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계를 확인하려는 본능

저는 한국식 나이 (예를 들면 섣달 그믐에 태어난 아이는 하루가 지나면 무려 두 살이 됩니다) 가 이런 위계 질서와 아주 관련이 깊다고 봅니다.


하고 싶은 얘기는 왜 꼭 나이를 까고 서열을 확인해서 정리를 해야 하는가입니다.

저는 그게 몹시 불편합니다. 그래서 사회인이 된 이후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나이를 묻지 않고 좀 친해져서 나이를 안다고 해도 언니/동생, 오빠/누나 하질 않습니다.

(서열을 정리하지 않는 것이 불편한 사람들은 이러한 태도를 "당신과 친해지고 싶지 않다."로 받아들이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도 한국인과 만나게 되면 이 문제를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생짜 초면에 저는 이름을 이야기했는데 상대는 자기 이름도 소개하기 전에

"몇 살이세요?", "몇 년생이세요?" 가 먼저 튀어나옵니다.


또 다른 것은  개인 신상에 관한 질문을 너무 쉽게 한다는 겁니다.

제가 좀 마른 편입니다. 류마티스 관절염을 10년 넘게 앓았고 약을 10년동안 먹다보니 위장도 나쁘고 한 마디로 연료효율이 좋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은 날씬하니까 이런 질문쯤은 막 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듯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몇 킬로 나가세요?"라고 너무 당연하게 묻습니다.


약간 살집이 있어 보이는 분들에게 "몇 킬로 나가세요?" 라고 물어보는 것이 실례라는 것쯤은 당연히 인식되고 있는데

마른 사람에게는 함부로 물어봐도 된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다들 부러워하니까요. 그런데 그건 물어보는 사람의 생각이지요.

마른 사람이 (그것도 정상보다 많이 말라보이는 사람이) 무슨 사연이 있는지 어떻게 알고 그것도 초면에 그렇게 질문을 하는 걸까요?


물론 이 곳 현지 문화는 나이를 묻지 않고 신상정보도 잘 묻지 않죠.

저의 가장 친한 친구도 제가 많이 말랐다고 말을 하긴 해도 몇 킬로나 나가냐고 직접적으로 묻지 않아요.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고요.


그런데 유독 한국인들은 거리낌이 없어요.

처음 한두 번은 "별 이상한 사람을 다 보겠네"라는 생각을 했는데 숫자가 점점 많아지니까,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을 때마다 되풀이되니까 좀 진저리가 납니다.

제 기억엔 요즘 한국에서도 초면에 이런 식의 질문을 함부로 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오히려 외국이라서 한국인의 끈끈함을 더욱 과시하려고 그러는건지 분간이 안 돼요. 

마치 "우린 한국인이니까 이런 질문쯤은 당연히 물어봐도 되는 거야. 게다가 당신은 말랐으니까 난 당연히 당신 체중을 물어볼 권리가 있어."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걸 불쾌하게 여기는 티를 내면 외국에서 한국인이 아닌척 하는 정체성을 부정하는 사람이 되는 거죠.  


제가 너무 예민한 걸까요?

    • 나이야 워낙 많으니까 그러려니 한데..
      초면에 kg를 묻는다구요?? 무슨 그런 경우가;;;
      여자한테는 무조건 그런 거 묻는 거 실례 아닌가요? 아니 뭐 남자한테도 묻는 거 실례지만 남자는 그런 거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물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다고 그게 괜찮다는 건 아니구요 어쨌든 이해불가;;; 무례한 사람들이로군요)
    • 제가 볼 땐 사람들이 어느 나라든 다 궁금해는 해요. 다만 그걸 대놓고 물어보는 게 예의에 어긋나느냐 아니냐 하는 인식에서 차이가 날 뿐.

      저는 그래서 "너 고등학교 졸업한 게 몇년?" 이라든가 "너네 가족은 무슨 외국어를 하니?" 라는 꽤 희한한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ㅇ'
    • 저도 외국사는데 한국인들 만나기 싫어요.
    • 뚱뚱한 사람은 신경쓰는 척 하면서, 마른 사람에게 막 대하는 풍습이 아직까지 고쳐지질 않고 있죠. 언젠가 게시판에서도 제시카 관련 댓글 중에 마른 사람에 대한 모욕에 가까운 글이 있어서 신기했었어요. '와- 이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지?' 마른 사람에게 관대한 한국사회의 실태 뭐 이딴 핑계대기 전에 그냥 개념만 갖고 말조심하면 되는 문제인데 말이에요.
    • loving_rabbit 님/ 그래서 나이는 보통 대화에서 튀어나오는 단서로 짐작을 합니다. 저희 사무실 사람들은 최초로 사용했던 컴퓨터의 메모리가 얼마였는지, 그래픽 카드가 뭐였는지 이딴 걸 단서로 짐작해요. 그닥 정확하지는 않지만요. 그리고 몇 번 만나서 좀 알게 된 사이에는 물어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한국인의 초면 나이 확인은 누가 위이고 누가 아래인지를 확실하게 정해두려는 의도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하기 어려워요.
    • 네 저도 초면에 나이 묻고 그걸로 내가 연장자니깐, 이러는 거 참.. 게다가 웃긴 경우 한번은 여기 뉴욕서 만난 전의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경력은 제가 더 많은데도 나이 묻고는 반말을 해서 'ㅇ' 어이 없어서 무시했어요.

      그거랑 순수하게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어서 나이등 신상정보를 궁금해하는 건 별개겠죠.
    • 근데, 나이를 궁금해하는 게 어떤 이유일까요? 저도 간혹 궁금할 때 있지만, 나이 물어보는거 질색이고 되물어지는게 두려워, 저 역시 묻지 않습니다만. 나이 많은게 권력이 되나요? 나이들수록, 나이는 더더 숨기고 싶은데.
    •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몇 키로예요?', '..헌혈 못하는 정도예요', '그러니까 몇 키로냐고요?', '40대 초반이요',
      '40? 41? 42?' 이렇게 꼬치꼬치 물으면 진짜 뭘 원해서 묻는건지 알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경우가 아주 많다는 거죠.
      빵빵한 뱃살ㅠ을 보여주면 그만 물으려나요?ㅜㅜ

      저는 아직도 섣달 그믐 어쩌고 하는 한국식 나이 계산을 잘 못해요;
    • 나이를비롯해서 신상정보 아무렇지않게물어보고 불쾌해하면 예민한사람취급받는거 정말 이해안가요.그리고 저도 마른편인데 사람들이 너무말랐다는말은 전혀 죄책감없이 하는것같아요. 한번은 살찌고싶다고 했다가 너는 행복한거라느니 괜한미움만샀네요. 정말 이기적인 사고 아닌가요 이런거.(좀 흥분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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