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작가, 굶어죽은 베짱이


이전 김유정이 죽기 열흘 전 남긴 편지를 읽었습니다.
살고 싶다고, 제발 돈 좀 보내달라고 애걸하는 한 줄 한 줄은 애처롭고 비굴하다기 보다는, 그의 안에서 그와 함께 죽어가는 글들이 이대로 사라질 수 없다고 외치는 비명 같았습니다.
겨우 20대 초반의 나이에 병과 굶주림으로 죽지 않았더라면, 그는 더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겠지요.

인간의 역사는 발전한다고들 하지만, 그 때와 지금이 그리 다르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그냥도 아니고, 재능을 가진 작가 분이 춥고 어렵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니, 어이 없어 가슴을 치고 하늘을 보네요.

다른 일하면서 남는 시간에 글 쓰면  된다, 라고 말하는 분들도 많겠지요.
하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굳이 비유하자면 정규 근무를 하는 앞에는 어학원을 다니고 퇴근 이후로는 파트타임 알바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네, 해낼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가능하진 않아요. 그렇지만 굉장히 힘든 일이고, 할 수 있는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게다가 글을 써내는 것이란, 인풋과 아웃풋이 언제나 비례하지 않습니다. 반지의 제왕이 완결되는 데 15년 밖에 걸리지 않은 게 양호할 정도로요.

게다가 돌아가신 그 분은 일을 하고 있지 않았던 게 아닙니다. 일을 했어요. 그 나이에 국제상도 수상했고, 5편이나 계약을 했다는 것은 대단히 성실하고도 왕성한 작업량입니다. 다만 댓가가 돌아오지 않았을 뿐이고, 그게 생활고로 이어진 거지요. 

가장 슬픈 사실은 이렇게 재능을 가진 사람이 굶어죽었다는 사회적인 비극을 두고 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냐는 겁니다.

죽은 사람더러 왜 일을 하지 않았냐, 라던가. 주변의 가족이나 아는 사람들더러 왜 돕지 않았냐, 라던가. 심지어 많은 개런티를 챙기는 배우들을 욕하는 글 마저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묻고 싶네요. 이렇게 사람이 죽을 때까지 이 세상은 바뀌지 않았나, 라고. 영화계 관행이 얼마나 썩어있는 지는 다른 분들이 많이 말씀하신 듯 하니 제가 굳이 말할 필욘 없겠지요.

책을 내는 작가의 사정도 다를 바 없습니다. 돈 떼 먹기, 계약만 하고 책으로 안 만들기, 부수 속여서 돈 안 주기... 한 두번의 일이겠습니까. 저 스스로 그런 과정을 지켜본 적도 있습니다. 회사 나름으로 고충이 있겠지만, 정규 수입이 없는 작가에게는 정말 돈 한 번 들어오는 게 얼마나 굉장한 생명줄인지.
다른 문화예술계 직업군의 사정도 마찬가지일 듯 합니다. 아니, 직업이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지요.

어제 지인분께서 트윗에 이리 말씀하시더군요.
그 돌아가신 분은 옆집 사람에게 먹을 걸 달라고 하지 말고, 나라 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어야 한다고. 그래야 마땅하다고. 이렇게 이야기하면 사지 멀쩡하고 젊은 여자에게 무슨 국가기관이, 라고 할 분들이 꽤 많겠지만 이른바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거지요. 사람이 어떤 상황에든, 내일을 위한 꿈을 꾸며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게 하는 것. 지원금 어쩌고가 아니라 당장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는 것.
외국에서 살아보니 그게 정말 피부로 와닿습니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그리 가난한 지경도 아닌 사람에게도, 당장 먹을 것을 받을 수 있는 푸드 뱅크를 이용할 수 있고, 의료비 역시 무상으로 지원됩니다. (지금 저만 해도 식품을 살 수 있는 수표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극빈층이 아닌데도요.) 혹자는 이를 두고 사회적 낭비라고 하겠지만, 이 세상의 많은 문화적 유산들은 일반적인 삶을 포기한 자발적인 실업자들에게서 만들어졌습니다. 가난에 시달린 예술가들은 하 많으니 굳이 말할 건 없겠지만, 어르신들 귀에 쏙쏙 들어올 만한 예를 든다면 역시 조앤 롤링이겠지요. 그녀는 미혼모에게 지급되는 보조금을 받아가며 근근히 글을 썼고, 결과적으로 그게 어마어마한 국가적인 이익을 가져왔지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만약 좀더 성실하고 유능했더라면 해리포터는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작가는 그리 뛰어난 일꾼이 아닙니다. 소심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다보고, 세상 물정에 어둡다보니 사회생활 해도 이상한 사람으로 놀림받기 일쑤지요.)

그런 의미에서 사회 복지는 단순한 낭비가 아니라, 그 사회의 미래를 위한 투자이지요. 허나 이 세상은 당장 번듯하고 으리으리한 결과가 나와야만 직성이 풀리는 높으신 분들이 너무 많다보니, 문학도 예술도 학문도... 무엇보다 사람 생명도 차근차근 말라죽어가고 있습니다.

개미는 굶어죽은 베짱이를 비웃었지만, 음악도 노래도 없이 살아가는 일 뿐인 삶이란 얼마나 척박한 건지.

저 자신도 그다지 다를 바 없는 글쟁이의 처지이므로
먼저 떠나간 김유정 선생님과 최고은 씨에게 차 한 잔 올립니다.

따듯하세요.

p.s : 
이젠 고 최고은 작가의 시나리오, 라는 카피와 더불어 영화가 만들어질 거 같아 씁쓸해집니다.
    • 에효. 1-2편도 아니고 5편이나 계약했는데.. ㅠㅠ
    • 어제 울컥해서 들었던 생각이 차라리 영어 일본어 가르쳐서 그 나라 영화 시나리오 시장으로 진출 시켜버리게 하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세대를 키우지 않는 사회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되더군요.
    • 잘 읽었습니다, 님도 먼 곳에서 건강하게 지내세요.
    • 원시사회에서 잉여물자가 생겨 사회와 문화가 생겼다고 생각됩니다. 잉여물에 의해 배불리 먹을수있는 사회가 형성되고 편가르기, 곧 이데올로기가 형성됩니다. 인간은 배부르다고 모두 사는게 아니라는걸 알게 된거죠. 바로 문화라는 소일거리가 있어야 된다는것. 그런데 이 문화를 누가 어떤 비용으로 담당을 할거냐 입니다. 이부분은 사회구조상 경제레벨처럼 동일한 레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측정인데 속된말로 코에 걸면 코거리 귀에 걸면 귀거리가 될수있는 문화의 질에 대한 판정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시장이 있어 자연 그 가치는 형성이 됩니다만 그 속에서도 의도적인 정부개입으로 강제적인 조정이 있어야 한다는거지요. 그렇지 않고서는 문화는 차선으로 미뤄질수밖에 없고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거론될때는 말그대로 척박할수밖에 없기때문입니다. 사실 저역시 학교입학때 경영학 무지 싫더군요. 집이 부산 이었던지라 영화한다고 서울갈려고 맘 먹은적이 있습니다. 집에서 말리는 바람에 꿈을 접었지만... 이런이야기하면 그래도 밥은 먹고 안사냐? 이런말들 합니다. 그러나 그방향으로 갔으면 또 다른 능력을 봤을지도 모를일이다 라고 혼자 되뇌이기도 합니다. 지금 본격 영화는 아니더라도 시나리오쪽으로 큰작품하나 쓰는게 소원인데 벌써 직장생활에 이쪽으로 머리가 굳어서인지 되질 않습니다.
    • 개미는 굶어죽은 베짱이를 비웃었지만, 음악도 노래도 없이 살아가는 일 뿐인 삶이란 얼마나 척박한 건지. 이 문장엔 공감 버튼 누르고 싶어요. 그런데 베짱이의 안전망을 위해 개미들의 지원(말하자면 개미들이 낸 세금을 통한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논조엔 동의하기 쉽지 않네요. 그럼 누가 개미가 되고 싶겠어요. 다들 조금씩은 베짱이의 꿈이 있는걸요. 저 역시 베짱이를 꿈꿨지만 그 꿈은 접(히)고, 개미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 그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여기서 해리 포터가 나올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네요. 굶어 죽던지 포기 하던지... 보조금 받으며 동네 카페에서 글쓰는 건 꿈같은 일...
    • 구구절절 동감합니다. 국격 운운하는 미친넘들의 면상에 신문기사를 집어던지고 이게 니가 말하던 그 국격이냐고 말하고 싶을정도로.
    • 소설이란 것도 여러가지 경험을 해야 쓸 수 있는 것인데, 직장생활에 매여있으면 머리가 굳어지기 쉽고 그러면 창작력(?)이 상승하지 않겠죠.

      apfel//차라리 그러기라도 했으면 저렇게 굶어죽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굳이 소설분야는 아니더라도 절친한 친구가 미술쪽으로 일하는데 일하다 돈 떼먹히는건 일상이라 참 착잡해요.
    • niner/ 다른 초보 작가들은 더 심하겠지요.

      Apfel / 모국어의 장벽은 의외로 높습... 정말 갑갑합니다.

      jennylake / 다행히 먹을 것은 충분합니다...(?)

      무비스타 / 명품 옷을 입고 스마트 폰을 든 원시인의 시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SJANU / 사회복지는 베짱이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개미가 될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또, 베짱이는 개미들이 나눠먹을 수 있는 더 큰 파이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잘 키운 베짱이 하나 열 개미 안 부럽습니다. 해리포터도 그렇거니와 저기 유럽의 베짱이들이 수백년 넘게 해먹고 있으니 말이지요.

      clancy / 아니면 부잣집에서 태어나던가.

      싱클레어 / 무상급식의 논의에 이슈화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만.,..

      타보 / 무엇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지라 이거저거 다 잘할 수 없지요.
    • LH님의 역사 관련 포스팅 만큼이나 정독했어요. 가신 분 생각에도 너무 마음 아프지만 댓글이나 여러 논쟁을 보면서 더욱 참담하더라구요. 글을 쓰는 친구가 한숨 쉬면서...아동 쪽은 그래도 돈이 제때 지급되는 편이라고 중얼거리는데 진짜..뭐라 할 말이 없더군
    • 이 일은 그저 마음이 아픈 정도가 아니라 너무 무서워서 말이 안 나오더군요. 여전히 말이 잘 안 나와서, 그냥 게시글 잘 읽었다는 말씀만 드립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아서요.
    • LH// 무상급식이 포퓰리즘이라고 주장하는 작자들과 국격 운운하는 작자들이 많이 겹치니까요.
    • 이번 최고은 작가의 요절 기사에 달린 포털 댓글에서 많이 봤죠.
      젊은 사람이 다른 밥벌이를 하지 왜 굶어죽냐고요.
      뭔가 울컥하는게 올라오면서도 막상 그 글에는 지병이 있고 몸이 쇠약해진 상태니까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라고 댓글을 달고 말았는데
      LH님 글을 읽으면서 좀 더 생각이 정리가 되네요.
      최고은 작가 관련 글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네요. 잘 읽었습니다.

      최작가 일은 생각할수록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이번 정권들어 가슴 아픈 사건이 너무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 글 잘읽었습니다. 김유정은 저와 비슷한 나이에 굶어죽엇군요. 눈물이 계속 나와요. 어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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