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길냥님을 영접한게 자랑
일곱시 좀 넘어 퇴근길, 집까지 걸음을 재촉하며 걸어오고 있는데
여느때처럼 길거리를 방황하는 길냥이를 보았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좋;은 마음에 조심스레 길냥이 쪽으로 다가가 봤는데
여느때와는 달리 그 고양이는 저 멀리 도망가지 않고, 바로 옆에서 식빵자세로 저를 말그라미 쳐다보는 겁니다.
어머나 신기해라 귀여워라;;; 싶어 뭔가 먹을 걸 줄게 있을까 싶어
가방을 뒤져보았지만 쓸모없는 생크림 영양캔디;; 한 개만 나오더라구요.
그래도 혹시나 싶어 비닐을 까서 앞에 내밀어 주었지만 이 고양이의 관심사는 사탕이 아니라 포장 비닐이었습니다.
바스락거리는게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이리 저리 가지고 놀더니 또 다시 저를 말그라미 바라보더라구요.
원래 고양이를 보는건 무척 좋아라 하지만
애완동물은 키워본 적도 없고, 별로 만져본 적도 없어서 조금 무서워하면서
(헉 아무리 그래도 길냥이인데 할퀴거나 하면 어떡하지 물진 않겠지 어헉헉헉헉 갠 갠차늘꺼야 아허하하하하ㅏㅏ)
무릎을 꿇고 조심스레 등과 목덜미를 몇 번 쓰다듬어 줬는데...
제 품안으로 안겨들어오는 거여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꺄ㅏㅣㅏㅏㅏㅏㅏㅏ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추운 날씨가 견디가 어려웠는지 제 오른쪽 옆구리에 고개를 푹 박고 골골거리는 냥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 전까지는 어머 신기하다 길고양이가 도망을 안 가네? 잠시 나랑 놀아보지 않으련? 이런 가벼운 마음이었던 것이
고양이가 제 옆구리에서 움직이는 순간 뭔가 어떻게든 하긴 해야겠더라고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다행히 직장 동료중에 고양이를 키우고 있고 길고양이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 계셔서 급 구조신호를 보냈습니다.
야근중임에도 불구하고 친절히 전화상담을 해준 직장 동료분께서는 길냥이가 이렇게 사람에게 오는건 그 사람을 간택한 거라며,
제가 그 고양이를 버리고 가더래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면 벌을 받을 거라는 신탁을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양이를 키울 수 없거든요.
어머니는 무척 고양이를 싫어하시고, 동생은 알레르기성 비염인지라..
제가 지금 의지할 곳은 선생님밖에 없어용 저는 고양이를 키울 수 없거든요 절 좀 도와주세요 아니 제가 아니고 고양이요 고양이 ㅠㅠ
라는 저의 물귀신 작전에 의해 직장 동료분께서 퇴근하면 이 아이를 데려가 당분간 신변을 보호해 주시기로 하고,
냥님을 제 품에 모시고 저희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많은 것을 생략해서 적어서 그렇지 이 과정까지 삼십분은 걸렸어요;
태어나서 한번도 동물을 집에 들여본 적이 없는 몸이거든요 으하하.
직장 동료분의 퇴근을 기다리며 전 냥님을 관찰하고 냥님은 반수면 상태로 따뜻한 방바닥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 덩치가 꽤 크고 꼬리가 긴걸 보니 역시 다 큰 고양이 같아,
핸드크림을 베개로 삼다니 크림은 어떨까, 아니야 역시 ㅇㅇㅇ인이라면 좀 표절스럽긴 해도 봉석이도 괜찮지, 이런 상념을 즐기며..
(참고로 이름은 조로라고 붙여주었어요, 조로....)
결국 고양이를 픽업하러 왔다는 전화가 오고, 나갈 준비를 했습니다.
이렇게 푹 자는 고양이를 깨워서 다른 집으로 보내야 한다는 게 벌써 마음이 찡해졌어요.
어떻게 데리고 나가야 하나, 어디 가방이라도 넣어서 데리고 가야 하나, 안고 나가야 하나,
바깥에 나가자마자 절 뿌리치고 도망간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이 시간에 집앞까지 와준 동료분께도 미안한 일이고..
어떻게든 꼭 안고 나가서 사료도 많고 친구도 있고 알레르기 있는 사람도 없는 좋은 곳으로 보내주고 싶기도 하고,
아이 참,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제 품에 스스로 안겨준 고양인데 조금 더 오래 같이 있고 싶기도 하고....
착잡한 마음에 고양이를 꼭 끌어안고 현관 앞으로 나섰어요.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그 전까지 한번도 소리를 내지 않던 고양이가 처음으로 캭!캭!! 하는 소리를 내는 거에요.......
처음으로 애완동물에게 말을 거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했어요.
저도 모르게 아니야 괜찮아 좋은데 가는거야 걱정하지마... 라고 몇 번을 달래며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오히려 데리고 들어올때는 어머 나 고양이 안는데 소질있나봐 +_+ 싶을 정도로
제 품에 착 달라붙어 안겨있던 아이가 어찌나 칭얼대며 나가길 싫어하는지....
한걸음 한걸음 기다리는 동료분을 향해 가는 길이 너무도 길고 먼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동료분은 숙련된 자세로 준비된 고양이 이동장;;에 고양이를 넣어 붕붕 떠나가셨지요.
같이 오신 동료분의 가족구성원;;께서 어머 이녀석 잘생겼다, 훤칠하다고 칭찬을 해 주셔서 짠한 와중에도, 다 뿌듯했어요..
(다만 이렇게 크고 건장한 아이일 줄은 몰랐다고 으하하하하ㅏㅏㅏㅏ)
그리고 전.... 잠들기 전에 조로와 만났던 오늘을 잊지 않기 위해 듀게에 바이트를 남겨봅니다.
날 간택한거야, 내가 마음에 들었던 거야+_+ 라고 마음껏 뽐내고 싶기도 하지만
사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 손을 탄 고양이지 않았나 싶었던 게,
고양이를 처음 안아보는 제 품에 안정적으로 착 달라붙어있는 솜씨나,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을 보며 흠 이제 새로운 곳으로 가는 모양이군? 하는 폼새나,
제 방에 들어오자마자 재빨리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나오고,
침대 시트를 긁으며 위로 뛰어올라가다 저한테 끌어내려지고,
결국엔 제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결국은 침대 발밑에 자리를 잡아 식빵을 굽는 그 솜씨는....
아니 어떻게, 남의 집에 와서 어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누워 잠을 잘 수 있는지.... 정말, 너무 당당해서 좋았지만요ㅠㅠ
동료분이 일단 고양이 커뮤니티쪽에서 잃어버린 고양이가 없는지 알아봐 주기로 하셨어요.
만일 분실 고양이가 아니라고 해도, 한마리 더 키우는건 특별한 일 아니라며 시원스럽게 말씀해 주셨답니다. 아이고 사실 엄청난 민폐지만요.. ㅜ.ㅜ
저도 당분간은 전단지는 없는지, 찾는 사람은 없었는지 아파트 경비아저씨께 물어볼 생각입니다.
주인이 찾고 있는 고양이라면 주인 품에 돌아갔으면 좋겠고요,
또 주인이 없는 고양이라면 동료분 집에서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고요.
어느 쪽이든 저와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겠지요.
하지만 저의 첫번째 고양이는 우리 조로랍니다.
(저 지푸라기는 저 아이 몸에 붙어있던 거... 스타킹은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