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에서의 "나"란 화자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를 다 읽었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 속의 "나"란 화자는 작가가 아무리 화자에게 다른 개성을 부여할 지라도 어느 정도는 "작가"와 동일시 하게 되지 않던가요?

듀나님 소설 속에 나오는 화자 "나"는 대부분 굉장히 이성적이고 유능하며 지지부진 하지 않는 쿨한 면을 보이고 있죠. 감정을 표현하지 않거나 굉장히 절제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요. 그런 인물이 "나"라는 1인칭까지 사용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독자는 작가와 화자를 동일시 하게 되어 버리는 것 같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듀나님도 소위 "듀나짓"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적도 있는 걸 보면, 듀나님도 어느 정도는 인식하고 계신 것 같기도 하고.

 

일례로 하루키 소설의 "나"는 다 하루키 같아요. 팝을 좋아하고 가사를 즐기며 룸펜형 지식인 같은 초식남. 게다가 하루키는 얼굴도 잘 알려진 작가인지라 소설을 읽으면서 그냥 하루키가가 말하고 행동하는 걸로 자동적으로 상상이 돼요. 듀나님 소설 속의 "나"란 화자들도 이미 동일한 모습으로 제 머릿속에 등장하죠. 듀나님께서는 본인을 드러내지 않는 관계로 듀나님의 모습으로 치환되지는 않지만, 전 그냥 "에밀리 더 스트레인저" 같은 사람으로 상상이 되어버리죠. 소설의 읽으면서 여자인 "나"란 화자가 등장할 때마다 머리 속에서 에밀리가 말하고 행동하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소설은 써본 적이 없어서 3인칭 화자나 1인칭 화자를 사용할 때의 기술상의 차이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느낌상 작가가 1인칭 화자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끌어 갈 때는 소설 속에서 작가의 의지가 더 적극적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느껴지죠. 정말 작가에게는 이런 의도가 있는 걸까요?

 

이건 여담인데, 듀나님께서 "좌절한 남자들"을 관찰자적 관점에서 보는 게 아니라 그 찌질함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1인칭 화자 시점으로 그려줘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찌질함의 끝을 냉정하게 비아냥 거려주시는 거죠.

    • 예전에 이상 소설에 대한 수업에서 교수님이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소설만 읽으면 이상이 살짝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자연인 이상은 실제로 아주 평범한 지식인이었다고... 그 교수님의 결론은 소설 속 1인칭 화자가 자연인인 "나" 와 전혀 상관없는 존재일 만큼 객관화가 잘 된 소설이 훌륭한 경우가 많다, 는 거였어요. 1인칭이라고 그저 손 가는대로 쓰지는 말라는 경고였다고나 할까요. 쩜쩜... 그래서 저는 "괜찮은" 1인칭 소설일수록 타자화가 많이 된 화자가 등장한다고 생각해요. 작가의 내면세계랑은 거리가 멀어진다는 거죠. 그만큼 독자가 이해하기는 쉽고.
    • 재미있네요. 그럼 1인칭 화자를 두고 작가와 독자의 거리를 생각할 때, 작가와 소설 속 1인칭 화자의 거리가 반드시 가까운 것은 아니지만 독자에게의 접근성은 훨씬 높아질 수도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같은 경우에는 1인칭 화자가 등장한 경우 훨신 더 몰입이 잘 되는 것 같거든요.
      • 네. 화자와 작가의 동일시는 작가/영화감독 지망생들이 습작에서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이기도 하죠. 캐릭터에 푹 빠져서 자기 얘기만 왕창 늘어놓고 혼자 만족하는데, 정작 수용자는 이게 뭔 소린지 지루하고 알아먹지도 못하는 경우. 그래서 소설 습작기에는 3인칭으로 써보는 게 오히려 독자의 공감을 얻기가 쉽다는 충고도 있지요. 듀나님이나 여타 "1인칭 화자" 의 캐릭터가 공고한 작가의 경우에는 이미 작가 자신을 캐릭터화한 거라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결론은 듀나님의 실제 모습은 우리가 아는 것과 완전 다를 거라는 것... 글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소설가들은 직업적 구라쟁이들이니까요 ㅎ
    • 낯선 사람이 길을 물어왔다는 설정이 있다고 했을 때,
      나라면 어떻게 대답할까, 라고 생각하고 쓰는 것보다
      이 캐릭터라면 어떻게 대답할까, 라고 생각하고 쓰는 게 맞겠죠.
      전자처럼 쓰면 픽션일지언정 에세이에 가까울거라고 봐요.
    • 그렇다면 작가의 입장에서는 에세이식으로 쓰면서 신빙성을 높이고 자기는 뒤로 빠지는 거겠죠. 화자를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은 작가로서의 스킬이겠죠.

      근데 만약 소설에서의 화자와 작가를 완전하게 분리시킨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작가론"이라는 것이 성립되기 힘들지 않나요? 모든 문학작품(아니, 모든 예술작품)을 통틀아서 화자를 통해서 작가가 투영될 수 밖에 없는 것 사실이고, 1인칭 화자를 등장시킨 경우에 이런 점이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렇다고 모든 측면에서의 동일시라고 생각하면 문제가 있겠지만요.
    • 작가론과는 별 상관 없을 거 같아요.
      왜냐하면 화자랑 분리돼도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같은 걸로 작가는 충분히 자신의 의지를 전할 수 있으니까요.
      오히려 꼭 화자를 빌려서만 할 말 할 수 있는 작가라면 매력이 반감될 듯,,,
    • 음...그런 것 같군요. 화자를 빌려서 "말하기만 할 뿐"이라고 여겨지는 작가들도 분명 있거든요. 그런 경우에는 확실히 뭔가 심심해요.

      저야 문학 전공과는 영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작가별로 "화자"가 가지는 꽤나 패턴화된 방식이 존재할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구술의 방식을 작품마다 전면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작가는 의외로 매우 드물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도스토옙스키가 화자를 다루는 방식(물론 1인칭이 아니더라고 하더라도요)은 분명 도스토옙스키만의 것이고 그 사람의 작품 전체에서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다른 작가들도 대체로 그런 것 같고요.
    • 작가는 캐릭터를 만드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결국엔 캐릭터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니까요. 작가 자신의 모습도 특정 캐릭터보다는 작품의 이야기구조에서 드러나야 하는 게 정답일 것 같아요. 그렇게 하는 게 메세지 전달이 훨씬 빠르기도 하고, 전 이게 서사예술의 존재의의라고 생각하거든요. 거칠게 비유하자면 논거에 대한 예시를 만드는 작업이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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