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127시간 (스포有)

 

 

전 솔직히 좀 놀랐어요.

징그러운 거 싫어해서 마음 단단히 먹고 갔는데요,

생각보다 드라이하지 않고 뮤직비디오 같았어요.

 

무엇보다도

도입 십분만에 손가락이 끼고 나서

그 이후 러닝타임을 무슨 내러티브로 끌어갈까 싶었는데,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를 매쉬업 시켰어요.

 

그럼에도 스토리텔링이 힘을 잃지 않은 건,

다 카메라워크와 음악 덕분이죠.

보다보면 내가 하늘도 자유롭게 날 수 있고 시간도 건너뛸 수 있으며

그의 의식 아래 깊숙히 까지도 들어갈 수 있는 마법의 시선으로 보는 것 같아요.

 

중요한 건, 다큐멘터리 식으로 일정한 호흡과 거리를 계속 유지하는 게 아니라

마치 애런이 캠코더로 찍어서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것처럼

그의 의식이 닿는 곳에 마법의 시선도 닿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거예요.

편집도 아침 토크쇼 씬 같은 경우에는 실제 캠코더 촬영화면과 구분이 잘 안 가게 되어있어요. 의도적인지는 모르겠네요.

 

결과는 나쁘지 않은데, 매쉬업 될 때

시간의 흐름 상으론 제 멋대로 따로 노는 현재와 과거의 실타래들이 

의식의 흐름 상에서는 제법 편안하게 이어져요.

이끌어가는 음악이 제 역할을 해주니까요. 

 

흥미로운 건 이 사람의 심리상태적 변화예요.

애런은 자기 삶의 유일한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연출자예요.

그가 캠코더를 사용하는 방식을 보면, 주변풍경도 찍고 자기 얼굴도 찍고

캐년에서 만난 친구들을 찍기도 하지만 결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찍는 건 아니예요.

물론 부모님에게 보여줄 수도 있지만 그거야 그 분들이 원하는 거고 적어도 그가 의식하고 있는 건 아니죠.

 

그렇다고 단순한 일상 기록용도 아닌데,

그가 찍어놓은 영상을 돌려볼 때마다

그가 맺은 주변인물들과의 소중한 관계를 다시 떠오르게 해주는 연결고리이기도 해요.

평소엔 잊고있다가, 바위 틈에 엄지 손가락이 끼고 나서야 그걸 다시 기억해낸거죠. 그의 무의식은 정직해요.

 

그렇다면 도대체 이 사람은 왜 그렇게 열심히 캠코더로 찍고다닌 걸까요?

중증 나르시스트여서? 아님 그냥 영화적 장치가 필요했던 걸까요?

 

글쎄요.

이 남자는 육체적인 강인함도 있고, 정신적으로도 나약하지 않은 편이지만

늘 결정적인 동기가 부족해요. 이건 의지와 관련된 부분이죠. 네, 삶의 의지요.

캠코더를 찍는 행위는 그 심리적인 불안정함이 표출되어 나타나는 부분이예요.

 

그는 항상 확신이 없었던 거죠. 자기가 부모님에게, 동생에게, 친구에게, 그리고 또 애인에게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가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정확히 그 반대요. 그들이 그에게 얼만큼

소중한 사람들인지, 거리를 어떻게 재야 하는지 몰라서 그동안 그렇게 무관심하게 굴었던 거예요.

 

그걸 깨닫고 나자, 이 남자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깨달음을 위한 일련의 인과적 연속선상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심지어 자기가 살아온 모든 삶이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여기기까지 하죠.

네. 그는 이 절망적인 상황을 통해,

역설적으로 자신의 삶이 가치있지 않다면 이러한 생사의 고비가 주어지지 않으리라는 점에 이르른거죠.

 

한 마디로 짜릿한 동기죠.

자기가 이 상황을 극복하고 나가야, 애런 랄스턴 주연의 인생영화가 중요한 포인트를 넘어 계속 이어질 수 있게 되는 거니까요.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아니라,

정말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확실한 동기가 오른팔의 절단을 가능케 했겠죠.

 

모르겠네요. 저라면 이런 래디컬한 경험은 인생에서 한 번도 필요없는데, 이 사람은 한번쯤 필요했나 봐요.

사람 나름이겠죠 뭐.

 

    • 이 리뷰를 읽고 나니 포스터가 이해되네요. 모래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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