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불 34

코이케 카즈오가 스토리를 쓰고 이노우에 노리요시가 그림을 맡은 만화.
1986년부터 92년까지 영점프에 연재되었습니다.
코이케는 '새끼딸린 늑대(아들을 동반한 무사)' '크라잉 프리맨' 등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사람이고, 이노우에가 우리나라에서 유명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코이케 카즈오의 작화 파트너들 중에는 '크라잉 프리맨'의 이케가미 료이치가 제일 유명합니다만, 이 만화 시작부분에서의 이노우에의 그림은 이케가미를 노골적으로 모방하고 있습니다. 조금 지나면 자기식으로 틀이 잡히지만...
이만화를 제가 처음 본게 80년대 후반쯤에 국내 만화방에 성인만화란게 쏟아져나오던 시기였습니다. 그시기에 '매드블루'라는 이름으로 나왔는데 야하고 폭력적이어서 꽤 인기를 끌었습니다.
원제목이 매드불34인데... 일본말에 ㄹ받침이 없다보니 그것때문에 표기가 혼동되는 일이 아주 많습니다만... 그래도 일본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면 Bull과 Blue의 일본어 표기가 다르단 걸 알았을텐데....
근데 어쩌면, '매드블루'가 단순한 오역이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드는게... 원작자인 코이케도 헷갈린 것 같거든요. 원작의 초반을 보면 불이란 말을 경찰을 의미하는 속어로 쓰고 있습니다. 경찰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건 블루죠. 그니까 코이케가 의도했던 원래 제목이 매드블루였을지도...? 일본사람들, 영어쓰는걸 진짜 좋아하면서도 영어실력 처참한 건 알아주니까요...(그거 말고도 코이케 이양반이 작품 내내 어설픈 영어를 계속 씁니다)
뭐 어쨌든...
뉴욕의 34분서에 근무하는 슬리피라는 이름의 천하의 개쌍넘이 온갖 분탕질을 치는 이야기입니다.
만화 내용은 뉴욕의 경찰서를 배경으로 하고있다는 것 말고는 크라잉프리맨과 별차이 없습니다. 절륜한 싸움실력과 정력을 갖춘 주인공이 쉴새없이 사람을 죽이고 섹스를 합니다.
일단은 파트너가 있어서 버디물인 것 같지만... 이야기 중간쯤 되면 공동주인공인줄 알았던 파트너가 퇴장하고 슬리피가 계속 다른 파트너를 갈아치우나 싶더니 더 뒤로가면 걍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합니다.
그나마 한 중간쯤 까지는 나름 경찰물같아 보이더니만 중간이후부터는 작가가 자기가 만들고 있는 만화를 착각한 건지... 내용이 (작가의 이전작인) '아이우에오 보이'를 방불케 하더니만 끝에가면 거의 '상처를 쫓는 남자'(성인만화식 작명으로 '대남')를 재탕합니다.
뭐 그러다보니... 내용이 진짜로 아이큐가 낮습니다.
배경은 미국이지만 작가가 미국에 대해 1도 공부를 안한 티가 나요.
뭐 그게 나름의 코이케 스타일인 것 같긴 합니다.
홍콩이란 동네의 생리나 삽합회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으면서 줏어들은 몇가지 조각정보만으로 홍콩배경 삼합회만화 '크라잉프리맨'을 썼던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역시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70년대 만화 '아이우에오 보이'에서 보여줬던 미국의 묘사도 참 기가찼거든요.
그니까 미국영화나 TV에서 봤던 미국의 단편적인 모습들을 가지고 코이케의 뇌속에서 재조립한 미국입니다. 거기다가 미국은 일본보다 개방적인 나라니까 일본에서는 감히 못해볼 일들을 질러보자라는 식... 그게 미국에서도 불가능한(아니 어느 나라에서도 불가능한) 일이란 것 따위는 생각 안하고...ㅎㅎ
사실 나름 경찰물처럼 보이는 초중반도 순 억지내용에 황당한 맛으로 보는 만화였지만 중후반부는 걍 모든걸 내려놓고 봐야하는... 뭐 뉴욕 경찰청장이 자가용 F-16을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웃고 넘길 수 있지만... 아예 미국이란 나라의 법과 제도를 깡그리 무시합니다.
강력사건, 유괴사건, 테러사건 뭐든 가리지 않고 순경이 전부다 처리하고요. 말안되는 게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지만 대충 예를 들면,
사람을 죽이고 수백만 달러를 강탈한 강도단에게 주인공이 '자진출두하면 상금 백만달러를 주고 모든 죄를 사면해주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그런 제안 자체도 황당한데, 그걸 정부요인도 아닌 일개 순경이 하고 있고, 강도단 멤버가 자진출두 해서 진짜로 죄를 사면받습니다. FBI도 사면됐으니 어쩔수 없다고 걍 보내줘요.
그니까 이건 미국에 대해서 공부를 했냐 안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일반 상식선에서 현대 법치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거예요.
현대 미국의 껍데기를 씌워놓고 실은 막부시대의 야쿠자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법이나 제도보다는 절대자나 그 대리인의 의견이 상위에 있는 시대요. 그리고 주인공도 미국인, 아니 현대인 같은 사고가 아니라 근대의 인정파 야쿠자나 할법한 생각과 말, 행동을 합니다.
아니 뭐 이게 코이케가 즐겨 창작했던 잇삐끼오까미 도망자류의 만화였다면 그렇게까지 괴랄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는데 이건 주인공이 미국 경찰인 만화란 말이죠. 경찰이 탈주닌자나 야쿠자처럼 행동하고 있으니...ㅎㅎ
뭐 만화니까 허용되지 않냐 할 수도 있지만, 이 만화 초기에만 해도 해도 나름 하드보일드 풍이었고 가상의 도시도 아닌 명확한 현실무대가
배경이니 최소한의 현실감은 갖춰야겠죠. 게다가 작가가 또 초반에는 되게 아는체를 했거든요. 일본만화중에 작가가 지식전달을 하고싶어 안달난 그런 것들 있잖아요.
뭐 그나마 첫번째 파트너가 있던 시기까지는 그래도 웃어넘기며 볼만했는데 뒤로가면서 이상해진 케이스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대략 '피안도' 비슷한 경우 아닐지?...(근데 전 망가진 이후의 피안도만 봐서 그 만화가 진지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잘 상상이 안됩니다만...)
글고... 함 검색해 봤더니 이 만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개인이건 데이터베이스건)의 공통점이 딱 그 첫번째 파트너와 툭탁거리는 버디물이었던 때 까지만 언급하고 있는것 같네요. 그 뒷부분은 아마 기억속에서 지워버린듯...?ㅎㅎ
옛날 우주세기 건담 애니메이션들 속 영어가 딱 그런 수준이었죠. 중1 수준 단어들 철자를 무자비하게 막 틀려가며 적고 문법까진 말 할 것도 없는 상태라서 '걍 우주세기 속 영어는 저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했던 기억이. ㅋㅋㅋ 지들이 영어식으로 지어 놓은 캐릭터 이름을 공식 설정집에서 매번 다르게 적어 버리기도 했구요.
암튼 적어주신 글을 읽어 보니 대 해적판 시대에 존재감 없이 나와서 소수에게 읽히고 사라졌던 B급 만화들 생각이 나서 즐겁습니다. 그땐 그냥 무작정 막 나가는 상상력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정말 작가들이 지식이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다시 한 번 웃음이 나와요. 여러모로 재미난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엔 아무리 지식이 부족하다 해도 그런 식의 이야기는 못 그리겠죠.
크라잉 프리맨을 처음 봤을 때는 몰입해서 봤는데 한참 지나서 또 보니까 맨정신으론 못 볼 코미디였습니다. 작가도 독자도 아무것도 모를 때는 서로서로 걍 잼나고 좋았는데 이런저런 정보가 막 던져지는 시대가 되니까 뭘 재미있게 보기도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