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고 슬픈 하루.

어제 공부를 해야한다는 조언에 엄청난 충격을 먹었지만, 오늘 할일이 많았지요. 오늘, 아침 일찍 서울대학교 병원가서 약을 타러 갔어야 했어요.

엄마가 아빠 물약을 따라 주다가 쏟아버렸는데 그 약이 고향에는 파는 곳이 없어서 혜화까지 아침10시 맞춰서 갔어야 했어요.

오랫만에 보는 격리병동 간호사님들과 수간호사님이 


수간호사님: 어머, 뭔가 달라지셨네요?

젊은 간호사님: 다여트 하셨구나!!! 얼굴 살이 좀 빠졌어요!!

중간 나이 간호사님:대단하네. 다여트란게 자기 스스로와의 싸움인데 그 큰 인내를 지니고...(송구스러워서 스킵;;)



서울대 병원에서는 저희 가족의 아픔이 가장 큰 아픔이라 못봤던 아픔과 슬픔들이 오늘은 보였어요. 응급병동 밖의 벤치에서 하염없이 먼 곳 보며 울기만 하던 아주머니, 39병동 계단에 지팡이를 턱에 괴고 고운 한복에다 베레모를 쓰시고 흐느끼시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를 옆에서 묵묵히 어깨 두드리시던 할머니. 링거를 꽂고 해맑게 밖에 꽃들과 사람들을 보며 소리치던 내 허리 아래의 꼬마아이들. 봄햇살 아래의 봄꽃들 사이로 애들 웃음소리는 꽃잎에 묻어나서 더 이쁘건만.


약을 받고 우체국 가서 보냈지요.그래도 오랫만에 혜화라서 학림다방에 갈까 싶다가, 우체국 가는 길에 초등학교 학생들의 시끄러움과 나무들이 너무 이뻤어요. 목련을 무척 좋아하는데, 목련 피기전의 꽃의 눈도 이쁘다는걸 오늘 또 새롭게 느꼈어요. 솜털 사이로 수줍게 비집어 나온 그 하얀 모습이 너무 이뻐서 만지고 싶지만... 이쁜건 만지지 말고, 아름다운건 멀리 두고 봐야한다죠. 사진 찍을 생각조차 없이 바라보기만 했어요.


약을 보내고, 곧바로 서울구치소에 친구 면회를 갔어요. 안좋은 일과 꼬인 것 때문에 들어간 친구를, 거의 4년만에 봤어요.

농담으로, 


-야, 근데 보면 짠할 줄 알았는데 너 머리밀고 죄수복 입으니까 나름 간지다.ㅋ

-미친 놈 ㅋㅋㅋㅋ


2시간을 기다리다가, 4년만에 만난 이 멍청한 놈들에의 시간은 10분밖에 없었지요. 타이머의 숫자가 00 으로 향할 수록 왠지 애가 탔습니다. 뭔가 할말은 분명히 있는데...아 진짜...내가 이런 말따위 하려고 온건 아닌데...근데 친구의 담담하고 시원한 태도에 할말이 나오질 않았어요. 타이머의 숫자가 00이 되고 친구가 일어나서 잘가라. 하고 할때, 도무지 등을 보일 수가 없었어요. 시간이 오버되서, 마이크 소리도 끊겨버렸어요. 제가 급해져서 창문을 막 두드리면서 밥먹는 시늉을 하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밥잘먹고 이새끼야!!! (몸을 더듬으며)몸 잘 챙기고!!!


친구는 씨익 웃으며 저만 봐라보더라구요. 잘가라고 손짓 하는데 등을 보이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한손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하다가, 두손을 버둥대며 빨리 들어가라고 제스쳐를 보였습니다. 친구가 웃으며 돌아서고 문밖을 나서고. 제가 모르는 그 공간으로 들어가더군요. 아, 저자식...하면서, 밖으로 나와 음료수 하나 먹으며 풍경을 봤어요. 서울 구치소엔 공원도 있답니다. 잘 가꾸어진 공원엔 꽃나무들도 있고, 오늘은 날도 너무 좋았어요. 돌아서니, 갑자기 눈물이 났어요. 미안하고 괜히 제가 다 서러웠어요. 왜 이제서야 왔을까..하는 거랑. 영치금이라도 더 줘야 했나...하는 마음.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탔죠. 인덕원 마을 버스인데 어떤 할아버지(?)가 운전하시더군요. 굉장히 친절하셔서 놀랬는데, 내릴때 보니까 할아버지 성함이 무려,

'오공주'님!!!!!! 오왕. 웃기도 그렇고 참..;;;;


전 서울 와서 버스를 5번도 안되게 안타고 지하철만 탔거든요. 안양에서 집까지 오는 버스를 타면서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 기분이 밍숭맹숭 했습니다. 제 아버지의 병환을 걱정하는 친구에게, 유리창을 가운데 두고 마이크로.


-울 아빠는 내가 걱정할께.넌 너나 걱정해 인마.


시원하게 웃던 친구가 아직도 머리에 윙윙 거려요. 담달에도 한번 가야겠어요. 집에 들어와서 다시 공부를 했고, 샤워를 했다가 어떻게든 이런 감정은 남겨야 할 것 같아서 써봤어요. 


푸르름이 혹자에겐 시퍼런 냉정함이 될 수도 있는 하늘이란걸 알게된 하루였어요.




    • 말린해삼님은 참 서정적이신 것 같아요. 그런데 이 ㅅㄲ야 부분에서는 저도 모르게 남성화자의 목소리로 읽어버렸..ㅎㅎ
    • 비밀의 청춘/다르게 할려고 해도, 그 맛이 안살아서요.ㅎㅎ;;;;;
      그리고 여기니까 제 속의 마음을 표현하지요. 밖에서는 저도 남자들이 좋아하는 멍청한 놈일 뿐이에요.
      말 그대로 jackass.
    • 해삼/ 잭애스가 아니라 킥애스 한번 하실듯..
    • 소리치신 부분에서 울컥하고 오공주님에서 푸훗 웃었어요.
      친구분도 말린해삼님 마음 아셨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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