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몰락 이후 등장하는 현자들


가장 먼저, 정희원씨의 현재 논란이 위계에 의한 성폭력과 노동착취일 수 있다는 걸 전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중에게 비춰지는 이미지와 뒤늦게 밝혀진 이미지의 괴리가 워낙 크고 또 충격적이다보니 이 논란을 단순히 가십거리로만 소모하는 흐름이 좀 안타깝습니다. 원래 인터넷이라는 게 그 어떤 타인에게도(특히 정체성이 다른 피해자에게) 거리감을 둔 채 적당히 낄낄대는 공간이지만, 진지함의 결여는 그 자체로 모든 사람을 희롱하는 맥락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정희원씨의 입장을 참조하더라도 그의 해명은 앞뒤가 안맞는 소리 투성입니다. 본인이 자신보다 위계가 한참 낮은 연구원한테 어떤 가스라이팅을 당한 상태인데 인세는 본인이 주도적으로 깎을 수 있고 절판도 결심할 수 있으며 불륜은 아니지만 사적인 관계는 맞았고 또 장제원을 언급하며 본인의 사회적 탈락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성별, 위계, 다른 여러 사회적 위치를 감안했을 때 정말 가능성이 낮은 사건들이 어떤 마성의 여성에게 홀려서 자신한테만 일어나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그는 해당 연구원이 "트위터를 대리"했다는 폭로에 별반 반박을 안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정희원씨가 대단히 기만적이라는 평가는 기본적으로 깔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착취적 행위의 가능성을 두고도 일부 사람들은 나르시시즘의 기회로만 이를 활용하는 것 같습니다. 제일 많이 떠도는 말이 '그럴 줄 알았다'인데, 사후에 발동되는 이 전지적 능력은 너무 정확해서 역으로 묻게 됩니다. 그럴 줄 알았다면 그럴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 왜 아무 것도 안했나? 다리가 무너지는 걸 알면 다리를 건너지 말라고 해야하고 불이 나는 걸 알면 불이 나는 곳에서 사람들을 빨리 대피시켜야하는데 정희원씨의 사회적 실패를 예측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결국 그럴 줄 몰랐다와 그럴 줄 알았다의 입장의 차이는 아무 것도 없게 됩니다. 다만 타인의 사회적 실패에 신속하게 즐거워하고 뭔가를 뽐낸다는 차이점만 있을 뿐입니다.
그 사람 '쎄하더라', 혹은 '쎄했어'라고 오로지 사후에만 발동하는 이 '쎄함'의 감지능력은 '쎄한 줄 몰랐다'는 사람들보다 본인들이 더 낫고 탁월하다는 인상만을 남기게 됩니다. 이 "쎄믈리에"들은 그 어떤 예방적 조치나 구제활동이 없이 자신의 세미-무속 능력만을 인증하는데서 그치기 때문에 과연 대한민국이 무속의 나라라는 생각도 듭니다. 등록된 무속인이 100만명이 넘는 나라다보니 이제 일반인들도 고객의 입장이 아니라 준-무속인으로서 간간이 활약을 하고 싶어한다고 할까요. 물론 이 쎄믈리에 분들은 쎄하다고 하는 게 틀렸을 경우에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누군가는 반드시 어떤 실패를 저지르기 때문에 이들의 예지능력은 인디언 기우제처럼 유효기간이 아주 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이 "쎄믈리에"들의 단골 분들은 어떻게든 인터넷 댓글이나 다른 흔적들을 사료처럼 발굴해서 우리에게는 이미 징후가 있었다고 외치고들 싶어합니다. 공급과 수요가 이렇게 선순환하는 영역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제가 특히 놀란 건 저 논란이 터졌을 시 어떤 민주당 지지자들의 쾌감이 일제히 터져나온 것이었습니다. 오세훈이란 정치인과 어울리는 셀럽의 위험성에 대해 이미 경고하지 않았냐고 자랑스러워하거나 혹은 다른 이들을 매도하는데 너무 적극적인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 착잡했습니다. 엄연히 피해자가 생긴 이 사건에 대해 무엇이 그렇게 기쁘고 무엇이 그렇게 신이 나는 것일까...? 국힘당을 지지하거나 오세훈을 지지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누군가를 착취하고 어떤 사회적 실패를 하는 것은 딱히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 사람들 역시 사회적 규칙을 잘 지키고 어떤 성취를 내면서 살아가는 게 모두에게 훨씬 더 이로운 일이죠. 그럼에도 당파적 세계관에 매몰되어 '승리'를 하려는 그 모습이 좀 기괴했습니다. 이 당파적 세계관에서 당내 정치인들의 성폭력 사건에는 그 '쎄함'이 왜 그렇게 작동안하는지도 의아했습니다.
여기에 수많은 사후적 해석들이 붙고 있습니다. 저속노화라는 개념이 얼마나 시시했는지, 쇼닥터들이 얼마나 별 것 아닌 존재들인지 등등 말입니다. 저는 정희원씨를 한 때 좋아하고 그 생활습관을 이식하려했던 사람으로서 이런 판단들에 딱히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현재 보도된 이 착취의 가능성에 집중하고 우쭐거리는 태도만큼은 최대한 피하고 싶습니다. 저 착취 가능성에 대한 보도가 사실이라면 연구원 분이 부디 정확한 배상을 얻어내고 명예 회복도 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