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서 절 따라오던 토끼..;

요즘처럼 산에 눈이 잔뜩 쌓여 길이 좋지 않거나 기분전환하고 싶을땐 남산에 가는데  오늘 저녁에도 남산에서 운동을 했습니다.

북쪽 산책로이던가, 그쪽을 주로 가요. 명동 신세계쪽에서 들어가면 바로 나오는 산책 코스죠.

차도 안 다니고 눈이 쌓여도 바로 정리를 하는 곳이라 한겨울에도 운동하기 최적의 장소예요. 외국인들이 조깅하는 모습도 많이 봅니다.

오늘 좀 늦게 갔더니 사람이 별로 없더군요.  오후 9시가 다되어가는 시각이었거든요.

 

찻길에서  산책 코스 초입길로 마악 접어드는데 사람은 하나도 없고 길 한 가운데 떡하니 동물이 꼼짝않고 앉아 있더라고요.

가로등 불빛만으로는 사위가 어두워 시커먼 것이 처음엔 냥인줄 알았어요.

길냥이들을 거기서 가끔 보거든요. 근데 이 녀석, 가까이 다가가도 움직이지 않는 거예요. 냥이같으면 벌서 튀어 달아나고도 남았을 거리로 좁혀졌는데도요.

 

가까이 다가가면서 보니 예쁜 갈색 토깽이더군요.  성체같았고요.

근데 이 녀석, 제가 바로 옆까지 다가가는데도 도망가지 않고 되려 다가와서 제 신발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더라고요.

그래도 쓰다듬을 수는 없게 딱 손이 안 닿을만큼 떨어져서 제 주변을 맴돌았어요.

가방에 사료는 커녕 과자 한톨 없는 상황이 참 당황스럽더군요.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당근을 가져오는 건데..

어쩐지 냥이 사료라도 챙겨오고 싶더라니.

때늦은 후회를 해봤자 별무 소용.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다시 걷는데 이 녀석이 저를 졸졸 따라오는 거예요.ㅠㅠ

 

멈춰서면 다가와서 신발 냄새맡고 저를 가운데 두고 한바퀴 돌고 제가 움직이면 또 따라오고.

 

그렇게 한 20여M는 따라온 것 같아요.

그래봤자 맛있는 것은 커녕 맛없는 과자 하나 안 나오는 데다가 운동하는 사람들이 몇 분 다가오니 얼른 저쪽으로 뛰어가더군요.

그리고는 의자 옆에서 한참을 웅크리고 있더라고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근처에 매점 하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냥 운동 코스를 돌고 왔어요.

후진 핸드폰 카메라이고 어슴프레한 저녁 가로등 불빛 이라 사진 찍는 것은 포기.

 

녀석아, 잘 살아 남아라.

이 모진 계절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로 연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설마 누가 갖다 버린 것은 아니겠죠?

한 마리만 딸랑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치가 않더군요.

아직까지도 눈에 선하네요. 먹을 것을 갈구하던 녀석의 눈빛이랑 뽀송한 갈색 털이랑.

  

    • 근데 토끼가 잡식이었나여..
    • 그 토끼 따라가면 엘리스가 되시는 겁니다.
    • 작년 가을에 선유도공원갔을때 졸졸졸 따라다니던 토끼 생각나네요..한번 잡아볼려고 살금살금 뒤로갔는데 눈치채고 가는게
      어찌나 귀여웠던지..^^
    • 잡아먹으려고 쫓아왔던 건 아닐까요. (응?)
    • 본문은 뭔가 훈훈귀여운데 리플은 참 재미지다~
    • 몇 년전에도 집 뒤 야산에다가 누가 하얀 토끼를 갖다 버렸는지 (그때가 가을쯤) 당황해서 깡총거리고 뛰어다니던 걸 본 적이 있는데
      다음날부터 안보이더군요.;
      아기때 예쁘다고 사가지고 가서 크면 귀챦다고 내다버리는 인사들, 손모가지 썩어문드러졌으면 싶어요.
      그런 식으로 아이들 교육시키면 나중에 자신들도 고려장 당하고야 말 걸요.

      아, 마음이 쓰이네요. 낼 모레쯤엔 당근이라도 싸가지고 가서 본 장소 근처에 잘 둬야하는 건지..ㅠㅠ

      육식 다람쥐는 전에 듀나님이 올리신 사진이었나 동영상이었나, 본 기억이 있는데 토끼는 잘...
      인터넷 뒤져보니 사마귀 먹는 토끼 영상은 있는데 클릭은 안해봤어요.;
    • hwih/아, 이런 좋은 기회를 놓쳤네요. 뭐 제 운이 그렇죠 뭐. 투덜투덜. (근데 생각에 땟국이 흐르는 중년 앨리스도 거울을 통과할 수 있나요?)

      혼자생각/그 아주머니 아저씨가 제 은인이셨군요. 그 분들이 때맞춰 나타나주셨기에 망정이지..;
    • 저도 그 산책로 자주 이용하는데, 길가를 유심히 보며 걸어야겠어요^^전 다람쥐는 본 적이 있었는데 말이죠..
    • 길냥이한테 잡혀 먹히진 않겠죠?
    • 푸른새벽/제가 걱정한게 딱 그 점인데요, 녀석이 워낙 크긴 하지만 혼자 돌아다니다가 배가 고파 기력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 지 모르죠.ㅠㅠ
    • 오드림/사람이 많으면 못 보실 수도..

      당근 오이는 꼭 가지고 가세요! (견과류도 있으시면..; 굽실굽실)
    • 아이고.... 마음이 짠해요.
      예전에 토끼 예방접종 하러 갔다가 동물병원 수의사에게서 들은 말인데, 동물 손님 중에 한집에 사는 고양이에게 툭하면 시비를 걸고
      맞짱을 뜨는 토끼가 있다고 들었어요.
      그 녀석이 부디 길냥이와도 당당하게 맞짱을 뜨는 토끼이기를, 그럴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크흑-
    • 독 짓는 젊은이/그러게요. 이번 겨울이 유난히 추워선지 길동물들 볼때마다 마음이 안 좋네요.
      굶은버섯스프님 말씀대로 녀석이 원래부터 자연스럽게 야생상태로 살아가던 개체같지 않아서 더 마음에 걸려요.
      강하게 살아남아주길.
    • 개그로 흐르던 리플이 괜히 저 때문에 다큐가 된 듯...;
      잘 살아야 할텐데..
    • 제 털 질감이 좀 좋죠...

      아 이건 아니고'ㅇ';;
      정말로 추운데 잘 살았으면 좋겠네요.
    • 버려진게 맞고 더욱이 배가 고파 따라온거라면 정말... 글로 읽어도 이렇게 마음이 안좋은데 오죽하셨겠어요.
      흉흉한 뉴스를 접하다보면 버려지는 또는 학대 당하는 동물들이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진 않을것 같다는 생각만 듭니다.
      그 토끼가 잘 살아갔으면 좋겠네요.
    • 제목과 내용을 보고 생각나는 건 본문 쓰신 분께서 백설공주라는 거..

      (진짜 도망 중)
    • 음 저라면 20미터 정도 따라오는 토끼면 운명의 토끼다 하고 데려와키웠을것 같아요. ㅎㅎ
      그 토끼 잘 살았으면 좋겠어용~~
    • 납치 당하실 뻔 하셨네요.
      천만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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