요한 역할을 준 건데 대사만 하는 역할이었다는...ㅎㅎ
그것 말고도 위에 말한 명대사를 하는 탐관오리역 배우가 왕룡위ㅂ니다. 천하의 왕룡위한테 대사만 하는 역할을 줬다는...ㅎㅎ
요새 케이블에서 꽤 자주 하는 것 같던데 광동어 더빙인 게 좀 아쉽더군요.
잘못 읽었다는 오독인 줄 알고 클릭했다가 아 역시 돌도끼님... 하며 즐겁게 읽었습니다. ㅋㅋㅋ
말씀대로 이 정도면 꽤 그럴싸하고 괜찮은 스토리 같은데요. 영화에 관심이 가지만 합법적으로 한글 자막 겸해서 볼 길은 없겠죠. 음...;
https://m.kinolights.com/title/43714
일단 저기서 찾아보니 무료는 없나보네요.
몇년전까진 넷플릭스에 있었다던데, 영어 더빙판이었다고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