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있음] 아바타: 불과 재.

요새 주말에 영화 한 편을 보면 하루가 송두리채 날아갈 수 있더군요. 9시 반에 보기 시작해도 살짝 점심 때를 넘겨서 식사를 하게 되더라구요. 그건 그렇고.


초반에 소소한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디지털 스크린인데, 초첨이 다 날아간 영상을 틀어주더라구요. 롯데시네마여서, 희망퇴직도 한다고 하니 소스를 잘못 다운 받아서 틀 정도로 문제가 생긴건가? 아니면 초반 장면이 일종의 회상 장면인데 특별한 효과를 넣은건가? 하며 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3D 소스인 것 같아서, 대박 실수를 했나보다 듀게에 올려야겠다 하고 돌아보니 다들 3D 안경을 쓰고 계시더군요. 제가 예매한 표가 아니라서 새까맣게 몰랐고... 조심히 나가서 입구 앞에 사람 없이 바닥 바구니에 쌓인 3D 안경을 조심스레 2개 챙겨 들어왔습니다.


놀랍게도(?) 아바타를 3D로 본 게 이번이 처음입니다. 저희 동네 IMAX는 문을 닫아서, 작은(?) 스크린에서 3D 상영을 할 줄도 몰랐고... 결론적으로는 확실히 3D를 목표로 찍은 영상미라는게 따로 있고, 그런 면에서 꽤 마음껏 즐겼습니다. 좀 늙은이처럼 촌스런 감각일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세계가 훨씬 질감 있게 들어오고, 인물들의 감정선도 또렷하게 느껴지더군요. 대령이 애인이랑 사귈때는 평면 스크린 영상보다 좀 더 남사스럽게 느껴지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ㅋㅋ. 저는 개인적으로 3D니까 좋았던게, 보통 영화에서 나오는 배경들은 겉치장처럼 느껴지기 마련 - 찍는 사람 입장에서 대충 컷 눈속임해서 이어 붙일때도 잦고 - 인데, 여기서는 카메라 컷이 바뀌어도 유기적으로 연결된 공간 하나라는게 꽤 잘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영화에서 느껴지는 가능성의 갈등 축은 제게 크게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핑크 스킨 친구를 제이크 설리네 가족으로 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갈등이었습니다. 적어도 제이크는 나비족 껍데기라도 입고 있지만, 스파이더는 인간 그 자체니까. 아무래도 영화가 추구하는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이 친구가 추방당할 일은 없겠지만, 종족성의 얕은 경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용들은 내실 있게 들어왔습니다. 특히 네이티리와 제이크가 싸우는 장면은 근본적으로 균열된 지점을 명확하게 짚고 있기도 했고요. 봉합되는 장면은 아브라함과 이삭 일화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그림이 되긴 했지만, '혼혈' 가족의 안정화라는 주제를 놓치 않고 계속 밀고 나가는게 보기 좋았습니다. (당연히 백인들 맥이려고 스파이더를 핑크 스킨으로 둔 거지만... 스파이더가 흑인이었다면? 황인이었다면? XX 스킨?... 절대 안 되겠지... 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더군요.)


다른 축은, 우리 대령이 나비족 새인생을 살아갈 것이냐 말 것이냐 결정인데, 요 부분은 영화의 가치와는 상관 없으니 마지막까지도 개인적으로는 예측선을 그리게 되더군요. 아쉽게도 (혹은 다음 편으로 넘어갔을 수도) 대령이 넘어가주진 않는데, 마지막 이혼한 게이 커플 사이 자식 처럼 보이는 장면에서, 대령이 절벽으로 뛰어 내리는 건... 개인적으로는 시나리오 작가가 이 상황을 어떻게 봉합할 지 머리 쥐어뜯다가 그냥 질러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아니 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영화 전체적으로 그나마 (선택권이 있는) 자의식을 대령 쪽이 훨씬 가지고 있는 것 같았고, 그래서 더 찰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이크네는 자기들 속이 쓰리긴 하겠지만 그냥 스파이더를 입양하면 되는데, 대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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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쓸데없는 소리를 덧붙여 봅니다. [세계의 주인] 이후 윤가은 감독의 인터뷰를 몇 개 봤는데, 한국 관객들이 세계 관객들보다 훨씬 영화의 개연성에 대해 혹독한 요구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란 이야기가 있더군요.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디까지 '영화니까-'하고 대충 넘어가나 좀 궁금해지기도 했고, 그 말이 나름대로 납득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다들 영화 이야기를 할 때 개연성 이야기가 빠지지는 않는 것 같으니까요. (그래도 그런 이야기하는게 너무 재미있는데...)


일단 탈 것들 문제인데, 뇌내 연결이 가능한 생체 탈것들이 그만큼 소중하게 다뤄지지 않는 것 같아서 영 신경 쓰였습니다. 이름 있는 한 둘 말고는, 약간... 슈퍼 마리오 게임의 요시 버리듯이 버려버리는 경우가 잦아서 이게 진짜 맞나?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자주 있었어요. 차라리 생명 없는 기계들 타고 다니는 인간들이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면) 더 존중하고 있는거 아녀 싶을 때도. 개중에서 힌덴부르크 비행선이 떠오르는 거대 비행선이 침몰할 때 같이 빨려들어가는 조타용 풍선 생명체는 너무 불쌍해보였습니다. 아무리 봐도 불씨에 위험해보이는데 초 저고도를 항행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심지어 계곡풍이 불면 정말 위험해보이는 절벽 사이를 굳이... 


그리고 대망의, 아바타마다 반복된다고도 말해지는 마지막 장면은, 저는 좀 다르게 읽혔습니다. 일단 제임스 카메론 씨의 인간들 다 죽여 욕망이 언제나 잘 투영되는 마지막은 그렇다치고, 가장 대놓고 보여지는 툴쿤 장로회의 번복을 보면, 복수는 복수를 부르고 피는 피를 부른다, 우리는 그 피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군가와 싸우거나 죽이지 않겠다, 라는 비폭력 주의를 이끌고 있는데, 우리 나비족 친구들이 그걸 '복수는 복수로- 피는 피로-'로 설득을 성공하거든요. 그래서 다 죽여버린다- 로 넘어가는데, 저는 이게 전혀 클리셰스럽지 않고 반-클리셰스럽더군요. 보통 우리편 안 들어줄 것 같은 중립 애들이 전쟁에 막바지 참여하는 거야 클리셰이긴 하지만, 보통은 피의 소용돌이에서 비폭력으로 가는게 기본 아닙니까? 그에 덧붙여진 '그들을 다 죽여버려라!'고 일갈하는 우리 칼날여왕.. 아니고 여성 예수.. 아니고 키리 씨는 구세주라기엔 너무 기묘한 존재 아닙니까? 융합과 절멸 사이에서 좀 기묘한 걸 본 기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천국 장면은 쫌 오소소 소름이 돋았는데, 와.. 죽어도 혈연 세계에서 분리되지 못하고 영원히 그들과 저승을 함께 살아가야 된다는게, 좀 기괴하더군요. 약간 뽀샤시 효과를 준, 행성 네트워크의 일부처럼 그려지는 장면은, 이게 긍정적인 결말 맞아? 싶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죽어도 죽지 않는다면, 다들 그렇게 업로드되서 살 수 있다면, 실제 삶은 또 무슨 의미가 있고, 그 DB 저장소인 에이와 식물?만 살리면 별 문제가 없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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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야기를 좀 더 덧붙이면, 저는 이 영화의 끝이 대령의 제 3의 길을 파며 끝날 줄 알았어요. 돈줄을 쥔 높으신 분들의 의지와 더 합치되는 듯한 대령과, 식민지 실무진들과 훨씬 가 닿는 대장(프랜시스 아드모어라는군요)와의 갈등이 심해져서, 마지막 대전에서 대장은 거의 모든 병력을 잃고, 주거지에서 병력을 온존한 대령이 그 동네의 운영권을 먹고 나비족 세계와 적대적인 인간-나비족 혼종 세계를 더 굳건히 하는 결말일지 알았는데, 신의가 깊어서 그런가 빠르게 지원와서 모든 병력을 꼴아박더군요. 그런데 이 영화가 사실 2편과 3편이 하나였다 쪼갰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쩔 수 없었구나 하지만 내가 너무 슈퍼히어로 영화에 익숙하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영화 하나에서 내용이 다 끝나야지, 다음 번을 기대하면 큰 빌드업을 쌓는 것 같은건 잘 안 한다는 거죠. 그런 것 치고는 뒷 편도 너무 예정되어 있는게 아닌가 싶고.


단점도 명명백백한 영화라서 뭐 대놓고 긁을게 있나 싶습니다 ㅋㅋ. 바랑은 그렇게 매력적으로 만들어놓고, 뒤로 갈수록 캐릭터 취급 이거 맞습니까 싶다거나. (다음에 더.. 나오겠지요? 새로운 캐릭터를 더 만들거면 후반 취급을 좀 더 좋게 해주면...) 할 수 있는건 열심히 잘했고 못하는 부분도 또 열심히 굴을 팠다고 할까요. 확실한건, 다음 영화 나와도 3D로 꼭 볼 겁니다. 2 때도 3D로 볼 껄 그랬어요. 영화관이 남아 있다면 말이겠지만요. 아, 그리고 2보단 훨 나았다는 말은 해놓고 싶네요.


P.S. 아바타 개념 안 나오는데 언제까지 아바타로 할 것이냐, 에 대해서는.. 영화 찍는 다큐를 조금 보니 사람들이 CG 아바타를 타고 다들 영화에 나오는 거의 모든 행위를 모션 캡쳐로 하고 있는걸 보니, 저게 진정한 아바타구나 싶더군요.

    • 전 '레디 플레이어 원'이 3D 영화인 줄도 모르고 예매했는데 2D를 골라 버렸었죠. 그래서 영화 다 보고 나온 후에도 며칠 후에야 이게 3D라는 걸 알고 황당해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그땐 이미 다 내려 버려서 3D로 볼 수도 없었고... 재개봉 원하지만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겠죠. ㅋㅋ




      한국 사람들이 '이게 말이 돼?'에 훨씬 엄격하다는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쪽에 그렇게 신경을 써야 보다가 깨는 느낌 없이 몰입하기 좋으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은 하는데, 가끔은 거기에 너무 집착하느라 상상력에 크게 제약을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외국 B급 장르물 같은 것들 보다 보면 정말 개연성 내다 버리고 폭주하는데 그게 재미고 매력인 작품들도 종종 보이고 하니까요. ㅋㅋ 결론은 한국 관객들이 지금보단 좀 더 관대해져도 좋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을 하네요.

      • ... 전 지금 알았습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3D... 듣고 보니 회상되는 여러 지점에서, 아... 싶군요. 함께 3D 재개봉을 염원하는 어깨동무를 합시다 크흡.. 그런 거였다니... (그런데 어쩌면 재개봉 될지도 모릅니다. 극장들이 '극장에서만' 제공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말라죽어가면서 계속 몸부림 친다면 말이죠.)




        개연성 몰두, 이 부분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할 거리 같습니다 ㅋㅋ. 그런다고 하면 대체 왜 그런 것인가. 그렇다면 영화에서 도당체 뭘 얻고 싶은건가. 역으로 개연성이 떨어지거나 완전 박살내는 영화들에서 느낄 것은 또 무엇인가... 저도 당연히 한국인인지라(?) 제가 개연성을 요구하는 이유를 떠올려보면, '엣, 그걸 그렇게 한다고?'하고 몰입이 팍 깨지기 때문일 것이고, 기괴찬란하고 앞뒤 하나도 안 맞는걸 미리부터 깔아두는 뮤지컬 영화(몇몇 인도 영화 포함)들은 좀 더 관대하게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차피 갑자기 모여서 실세계에 없는 노래 부르기, 춤추기 타임 있을테니까...) 개연성 바닥인데 한국에서 대박 터트린 영화가 뭘까 그런 궁금증도 드는군요 ㅋㅋ.

        • 호옥시? 하고 검색해 보니 이미 2023년에, 그것도 3D로 재개봉을 해줬네요. 물론 제가 사는 동네에선 안 했구요... ㅠㅜ




          한국인들도 나름 융통성은 있는 사람들이니 대체로 코미디 장르의 영화들 볼 땐 개연성을 덜 신경쓰는 것 같기도 하구요. 개연성 박살 & 흥행 대박의 예시라면... 저 개인적으론 도저히 용납이 안 되었던 '너의 이름은' 생각이 나네요. 보고 나서 "아니 다들 왜 이 황당한 문제를 지적 안 하는데!!!" 하고 홀로 짜증냈던 추억의 영화입니다. 물론 다들 지적은 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느꼈던 거겠지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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