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푸념) 나는 한 번도 반짝반짝했던 적이 없었구나...

Pual님의 반짝반짝 귀여운 글을 보고 제 젊은 날에 대해 생각하다가 씁니다.


젊은날, 반짝반짝, 눈부신, 따위의 표현들을 인생의 어떤 시점을 수식하기 위해 사용한다면, 아마 10대 후반이나 20대의 시절들을 위한 것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기만성이라고 연륜이 쌓인 뒤에 커다란 성취를 이루는 훌륭한 분들도 많지만, 젊은 시절의 매력은 그게 아니죠.

무언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빛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또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시기가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해요 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시기에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능력 때문이 아니라 열정 때문인 것 같습니다.

능력은 어떤 분야에서 숙달이 될 수록 더 많이 갖춰지는거 잖아요. 어리고 푸르던 시절에는 숙달이 왠말입니까. 할 줄 아는거라곤 맨땅에 해딩밖에 더 있겠어요.

그래도 자꾸자꾸 무언가가 하고 싶어지는거죠. 맨땅에 해딩이라도. 이것도 할꺼야, 저 사람도 만날꺼야, 여차하면 이 뭐같은 세상 다 엎어버릴꺼야.

이것을 할, 그 사람을 만날, 세상을 요만큼이라도 들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자꾸만 무언가를 하고 싶고 그것들로 자신이 인정받고 싶었던거 같아요. 그 시절엔.


그 녀석이 무얼 향한 건지는 알 수 없어도 거대한 열정과 쉴 새 없는 충동에 사로잡힌 10대 후반의 저는,

내 20대는 그 무엇보다는 강렬하기를 바랬어요. 그렇게 될거라 믿었어요.

장밋빛 화사한 날들이 펼쳐지진 않더라도 실패와 좌절과 절망에 얼룩지더라도 그 시절의 흔적들은 보기싫은 흉터로 남아 결코 지워지지 않을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20대의 끝자락에서 돌아보니 안타깝게도 제 젊은 날에는 어떤 선명한 흔적도 남아있지 않은거 같아 쓸쓸하네요.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를 다녀오고 운전면허를 따면서 남들만큼 나이를 먹긴 했지만 마땅히 그 가운데 남아있어야 할 내가 지나온 발자국이 보이지 않아요.

지금와 돌이켜보면 후회만 가득하죠. 그 때 기타를 잡았어야 하는데, 그때 그 수업같이 듣던 여학생에게 말을 걸었어야 했는데,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부딪히고 부서졌어야 했는데.

아무리 써도 다 없어지지 않을거 같았던 열정과 충동은 바람빠진 풍선처럼 찌그러져서 그걸 보고 있는 저를 더 안타깝게 만든 답니다. 어쩌자고 이 지경이 될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걸까요.


이제와 너무 슬픈건 두 가지에요.

첫째로 이제 그 열정이나 빛나는 시절이 돌아오지 않을거라는 거. 시간은 되돌릴 수 없죠. 집에 두고 온 지갑은 도로 가져오면 되죠. 하지만 두고 온 스물 세살을 되찾을 수 없어요.

그 시절의 꿈이나 열정, 보고싶던 사람들 따위 다신 품을 수 없을거에요. 아름답거나 처절할 수 있었던 젊고 빛나던 시절들은 그렇게 아무 색깔도 없이 개떡같은 채로 남아있겠죠.

그리고 두 번째로 앞으로 펼쳐진 내일도 별 기대가 되지 않는다는 거. 젊은 날이 끝난다고 꿈이나 열정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죠. 더 소박하지만 더 견고하고 우아한 형태로 꿈은 단련되는거 같아요. 내가 만나는 그 사람과 결혼을 하고 싶다거나 내가 하는 일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이고 싶거나. 하지만 젊음을 낭비한 죄로 저는 제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새로운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도 잘 모르겠고, 내가 무얼하며 살아야 하거나 무얼하며 살고 싶은지도...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내일은 펼쳐지겠지만 그게 도대체 어떤 방식일지 궁금하지도 않고...



오늘은 프로야구도 모두 우천 취소되었군요. 아, 내일은 커녕 오늘도 보이지 않는구나ㅠ



그래도 요새 가지고 있는 목표는 '조금은 쓸모있는 사람이 되자'. '내 앞가림은 내가 하자'입니다. 아마 안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생각하는 척이라도 하는거죠. 

단 한 순간도 반짝거리던 시절이 없을 인생이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이 거의 틀림없는 삶이지만 어쨌든 내일은 모르는거니까.

혹시나 히어로즈가 우승할 수도 있는거니까(그럴리가). 다들 알고있지만 짐짓 모르는 척, 내일은 모른다며 시치미를 때고 뻔뻔하게 살아가야죠. 


    • 산체님만 모르시는거구 사실 야광이라서 주무시고 계실 때 빛나고 계실지도 몰라요(절 푸알Pual이라고 쓰신 데 대한 소심한 복수의 뻘글이어요 흑흑)
    • Paul.님의 댓글보고 빵 터졌네요 ㅋㅋ
      30대가 끝나가는 마당에 돌아보니 제 30대는 무엇이었는지 아예 기억이 안나네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별 볼일 없다고 생각했던(실제로도 별 볼일 없던) 20대에 대한
      기억이 오히려 강렬해요.기억이 아니라 이미 추억이 되어서 그런가, 첫사랑이 20대의 기억속에 있어서 그런가 하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세상바라보는 눈이 회색에 물들어
      있지 않아서 그런걸까 하고 있습니다.
    • 맞아요 내일은 아무도 모르죠. 이번주 로또 당첨자가 내가 될수도 있지말입니다 ㅎ ㅎ 반짝반짝 빛나지는 못해도 은은하고 우아한 고려청자같은 중년 노년을 기대해 봅니다
    • 전 항상 산체님의 글에서 청춘의 순수함을 느끼는데요.

      전 산체님의 팬
    • 후우 저도 한번도 반짝반짝했던 적이 없기에... 저는 열정이나 의욕에 충만해 본 일도 없었네요, 후우.
      나름 꿈이나 희망을 가져볼 법도 했을텐데, 대체 뭐하고 살았던 걸까 싶기도 해요.
      그래도, 반드시 반짝여야만 한다는 법은 없잖아, 하고 생각합니다. ㅎㅎ 세상에 반짝거리는 것만 있다면 눈이 아프겠죠. 안 반짝거리는 사람도 좋은 점이 있겠죠? (아니라고 하시면...OTL 슬플 거에요;;;)
      그래도 목표에는 정말 공감합니다. 내일은 어제보다 1g이라도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 있길 바라며... 산체님도 저도 파이팅...!
    • 누구나 반짝거리는 시간을 가졌거나,가지고 있거나,갖게 될거라고 생각해요. 그걸 그리워하는 동안은 말이죠. 돌아보면 후회되는 부분이 많지만 아직 후회할수 있는 자신에게 만족하며 살렵니다.

      히어로즈 우승은.....이장석이 3년동안 팔아먹은 선수들 다 그대로 두었다면 코시도 꿈만은 아니었을거라 믿어요.
    • 빛난다의 기준이 열정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30대 40대에도 열정만 잔뜩한 사람이 빛나보이진 않을거 같거든요.
      10대의 빛이 풋풋함이라면, 20대의 빛이 열정이라면 30대의 빛은 30대의 것으로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막 진입한 저는 아직 찾지 못했고요.
      산체님도 지금의 빛을 찾으실거라고 생각해요.
    • 헉 글 왜케 슬퍼요 ㅠ-ㅠ 그나저나 산체님 제 생각보다 ... 제 생각보다 젊으시네요. 죄송ㅠㅠ 제가 다른 분이랑 산체님을 헷갈리고 있었나봐요. 그리고 반짝반짝했던 시절 있으실 겁니다. 해병대 군복 입으신 모습은 엄청 반짝반짝하셨을 거에요. 죄송해요ㅠㅠ 이제 잡소리는 스킵할게요.
      그런데 글 굉장히 공감이 갑니다. 제가 비슷한 생각을 요근래 하고 있었거든요. 저는 제 십대가 정말 무의미했다라고 생각해요. ... 십대의 빛이란 걸 단 한 번도 가지고 있지 못했어요. 그게 가끔 너무 서글픕니다. 산체님은, 클로버님 말씀처럼 지금의 빛을 찾으실 수 있을 거에요. 희망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빛을 찾는 자가 빛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기에요.
    • paul/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랬...지는 않았습니다만, 저도 모르게 샘이 나서 그랬나봐요. 하여튼 죄송ㅠ
      팬더댄스/ 아저씨의 순수함이겠죠. 그게 나쁘진 않은거 같은데 별로 쓸모는 없습니다.
      에아렌딜/ 그러게 말입니다. 저는 매우 잘나가는 친구에게 나같은 놈이 있으니 니가 잘나가는게 빛나는 거라며 허세를 부립니다. 안 반짝거려서 좋은 점이라면 반짝거리는 다른 사람들의 진가를 잘 알아볼 수 있다는 점인거 같습니다. 보통 자기가 많이 반짝거릴 수록 다른 사람이 빛나는걸 모르더라고요.
      비밀의 청춘/ 지난번 복장글에서 밝힌거 같은데 저는 해병군복이 아니라 해군 수병복, 즉 세일러복을 입었습니다. 해병대 군복이 남자답고 늠름해 보이는 장점이 있다면 해군복은 카....카와이 합니다.
    • 어쩐지 아다치 미츠루 만화가 떠올라서 기분 좋은 글이네요. 과장되지 않고 소박하지만 희망적인(?) 토닥토닥.

      중2병이라고는 하지만 중2병 걸렸던 10대 때만 갖고 있던 귀여운 마음 같은 게 있었던 거 같아요, 진짜. 세상을 바꿀 능력이 없어도, 바꾸고 싶어했던! 무모한 마음이라도 이글이글 불태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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