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세대 등장의 배경이 되었던 80년대 말 미국 팝씬

토끼춤과 뉴잭스윙을 유행시켰던 1988년 Bobby Brown의 등장은 지금도 처음 봤던 날이 생생히 기억날 정도로 인상적이었죠. 그 등장과 이후 미국 팝씬에 불어닥친 변화는 약 5, 6년 후 서태지를 중심으로 국내에도 이루어졌던 가요계의 빅뱅과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원래 New Edition이라는 아이돌 그룹 출신인 바비브라운의 등장은 너무 강렬해서 바로 직전까지 미국 팝계를 지배했던 대형가수 마이클잭슨, 조지마이클, 혹은 차트를 휩쓸었던 헤비메탈, 예를 들어 본조비, 건스앤로지스, 데프레파드 등으로 대표되는, 그리고 듀란듀란과 수많은 아류들을 모두 순식간에 구닥다리처럼 보이게 했던 효과가 있었죠.

 

사실 바비브라운이 그의 솔로 2집으로 거두었던 대히트는 갑작스럽다기 보다는 이전까지 보였던 기류가 모아져 포텐이 제대로 터졌던 거였고 또 Teddy Riley나 Babyface라는 두 흑인 프로듀서의 메인스트림 정복의 전조를 공식적으로 울렸던 거라고 할 수 있죠.

 

당시 미국 팝계는 바비브라운과 같은 새로운 개념의 흑인 엔터테이너의 출현에 고무되었었고 이후 그런 스타일의 그룹, 싱어들이 대거 등장해 팝차트를 뒤덮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힙합을 상징하는 기표들이 강화되면서 당시 미국 팝계의 판도는 완전히 뒤집어지죠. 미국 팝컬쳐가 백인 위주에서 흑인 위주로 바뀌는, 서브컬쳐가 메이저로 역전되는 순간이기도 했고요. 

 

이때부터 아마 미국 청소년들이 흑인식 발음을 흉내냈고 그런 패션도 유행했었죠. 그 이전까지는 마이클잭슨 같은 거물도 '백인이 되고 싶어한다'는 루머가 설득력있게 들릴 정도로 백인 위주였었어요.

 

이런 미국 팝계의 '반전'은 이후 국내 가요계에서 재현됩니다. 80년대 말부터 이런 트렌드와 함께 10대 시절을 보냈으며 그로부터 음악적 영향을 받은 세대가 데뷔하기 시작하면서요. 현진영과 와와,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룰라, 유영진, 박진영, 디제이디오씨, 탁2준2 정도가 지금 떠오르는데요.

 

이들은 다른 장르, 이를테면 발라드나 트로트, 락과는 달리 국내에 계보를 거슬러올라갈만한 음악적 직속 선배들이 없었죠. 그들의 10대 시절 미국 팝계를 장악하기 시작한 뉴잭스윙, 힙합 등을 AFKN 라디오와 방송, MTV 등으로 접하고 신촌, 압구정동 등에서 수입음반을 구입하고 이태원 클럽에서 그런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세대들이었습니다.

 

가요쪽에서는 당시 이문세나 변진섭이 인기였고 TV를 틀면 트로트가 대세이기도 했었으니 사실 이들의 취향과는 거리거 있었죠. 박남정이나 소방차도 더이상 감흥을 주진 못했었고요. 나미와 같은 기성가수들이 간혹 미국  최신 트렌드를 따라하려는 시도를 하긴 했었으나 그냥 시도로 보일 뿐이었습니다.

 

정말 10대 시절부터 그런 음악과 문화를 접하면서 자라난 서태지로 대표되는 이들 가요계의 신인류는 92년 서태지의 등장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가요계를 말 그대로 뒤집는 작업에 들어갑니다. 한국적인 사회상 등이 반영되었지만 그때 저의 느낌은 80년대 말 미국 메인스트립 팝계에서 벌어졌던 일과 매우 유사했어요.

 

 

 *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SM사장 이수만입니다. 세시봉에서 이어져 내려와 이문세, 변진섭, 신승훈 등으로 계보가 이어지던 포크송/발라드 가수 출신이지만 재빨리 미국 팝의 트렌드와를 읽어냈고 이를 국내에서 재현할 수 있는 신인류들의 가능성을 캐치해내 이것을 연결시킨거죠. 

그래서 나왔던 게 현진영과 당시 클럽에이스였던 구준엽, 강원래로 구성되었던 현진영과 와와였고요. 이후 이현도와 김성재도 와와를 통해 이수만의 손을 거칩니다. 탁2준2의 이탁이나 이현도도 현진영의 곡을 썼었고요. 그리고 결국 이수만은 이 신인류 중 유영진을 발탁해 데리고 가게 됩니다. 저는 뭐 이때까지는 이수만이 기성세대로서 기획자 역할을 제대로 한거라고 평합니다.

 

* 각 개개인 차이는 있겠지만 특히 서태지를 또 위에 세대로 정확히 분류하기는 역시 무리가 갑니다. 애초에 해비메탈이 베이스였고 음악을 들어보면 뉴잭스윙의 영향도 있지만 퍼블릭에네미, 비스티보이즈의 감성이 더 클 때도 있고, 뉴키즈온더블락이 느껴질 때도 있어요.

오히려 양현석이나 이현도, 박진영, 유영진 같은 사람들이 제가 위에 묘사한 테크를 정석대로 탔다고 할 수 있죠. 저 중 3명이 아시다시피 이후 십수년간 가요계를 지배하게 되고요.

 

* 대개 대중음악에서 혁신적인 등장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그런 식인 것 같아요. 적어도 전영록 같은 당대의 기라성이 서태지 같은 원석을 발굴해내고 멘터링하는 식으로는 아예 발굴과정 자체에서 필터링 될 가능성이 높겠죠.

    • 그렇다고 하기엔.. 9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서태지와 아이들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여러가지 시도도 많았고 재미있는 것도 많았지만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해외 음악의 한국화.

      이게 그 직전인 80년대 말에는 박남정같이 마이클 잭슨의 외형적 스타일과 댄스를 따라하면서 노래는 트로트 (아 바람이여)를 부르는 기이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죠.
      서태지와 아이들 시기에는 메탈이나 락이 섞인 힙합, 디스코를 변형시켜서 나열했는데 이게 '하우스 댄스'라는 이상한 장르로 번지죠.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같은.. 그 다음에 벌어지는 게 BPM 경쟁.
      그 와중에 일본 스타일을 따라하거나, 아예 대놓고 표절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뭐 그런 게 비주류가 주류로 바뀌는 과정이라고 볼 수는 있겠지만.. 음반 시장이 확대되고 구매 연령층이 확대 되면서 이것저것 시도되었다고 보는 게 제 생각입니다.
    • 서태지가 판을 뒤집긴 했지만, 그 이후에 바뀐 판에서 주류가 된건 오히려 서태지와 달랐다는게 참 아이러니인 것 같아요.
    • mad hatter/BPM Racing;;! 서태지가 은퇴하고 90년대 말까지 노래들이 나이트클럽의 부흥과 함께 좀 달렸었죠. 일명 뽕짝하우스라고...곧 SM, JYP, YG 등이 BPM을 진용을 가다듬고 다시 BPM을 다시 좀 늦춰놓긴 했지만. 갠적으론 좀 괴로웠던 시기였죠..

      Spitz/글쎄요. 서태지와 달랐긴 하지만 서태지 지분은 어느정도 남지 않았었나요?
    • 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저는 '저게 대체 무슨 장른데 가요에 지분이 이렇게 큰거지?' 가끔 궁금할 때가 있었거든요.
    • abneural/감사합니다^^ 저는 이제 다시한번 뒤집어 엎어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지 좀 되었네요.
    • 우오오오 매우 정갈한 글이네용!!

      음반 사진 걸어놓고 맘에 안들면 유치한 동요니깐 별 두개 혹은 더맘에 안들면 bomb!
      타령만 반복하던 부끄러운ㅋㅋ 제 글과 사뭇 비교되는..글이군요 ㅋ

      여튼 정갈한글 잘읽었었고 현진영과 와와 탁이준이 디제이덕들의 우상이였던 바비 브라운에 관한 스토리는
      티비에서 구준엽등이 언급하는거 얼핏들어봤던거 같기도 하네요..

      그런데 갑자기 생각나는게 토끼춤 그 유행시키던 사람은 mc해머죠? 이들도 80년대말에 활동하던 사람들인가요?
      더 이전이였던거같기도 하고 --a
    • 달빛부유/감사(__)...그냥 옛날 얘기나오길래 저도 추억에 잠기다보니;

      MC해머는 88년도에 공식 데뷔했으나 그 유명한 U can touch this로 초대박을 친건 90년도였죠. 근데 이분은 너무 개성이 강해서..당시 하나의 기류로 보기엔 좀 따로 논 감이 있죠. 정말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뒀고 나름 힙합의 메이저화에 기여했으나 번쩍 가수였죠.(반짝가수라고 하기엔 좀..) 오히려 다른 갱스터래퍼들한테 꽤 씹혔던 걸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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