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 급사 후 대공황

친구 보러 뉴욕 왔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버스 타고 올 수 있는 거리거든요.

 

버스 검표는 아이폰에 있는 이메일을 보여주면 되는지라 표 잘 있는지 다시 확인하고 룰랄라

탑승하려는 순간 표의 예약번호가 짤려 보이길래 디스플레이를 가로로 뒤집으려고 여유만만하게 스냅,

그런데 다음 순간 아이폰이 급사한 겁니다.  아까까지 70% 이상 남아있던 배터리가 순전 방전된 거에요.

운전기사 아주머니가 저 앞에서 검표 중인데 우는 얼굴로 전화기가 꺼져 버렸는데 차에 타고 충전 후 표 보여주면

안되겠냐고 물었더니 빨리 하래요.

 

근데 이노무 버스에 비치된 콘센트로 전원을 연결하고 아무리 기다려봐도

감감무소식.아이폰은 영면에 드신 듯했어요.

검표하는 아주머니에게 기어가서 전화기가 죽어 버렸다 표 한 장 더 사겠다고 하니 불쌍해 보였는지 그냥 가래요;;

 

근데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 뉴욕에 가서 만날 친구 전화번호를 이 빈약한 하드가 외우고 있을 리가 없는 것이죠.

친구네 집 주소도 저 대신 외우고 있던 아이폰이 이제 말이 없으니 전 어떡하나요.

 

누구한테 전화기 빌려달라고 할 염치도 못 되고 친구 번호는 이 죽어버린 전화기에밖에 없는데

이 전화기는 재기의 가망이 없어 보이고 하늘이 노랗게 보였어요 흑흑

서울쥐 찾아온 시골쥐처럼 짐가방 들고 친구네 회사에 무작정 찾아가서 김아무개 보러왔다고 하면 친구에게도 누가 되는 건 아닐까

그렇게라도 만날 수는 있는 걸까

아무 호텔이나 잡아서 하룻밤 자고 내일 집에 갈까 피씨를 쓸수 있는 곳을 찾아가서 친구에게 이메일을 써볼까

백만가지 번뇌에 시달리며 버스는 굽이 굽이 달리는데 퇴근시간에 딱 맞춘 타이밍 덕택에 1시간 연착.그레잇. 펄펙. 엉엉.

친구는 친구대로 연락 없는 저를 걱정할 테니 마음은 더 초조해지고 시계 노릇을 하는 아이폰이 죽어서 그때까진 얼마나 늦었는지도 몰랐고

누구한테 물어보긴 역시 싫고...;

 

 ......

 

하여 결과적으로 지금 친구네 집이긴 합니다.

알고 보니 전화기가 완전 죽은 게 아니라 버스에 콘센트가 다 같이 고장난 거더라구요.

페덱스 들어가서 비싼 피씨 렌탈하고 피씨로 충전하니 10여분 후에 힘없이 깨어나더라구요.

친구랑 연락이 닿아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멀쩡히 충전되어 있던 전화가 왜 드랍데드했는지는 의문인데요

여하간 오늘일을 계기로 전자기기에 너무 의존하지 않기로 했어요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친구 번호 정도는 다 외우고 있었는데 그새 머리가 너무 게을러진 거에요.

전자기기 외에 버스 예약번호나 중요한 전화번호 같은 건 따로 메모를 하거나

제발 덕분에 좀 외우고 다녀야겠어요.

 

이렇게 호되게 당해야만 쓸만한 결심을 하나씩 하게 되는군요 흑.

아이폰이 죽어 버리니 뇌의 일부를 도려낸 것 같더라구요.

요즘은 공중전화도 찾기 어렵구요. 때마침 동전도 없어요.흑.

 

이러지 맙시다...라고 각성한 하루였습니다.

전화번호 외우는 거 중단하면 안 돼요.

 

 

 

 

    • 저도 배터리가 다 되어서 약속들을 자동취소하고 집에 돌아온 경험들이 좀 있어요;; 이게 참 이러면 안되는데..
    • 저에게도 너무 있을법한 일이라서 후덜덜ㄹㄷㄷ
    • 와리가리한 저의 보디가드폰을 보며 그저 한숨을 짓죠.(일명 초딩폰)
    • 꼭스마트폰이아니더라도핸폰고장이거나잃어버리여난감하죠. 스마트폰은더하겠지만요 진짜번호못외우게되더라구요ㅠㅠ제폰엔그런일이일ㅇ니나지않기를간절히
      • 사실 오늘 스마트폰 개통되서 들떠있는중이예요. 그랬더니 오타가ㅋㅋ
    • 전 그래서 구글 계정 연동해서 연락처 백업을 수시로 해둬요. 핸드폰에 문제 생겨도 컴퓨터만 찾으면 그럭저럭 해결 가능.
    • 저도 집 전화번호가 가끔 생각이 안나요--;; (어머니 아버지 전화번호는 원래 안 외웠지만..) 머리가 바보가 된 듯...이라고 생각하려고 했지만, 원래 기억할 게 많아지면 외부 저장수단을 뇌 저장공간의 일부처럼 효과적으로 잘 사용하는게 제대로 머리 쓰는 사람들이 할 일이긴 하니까요. 덕분에 생긴 뇌의 여유 공간은 더 복잡한 일을 하는데 쓰는거죠.(그러나 대부분 듀게질 같은 이런 일에 소모하지만 ㅋㅋ)

      비상사태에 대비할 대책만 제대로 마련해두면 될 것 같아요. 덕분에 지금 다이어리에 중요한 전화번호 몇 개 옮겨적고 있어요. 글 감사합니다.
    • 나카야마 미호가 나왔던 홈앤어웨이라는 일본드라마가 떠오르네요. 핸드폰이 안되니까 집에 못돌아가더라구요...
    • 메가버스로 뉴욕가신모양이네요.
      스마트폰 쓰다가 폰님 사망하면 급 언스마트 해집니다. 지금 제가 겪고있는 문제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한국 돌아가면 피쳐폰 폴더폰으로 돌아갈까도 생각중입니다.
      참고로 아이폰 메모장에 적어놓은것은 메일로도 자동백업이 됩니다.
      구글 메일 들어갔다가 아이폰 메모가 다 백업되어있는거 보고 놀랐어요.
    • settler님에겐 안좋은 기억이지만 재미있는 에피소드같아요 ㅎㅎ
    • /carcass ㅎㅎ 끝나고 나니 저도 재밌어요 이젠
      /Artreyu 어떻게 아셨어요 하긴 볼트버스는 전원 잘 들어오는데 메가버스만 그런가요 ㅋㅋ 미국사람들은 참 불평 안 하는 듯. 몇 번 꽂았다 뺐다 했다가 그냥 다들 묵묵히 포기하고 가더라구요. 저도 다른 방법으로 백업해 놔야겠어요.
      /으하하하 저도. 별 상상을 다 했습니다. 흑흑
      /being 그니까요 남편도 가끔 자기 번호를 나에게 묻곤 해요. 두뇌의 암기기능이 퇴화할 것 같아요.
    • /주안 전 워낙 기계치라 별로 의존 안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맵기능부터 시계 등등 기초적인 감각을 박탈당한 느낌이었어요
      저도 이제부터 백업;
      /블루그린 그래도 개통 축하 드립니다. 새 기계는 아무때나 급사 안 할 거에요.
      /타보 근데 전화기가 크면 찾기도 편하고 ㅎㅎㅎ
      /피노키오,no way 저도 아이폰 먹통 된 순간 아 버스에서 내려 집에 갈까, 상황 정리하고 늦게 갈까 막 고민이었어요.
      스마트폰의 괴력은 은근히 후덜덜하더군요.
    • 어제의 제 상황을 더 호러블하게 만든 건 마침 현금이 딱 1불 50센트 정도 밖에 없다는 거였어요.
      전화기가 맛이 가고 나니 아 이러다 카드도 안 되면 어떡하지 (아무 개연성도 없이)
      집에 갈 순 있나. 마침 25센트짜리 동전도 없어서 힘들게 찾은 공중전화에서 망연자실.
      동전 바꿔 달라고 어딜 들어갈까 고민했지요.
      여하간 현금도 가지고 다니고 메모도 하고
      디지털 방식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늘 백업해둬야겠어요
      전자정보가 모두 죽어버리거나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상황을 상상하니 꽤 무섭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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