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종말, 로우다운.

그레이엄 그린이 쓴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제목을 책 표지에 적힌 그대로 영어로 적고 싶네요. [THE END of the AFFAIR] 

예상과는 다른 소설이었습니다. 아마 많은 독자들이 저처럼 예상과 달랐다고 느낄 것 같아요. 육체를 갖고 이루어지는 인간의 사랑이 이별로든 죽음으로든 그 육체성이 끝이 나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작가와 더불어 탐구할 수 있는 책입니다. 에로스적 사랑과 아가페적 사랑 사이에서 인간이 갈등하고 저항하는 내용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에로스, 아가페 이런 단어 참 오랜만에 씁니다. 읽는 동안은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었으며 읽고 나서는 선뜻 던져 둘 수 없어서 다시 읽어야 되는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리가 될 이야기도 아니라서 그냥 묵혀 두고 싶기도 합니다. 

여러 작가들의 칭찬 사례 중에서 포크너의 말에 있던 '진실하다'라는 표현이 와닿습니다. 이것은 분명하게 와닿았어요. 화자가 어처구니 없는 찌질함을 보이지만 그것을 가리는 위선과 그것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적절한 순간에서 작가의 노련한 솜씨를 느낍니다. 그리고 생이별이든 사별이든 영원히 볼 수 없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 입장이라면 어떤 페이지들에 매우 이입할 수 있습니다. 답은 없어도 동일한 감정을 나누며 약간 위로도 받아요. 잘 쓴 진실한 글이 주는 큰 효용입니다. 독자로서는 인물들과 이야기의 진실성에 있어서는 의심이 들지 않습니다. 이 작가도 다른 작품을 챙겨 읽을 나의 작가 목록에 올립니다. 혹시 읽을 소설 찾으신다면 추천드립니다. 초겨울의 스산함과 어울리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감성적이기만 한 소설은 아니에요. 특히 뒷 부분은 중반까지의 촉촉함을 바짝 말려버리는 면이 있었습니다.


디즈니+에서 '로우다운'을 봤습니다. 쏘맥 님 글에도 댓글로 썼는데 주인공이 대책없는 독고다이 고발기사 기자로 너무 마구잡이로 일하는 것 같아서 이 부분은 약간의 짜증 지수가 생깁니다. 그냥 진실에 대한 믿음 하나로 험한 세상에서 얻어 맞고 다니면서 겁은 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좌충우돌하며 가는 범죄 추척 코미디인데, 조금 양해하고 끝까지 보고 나니 즐거웠다는 감상이 남습니다. 다음 시즌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오면 챙겨 볼 거 같아요. 에단 호크가 온몸을 던져 진실, 진실, 하고 다니지만 그의 최고 원동력은 인간에 대한 연민인가 싶은 표정을 지을 때가 있어요. 주인공 캐릭터도 좋았고 운영하는 헌책방의 피고용인 역할 비롯해서 이런저런 조연들이 다 정이 가게 만들어져 있어요. 그래서...

이 시리즈에서 신경림의 시 '파장'이 떠올랐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찾아서 읽고 아래 옮겨 봅니다. 엉뚱하지만 오클라호마 털사의 작은 동네에서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사는 모습이 우리 식으로 보자면 딱 이런 것 같습니다.ㅎㅎ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시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 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 글 잘 읽었어요. 두번. 감사합니다 1951년 작이네요. 제가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박현주님이 번역한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 연작이어요.




      그 이후로 책을 한동안 안읽었는데... 초등학교 시절 수영 강습 때 합격증(?)을 분명히 받았는데 어른이 되어 수영하는 법(?)을 


      잊어버린거 같은 느낌이어요>_<




      thoma님 글 오늘도 좋아요. 아가페라는 단어는 정말 수십년만에 듣는거 같아요. '오디오북'이라는게 있다는데 저와 맞으면(?) 


      한번 고려해보고싶네요. 제가 어머니 속을 많이 썩였는데 조금씩 만회해서 당신 판단하시기에 '진실하다' 쯤 까지 온거 같아요ㅎ




      흠 집에서 영화를 보는 문제는... 문화 생활은 전부 밖에서 하고 집에서는 음악 들으며 완전히 쉬어요.


      2010년부터 그렇게 살았는데 익숙해서인지 귀찮아서인지 바꾸고 싶지않네요. 딱 한번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있었는데 브라이언 드 팔마 전기 다큐 나왔을 때요. 제목이 [드팔마]여요.




      시는 울림 있네요. 저는 예전에 김종삼의 시를 올리려고 했어요. '호수돈여고' 생에게 채인 대목 있는 거요ㅠ.ㅠ


      앞으로도 좋은 시 있으면 가끔 올려주셔요.


       

      • 쓰신 글을 보면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점점 각별해 지신 것 같았습니다. 그 마음을 어머니도 아시는 것 아닌가 싶어요. 


        학교 다닐 때 신경림 시인은 좋다는 생각을 한 시가 몇 편 있었다면 김종삼 시인의 시는 모두를 좋아해서 그때 산 시집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진 않았는데 갈수록 넓게 알려지고 좋아하는 분들도 많아지는 듯했습니다. 참 아름다우니까 그럴 수밖에요. 호수돈 고녀생은 '비옷을 빌어 입고'라는 시에 나오는데 개성에 있었던 호수돈 여고는 박완서 작가님이 잠깐 다니셨던 학교였다고 합니다.

        •  ...보들레르가 ‘긴 시는 짧은 시를 쓸 수 없는 사람들이 생각해 낸 것이다.’고 말한 것을 그대로 시작(詩作)에 옮기듯이 말이다. 


          그의 <성하(聖河)>라는 시는 그래선지 딱 석 줄로 되어 있다.


             “잔잔한 성하(聖河)의 흐름은


              비나 눈 내리는 밤이면


              더 환하다.“


          시인 김종삼(金宗三) : 네이버 블로그

          • 최근 어떤 책에서 본 내용과 비슷하네요. 친구가 편지를 보냈는데 여러 장으로 길이가 꽤 됩니다.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여요. '짧게 쓸 시간이 없어서 길어졌네. 미안하네'

    • 로우다운 즐겁게 보셨다니 제가 다 기쁩니다!!! 옮겨주신 시까지 읽으니 제가 시리즈물에서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가 바로 등장인물들에 대한 정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어요. 진짜 다들 좀 귀엽고 웃겼어요.
      • 그렇죠. 팍팍한 삶을 저런 마음과 자세로? 사는 사람들이 털사 변두리에 가면 있을 듯해요. 즉흥 대사도 꽤 있지 않을까 싶은 서로 투닥거리는 대사들이 재미났어요. 이거 다음 시즌 나오면 좋겠어요... 

    • 신경림 시를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첫 행부터 기억이 팍! 하고 살아나서 웃었습니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거 갖고 선후배들과 낄낄거리며 농담 따먹기 하던 게 어언 대략 30... (쿨럭;)


      아. 갑자기 쌩뚱맞게 그립네요. 그 양반들 지금도 다 잘 지내고 계시고 연락도 되긴 하는데 본 적은 오래됐어요.

      • 저 행은 인용도 많이 되잖아요. ㅎ 


        소설은 못 느끼겠는데 시는 읽을 당시의 상황이나 사람을 기억나게 하는 것을 느낍니다...대략 30...그 정도 오래 전엔 시가 또 흥했던 시대이기도 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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