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B사감과 러브레터


 1.어느날 B사감과 러브레터라는 짧은 소설이 생각나서 친구에게 물었어요. '자넨 B사감과 러브레터에 나오는 B사감이 우리 나이 또래라는 걸 알고 있었나?'라고 묻자 친구는 그랬나라고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사실 나도 위키를 찾아보기 전까지는 몰랐어요. 소설에서 본 걸로는, 느낌상 B사감은 50대 초중반...많으면 60세 정도의 느낌이었거든요. 만약 2025년에 그런 여자가 있다면 분명 5~60대였겠죠. 세상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훨씬 젊게 사니까요. 30대 후반의 여성의 묘사라고 하기엔 소설의 묘사는 너무 늙은 느낌이죠. 



 2.그런데 소설을 봐서는, B사감이 어떤 인간인지 알 수가 없어요. 내가 보기에 B사감은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 본인에게 부여된 틀 안에서 살고 있거든요. 


 만약 B사감이 현대인이었고 어느 기숙사의 사감을 맡고 있었다면? 그녀의 입체적인 면모가 발휘되었을 수도 있어요. 극본 읽기 모임에 가입해서 주말마다 극본 모임의 에이스가 되었을 수도 있고 매칭 앱에 가입해서 주말마다 원나잇이나 난교 파티를 즐겼을 수도 있죠. 아니면 드센 성격과 괜찮은 연기력으로 유튜버를 해서 10만 구독자 정도는 모았을 수도 있고요. 


 아니면 완장을 좋아하는 습성상, 정치 유튜버를 하거나 페미니즘 운동의 선봉에 서서 완장의 맛을 좀 즐기는 삶을 살았을 수도 있고요. 이도저도 못 됐어도 커뮤니티에서 선동을 하거나 악플을 달며 사는 재미라도 있었겠죠. 어쨌든 소설에 묘사되는 B사감의 모습을 보면 여러 가능성이 있을 수 있거든요.



 3.사감과 야소꾼이라는 완장의 도움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B사감은 그럭저럭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로 묘사돼요. 그냥 고집이 세다고 하기엔 학생들을 틀어쥐고 사생활까지 통제를 잘 하고 교장이나 다른 직원들이 압박을 넣어도 버텨내죠. 완장을 차고 있어도 저렇게 완고하게 굴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거나 강약약강으로 굴거나 할 텐데 B사감은 그렇지 않아요. 


 한데 문제는 B사감은 24시간 내내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점이죠. 당근에서 신용도 높은 중고거래꾼이 될 수도 없고 듀나게시판에서 멋지게 정치글을 한페이지 쓰는 평론가가 될 수도 없고 유튜버가 될 수도 없어요. 자기 자신으로 살거나, 자신에게 잠재된 고점을 보지 못한 채로 그냥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는 거죠. 그녀에게 허용된 유일한 컨텐츠는 남들에게 온 러브레터를 보며 본인에게 새겨진 결핍을 발산하는 것뿐이예요.



 4.휴.



 5.만약 내가 저 시대에 B사감같은 입장이면 어땠을까? 나의 고점을 사람들이 알아줬을까? 나에게 숨겨진 고점이 있다는 걸 나 자신은 알아줬을까? 어떻게 봐도 저 시대에 태어났으면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에 매여서 살아갈 수밖에 없단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강약약강으로 살면서 정치질을 잘 하거나, B사감처럼 남들에게 굴하지 않고 본인의 아집이라도 지키며 사는 것도 못했을 거예요. 저 시대에 태어났으면 평생을 '내겐 숨겨진 재능이 있어...'라고 중얼거리며 살 수밖에 없었겠죠.


 

 6.그런 관점으로 생각해 보면 B사감은 소설에서 묘사되는 만큼 폄하될 인물은 아닌거예요. B사감은 본인이 찬 완장을 최대한 활용해서 쥐잡듯 잡을 놈은 잡고, 교장이나 직위 높은 사람들의 자제들에게는 살살거리고 편의를 봐주는 식으로 살 수도 있었으니까요. 적어도 그녀는 본인에게 맡겨진 롤..엄격하고 고집스러운 감시자의 역할을, 상대를 가리지 않고 지켜내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거예요. 언제까지 그렇게 살았을지는 알 수 없지만 행복하지는 않았을 거란 건 알죠. 


 물론 나는 B사감이 강직한 성격이라서 그렇게 살았던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적을 많이 만들면서 살았던 이유는 그녀의 내면에 쌓인 분노 때문이었겠죠.



 7.과거에는 정말이지 그랬어요. 자신의 고점을 보지 못하고 끝을 맞이해야만 했던 수많은 B사감이 있었을 거란 말이죠. 분명히 하나쯤은 뾰족한 재능이 있고 본인 스스로도 그걸 자각하지만 꺼내볼 기회가 없이 살아야 했던 사람들 말이죠.


 생각해보면 낭중지추라는 말은 정말 무서운 말이예요. 기어이 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송곳같은 재능이어야 천하에 재능을 알릴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요. 누군가가 봐주거나 꺼내 주지 않으면 영영 꽃피울 일 없는..적당히 뾰족한 재능은 일평생 빛을 볼 기회가 없었겠죠.



 8.친구가 보는 한 유튜버가 생각나서 말했어요. 


 '그러고보니 자네가 보는 그 유튜버 있잖아. 아무 커리어도 없으면서 그저 자신있게 지껄이는 재주 하나로 구독자 모은 그 여자말이야.'라고 말하자 친구는 '아, XXX말인가.'라고 대답했어요. 그래서 말해 줬어요.


 '내가 보기에 그 여자보다는 B사감이 더 재능있어. B사감이 요즘 살았으면 아마 구독자 10만명쯤은 모았을걸. 그리고 그걸로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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