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베벌리 힐스.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후반부에 대한 훌륭한 평들이 많고 나름대로 납득이 되지만, 전반부에 대해선 어떻게 이해하는게 좋은지 계속 의문이 들어서 완결이 안 된 글을 적어봅니다.
실제 런닝 티임에서는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전반부의 주인공은 베벌리 힐스와 록죠가 아닌가 싶은 정도입니다. (팻 캘훈은 서브 남주 같은?) 시작 장면이 아직도 강렬하게 기억에 있는데, 퍼피디아가 어떤 도로 위에서 긴장과 함께 앞 뒤로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불법 이민자를 해방시키는 장면으로 진행되지만, 영화를 처음 보는 상황에서 저 캐릭터는 누구고 (차량이 자꾸 지나가는 와중에서) 저기서 이제 뭘 하려는거지? 싶은. 그리고 후반부를 가르는 장면은 밥 퍼거슨이 집에서 잠에 깨어 윌라를 만나는 장면이라고 할까요. (가라데 장면이 먼저 나오던가요?)
후반부만 보면, 유전자와 가족은 상관 없고, 밥은 정신을 차리고, 우리의 싸움은 이렇게 이어진다고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면 전반부와 베벌리 힐스의 삶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건가? 싶습니다. 성별을 바꾼 악한 아버지 포지션이라고 해도, 약간 .. 스타워즈가 숫자 순서대로 상영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어떤 분들은 마지막에 베벌리 힐스가 깜짝 등장할 지 알았고, 그렇게 문제를 해결해줘도 좋았을텐데, 라는 말도 들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그래서는 이 영화 전체의 구조가 무너질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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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다른 영화라면, 후반부부터 시작해서 이상했던 아빠가 사실 진짜 혁명 조직원이었고, (제가 가장 로망을 느낀) 그저 그런 학창 시절에서 누군가 손을 붙잡으며 '나만 믿고 따라와'라며 탈출하는 걸로 비일상으로 진입. 평생 알 수 없었던 어머니의 진실이 밝혀지며 충격. 기묘하게 구성된 아임 유어 파더 씬. 매듭 짓는 마무리... (그리고 어머니 플래시백은 넣기 애매하므로 없음.) 같은 식이었을테니 상당한 비중으로 넣어놓은 전반부의 해석이 요청된다고 생각되더군요.
퍼피디아란 뜻처럼, 윌라의 엄마는 기능적인 캐릭터였을까요? 생각해보면 록죠는 힐스를 한 때 진짜 사랑한 것처럼 보입니다. 양 쪽에 대해서 배신이란 것인지. (저는 배신을 통해 동료들이 죽는 장면들이 냉정하고도 허무하게 그려져서 상당히 아프더군요.) 임신한 몸으로 기관총을 갈기던 씬이었나, 중간에 잠깐 나오는 대사처럼, (아마 이런 뜻이었던 것 같은) '성도 우리의 무기다'라는 식의 설명인 것인지. (록죠가 확실히 그 세계에서 탈락시킬 이유(?)를 만들어 줘서?)
여러모로 파격적인 캐릭터였고, 제 개인적으로 꽤 매력적이고도 흔히 보기 힘든 캐릭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유기적인 복잡함이 끝인지 궁금해서 두서 없는 글을 남겨봅니다. 남성 캐릭터였다면 이렇게 시나리오가 나올수도 없는걸 보면, 여성의 몸이라는 지점을 (록죠로부터 말해지는 구차한 강간-역강간 해석으로도) 다뤄본 것인가도 싶구요. 역시 육아와 혁명은 양립하기 힘들다? 좌파 혁명의 재생산은 유전자가 아니라 문화다? ㅋㅋ 관련 인터뷰나 리뷰도 좋습니다, 궁금합니다.
그냥 기능적이라고는 보이지 않았고 우리가 응원해야할 혁명측의 인물들도 극한적인 상황에 처하면(3~40년형이 나올 수 있다고 했죠.) 인간적인 약점을 드러낸다는 걸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입체적인 캐릭터로 봤어요.
인종차별자 파시스트를 혐오하지만 자기를 성적으로 원하는 록조와 SM틱한 관계를 자기도 조금은 즐기는 것처럼 묘사되고 마지막 편지는 그래도 반성과 진심을 보여줬다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냥 위선자라고 보는 관객들도 꽤 있는 것 같습니다만...
참고적으로 원작 바인랜드에서는 막판에 재등장을 한다고 하더군요.
오, 원작을 한 번 꼭 읽어봐야겠어요. 미리보기로 보니 정말로 남자가 집에서 깨어나는 걸로 시작하는군요. 플래시백도 쓰일 것 같고.
인종을 뛰어 넘는 연애 자체가 아직 이렇다할 영화로 크게 성공을 거둔 경우가 없던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이념까지 넘어선 관계를 다룬 미묘한 상황은, 음. 혁명적 존재들의 인간성.. 을 뛰어 넘은 TMI스러운 페티쉬까지 뒤집어 까보는 걸까요. 영화도 한 번 더 보고 싶네요. (그러고보면 혁명에서 풀려나는 무리들은 또 대다수가 남미 이민자들처럼 보이는 것도.)
영화를 보는 중에도, 육아를 시작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걸까, 긴장하면서 봤어요. 혁명적 세계관이 혁명적 육아법에 관한 답을 줘야 하는데, 영화가 그걸 이룩할 수 있나 기대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면서요. (심지어 영화는 밥 퍼거슨의 육아 기간도 슬쩍 건너뛰죠. 그래도 교육 기간은 살짝 보여주긴 합니다만.)
PTA가 원래는 바인랜드를 각색하려다가 실제 제작까지 거의 20년이 걸리는 과정에서 캐릭터들, 줄거리 큰 뼈대와 설정만 가져와서 현대로 배경을 바꿨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목도 바꿨겠지만
배신이나 육아 문제에서 보이는 개인적인 비도덕성은 그냥 그 인물이 가진 특징이고, 이런 인물은 어디든 있을 수 있다고 봤습니다. 조금 복잡하게 보인다면 그 이유는 주로 이런 캐릭터의 성별이 그동안은 남성이었는데 여성이 맡았다는 점 때문일지도요. 성적인 면을 포함해서 에너지가 넘치고 과격하면서 규정을 갑갑해하는 기질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혁명의 요체는 도덕적 신념이 기반이 되어야 할텐데, 개인은 비도덕적이고. 혁명 활동도 불법적인 행위들의 총합인데 비도덕이 엮이니까 퍼피디아의 의도나 동인까지 의심스러워지는 방향으로 미끄러지는 느낌이 있어요. 저도 성별전환 버전으로도 꼼꼼히 생각을 해봤는데, 그랬다면 역시 이 영화가 이 사람을 보라, 는 식으로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요. 감독이 의도한 정점의 이미지가, 산달이 다 되가는 베벌리 힐스가 기관총을 갈기는 티쳐 포스터 장면이란 생각도 들고요. 확실히 뒷부분만 보면, '행방불명되었고, 나중에 악당으로 밝혀지는 아버지' 롤을 따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럼 구구절절한 앞 부분은 뭔가 싶습니다.
혁명의 주체나 메시지라면 몰라도 그걸 실행하는 개인이 꼭 도덕적으로 완벽하고 깨끗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극단의 악을 몰아내기 위해 우리도 극단적인 액션이 필요해서 테러리스트가 되는 사람들 이야기니까요. 다만 퍼피디아는 밀고 때문에 너무 선을 넘는 거죠.
오, 개념화가 너무 명쾌하네요. 다른 것보다 저는 이 감독의 작품을 이걸로 처음 보았어요. 지금까지 감독이 써온 이야기의 정반합 같은 느낌이군요. 미친 젊은 것들과 닶없는 늙은 것들이란 말에 좀 터졌습니다. 저는 록죠가 옷 빼입고 꽃다발 들고 들어오는데 퍼피디아가 유리창에 남겨놓았던 쪽지가 떠오르네요. 갑자기 등장한게 아니라 꾸준히 붙잡고 있던 캐릭터라면 납득이 되네요. 앞으로도 꾸준히 그 캐릭터상을 팔 것 같으니까요.
찾아보니 베네치오 델토로가 연기한 인물의 이름은 세르히오 생카를로스라는군요. (이렇게 불린 적이 있는지? 레오나드로가 뭐라 불렀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생각해보면 윌라의 실질적인 사부이고, 전체에서 문제를 진짜 해결하는 사람이기도 했죠. 저는 이 캐릭터와 이 캐릭터가 이끄는 남미 일원들의 다산성이 크게 느껴지더군요. 이상한 단어일수도 있지만, 이민자를 혐오하는 시선으로 이 영화를 본다면, 처음부터 일단 충격이겠고 (반정부 단체!) 이후 단속으로부터의 탈출 롱테이크 씬에서도, 끊임없이 확장되면서 노출되는 군집적인 사람들에게 공포를 느낄거라고 생각되었어요. 델토로는 그 친구들의 탄탄한 리더기도 하죠. 최근 읽어보는 다문화 혐오자들은, [유럽의 죽음], [프랑스의 자살], [복종] 같은 이름으로 책을 내기 마련인데, 그들에 대항하는 사람으로서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로 잘 조성한 것 같습니다.
굳이 굳이 록죠를 살려다가, 무균실 같은 방에서 죽게 만든건 초반 불법 체류자 시설에서 보여졌던 훨씬 생기 넘치는 '아주 많은 사람들'의 재생산성과 비교하련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더 어떤 영화를 낼지 궁금하기도 하고, 이 전의 영화들이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궁금해서 [바인랜드]를 빌리기도 했는데, 이 소설을 읽어서 뭔가 알아차릴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 생각보다 두껍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