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배우다'도 볼려면 영화판이 이쯤은 되면 될까요?

그냥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는 아이돌들이 출연하는 3D SF물입니다.

이런 장르의 영화가 현재 국내 스크린 점유율의 5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 입니다.

나머지 30%정도는 80년대 국내 영화의 주류를 이루었던 에로물이 3D 기술과 결합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고 그 나머지는 외국영화와 인디영화들이 점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80년대부터 이런 트렌드를 간파하고 국내 3D SF 시장을 선도해왔던 심형래 사장의 영구아트는 국내 스크린의 99%를 보유하고 있는 3개 메이저 극장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계를 이용한 영구아트의 주력 영화들은 개봉시 70%정도의 스크린 점유율을 차지해 기본적인 흥행은 보장됩니다.

 

20세 전후의 아이돌 스타들이 주로 캐스팅되는 이런 영화들의 주요 수입원은 이미 관객수가 아닙니다. 영화 관련 캐릭터 상품, 게임, 화보집, 음원 등으로 인한 수익이 더욱 큰 비율을 차지하죠.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영화를 좋아하는 한국시장을 발판으로 모든 자본이 집중되는 데다가 한 우물을 파서 그런지 이 장르는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게 되고 자막이 별로 필요 없다는 잇점까지 더해져 해외시장에서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영구아트의 인하우스 감독인 박찬욱은 이런 히트 영화들을 제작한 감독입니다. 모두 심형래가 제작한 박찬욱의 영화들 중 특히 살인이무기를 둘러싼 10대들의 꼬리를 무는 복수극 D-War: The Revenge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죠.

한편 롯데시네마 소속인 홍상수는 국내 3D 에로영화계에서 중하위권 정도의 성적을 기록하며 그럭 저럭 그 이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에로물 중 약간 고어틱한 종류로 호불호가 좀 갈리는 편이긴 합니다.

 

이런 식으로 메인스트림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나름 좋은 평을 듣는 감독들, 예를 들어 봉준호, 강형철, 김지운 같은 감독들은 소규모 자본으로 영화를 제작하며 인디영화계에서 위태위태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영화들은 관객 입장 수익으로만 수익을 거둘 수 있어 소수의 영화팬들만으로는 ROI가 안 나와 차기작 제작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메이저 극장들은 그나마 주류영화 대비 10%정도의 스크린을 이러한 정통 극영화들에게 할당 했었으나 최근에 이런 창구도 SF와 에로에 내어주면서 대폭 줄어들어 더더욱 이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간혹 괜찮은 아이돌 3D SF나 에로영화들에 만족하나 가끔은 아쉽습니다.

아 저 영화에 들어갈 리소스를 봉준호나 김지운에게 투자하고 좀 평범한 얼굴의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를 한번 보고 싶다라고그러나 그래봤자 저 감독들이 기술력이 더 중요한 저런 영화에서 얼마나 실력을 발휘할 지도 미지수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한 아쉬움을 인터넷에 표현해보면 돌아오는 것은 영화관에서 까지 평범한 얼굴을 봐야하나. 영화는 좀 현실에서 보지 못하는 광경을 보여줘야지’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만든 컨텐츠들이다. 해외에서의 인기는 어떻게 설명할거냐’ ‘대중이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연기가 보고 싶으면 연극을 봐라등의 대답뿐입니다.  

사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틀린 얘기도 없습니다.

 

하지만 재능과 성과에 비해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영화인들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좀 남습니다.

그래도 뭐 괜찮습니다. 원래 한국영화판이 마음에 들었던 적도 없고 좀 더 다양한 장르가 제작되는 헐리우드 영화나 유럽 영화들을 보면 되니까요.

3D SF도 헐리우드산이 훨씬 볼만한 거 같습니다.

게다가 이런 메인스트림 영화계에 사람들도 싫증을 느끼는 거 같고 서서히 변화할 조짐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극영화판에서 꽤 괜찮은 신인들과 작품들이 나오고 있거든요.

 

이러던 중 CGV와 영구아트가 합작으로 '이것은 영화다'라는 새로운 이벤트를 구상하게 됩니다.

포맷은 현재 영구아트에서 연기 교사로 있는 배우 송강호, 언더그라운드 스타 이병헌, 해외에서 상도 탔던 전도연, 한때 연기파로 날렸던 한석규, SF 영화 단역으로 인기를 끄는 유해진, 연극계의 신성 서영희 등 실력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해 영화 1편을 제작합니다.

 

감독은 영구아트의 박찬욱 같은 흥행감독과 그의 스탭들이 맡으며 CGV에서는 영구아트에서 제작하는 영화에나 주는 꽤 많은 스크린 수를 배정합니다.

1달 간 극장에 내걸며 관객들은 출연 배우들의 연기를 대상으로 투표를 하게 되어 다음 영화에는 한 명씩 탈락시키는 방식입니다.

 

포맷이 어이가 없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이들의 모습을 극장에서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반갑기도 하고 기대도 됩니다.

 

작품을 보니 캐릭터나 시나리오에 대한 연구를 할 시간도 없는 타이트한 제작기간 및 경쟁에 대한 압박 때문에 작품은 좀 붕 떠있는 느낌이고 몰입도 하기 힘듭니다.

더구나 상영 중 간혹 흘러나오는 코멘터리 같은 것은 '이게 뭐하는 짓인가'라는 의문을 들게 합니다.

 

그런 열악한 상황이지만 배우들은 모두 혼신의 힘을 다해 명연기를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이게 진짜 배우이고 영화라며 열광하며 영화는 흥행에 성공을 거둡니다.

그러나 한달 후 탈락자 선정에서 시종일관 잔잔하고 담백한 연기를 했던 한석규는 탈락하고 맙니다.

 

러닝타임 내내 격한 오열 연기와 감정폭발씬이 계속되는 2회 차 영화에 대해 사람들은 영화가 시작되면서 끝날 때까지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말 쓰레기 같은 영화만 보다가 진짜 영화를 보니 눈과 영혼이 정화되는 거 같다는 등 서로 받은 감동을 나눕니다.

 

하지만 왠지 이건 본래 영화의 가치를 전해주는 것 같지 않습니다.

단지 얄팍한 즐거움을 위해 그동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활동하는 모습에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지켜봤던 배우들을 끌어내놓고 그들의 예술혼을 이용하는 듯한 죄책감이 듭니다.

그동안 제대로 된 대우도 못받았던 배우들이 갈 곳을 잃은 채 말도 안되는 스케쥴과 압박감을 견디면서 연기혼을 불사르는 모습에 괜히 안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가뜩이나 안풀리던 배우들이 조기에 탈락하게 되면 '엎어진 놈 한번 더 밟나?'라는 반감도 생깁니다.

이런 메이저회사들의 장난질에 무슨 대단한 명화인양 찬양하는 사람들의 반응도 어리둥절합니다.  

 

별 큰 기대 없이 이런 저런 불만이나 걱정들을 인터넷에 얘기해 보았더니 생각보다는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꽤 돼는 거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얘기는 소수의 불만일 뿐입니다. 결론적으로는 영화판이 저 부러운 헐리우드 비슷하게라도 될 길은 너무 막막해 보입니다. 

 

곧 남의 걱정은 포기하고 이번에 극장에는 못 걸렸지만 평이 꽤 좋은 인디 영화감독 강형철의 신작 DVD를 주문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여기 나오는 배우들은 저 해괴한 이벤트에 휘말리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말이죠. 

    • 일전에 쓰신 나가수 죄책감관련 글을 영화판으로 각색하신 글이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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