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다 좋아하세요?

 

지난 주말 생애 처음 겨울바다를 보고 왔어요.

원래도 부지런한 성격이 아니고,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죠. 추운날씨를 핑계로 방구석에서 웅크리고 있었어요. 겨울잠자는 짐승처럼.

 

근데 동생한테 전화가 왔어요. 겨울바다로 가자고. 푸른하늘의 노래가 갑자기 기억저편에서 흘러나왔어요.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냉큼 짐을 챙겨 따라나섰죠. 구스다운 점퍼와 목도리 장갑은 잊지 않았어요.

 

눈이 내리는 중부를 벗어나 대관령에서 바람소리를 듣고 강릉에 도착하니 하늘은 너무나 파랗고, 바다는 하얗고, 그리고 추웠어요. 쩝.

 

근데 겨울 바다 말예요. 누가 겨울에 바다를 보러 가나 그런 건 드라마속이나 노래속에나 있는거지 했던 게으름뱅이에게 생생한 충격을 줬어요.

이건 내가 익히 아는 질리고질린, 마냥 푸근한 바다가 아니라 너무나 차갑고, 도도하고, 고독한 바다인거예요.

그 속엔 스무살의 나도, 스물다섯살의 나도, 서른살의 나도 있었어요.

대상을 알수없는 열정, 밟힐수록 꼿꼿하던 자존심과,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혼자이기를 열망했던 젊은 날의 나.. 나는 어떤 세월을 거쳐 포기와 타협을 알아왔나.

그리고 어른이 되어 이 안락한 삶속에서 어떤 꿈을 꾸고 있나. 어떤.. 꿈을. 

 

맨날 던킨도넛만 먹던 사람이 어느날 크리스피 크림 도넛을 먹어보고 맛의 경지를 알아낸 것처럼

겨울바다는 제게 바다가, 자연이, 세상이 이렇게 다른 느낌일 수가 있구나를 일깨워줬어요.

뭔가에 홀린듯이 셔터를 눌러댔고, 차디찬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겨울바다의 풍경을 눈에 담았어요.

눈이 내리면 어떨까 문득 궁금했지만 날씨는 너무나도 맑았어요. 아. 써놓고 나니 너무나 궁금해요. 눈내리는.. 바다란?

 

묵호항의 대게찜, 주문진의 생선회, 아름다웠던 사천의 팬션 베니스하우스, 오색온천, 속초의 생선구이와 닭강정, 바닷가 미술관 여행의 추억은 너무나도 많지만

여행이 끝난 지금도 눈을 감으면, 찬바람이 살갛에 닿고, 어느새 파도치는 겨울바닷가에 내가 서 있어요.

이제 저는 겨울바다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립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여러분은 겨울바다를 좋아하세요?

 

 

    • 여름바다도 참 아름답지만, 겨울바다 참 좋아요. 별 일 없으면 해마다 보게 되는 듯..
      눈 오는 바다 좋아요.
    • 고등학교 졸업하고 갔던 겨울 바다 기억합니다. 해운대였는데 온 세상은 어두컴컴하고 그 시커먼 천지에 바다가 몰려오고 가는 모습이 가슴을 뛰게 만들었죠.. 지금도 바다에 가면 그런걸 느낄수 있을까요?
    • 저 고향부산인데 여름해운대보다 겨울해운대가 몇백배는 좋습니다ㅋ
    • 겨울바다는 춥죠.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겨울바다 에피소드 보고 대공감했었어요.
      하지만 매년 겨울만 되면 바다를 갑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을바다도 참 좋아해요.

      눈내리는 날에는 가까운 서해바다를 가보세요. 갯벌위에 눈이 쌓인 풍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 추운바다 뿐인데 마음에 담은 겨울여행 하셨군요.
    • Apfel> 겨울밤바다는 좀무서울것같아요. 소리때문에요. 다시한번가보세요. 어린왕자 다시읽는 기분일듯.
      안야>여름 해운대는 뉴스에서 봤어요. 사람들이 땡볕에 파라솔 펴고 앉아서 자장면을 먹더라구요. 기이했어요.
      2B>연애시대 에피 궁금하네요. 생각해보니 전 서해바다도 한번 못가봤네요. ㅎ
    • 2B/ 연애시대 겨울바다신이라면 남녀가 동반자살하러 온거요?
    • 바다는 역시 겨울바다, 산은 역시 겨울산행이 최고라고 생각하는지라 한구절 한구절 공감합니다.
      겨울에 아무도 없는 바다에 파도소리 듣고 서있는 그 기분이란. 말로 표현 못할 쓸쓸함과 함께 기묘한 시간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때 그 바다가 생각나네요.
    • 바다는 여름에 봐도 겨울에 봐도 좋은 것 같아요.
      겨울 바다는 특히... 어두운 회색톤의 겨울 하늘 때문인지 눈물을 자아내게 하긴 하지만요.
    • 쿠모>겨울산행은 아니지만 케이블카 탈까했는데 강풍에 중단됐어요.--;
    • 아이리스님 글을 보니 그동안 제가 본 몇 번의 겨울 바다를 떠올리게 되네요.
      최근에 다녀온 겨울 바다는 살이 에이도록 차가웠습니다.
    • 연애시대 몇편인지는 모르겠는데 감우성 손예진이랑 공닥터 이하나 넷이서 겨울바다 보러가서 폼잡고 와아~~ 하다가 찬 바닷바람에 바로 어 추워~ 하면서 차안으로 다시 들어오는 그런 장면이 있어요. 아마 그장면에서 윗분이 말씀하신 자살하는 연인들이 얼핏 나올껄요.. 기억이 가물가물.. 낄낄대면서 봤는데 묘사력이 부족해서 글로 쓰니 재미 없네요 . ㅎㅎ
    • 저 좋아해요. 황량한 느낌...
    • 겨울바다 무척 좋아해서 글 전체 대부분 공감하지만 크리스피 도넛 완전 싫어해서 그부분만 깜놀;;



      재수 수능 다음날 휘릭 떠나서 마주한 강원도의 겨울바다(11월중순이라 비수기여서 더 좋았죠. 11월인데 함박눈 내리는 바다도 봤고)에 대한 강렬한 인상은 평생 남을 듯..



      (그러나 그는 X년 후 강원도에서 두번의 겨울을 나게 되는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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