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튼가락님이 리플을 다셨던데, 그 리플에 대한 답변과 더불어 마찬가지의 파편적인(그리고 본문반복의) 생각들입니다.
일단, 앞서 본문을 비롯한 제 이야기는 예언이나 선언이 아니라 설명에 더 가깝습니다. 현실적으로 독립은 불가능해, 현실적으로 이승만을 몰아내는 것은 불가능해..이런 얘기들은 제가 하는 얘기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제 얘긴 현실적으로 사회를 개혁하는건 불가능해, 현실적으로 한나라당을 비롯한 기득권에 저항하는건 불가능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투쟁을 하지 못하는 이유에 무엇무엇이 있다, 라는 이야기거든요.
즉, 누군가가 혁명을 하거나 혁명을 하지 않거나, 그걸 설명하는건 쉽거나 어려운게 아닙니다. 그냥 사실관계에 대한 설명일 뿐이죠. 무엇이 가능하다 불가능하다가 아니라, 무엇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그것이 이루어지고,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뿐입니다. 당장 내일 어떤 사건을 계기로 (성공하든 실패하든)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건 그 사건을 계기로 그게 가능한 상황이 되었기때문입니다. 물론 '가능하다'라는 상황에 대한 설명요인은 엄청나게 많죠. 모두 의미가 있고요. 그러나 답은 하나에요. 가능하기에 이루어졌다.
제비가 하늘을 나는 이유는? 그 제비가 날 수 있는 새이기 때문이에요. 타조가 하늘을 날 수 없는 이유는? 타조가 하늘을 날 수 없는 새이기 때문이죠. 어떤 제비가 갑자기 날 수 없고 어떤 타조가 갑자기 날게 된다면 그건 지금 까지의 상식이나 개념이 어떻든 각각 날수 없게된 요인or날 수 있는 요인이 추가되었기 때문입니다. 세부적으로 설명한다면 생물학적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이 나올 것이고, 그건 모두 의미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에요. 이렇기에 가능했고, 저렇기에 가능하지 않았다. 이게 쉬운설명인가요? 새가 하늘을 나는 이유를 설명하는건 쉬운게 아니죠. 보이기에 단순하니까 쉬운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 어떤 사람들은 새는 이렇고 저랬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려 하죠. 전 그냥 레토릭이라고 생각합니다.
* 제가 20대론들에서 불편함을 느끼는건 산업화와 급격한 성장의 시대를 거친 기성세대논리의 전형을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때는 어땠는데 너희때는 훨씬 더 편하잖아"식의 이야기들 말이죠. 물론 20대론의 등장하게된, 그리고 그걸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배경삼는 정치 명분과 기성세대 일부가 자주 써먹는 그 전형적인 논리의 배경 명분은 전혀 다르지만, 결론은 동일합니다.
"우린 이랬음에도(혹은 더 좋지못한 환경에서도) 했다, 그러니너희도 해라.or그런건 다 변명일 뿐이다"
특정 세월을 살아온 세대가 아랫세대 역시 자신들과 비슷하다고 추정하고 무엇인가를 강요하거나 조언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그 강요나 조언들엔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죠. 과거는 과거일뿐이에요. 그건 결코 현실이 아니죠.
앞서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전 사실 "우린 이랬음에도 했다"에서 그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는 궁금하지 않습니다. 그게 어디까지 사실인지 확인하기도 어렵고. 제가 궁금한건, 지금 우리가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 상황에서 무엇인가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무엇인가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죠. 이건 결코 '그때 그 시절 누군가가 무엇을 했다'는 사실에 대한 평가절하나 비난이 아닌데, 이상하게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있더군요.
지금도 20대중엔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 사람들은 위대합니다. . 하지만, 반대로 모두가 그 사람들처럼 살 수 있는건 더더욱 아닙니다. 그들이 위대한 이유는 모두가 그렇게 살지 못함에도 그들은 그렇게 살기 떄문입니다.
hj/ 아뇨. "너희는 왜 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우린 이러저러해서 하지 않는다"라는 답변이죠. 어차피 할 수 없다가 아니라고 지난번 글과 이번 본문에서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데 왜 자꾸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걸까요. 너무 익숙하지 않나요. 이러저러한 이유로 어렵다, 라는 대답에 "하려고하지도 않는다"라는 식의 무한반복되는 꼰대들의 비난이잖아요.
희망을 이야기하고, 지금도 그걸 실천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비하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라고 아래에다 '완벽하게'써놓았습니다. 글을 읽으세요.
이건 이해를 못하는, 그리고 하려고도 안하는 전형적인 상황이에요. 새가 날개를 다치거나 너무 작아서 날기는 커녕 파닥거리지도 못하는데 옆에서 날개가 있는데 왜 날지를 못하냐, 니가 새가 맞냐, 원래 그러면서 나는법을 배우는거다 따위의 이야길 하는게 도대체 무슨 소용입니까. 그렇게 날려고 하다가 둥지에서 떨어져서 다치면, 그 새의 삶을 누가 책임져주긴 하나요? 그것도 아니에요. 날수가 있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날아요. 옆에서 땍땍거리지 않아도.
hj/ 그야말로 전형적인 양비론이군요. 이의를 제기하는건 좋죠. 그런데 그 이의라는게 공허한 메아리거나 무의미한 돌림노래라면 그에 대한 반발이 나오는게 당연한거 아닌가요? 애시당초 이글은 꼰대들이 상황이고 뭐고 아무것도 이해하려하지 않으면서 뜬구름잡는 소리나 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목적이에요. 그런 목적으로 쓰여진 글에, 리플로 글의 비판대상이 된 꼰대들이 하는 뻔한 소리;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고 실천을 생각하지 않는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계시면 이해를 못했다는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죠.
전 제 의견에 찬성해달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이 글의 주된 내용은 어떤 주장도 아니죠. 본문에 적었다시피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인과관계에 대한 단순한 설명이고, 그런 단순한 설명도 이해하지 못하고 20대 어쩌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이죠. 왜 양비론이냐고요? 뭔가 용어를 모르시는거 아닌가요? 20대론과 그에 대한 비판이 존재하는 지금 이 스레드에서, "내 주장에 반박하면 세대론에 찬성하는 사람이며 그는 양비론자이다"라고 제가 이야기했나요?
님은 제 본문에서 꼰대의 언어를 봤다고 하시는데, 세상이 다 그래, 그냥 그렇게 살아, 현실에 맞추어 살아라, 라는 말도 하지 않았어요. 전 지금 님이 무슨 얘길 하고 계신지 모르겠어요. 언제부터 이상론자가 꼰대가 되었냐고요? 이상하군요. 제 글에서 비판의 대상은 분명해요. 이와 관련된 얘기들에서 젊은 세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죠?
다시한번, 제 본문, 리플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스스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어려운 현실속에서 모두가 그렇게 살긴 어려우며 그것은 강요되어선 안된다, 라는 내용입니다. 말씀처럼 그렇게 어려운 얘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님은 그 글;그러니까, 20대 중 희망을 가지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라는 내용에서 "어차피 할 수 없으니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고 실천도 생각하지 않는다..이거야말로 전형적인 꼰대논리다"를 뽑아내셨어요. 그리고 제 글이 꼰대의 글이라면서 hj님이 생각하시는 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죠. 그런데 님이 말씀하신 그 범위엔 제 글의 무엇도 들어가지 않아요. 희망이 특별한 사람들의 것이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현실에 맞춰살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죠.
그러니 제가 햇갈리는거죠. 이분이 내 글을 이해했다고 하는데, 이해는 둘째치고 읽기라도 한건가?라는 생각이 든다는거에요.
"지금 우리가 이 상황에서 무엇인가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무엇인가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죠."
"지금도 20대중엔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 사람들은 위대합니다. . 하지만, 반대로 모두가 그 사람들처럼 살 수 있는건 더더욱 아닙니다. 그들이 위대한 이유는 모두가 그렇게 살지 못함에도 그들은 그렇게 살기 때문입니다."
---- 희망과 실천은 위대한 - 특별한 - 사람들의 것이라고 읽었습니다. 솔직해지지요. 저 마지막 문단이 과연, 희망을 갖는 사람들을 치켜세워주기 위해 쓰여진 겁니까. 아니면 희망을 갖지 않는 사람들을 긍정하기 위함입니까. 할수 없다고 판단하니까 무언가 하지 못한다는 말과, 현실에 맞추어 살라는 말 사이에는 그렇게 커다란 간극이 있는겁니까?
메피스토님의 댓글을 인용하지요. 희망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어려운 "현실"속에서 모두가 "그렇게 살기 어려우며" 그것은 강요되어선 안된다.
그렇지만 희망이 특별한 사람들의 것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현실에 맞춰 살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고, 이 글의 내용은 20대중 희망을 가지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는 것이라고요? 아이고. 전 그만 할래요. 이래서야 다음 댓글이 나온다 한들 내용도 뻔해요. 한가지만 충고하자면, 토론에서 남이 뭔가 이해를 못해서 그렇다. 무한반복 한다. 이런식의 레토릭으로만 일관하려 들지 말아요. 아마 본인은, 이것이 토론도 아니고, 자신의 말을 내가 이해못하고 일방적으로 다른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에요. 저뿐이 아니라 허튼가락님도, 자신의 말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했을 뿐인거라고 했지요. 네네. 바로 그겁니다. 도대체 나의 이 명쾌하고 쉬운 말을 다들 못 알아듣고 다른 소리나 하고 있는거지? 내 말을 이해하긴 했나? 읽기는 했나? (이런 말은 사실 좀 무례하지요? 꼰대들을 무례하다고 꾸짖으며, 자기는 무례한 말만 잔뜩 해대는 것도 참 아이러니 하지요? 그러면, 또 그러겠지요. 네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공허한 헛소리만 하니, 난들 어쩌겠냐. 근데, 어쩌죠.설령 제가 정말로 공허한 헛소리를 했다고 한들, 그게 메피스토님의 무례를 정당화시키는 건 아니잖아요?) 물론, 저는 읽었고, 다 이해하고 있고, 무슨 허약한 논리를 펼치는지 다 알고 있어요. 반면에, 메피스토님은 제가 왜 '자기 이야기와는 상관도 없는' 이런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지, 헷갈릴 뿐이죠. 거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되는 거에요. 이해를 안하려 들거나, 이해를 못하는 사람은, 아마도 제가 아닌 것 같아요.
아 그리고, '꼰대질'과, '그 꼰대질을 비판하는 꼰대스러운 태도'는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전형적인 양비론'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런데, "뭔가 용어를 모르시는 것 아닌가요?" 와 같은 언사도, 참으로 일관스럽네요. 그렇게 다른 이의 의견을 무시하는 수사를 쓰지 않으면, 자기 의견이 잘 안 받아들여질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아마도 제가 왜 그것이 양비론이 아니라고 했는지, 자신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타인에게 어떤 이유나 생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 자체가 안되는 모양이지요. 저 사람이 양비론이라는 용어를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이치에 맞다고요.
hj/ 기껏 얘기하는게 "솔직해지지요"입니까. 님의 추측에 맞지 않아도 그 추측 맞다는 것을 강요하시는군요.
할 수 없다고 판단하니까 무엇을 하지 못한다는 말과, 현실에 맞추어 살라는 말의 차이가 뭐냐하면, 첫번째는 무언가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왜 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설명이고, 두번째는 설명이 아니라 (단순히 목적만 놓고보자면)그런거 놓고 포기해라..라는 명령입니다. 이 글 어디에 포기가 있습니까.
희망과 실천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위대하다는 것과 그들이 특별하다라는게 같은 말인가요? 전 그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은 평범하고, 또한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죠. 그건 그거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사회를 변혁시킨건 분명한 사실이고, 전 그들이 이룬 세상에서 살고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죠. 그들과 똑같은 일을 하는 현재의 사람들도 마찬가지고요. 근데 어쩌라고요? 이게 그들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는겁니까?
이 글이 쉬운 글이고(맞습니다. 그건 사실이에요) 이 글을 다 이해하신다는 분이, 이 글에서 비판하고 있는 목적인 꼰대들이 언어와 논리를 사용하십니다. 님의 주장의 핵심이 도대체 뭔가요. 주장의 핵심을 설명하지 않고 제 인상평이나 태도평을 하고 있으시죠.
자신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다른 어떤 이유나 생각을 할 수도 있죠. 그러나 본문과는 하등 상관는 리플 하나를 툭던지고, 그 하나의 리플이 비판받자 본인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꼰대의 언어로 자신을 방어한다라고 저 위에 말씀하시는데, 도대체 님께정의하신 꼰대의 언어가 뭡니까. 저 위에 님께서 설명한건 제 이야기와는 하등 상관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글에서, 그리고 이전글에서 제가 비판하는 대상이 어떤 대상입니까. 젊은층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채 무작정 뜬구름잡는 소리나 일삼는 사람들 아니었나요.
남들이 무언가를 하지 못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하지 않고,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면서 '변명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상대방을 폄하하는 사람들이 이 글의 목적이자 비판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님께서 했던 말이 뭐였습니까. 제 글에 대해 꼰대들의 논리로 방어한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앞서 허튼가락님도 유사한 말씀을 하고 계시죠. 과거를 그런식으로 평가하는건 쉬운일이고 그것을 토대로 자조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더욱 쉽다고. 그래서 본문에서 제가 다시한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건 쉬운일도, 어려운일도 아니라고. 그럼 거기에 대한 피드백이 와야하는데, 앞서 허튼가락님이 했던 이야기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이야기합니다. "님글을 다 이해했는데요".
오. 아주 약간이지만 발전이 있었어요. 기분이 조금 좋아졌습니다. (무례한 수사도 여전히 있긴 하지만 그래도 좀 덜 쓰고요.)
토론이란 것은, 이런 것입니다. 누군가 A 라는 발언을 해요. 그러면 듣는 사람이 아 그래? 근데 A 면 B 고 B 면 C 네. 라고 생각을 하고 C 라는 발언을 합니다. 자기의 사고의 회로를 모두 설명해 줄 수도 없는 일이고, 많은 경우 불필요한 일입니다. B를 생략해도, A 에서 C로 가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상대방이 그 흐름을 읽어내거나 그런 흐름 자체를 상상할 수 없을 때 대립이 생깁니다. 아니 나는 A 라고 했는데, 왜 저사람은 C 라고 하지?
흔히 '생산적인 토론' 이라는 것은 그 missing link 인 B 를 찾아내고, 토론 당사자간의 차이를 확실히 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A에서 C로 가는 과정중, 어느 부분때문에 의견의 대립이 일어난 것인가. 그 차이는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를 확인하는 것이 토론입니다. 그런 토론에 적합한 태도를 갖지 못한 경우, 나는 A 라고 했어. C는 내 말이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야. 넌 이해를 못했어. 라고 하기 쉽죠.
메피스토님의 본문에서 시작해서 제가 "할 수 없으니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고 실천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거야말로 꼰대가 할법한 이야기잖아요." 라고 하기까지에도 그러한 missing link 들이 있습니다. 아니, 이게 과연 missing link 인가요? 본문에서 분명히 메피스토님은 "무엇인가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무엇인가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죠." 라고 말하고, "모두가 그 사람들 - 희망을 갖고 실천하는 사람들 - 처럼 살 수 있는건 더더욱 아닙니다." 라고 이야기했고, 저는 그걸 함축했을 뿐입니다. 두 단락을 묶으면서 뜻이 왜곡되었다고 주장하실 수는 있습니다만,'나는 A 라고 말했어. 니가 이해못하는 거야' 만 되풀이하면. 논의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죠.
그래도, (아주 작은) 발전이 있었어요. 드디어 그 missing link 에 대해서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나오면 논의가 가능합니다. '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못하는 것은 설명이고, 현실에 맞추어 살라는 것은 포기의 명령이므로 차이가 있다' 라고 하신 거죠. 그런데 모든 태도는 상황에 대한 인식과 '설명'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저 설명과 포기 사이에는 그렇게 큰 간극이 있지 않아요. 강만수가 자 환율이 높아지는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이니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라고 '설명' 한다고 해봐요. 그럼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아니 무슨 소리냐. 그럼 그냥 포기하고 손 놓자는 말이냐? 라고 말할 것입니다. 메피스토님의 설명에는, 메피스토님의 태도가 숨겨져 - 라기보다는 드러나 -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 아냐. 난 그냥 설명한 거야. 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못하는 거라는 말은 포기가 아니야. 라고 주장하신다면. 토론은 여기서 교착입니다. 이 차이는 서로 극복할 수가 없어요.
위대함은 특별함이 아니다. 라는 말도 그래요. '위대한 보통 사람들' 이라는 수사도 있으니, 위대함이 그대로 특별함은 당연히 아니지요. 그런데 메피스토님은 저 '위대한' 이라는 수식어를,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없음에도 그렇게 살기 때문이다' 라는 이유로 썼고, 저는 특별함을 '그렇게 살 수 없는 모든 사람들' 의 대칭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위대함의 속성이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별난 의미로 쓴 단어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난 위대하다고 했지 특별하다고 하지 않았어. 위대한건 특별한게 아니야. 오히려 평범한 거야.' 라는 식의 대응은, 그냥 헛손질입니다. 그런 태도를 견지한다면, 역시 여기에서 교착이죠. 좁힐 수가 없어요. 단어 하나 하나의 쓰임새를 설명해줄 수야 없는 일입니다. 그래? 그런 말이 아니야? 그럼 미안. 하지만 내겐 아무래도 그렇게 보이네. 안녕. 하는 거죠. '모든 사람들이 할 수는 없다' 와 '특별한 사람들이 할 수 있다'라는 말은 또 얼마나 차이가 난다는 걸까. 하는 의문을 갖고 말이죠.
그 아래 단락은 그저 그렇네요. 겨우 차이를 확인하는 단계까지 가나 했더니, 도로 "난 A 라고 말하는데 왜 넌 이해를 못하고 C라고 하니." 로 돌아와버렸어요. A 는 이해했다니까요. 비판하는 대상이 어떤 대상인가는 큰 상관이 없어요. '꼰대를 비판하는데 왜 꼰대같은 말을 하냐.' 는데. '무슨소리야. 내 글은 꼰대를 비판한거야.' 라고 해봐야 그냥 동어반복 아닙니까.자, 봐요. 저는 글쓴이의 논지를 이해하고 있다고 믿고, 상대방 역시 제 논리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전제 하에서 글을 씁니다. 그런데 님은 저의 논리의 흐름을 모르겠다고 말하고, 님의 글을 제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믿음 하에서 글을 쓰지요. 그러니, 계속 이해, 이해 타령을 하는 거겠지요. 결국 태도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나쁜 태도에서 올바른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 극히 드문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첫번째 댓글로 돌아와. 아주 친절하게 - 제가 상상하는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 사고의 흐름을 이야기해보도록 하지요.
본문은, '"지금도 20대중엔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 사람들은 위대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모두가 그 사람들처럼 살 수 있는건 더더욱 아닙니다." 라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마도 "왜? 왜 그게 위대하다는 거지? 지금 당장 모두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나나 너는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아? 어떻게 하면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이 되는지 생각해볼 수 있지 않아?"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그 대답을 저는 본문에서 찾았아요. "하지 못하는 것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는 "어차피 할 수 없으니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고 실천도 생각하지 않는다 라니 이거야말로 꼰대가 할법한 이야기다" 라고 이야기한 거죠. 자 이 과정에서 제가 오해하거나, 왜곡하거나, 메피스토님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강만수와 환율요? 거꾸로 생각하시는군요. 정부는 환율 시장에 개입해야만 하는 이유와 더불어 개입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먼저입니다. 즉, 정부는 개입할 힘과 의무를 지니고 있기에, 개입해야 한다고 판단된 시기에 개입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개입이 적절했느냐 아니냐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로 말입니다. 네. 여기서도 이 원칙은 적용됩니다. 정부가 환율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개입할 수 있기에 개입하는 것이다. 개입할 수 없다면? 당연히 개입할 수 없죠. 왜 이런 당연한 이야길 해야하나요? 님에게 묻고싶군요. 님께선 맨몸으로 절벽에서 뛰어내려 날아 갈 수 있습니까? 날개와 비행장비 없이 말입니다. 아무리 긴급하고 위급한 상황이 다가와도 님은 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날 수 없는 생물이고, 우리가 영화를 찍지 않는 이상 갑자기 등에서 날개가 돋진 않겠죠. 상황을 봐서 뛰어내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도 날아다니는건 아닙니다. 즉, 님은 날 수 없기에 날지 않습니다. 님이 날아다닌다면? 비행장비를 갖췄거나 비행기를 탄 상태겠죠. 즉, 애시당초 '맨몸'이라는 조건이 사라진 상황에서, 님은 날 수 있기에 나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할 수 있기에 한다'의 원칙은 살아있습니다. 다만 누군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이나 환경과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치관과 환경이 다르기에 이런 차이가 일어나는 것이죠.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저 위에 언급한 날개가 부러진 새의 비유를 다시 해볼까요?
어떤 제비가 있습니다. 제비 새끼일수도 있고, 어쨌든. 이 새는 날개가 부러지거나 미숙하여 날지 못합니다. 그저 파닥거리는 수준이죠. 이 새가 날지 않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날지 못하기 때문이죠. 날개가 부러져서 파닥거릴때마다 고통이 극심할 수도 있고, 아직 깃털조차 자라지 않아 아무리 용을 써봐도 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새는 날 수 없기에 날지 않는다.
그런데 누군가 이야기합니다. "어차피 날 수 없다고 나는걸 이야기하지 않고 날려고 하지도 않다니, 이거야말로 꼰대가 할 법한 이야기다."
그래서 제가 묻습니다. 날 때가 된다면, 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면;즉, 날개가 회복되거나, 깃털이 자라거나하면 새는 누구보다도 알아서 날아갈텐데, 저런 이야기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말이죠. 새가 나는 모습을 보고싶다면 날 수 있는 때가 되거나, 날개가 치료되어야 합니다. 즉, 새는 자신의 몸을 가눌 수 있어야 날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무작정 날아가려 한다면? 죽거나 둥지에서 떨어져 더 크게 다쳐...아니. 결국 둘다 죽는 것이군요.
그런데 이런 새도 있습니다. 보기엔 날개 깃털도 별로 안되고 다친거 같은데, 어쨌든 날아다니는 새가 있죠. 그 고통과 깃털의 미숙함을 이겨내고 날아다니는 새는 위대합니다. 그러나 마찬가지. 여기서도 원칙은 동일합니다. 그 새는 날 수 있기에 나는 것입니다. 보통은 날 수 없는 환경에서도 자신의 의지로 날아다니기에 그 새는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시, 그 새는 날 수 있기에 나는 것입니다. 그 새가 날 수 있는 이유는 자세히 살펴봐야겠지만, 그렇다고 결론이 바뀌진 않습니다. 그건 날아다니는 새에 대한 폄하도 아니고, 반대로 날지 못하는 새에 대한 추켜세움도 아닙니다. 희망을 거세하는 것도 아니고, 절망을 불러오는 것도 아닙니다.그저 상황에 대한 설명일 뿐이죠.
이 상황에서 가장 생산적인 논의는 뭘까요? 새가 날지 못하는 원인이나 이유를 찾고, 치료를 해주거나 잘자라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물론 거기까지 논의가 나가는게 좋지만 대부분 상황은 그렇게 빠지지 않습니다. 날개가 부러지거나 깃털이 미숙하게 자랐음에도 날아다니는 새들과 비교를 당해야하거나, '꼰대의 언어로 방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기분좋은건 아니다'라는 소리를 들어야하죠.
제가, 그렇게 공을들여 논의를 단순화시켜놨는데, 다시 또 비유로 도망쳐버리면 좀 곤란하긴 해요. 전 메피스토님의 새가 날개가 부러졌는지, 깃털이 조금 나기 시작했는지, 그런 걸 갖고 토론할 수가 없어요. 제가 꼰대의 언어라고 한 건 메피스토님이 한 얘기를 보고 하는 얘기지, 날지 못하는 새한테 한게 아니에요. 하지만, 마지막 단락은 맞아요. 새가 날지 못하면, 이유가 뭔지 살펴보고 보살펴주는 것이 좋아요. 제가 지금까지 한 얘기가 그거잖아요. 하지만, 이유가 뭔지 살펴보지도, 잘 보살펴주지도 않으면서 뒷짐을 지고서 "날지 못하는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거야" 라고 하면, 저는 그걸 꼰대라고 부르겠어요. 제가 꼰대의 언어라고 비판한건, 바로 그 지점이에요.
저는 정말 간단하게 정리를 해 놓았어요. 그게, 어디가 오류인지, 어느 부분이 이해가 안가는지, 가능한 한 명료한 언어로 이야기를 하시면 되요. 그러면, 저도 틀린 데가 있으면 배우고, 생각이 다른 데가 있으면 다시 설명을 하겠지요.
세상에 '할수없어서 하지 않는' 일은 차고 넘쳐요. 물고기는 땅위에 못살고, 저도 당연히 절벽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고 " 자, 하지 않는건 할 수 없어서 그런거야. 당신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지? 봐. 할 수 없어서 안하는 거라니까" 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할수없어서 하지 않는 일이 존재한다고, '모든 하지 않는 일의 원인은 할 수 없기 때문' 인건 아니잖아요. 새, 물고기, 고양이, 개 다 마찬가지에요. 그러니 비유에 의존하지 마시고. 애초에 한 얘기를 또다시 설명하려 들지 마시고. 저의 바로 전 리플에 뭔가 논리적인 문제가 있는지 지적하세요. 따다 붙여드릴께요. 또 새 얘기나 하시면, 전 부끄러워 쥐구멍에 숨어버릴거구요.
---------------------------------------------- 본문은, '"지금도 20대중엔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 사람들은 위대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모두가 그 사람들처럼 살 수 있는건 더더욱 아닙니다." 라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마도 "왜? 왜 그게 위대하다는 거지? 지금 당장 모두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나나 너는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아? 어떻게 하면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이 되는지 생각해볼 수 있지 않아?"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그 대답을 저는 본문에서 찾았아요. "하지 못하는 것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는 "어차피 할 수 없으니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고 실천도 생각하지 않는다 라니 이거야말로 꼰대가 할법한 이야기다" 라고 이야기한 거죠. 자 이 과정에서 제가 오해하거나, 왜곡하거나, 메피스토님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 전 제가 하는 말을 메피스토님이 이해할 거라고 믿고 있어요. 이제, 틀렸으면, 뭐가 틀렸다. 이해가 안가면 어디가 이해가 안간다. 하시면 되요. 간단하잖아요? 여기서 메피스토님이 뭔가 의미있는 지적을 할 수 있다면, 저는 메피스토님의 강만수 반론에 대한 보론을 펼 거에요. 더 얘기를 할거면 논의를 좁혀놓고 가자구요.
hj/ 에이. 왜그러세요. 애시당초 제가 이야기한 '새의 비유'자체가 상황이 꼬인 것 때문에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것을 이야기함이 그 목적인데, 이걸 쏙 빼놓고 나머지를 꼰대의 언어라고하시는건 좀 이상하십니다. 이 비유가 어렵거나 학술적이거나 전문적이라서 따로 학습을 요구해야하는 비유는 아니잖아요.
재미있는게 한가지 있습니다. 제가 20대론이나 관련된 몇몇 이야기들을 혐오하는 이유는 님께서 '초등학생에게나 써먹어라'라는 그 비유, 아니,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앵무새같은 말을 반복하기 때문이에요. 정말 님의 말씀이 맞아요. 이건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죠. 그런데 그렇지 않잖아요? 몇몇 사람들은 방어니, 변명이니, 이런 소리를 하고 있어요. 그 이야기의 범위엔 이러저러해서 못한다라는 글에 "꼰대의 논리로 방어한다"라는 님의 글도 포함되어 있죠. 아, 님을 20대론을 외치는 꼰대로 몰고싶진 않아요. 스스로 세대론이 불편하시다고 하니, 뭐, 그런가보죠. 그런데 저 위에 보시면 님께서 이렇게 적어놓으셨어요.
"'희망을 갖는 건 특별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다. 현실에 맞추어 살아라' 라는 말이 꼰대의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거 한가지 더. 님과 제 꼰대에 대한 정의가 다르다고 해보죠. 제가 비판하고 있는 20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사람들;즉, 그 '꼰대'의 범위는 어디에 속하는걸까요? 덧붙여 제가 비판하고 있는것 뿐만 아니라 세대론들과 관련하여 비판을 받는 기성세대는 어떤 포지션을 가지는 사람들인가요? 20대에게 "현실에 맞춰 살아라!"라고 요구하는 꼰대들인가요. 물론 저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겠죠. 어디 시위현장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에게 들어가서 공부나 하고 있어라, 라고 얘기하는 양반들 말이에요. 그러나 20대가 현실에 맞춰살고있지 않아 기성세대가 그걸로 꼰대질을 하고 있는 모습이 화두라면, 애시당초 그말의 실체여부는 둘째치고서라도 20대론이니 세대론이니 같은 말이 나오지도 않았겠죠.
지금 전 현실에 맞춰서 사는 20대가 어떻게 저떻게 살고 있다,라는 이야길 하고 있는데, 님께선 계속 "어차피 할 수 없으니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고 실천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거야말로 꼰대가 할법한 이야기잖아요"만 반복하고 있어요. 자. 전 제가 하는 말을 hj님이 이해하지 못하고 계시거나 그냥 트집잡기만 하고 계시다고 믿고 있어요. 사실 둘 중 전 후자라고 생각해요. 님께서 물고기는 땅위에 못사는걸 알고 계신걸로 봐선 말이죠. 물고기는 땅 위에서 살 수 없기에 땅위에서 살지 못해요. 물론 기준에 따라 예외적인 경우는 있어요. 하지만 전 예외로 전부를 설명하진 않으니 그 부분은 생략할께요.
p.s : 본문을 작성한 사람으로써 부탁드리고 싶은게 있는데, 더 하실 얘기가 있다면 불판을 새로 깔아주실 수 있을까요? 페이지 넘어간 게시물을 매번 찾아오는게 번거롭거든요. 물론 님께서 제 번거로움을 배려해주실 필요는 없습니다만, 계속하면 님이나 저 둘중 한사람이 할말이 없어서 이야기를 주고받지 못하는게 아니라 그냥 귀찮아서 안오게 될 거 같은데, 그 조짐이 제 자신에게 조금 보이거든요. 제가 불판을 새로 깔아도 되지만, 전 동일주제, 내용으로 두개의 글을 올렸기때문에 좀 지겹기도 하고요.
p.s 2: 물론 듀나 게시판 논의에서 제가 이런 부탁을 드렸을때 그 부탁을 들어주시고 불판을 새로깔아주셔서 논의를 이어주신분은 손가락 안에 꼽지만 말입니다.
좀 비참해요. 제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결국 다시 무례한 수사와 '나는 A 라고 하고 있어, 네가 이해못하는 거야.' 로 되돌아와버렸어요. 일단 제기하신 부분부터 설명을 하죠.
저는 메피스토님의 이야기가 굳이 비유를 통하지 않고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하지 못하는 것은, 할 수 없는 상황이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라는 이야기가 그렇게 비유를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비유는 이해를 위한 보조수단일 뿐, 그 자체가 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읽은 님의 비유의 핵심 논지, '하지 못하는 것은, 거기에 할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가 틀립니까? 맞으면, 다시 새의 비유로 돌아갈 필요가 없어요.
비유는 논지를 장황하게 만들고, 때로는 논지 자체를 흐려 버려요. 예컨대, 님이 드신, '절벽의 비유'같은 거요. 다친 새야 언젠가 날아갈 수도 있겠지만, 제가 절벽에서 뛰어 날아오르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그 비유는 잘못된 비유죠. 이때 제가 비유 하나하나에 꼬투리를 잡는다던가, 새가 날 생각이 있긴 하냐. 대체 얼마나 다친거냐. 하는 따위로 같이 비유의 언어로 맞받아치면, 토론은 미궁으로 빠져버립니다. 그래서 이미 말하는 요지는 알고 있으니 비유로 달아나지 마시라고 한겁니다. 메피스토님이 비유를 제외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펼칠 수 없다고 하시면, 그 부분은 알겠습니다.
두번째 부분입니다. 님이 생각하는 꼰대와 제가 생각하는 꼰대의 범주는 당연히 다를 수 있어요. 그러니까 메피스토님이 '어떤 꼰대들' 에 대해 비판할 때에, 그 비판하고 있는 메피스토님의 태도를 다른 범주에서 꼰대스럽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 겁니다. 거기서, '무슨 소리야. 내 말의 화두의 꼰대는 그게 아니야' 라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어차피 꼰대는 다양한 형태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여기서 보다 의미있는 반응은 1.'희망을 갖는 건 특별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야...' 는 내가한 말과 의미가 다르다. 혹은 2. '희망을 갖는 건 특별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야...' 라는 말은 꼰대스러운게 아니다. 입니다.
1번은 한번 시도하신 적이 있지요. 메피스토님은 '위대하다' 고 했지 '특별하다'고 한 적이 없다고요. 그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드린 적이 있으니 넘어가겠습니다. 2 를 선택하신다면, 저와 메피스토님의 차이는 확실히 드러나버리고, 그 차이는 말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닌 듯 하여, 이 토론은 그냥 종결입니다.
따로 글을 쓸지는 모르겠는데, 이 토론을 이어서 불판을 깔 생각은 없어요. 제가 바라는 생산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지 못하고, 이미 너무 길게 끌었어요. 더군다나, 토론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네가 내 논지와 상관없는 말을 하는 것은 내 글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라고 주장하는 상대와 글을 주고받는 것은 좀 허탈한 일입니다. 메피스토님은 제 글의 어디가 틀렸는가가 아니라, 제가 본인의 글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시니 말입니다.
그러니 이 토론의 마지막 글을 쓸 기회는 (쓰기를 원하신다면) 메피스토님께 드릴께요. 메피스토님의 글중의 어느 부분이 왜 저에게는 꼰대의 언어로 읽혔는가에 대한 제 요약 - 다시 따다 붙이진 않겠습니다.- 에 대해 저에게 납득할만한 의견을 주시며 저의 반론을 요구하지 않는 한, 이 글에 더이상 댓글을 달진 않습니다. 하루이틀후쯤 들어와 글을 찾아 읽어볼테니,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찬찬히 쓰세요.
제가 여기서 토론을 마무리지으려 하는 다른 두가지 이유가 있어요. 하나는, 제가 이 토론을 이기고 싶어할 필요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메피스토님의 글의 어느 부분에 반응하여 꼰대의 언어라고 지적했고, 왜 그렇게 지적했는지 사고의 흐름을 설명했어요. 이 논리흐름을 메피스토님이 보려 않으시고 제가 이해를 못해서 그런것이라고 주장하시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혹은, 그 흐름의 어느 부분의 오류를 명쾌하게 지적하셔서, 제가 제 오해를 깨닫고 메피스토님의 말이 꼰대의 언어가 아니라고 하는 결론이 난다면, 그것도 그대로 좋아요. 제가 왜 다른 이를 꼰대로 만들고 싶겠습니까. 어떤 부분이 꼰대같다고 하여도, 좋은말로 설득시켜 안 그런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 훨씬 나은 일입니다. 다만 이 토론을 통해,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라는 일종의 시스템 결정론은, 숙명론이나 패배주의와 연결되기 쉽고, 그것은 또한 어떤 사람들에게는 꼰대의 언어로 읽힐 수 있다. 라는 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정도의 성찰만 메피스토님에게 주어진다면, 저는 그걸로 되었습니다.
다른 한가지는, 저와의 논박 중에 어떤 소크라테스적인 깨달음이 메피스토님에게 있었는지. 갑자기 스스로의 논지를 뒤집고 제가 듣고싶어하는 이야기를 메피스토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그 비유는 옳다'고 한, 다음과 같은 부분입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생산적인 논의는 뭘까요? 새가 날지 못하는 원인이나 이유를 찾고, 치료를 해주거나 잘자라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자, 이것은 새가 다시 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원인을 찾으려는 고민, 치료해주고 잘 자라도록 도와주는 실천의 영역입니다. 이 비유를 보편적인 언어로 바꾸면 "이 상황에서 생산적인 논의는 희망을 갖고 고민하며 실천하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제가 원하는 논의의 시작은 바로 여기부터입니다.
hj/ 자꾸 외면하시는군요. 비유는 비유일뿐이에요. 이해를 돕는 양념같은거죠. 님께서도 강만수 비유를 얘기하셨고, 전 그 비유역시 제가 이야기하는 구조로 설명을 했어요.
1. "희망을 갖는 건 특별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야"는 내가 한말과 의미가 다르다...에 대해서 님께서 어떤 이야기를 하셨나요? 님께선 이 이야기에 대해 "솔직해지시지요"라며 님의 추측을 강요하거나, "간극은 없습니다"라는 말만 던져놓으셨어요. 그게 다에요.
미싱링크에 대한 설명을 적어놓고 강만수 환율 비유를 하셨지만, 그것에 대한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로 제가 했죠. 정부가 환율에 개입하는건 그럴만한 힘이 있고 의무가 있기에 한다고요. 그런데 님께선 거기에 반박을 하는 것보단 그냥 "이미 이야기드렸으니 넘어가겠습니다"로 끝내셨어요. 덧붙여 님꼐서 생각하시는 토론의 의의와 자세에 대한 간단한 강의와 더불어서요. 그리고 본인과의 간극을 좁혀주시길 요구하고 계신데, 죄송하지만 전 그럴 생각이 없어요.
뭔가 좀 의미있는 반박을 하셔야 저도 피드백을 하는데, 님께선 제 글을 님의 사고에 맞춰 그냥 추정하고 계시죠. 그리고 상대가 거기에 피드백을 하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고 계세요.
2. "희망을 갖는건 특별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야"라는 이야기는 제가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한번 이야기하지만, 그건 그냥 님의 추측이죠. 그러니, 그 말이 꼰대스럽다, 아니다라는 말을 제가 할 필요도 없죠.
아울러 제 이야기를 시스템 결정론이나 숙명론, 패배주의와 연결하시는는건 결국 님께서 제 이야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셨다는 하나의 단적인 예에요. 제 이야긴 모든게 정해져있거나 별 수 없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당위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었고, 우린 결국 패배할꺼야 라는 패배주의도 아니에요. 단지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존재할 사회현상에 대한 설명을 단순화 했을 뿐이죠. A가 일어났기에 B가 일어났다라는 단순한 설명 말이죠.
도대체 그게 20대론;세대론으로 젊은세대를 비난하는 현상에 대한 비판과 그 원인이 된 현상의 설명이 주목적인 이글에서 왜 나오는지도 모르겠거든요. 이 글에는 미래에 대한 단정이나 예언이 없는데 말입니다. 애시당초 그런것과는 거리가 먼 생각을 가지고 있고, 거리가 먼 의도로 글을 쓴 저에겐 님이 제 글을 이해하지 못했다는걸로밖에 비춰지지 않아요.
그리고 자꾸 무례하다 어쩐다 말을 하시는데,
"어차피 할 수 없으니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고 실천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거야말로 꼰대가 할법한 이야기잖아요."라는 님의 첫번째 리플은 퍽이나 예의를 차리시는 리플인가봐요. 아, 혹시 이건 그냥 본인의 느낌을 설명하는 것이니 괜찮거나 예의를 차린 리플이라고 생각하시는건가요? 물론 전 게시판 논쟁에 있어서 언제나 상냥한 인상을 남기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에요. 욕설을 한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야기를 하며 "전 예의를 차렸습니다"따위의 이야긴 하지 않을래요. 하지만 멀쩡한 사람에게 아무 이유없이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도 아니죠.
-------------------------------------------------------- 스스로의 논지를 뒤집고 제가 듣고싶어하는 이야기를 메피스토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그 비유는 옳다'고 한, 다음과 같은 부분입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생산적인 논의는 뭘까요? 새가 날지 못하는 원인이나 이유를 찾고, 치료를 해주거나 잘자라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자, 이것은 새가 다시 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원인을 찾으려는 고민, 치료해주고 잘 자라도록 도와주는 실천의 영역입니다. 이 비유를 보편적인 언어로 바꾸면 "이 상황에서 생산적인 논의는 희망을 갖고 고민하며 실천하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제가 원하는 논의의 시작은 바로 여기부터입니다. -------------------------------------------------
이건 당연한거 아닌가요? 앞서 글은 물론 이 글도 역시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이야기에요. A이기에 B이다. A때문에 B이다. 즉, 구체적으로 원인에 대한 설명이 나오죠. 제가 언급한건 아니었지만, 문제에 원인이 있다면 해결하는게 당연한 순서입니다. 무슨 논지를 뒤집을 필요도 없고, 뒤집은 적도 없죠. 애시당초 '원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글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생산적인 방향이에요.
님께선 저와는 하등 상관없는 미싱링크를 찾으시고, 정작 필요한 미싱링크는 못찾으신 것 같군요. 슬픈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