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전투]를 보고 왔습니다

팔레스타인 연대 단체에서 상영회를 열어 [알제리 전투]를 보고 왔습니다. 일반 극장에서 봤다면 이 날 봤던 기분을 고스란히 느끼지는 못했을 것 것 같습니다.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는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렇게 특정 국가의 식민지 독립투쟁 영화를 보니 기분이 묘하더군요.
일반적인 영화라면 어떤 상황에서 프랑스가 알제리를 불법적으로 침략했고 점령했는지, 그리고 거기에 민중이 분노를 느끼며 서서히 투쟁을 시작해나갔다는 걸 시간순으로 풀어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시작은 프랑스 군대에 사로잡힌 변절자의 가련한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고문과 협박을 많이 당했는지 겁에 질려있고 그런 그에게 선택을 잘했다며 프랑스 군인들은 그를 위로합니다. 주동자의 은거지 주소를 실토하고 그는 거기까지 안내를 하라고 요구받지만 이내 그럴 순 없다면서 절규합니다. 프랑스 군은 그를 억지로 끌고 다른 주동자들의 은신처를 갑니다. 이들은 침대 바로 옆의 타일로 도배된 벽 너머에 숨어있습니다. 바깥에서 보면 감쪽같지만 그 변절자는 그곳을 두드리며 이미 포위되었으니 빨리 항복하라고 합니다. 벽 너머에 있는 이들의 표정은 비장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 알제리 독립 투쟁의 서사를 시작합니다.
이 서사의 시작점은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의 핵심 인물인 '알리'입니다. 그는 전과도 많고 뚜렷하게 하는 일도 없이 작은 노름판이나 열어대는 청년입니다. 그러나 그는 경찰에게 쫓기는 도중 프랑스 백인들의 노골적인 멸시를 받았고 그들과 싸움을 하다가 경찰서에 잡혀갑니다. 그는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의 존재를 알게 되고 거기에서 주는 프랑스 경찰 살해의 임무를 맡습니다. 그는 경찰의 등 뒤에서 총을 쏘라는 임무를 받지만 일부러 경찰의 앞에 나서서 알제리 인으로서 프랑스인을 죽인다는 선언을 하고 방아쇠를 당깁니다. 그건 빈 총이었고 임무는 실패합니다. 후에 지도자를 만나 그건 단순히 결기를 시험해보려는 것이었다고 듣고 그는 본격적으로 해방전선의 일원이 됩니다.
영화는 이들의 투쟁을 숭고한 성전으로 꾸며낼 생각이 없습니다. 가령 알제리의 수도 알제 내부에서 프랑스인들이 많이 모이는 까페 등을 폭탄테러로 습격할 때, 카메라는 거기에 모인 젊은 사람들의 얼굴을 한번 비춥니다. 폭탄테러를 실행하기 직전 그 여성요원은 같은 공간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누군가를 봅니다. 이것은 악랄한 짓이며 죄없는 이들마저도 희생시키는 폭력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그 테러를 감행합니다. 저항, 투쟁은 늘 깔끔하게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용서받을 수 없는 폭력과 실패도 포함이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이 해방전선의 다른 인원들은 또 길거리에서 총을 맞고 벌레가 밟혀죽듯이 허망하게 쓰러집니다.
이런 식의 게릴라 작전이 계속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주요 인원들은 하나둘씩 프랑스 군에 잡히고 지도자조차도 은신처에 살고 있는 다른 약자들이 희생되지 않게 하기 위해 항복합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게 바로 주동자 알리입니다. 그는 끝끝내 투항하지 않습니다. 프랑스 군은 이들이 숨어있는 벽에 폭약을 붙이고 결국 폭파시킵니다. 어린 아이조차도 죽음을 각오하는, 그리고 그 어린 아이조차도 함께 희생시키는 이 지독한 현실이 거친 흑백화면에서 펼쳐집니다. 엔리오 모리꼬네의 비장한 음악이 영화 내내 깔립니다.
변절자의 고백과 주동자들의 전멸로 슬픈 결말이 될 수 있겠지만 영화는 그 뒤에 민중들의 투쟁을 담고 있습니다. 분노한 시민들은 국기를 만들어 프랑스 군인에 대항해 시위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끝내 독립을 쟁취합니다. 실패한 무장투쟁에서 민중봉기의 성공으로 이어지기까지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시작과 끝은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압도적이고 정확한 폭력만으로 독립을 이뤄낼 수 있는가. 혹은 그 무장투쟁이 실패한다고 해서 저항 자체가 실패하는가. 그 격렬하고 논쟁적인 좌파적 투쟁조차도 결국은 민중투쟁의 불씨로 작동하는지도 모릅니다. 매일 과격한 폭력으로 모든 걸 쓸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망상을 하는 저에게 이 영화가 주는 답은 의미심장했습니다. 힘이 아닌 단결로, 그리고 지치지 않는 분노와 동력으로 저항한다면 빼앗긴 권리는 되돌아온다는 예를 하나쯤 믿고 있어도 괜찮을 겁니다.
폭력을 폭력으로 상대하며 폭력이 폭력을 낳는다는 뻔하고 단순하다고도 할 수 있는 내용을 살이 에리는듯한 차가움과 뜨거운 열기가 공존하는 에너지로 만들어낸 영화였던 것 같아요. 보면서 '그림자 군단' 생각도 났었죠.
마지막 시위장면도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저 압도적인 군중 엑스트라들 연기지도를 어떻게 했나 궁금했는데 이거 제작된 시기가 알제리 독립하고 몇년 지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다들 독립뽕(?)에 거하게 취해있을 때라 달리 연출이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 같네요. 하하;
다큐멘터리 같은 극영화라고 하던데 칭송만 많이 들었습니다. 극장에서 보셨다니 부럽네요.
최근 '원 베틀 에프터 어나더'에서 밥이 티브이로 보고 있었던 게 기억나네요.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저도 볼 기회가 없었는데, 몇년전에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할 때 관람하고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특히 여성들이 전통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버리고 양풍으로 꾸며 검문을 피하고 무기를 조달하던 장면이 생각하는데요. 우리나라도 독립 운동의 역사가 있던 지라 아마 한국의 여성 독립 투사들도 비슷하게 숨은 역할을 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엑스트라가 아니라 진짜 군중 같이 보이는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서 구했을까도 궁금했는데 영화 뒷 이야기를 듣고 납득이 되었고요.
저도 그 장면이 놀라웠습니다. 이 영화는 어떤 드라마틱한 전개가 그렇게 눈에 띄지 않아서 저런 장면도 완전히 사실이겠구나 하고 믿을 수 밖에 없더군요. 어떤 혁명은 반여성적 지배자들에 의해 더 용이해진다는 역설을 느꼈습니다. 젊은 남성이 주인공이지만 못배우고 무식한 전과자 남성과 총과 폭탄을 조달하고 때로는 테러도 불사하는 여자들, 중학생도 안될법한 아이들이 이 영화의 주도자로 나오는 걸 보면서 변혁은 민중 뿌리에서부터 일어난다는 걸 믿을 수 밖에 없더라고요. 이 대댓글 다느라 저도 영화를 또 곱씹어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