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풍경.

현재 회사를 출퇴근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버스와 자전거.


놀랍게도 자전거로 출퇴근하는게 더 짧고 빠릅니다. 다만 추위와 더위를 감당해야하고, 이런 겨울에 강변로를 따라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은 아무래도 타고 싶지 않아지지요. 날이 풀리면 다시 탈텐데 시간이 많이 남았네요. 몇 년 전에 다른 회사 다닐 때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눈이나 비만 안오면 타고 다녔는데, 한 번에 가는 버스라는게 굉장히 유혹적입니다. 게다가, 버릇이 붙어서 버스에서 책을 꽤 읽을 수 있게 되어서요.


삶을 완전히 두 영역으로 분리해 살 수 있게 되더군요. 퇴근하고 나서는 직장 스위치를 완전히 내려버리고, 월요일 출근해서는 마치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부팅되는 컴퓨터처럼, 해야할 업무를 다시 로딩합니다. 주말이나 일과후에 문뜩 안 떠오르는건 아니지만, 예전보다는 깜짝 놀랄 정도로 정말 잊고 삽니다. 그래서 삶이 말끔한 두 쪽의 공간으로 나눠진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하나가 더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공간은 정말 쉽게 계속 잊혀집니다.


출퇴근 길에, 반복하다 보면 낯이 익은 것들이 쌓여갑니다. 그래서 그걸 언제 이야기해볼까 생각하다가도, 그 변환의 시공간에서 벗어나면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겁니다. 마치 꿈에서 물건을 들고 나올 수 없듯이. 그래도 꿈에서 생각을 챙겨서 나올 수는 있는 것처럼, 가만히 헤아려보면 서서히 떠오르는 것들이 있습니다. 자전거 출퇴근을 할 때, 매 번 비슷한 시간에 나와 산책하는 노부부의 뒷모습 같은 것. 남편 분도 불편해 보이시지만 아내 분은 아예 보조 지팡이를 짚고 꼭 같은 구간을 먼저 걷고 있어서 볼 수 있는 뒷모습.


요즘 버스는 창문에 하얗게 습기가 끼어 내부를 좀 더 집중해서 보게 됩니다. 저는 뒷쪽 안으로 들어가는걸 선호하는 터라, 사람들이 앞으로 내려다 보입니다. 여름철에는 대부분 깨어 휴대폰을 보는데, 최근에는 추워서 그런가 다들 졸고 있습니다. 특히 비내리는 쌀쌀한 아침, 점점이 물방울이 뭍은 하얀 창문을 배경으로 다들 몸을 쪼그려 졸고 있는 사이에서 책을 펴면, 독특한 기분이 듭니다. 아직 한겨울이 아니라 히터도 아주 쎄게 틀지는 않아 더 자기 좋은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배차 간격이 넓고 타는 사람이 적은 노선이라 서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책을 읽다가 정신 차려보면 뭔가 특이하고 이상한 생각을 하며 멍 때리는 자신을 여러 번 발견하는데, 그리고 그 생각은 정말 또렷하고 몰두할 수 있는 어떤 단단함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것들을 매일 매일 버스에서 분실합니다. 회사에 앉거나 집에 누우면 금방 잊혀져서 사라져 버리거든요. 아 그래서 잠시 그런 것들에 대해서 여유가 날 때 잠시 나아가 봤습니다. 삶은 크게 두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 구간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요.

    • 자전거가 겨울에는, 달리면 땀이 나고 멈추면 땀이 식고 그러면 춥고 이걸 못 해결하겠더라고요 걸어다니면 조절이 가능한데

      • 넉넉하게 살살 가던가, 끝까지 몸을 데우던가 양자택일입니다 ㅋㅋ.

    • 버스에서 책읽기. 그 시공간이 꾸준히 계속 되면 좋겠습니다.(제가 왜?) 


      혼자 집에서 읽는 것과 다른 뭔가가 느껴집니다.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게 집중이 잘 된다는 분들도 있던데 비슷한 걸까요.



      • 저는 이제 집에서 더 재미있고 정신을 빼앗는 것들이 많아서 책 읽기 힘들더군요.


        버스에서는 뭐랄까, 어차피 죽은 시간을 좋은 방향으로 살린다는 뿌듯함이 배가 되어요. 기사님이 운전해주는 차에서 읽는 사치감도 있고. 


        확실히 이상하게도 집중이 잘 됩니다. 카페보다도 더. 잡혀있다는 감각도 도움이 되고요. 시간제한도 나름 도움이 됩니다.

    • 회사 밖에서는 회사를 완전히 잊고 살았으면 좋겠는데, 회사에서 워낙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까 잠을 자면서도 회사에서 있었던 큰 일에 대한 재해석이 벌어집니다;;;; 어렸을
      때는 마음이 불안하면 시험치는 꿈을 꾸었고, 회사 생활 초기에는 대학에서 과제하면서 고생하는 꿈을 꾸었는데, 이제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겪는 꿈을 꿉니다. 굳이 꿈에서
      보고 싶지 않은 사람과 상황인데 제 마음이 그걸 다시 재현하기를 원한다니 할 수 없지요. 예전에는 그런
      꿈을 꾼 다음에는 마음이 뒤숭숭해서 잠을 잘 이루지 못했는데, 상담과 명상의 도움으로 이제는 다시
      잠들 수 있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 저도 회사를 나가게 되면 회사꿈을 꾸게 될까요. 회사 꿈은 거의.. 꾼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아직 꾸지는 않았네요. 다시 잠들 수 있게 되었다니 정말입니다. 꿈에 대해 조금 진지하게 생각할 때가 있었는데, 요새는 기억에 남을 정도면 꿈 일기를 한 두 줄 쓰고는 망각의 샘에 퐁당 빠뜨려 버립니다.

    • 노부부에 대한 묘사 때문인지 아련한 느낌과 버스 내부의 풍경 같은 것에서 뭔가 흑백사진을 보는 듯한 포근한 기분이 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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