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이 필요했던 지난 날.

잠도 안 오고 해서 책장에 꽂힌 옛날 노트들을 들추어 보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국어노트를 봤습니다.

당시 국어선생님은 젋으셨고, 갓 결혼한 새신랑이셨고, 열정이 넘치시는 선생님이었어요.

모두들 그 선생님을 좋아했어요.

요즘 '반짝반짝 빛나는'이란 드라마에 김석훈씨가 출판사 편집장 역으로 나오는데

그 캐릭터랑 비슷해요. 그 선생님이.

원칙주의자에 가끔 차가워 보이지만, 속은 따뜻한...쓰다 보니 차도남이네요 ㅋㅋ

아무튼 그 선생님은 초등학교 때 선생님들이 일기장 검사하면서 첨삭 및 감상을 쓰시듯

저희에게 재밌는 과제를 내 주시고 다음 시간에 노트를 걷으셔서 잘못 쓴 맞춤법을 고쳐주시거나

짤막하게 감상을 써 주시거나 하셔서 마치 대화하는 느낌이었어요.

그 때 저는 한창 중2병이었기에 처음 한 두 번의 선생님의 친절하고 재치있는

코멘트엔 더 이상 만족하지 못 하고 뭔가 다른 친구들관 다르게 제 존재를 인정받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비관적이거나 삐딱한 내용을 쓰기도 하고...뭐 그랬어요.

그 노트를 들춰보니 제가 봐도 참 낯이 화끈한 게...... 제 딴엔 관심받고 싶어서 머리 굴린 건데

어른인, 그것도 성숙한 어른이었던 선생님 눈에 제가 어떻게 보였을지 생각하면

다 지난 일인데도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요ㅡㅜ 아,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여....

 

여기서 끝났으면 다행인 것을...

그 노트 옆에 꽂혀있던 대학 1학년 스무살 때 썼던 일기장은 더 가관이더군요.

내 참 부끄러워서.......

대학에 가서까지도 관심받고 싶은 제 본능은 오히려 선배님들한테 반항하고

싸가지없이 굴고 그러다가 선배들이 돌려돌려 한 소리 하면 그걸 또 섭섭하다고

배신감 든다느니 하며 몇 페이지를 투덜댔더군요.

그 때 제가 선배들께 한 행동과 말들을 생각해보니 입장 바꿔 제가 선배들이었다면

정말 뒷목 잡고 쓰러질 수준의... 정말 관심병자더군요.

너무너무 유치하고 속이 다 뻔히 보이고 애가 참 사랑을 못 받고 자랐나보다, 하며 넘긴 거겠죠. 선배들은.

그 땐 정말 선배들한테 사랑받던 제 친한 동기에 대한 질투도 엄청났더군요.

누가 볼까 무서워 일기장은 다시 책장 구석에 깊게 묻어 두었습니다.

 

그 때 짝사랑하던 선배가 생각나요.

첫눈에 반했고 많이 좋아했는데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몰라 오히려 틱틱거렸던

바보같은 내 모습, 이유도 모르고 어이없어 했을 그 선배에게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잘 살고 있겠죠. 그 분은......

보고 싶네요. (결론이...왜.... )

 

 

 

 

    • 저도 선생님들 많이 좋아해서 (긁적긁적). 잘 읽었어요.
    • 으, 저도 선생님들을 좋아하는 편이었어서 막 홈페이지 방명록 같은 데서 길게 대화도 나누고 했는데 그 땐 대등한 대화였다고 생각했지만 그러기엔 너무 유치하고 마음이 어렸겠죠. 그 시절 생각하면 오글오글 화끈화끈 레드썬!! 하고 싶을 정도에요. 나만 이런 거 아닐 거야 다들 그런 부끄러운 기억이 있을 거야 하면서 위안하려 들지만 부끄러움은 저의 몫.. 그래도 선생님들 좋은 분들이었고, 유치한 제자의 편지글에도 언제나 길게 정성껏 답장해주시고 그런 기억들은 좋았어요.
    • 아 선생님이 무척 잘생긴 분이었나보네요
    • 저도 신입생 때 학과 커뮤니티에 쓴 글을 몇달 전에 본 적이 있었는데 그야말로 오글오글 하더군요;
    • 저도 신입생 때 학과 커뮤니티에 쓴 글을 몇달 전에 본 적이 있었는데 그야말로 오글오글 하더군요;
    • 결론에서 빵 터졌어요.
      글이 재밌어요. 저는 관심을 받고싶어는 했지만 그런 방식은 아니었거든요.
      어렸을 때는 원하는 걸 어떻게 이끌어내야 하는지 잘 모르기 마련이니까..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0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37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48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3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88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28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25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5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1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25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0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2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2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49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1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