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있음] 석류의 빛깔.
동네 영화관에서 독특한 영화를 틀어준다고 해서 약간 무리를 해서라도 평일 저녁에 영화관에 가 보았습니다. 혹시 애인을 꼬셔볼까 했는데, 예전에 지인 영화광 때문에 본 적이 있는 영화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같이 봤던 사람들 평이 전체적으로 별로 안 좋았다고. 그래서 일반인(?)인 제가 봐도 꽤 지루할 수 있겠구나 하고 관에 들어갔어요.
저도 예술(?)영화라는 표가 붙은 영화들을 그렇게 잘 보진 못 합니다. 같은 동네 영화관에서 본 [언더 더 스킨]도 몇몇 이미지는 남아 있지만, 어리둥절하며 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꽤 피곤한 상태로 가서 좀 졸았던 것 같기도. 김영하의 말을 빌리자면, 소설 읽는 사람들은 소설을 더 잘 읽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기 마련이라는데, 영화를 보는 사람들 중 일부도 영화를 더 잘 보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겠죠? 저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고... 여튼 이런 영화들을 눈 껌뻑거리면서,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짜릿하게 내 뇌가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망상을 펼치지만 역시 뇌가 그렇게 안 생겼으니 그냥 보이는대로 보는 걸 받아들이게 됩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이 영화를 어떻게 복원할 수 있었는지 구구절절 나옵니다. 이 작품이 그렇게 사랑받았구나 하는 상념 이후에, 동글동글한 글자들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는데... 제가 이 영화를 그 당시 볼 수 있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꾸준히 궁금하더군요. 이미 쇼츠에다가 기괴한 AI 영상들로 가득찬 이 시기에 이국적이지만 간결하고 기묘한 이미지들의 나열이 해석되지 않고 통과되더라구요.
보면서 이런 저런 추론만 가능했습니다. 감독은 스크린을 철저히 통제하는 통제광이고, 삼차원 화면을 마치 도해를 위한 디자인 그림처럼 개념물들을 꽉 채우길 바라는구나. 영화를 보는 내내 문서의 종이처럼, 카메라 가까이 놓인 면에서 꺾인 이차원 세계가 상당한 폐쇄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극의 후반부 쯤에, 어떤 힌트를 통해 이 영화가 기독교적 상징으로 가득 차 있는 거구나 깨달은 후에는, 조금 실망스러워졌습니다. 나오는 이미지의 총체적 맥락을 감독이 완전히 독단적으로 만들어낸 세계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요. 길잃은 양떼들, 부숴진 탑, 검은 옷을 벗고 흰 옷을 입기, 산제물...
그래도 보러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회기에 영화관에서 봤을 다른 사람들과의 희미한 선도 느껴졌고, 시간이 흐를수록 몇몇 이미지들이 마음에 고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통제광처럼 보이는 감독이 통제할 수 없었던 세 번의 지점이 특히 마음에 남습니다. 하나는 시인이 어떤 메마른 산으로 쫓겨나는 장면인데, 영화 전체에서 아까 말했던 폐쇄감이 없는 단 하나의 장면이었습니다. 저 멀리 사막같은 자갈투성이 산이 보이는데, 시인은 쫓겨나고 있지만 스크린 너머로 볼 수 있는 그 거리감이 너무 시원해서 누군가 뇌를 긁어준 기분이 들었습니다. 혹시 여기서 끝인가? 라고 생각했지만 이후 '노래하시오', '죽으시오' 신으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다른 장면 하나는, 소 세 마리를 잡아서 아마도 번제물로 바치는 장면이었을거라 생각됩니다. 필름에는 그 소들의 목을 따서 죽이는 장면까지 다 들어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 장면까지는 없지만 피가 흐르고 소 속의 부속물들과 여러 조각들로 잘라내는게 고스라니 실렸습니다. 다른 많은 것들은 통제가 가능하지만 흐르는 피와, 내장들, 고깃조각들은 깔끔하게 담을 수는 없더군요. 나오던 닭들의 다리를 묶어서 위치를 완전히 고정하는 식의 통제를 넘어서는, 요즘 시대에 보여주지 않는 날 것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매일 매일 먹고는 있지만... 현대 사회가 꽁꽁 숨겨놓는 그 것을, 고시대 산제물을 바칠 때 경험했던 그 감각이 느껴졌달까요.
마지막 통제불능 장면으로... 아마 시인이 죽는 장면 같은데, 띄엄띄엄 켜져 있는 촛불들 가운데서, 위에서 내려다 비치는 장면이었는데, 하얀 닭들을 사방에서 시인에게 던져 찍은 장면이었습니다. 이건 제 착각일 수도 있지만... 닭들의 가슴팍에 다들 빨간 줄이 그어져 있더군요. 제가 느끼기로 그 닭들이 던져진 후에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못한 이유는, 죽어가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죽음에 대해 담기 위해 실제 죽음을 담은 게 아닌가 싶었어요. 그게 사실이라면, 아무래도 제가 보아왔던 영화들 중에서 가장 기괴한 장면으로 남을 것 같더군요.
보고나서 며칠 곱씹은 이후, 살짝 찾아보니 씬 별로 다양한 해석이 있나보더군요. 당장은 찾아 읽고 싶은 생각 없이, 왜곡된 해석으로 얼마간은 남겨놓고 싶더라구요. (그리고 헛생각이지만.. 모든 영화들이 이런 식으로 찍히는게 클래식인 시대를 상상해봤습니다. 그렇게 최신 영화를 보다가 이 영화를 보면 이해가 좀 더 팍팍 되었으려나? 하는 마음에.)
요번 개봉으로 보신 분들이 계실텐데 다들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네요.
강렬한 이미지로 승부하는 뭔 내용인지 알 수 없는 영화... 를 그래도 아주 유명한 것들은 거의 챙겨보긴 했는데 이 영화는 전혀 몰랐습니다. 무식한지고...
근데 젊었을 땐 이런 영활 봐도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버텨내며 보고 생각도 하고 그랬는데. 요즘엔 힘들더라구요. ㅋㅋ 웨이브였나 티빙이었나... 에 있는 데이빗 린치 단편선을 보면서 느꼈어요. 아 이제 난 이런 영화를 소화 못하는 몸이구나. ㅋㅋㅋ 그래도 그런 난해한 영화를 이렇게 글로 정리해내신 걸 보니 참 대단합니다. 저는 안 봐서 말씀 못 보태드려 죄송합니다만, 글은 잘 읽었습니다!
ㅋㅋ 쓸까 말까 고민했는데 쓴 보람은 있구만요. 아름답다, 몽환적이다 하는데 저는 거기까지는 못 가나 보더라구요.
저는 아무 생각 없이 혹시 풀 영상이 유투브 어디에 있나 싶었더니, 그런 건 아닌 것 같더군요. 시인이 약간 어이없이 실망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부분을 짤로 만들고 싶었는데 말이죠.
그래도 이 영화는 시인의 일대기를 다뤘다는 영화라서, 중간중간 시의 일부 같은게 텍스트로 대놓고 들어갑니다. 그래서 그 구절들을 곱씹어본다면 아예 무맥락은 아니었어요.
벌써 내용들이 잘 기억 나진 않는데, 대략 삶의 고통과 덧없음을 다루고 있어서, 뭐 인생 그렇지 하며 봤네요 ㅋㅋ.
근데 사실 전 본문에 언급하신 '언더 더 스킨'은 그냥 재밌게 보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강렬한 이미지로 승부하며 스토리는 흐물흐물한 작품이었지만 그래도 그 이미지들이 대충 알아 먹을 수준은 됐던 것 같아요. 덕택에 별 거 아닌 스토리에 매력이 부여되기도 했구요. 하지만 외계인이 아닌 시인이라니. 그것도 실존 인물이라니. 역시나 제겐 무리입니다 무리... 하하;
길거리 장면들, 유혹(?) 당하며 늪으로 내려가는 사람들, 퍽하고 터지며 뭔가 물 내리는 것 같은 장면들, 흑백과 컬러...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대놓고... 말씀하시니 띄엄띄엄 떠오르네요. (제가 좀 난해하게 생각했던 대표적인 장면이 아마 맨 처음 오프닝이었던 것 같은데, 어떤 반짝이는 LED 계측기 같은걸 초점을 흐리게 해서 깜빡이며 이상한 반복 기계음 같은게 나는 장면이었을 겁니다. 이런 장면들은 힘들더라구요.)
그런데 보통 ㅋㅋ 사람들은 외계인보다는 실존인물 시인을 더 쉽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크하하
놓쳤네요. 예전 영화이기도 하고 그래서 호기심은 있었어요.
본문에 쓰신 그대로 '시간이 흐를수록 몇몇 이미지들이 마음에 고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영화가 있어요. 내용은 모르겠고 이미지들이 문득문득 떠오르는 거요. 어떤 영화들이 주는 독특한 영향 같기도 합니다.
올 해, 딱 한 편만 보고 후퇴한 전주국제영화제의 영화 이미지가 이따끔씩 기억에서 떠오릅니다.
찾아보니 [봉인된 땅]이라는 가장 오래된 이란 여성감독의 영화라고 하는데, 디지털 복원이 잘 안 되었는지 전체적으로 희끄무레해서 잘 안 보이는 화면을 뚫어져라 봤던 기억입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한국어 자막을 쏘기 위한 자막 영사기가 너무 밝았던 것 같기도 하네요.)
거의 실시간처럼 진행되는 당시 여성의 하루를 고정된 카메라로 계속 보는 것인데, 이국의 70년대 앞마당 장면을 질리도록 봤거든요. 아궁이도 없이 바깥에서, 닭과 병아리들은 옆을 계속 쏘다니는데 아침을 차립니다. 주인공인 여성은 거의 말을 하지 않고요. 그런데 중간에 어떤 약간의 아주 가벼운 일탈 장면은 참 기억에 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