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pd의 이적설을 보고 생각난 조근식 감독의 일화

한 1년 쯤 됐나.. '놀러와'에 감독특집이란 걸 한 적이 있었죠.

이번 태호pd의 이적 얘기를 보면서 '놀러와'에서 장항준 감독이 조근식 감독(품행제로, 그해여름)에 대한 얘기를 한 게 기억이 났습니다.

한 때.. 한국 영화계에 거품이 한창일 때 눈 먼 돈들이 잔뜩 들어 왔고 지명도 있는 감독들을 거액의 계약금으로 잡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작품을 만들든 안 만들든 감독의 이름을 이용해서 더 크게 한 탕 해 먹으려는 정체모를 세력들이 난립했었죠.

감독이야 손해 볼 것도 없어요.. 그냥 이름 빌려 주고 수억의 계약금 받으면 땡이니까..  안 되도 본전이죠. 계약금은 남으니까. 투자자들만 불쌍한 겁니다.

당시 장항준 감독 역시 그런 제안을 받았나 봅니다. 그리고 조근식 감독에게도 함께할 것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조근식 감독의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안 할래.. 그런 사람들 놀려 먹는 재미로 살고 있는데 그 재미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조근식 감독이 자신의 작품에서 그런 신념을 내세우려고 노력한 사람이냐.. 또 그것도 아닙니다.

뭐..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그냥 시대의 아픔을 관통한 그 세대 사람다운... 그 정도의 느낌이었습니다.

반면.. 작품에서는 마치 투사처럼 보이는 어떤 감독은... 유혹에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마치 당연하게... 발을 담근 경우도 개인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감독도 뭐라고 할 게 못 되는게... 그 당시에는 너무나도 당연시 되는 분위기였고... 또 아나요... 그런 돈으로 더더욱 치열한 작품을 만들었을지... 심지어 그 감독의 (작품이 아닌) 평소 행태를 볼 때는 나름 어울리는 행보이기도 했구요.

 

어쨌든..

위의 경우를 봐서도 알 수 있듯이

창작자의 결과물로 그 사람의 신념을 안다는 건 그다지 신뢰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그 창작자가 '자신이 어떤 신념을 갖고 있다고 사람들에게 생각되어지길 원하는지'.. 만 알 수 있죠.

태호 pd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무한도전'에서의 태호pd만 알 뿐이지 자연인 김태호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습니다.

그가 한나라당을 찍었는지... 조선일보 열혈구독자인지... 강남불패 신봉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단지 '진보적인 색깔'을 좋아하는구나.. 정도는 알 수 있을지도요.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실제 삶에서 그렇게 사는 것은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죠.

우리가 보고 싶은 삶과 실제 삶이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요.

 

결국..

우리는 어떤 텍스트를 통해 그 사람에 대해 모든 걸 알 길이 없습니다.

심지어 게시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우 진보적인 글이 있더라도 그 글쓴이가 진보적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단지 그 사람이 '진보적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이구나 정도만 알 수 있는 거죠.

 

'진보'

폼나죠. 그렇게 폼나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진보적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거고.. 그런 짜가가 판치는 세상이기에 '패션좌파'라는 단어도 생긱는 거구요.

하지밤 어떤 사람의 신념은 작품이나 글로 알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의 인생으로 알 수 있는 겁니다.

평생 놀려 먹을 재미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수억을 마다한 조근식 감독의 경우처럼요.

 

이미 많이 속았잖아요.. 위의 제 생각들은 짜가들이 판치는 세상에 그나마 배신감을 느끼지 않고 싶은 저만의 방어막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질보다는 이미지가 앞서는 이 시대에 필수적인 안전막일 수도 있구요. 

 

    • 경험상 진보적인 체 하는 껍데기호사가들일수록 결정적 순간에 사상적 변절에는 더 앞장서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의 글보다 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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