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도시락

오늘이 어린이날이라 관련 글이 많이 올라오네요. 어린이날 갔던 장소나 먹었던 음식, 함께했던 사람들.. 저도 댓글 놀이 할려고 어린 시절을 회상했더니 이상하게 어린이날 기억은 말끔하게 지워져 있네요.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요.

대신에 가을 운동회가 기억이 나요. 주로 백미터 달리기를 하고나면 점심 시간이었는데, 남들은 다 엄마가 준비해오신 김밥이며 과일이며를 어울려 먹는데 우리 가족은 조용히 학교를 빠져나와 시내에 있는 경양식집엘 갔었어요. 엄마가 일을 하셔서 도시락 준비할 틈이 없었던 건지, 그냥 운동회날엔 돈까스 내지는 함박스테이크를 먹는 것이 당시 우리
집의 문화였는지는 기억이 안나
요. 그냥 그 경양식집은 바깥 세상과는 달리 참 조용했고, 점심을 먹고 학교로 돌아가면 왠지 저는 외계인이 된 것마냥 의기소침해지곤 했어요.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집에 돌아오면 파출부 아줌마의 계란밥이 기다리고 있었고, 고등학교 시절 야간자습을 할땐 식당에서 주문한 도시락을 기다렸어요. 그것마저 없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겠지만 어두운 교정 배달 오토바이를 기다리면서 제가 가장 원했던 건 전업주부 엄마였어요. 학교 옆에 사는 친구 엄마가 미리 싸둔 도시락도 아니고 시간맞춰 가져다 주시는 떡국, 비빔밥 이런 음식들이 어찌나 부럽고 샘나던지요. 일하는 엄마가 버는 돈으로 책을 사고 대학에 갔으면서 도시락 하나도 못싸주는 그런 엄마가 밉고 싫었다면 저는 얼마나 철이 없었던 걸까요.

일요일이면 어버이날인데 오랜 세월 고생하신 엄마에게 고맙고,미안하다고, 용서해달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 옆에서 꿋꿋이 엄마를 지켜주신 아빠께두요.
    • 집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도 있으셨고 부유한 편이셨겠네요~
      • 아마 엄마가 집안일이 감당이 안되니 낮동안 잠깐 오셔서 청소하고 밥해주던 아주머니를 쓰셨던 것 같아요. 그마저도 없을땐 열쇠아동 노릇을 했구요..
        • 지금은 나아지셨지만 아빠가 오래 편찮으셨거든요..
    • -0-;.............. 경양식집에 파출부 아줌마에 주문도시락에... 부유한 편이었네요.
      급식비 아까워서 끝까지 도시락 싸주셨던 울 엄니께 다시한번 경배!!!
      • 윽 갑자기 사탕님 댓글을 읽고나니 얼굴이 뜨겁네요.. 근데도 전 집에 없는 엄마랑 배달 도시락이 끝끝내 싫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 저녁밥 지어서 배달해주는 엄마라니 상상도 못해봤어요 ㅎㅎ 저 고딩땐 자취방,하숙집, 학교앞 분식점 아니면 친구자취방, 친구하숙집 ㅋㅋ누가 엄마가 금방만들어 배달 해주는 밥 먹으면 진짜 부러웠을거 같아요. 그런 분위기 아니어서 다행이야 싶고 요즘은 저녁도 급식 하겠지 하는 생각도..
      • 고3때였는데 정말 대단하신 분이었어요. 그당시 제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어머니요. 오므라이스,김치볶음밥을 이틀단위로 번갈아 먹다가 그 친구가 펼치는 도시락에 주늑이 들었어요. 그땐 엄마는 엄마대로의 삶이 있다는 걸 생각도 못할만큼 어렸어요.
    • 엄마들 도시락 싸주는건 아이에 대한 사랑이 크겠지만, 돈이 없다는 이유가 클거예요.
      저도 엄마가 일을 오랫동안 하셔서 운동회나 소풍때 도시락을 못 챙겨주신 적이 많았지만
      그래도 미운 감정은 하나도 없었네요. 엄마가 힘들어 하시는게 더 싫었으니깐요.
      워킹맘 아이들이 자신에 대한 관심이 적은건 개의치 않지만,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에
      더 속상해 한다는 게 최근 결과라지요?
      엄마라면 자식에게 헌신해야 한다는 건 신화나 일부의 생각인 듯. 정작 당사자들은 그게 아닌데.
      • 저도 부모의 무조건적인 헌신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오히려 제 어머니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했던 것 같아요. 그냥 어릴 땐 그걸 결핍이라 느꼈던 것 같고,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했으면서 어느새 그런 엄마를 닮아있네요. 사탕님은 저보다는 훨씬 속깊은 아이였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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