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19금 아니어요) 러브호텔과 러브
본래 조악한 것일수록 당당한 외양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내가 사는 이 무인지경의 산골마을에서도 밤이면 강 건너 러브호텔의 불빛은 찬란하다. 러브호텔들은 그 조악한 건축양식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네덜란드풍의 풍차나 이슬람 양식의 돔 지붕, 디즈니랜드풍의 뾰족지붕과 어렸을 때 읽은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술의 성이 국토의 구석구석에 창궐하였다.이제 러브호텔에는 도농의 격차가 없다. 본래 욕망은 평등한 것이다. 전에 살던 서울의 외곽 신도시에도 러브 호텔은 창궐했다. 러브호텔 사이사이에 교회가 수없이 들어섰다. 큰 사찰도 세워졌다.(중략)
그 신도시는 러브호텔을 추방해야 한다는 주민들과 허가를 내준 행정기관 사이에 싸움이 끊일 날이 없었다. 분노한 기독교인들은 ‘종말이 가까워왔다. 회개하라’는 현수막이 걸린 트럭을 저녁 무렵의 러브호텔 앞에 세워놓고 죄 많은 세상을 통탄했다.
그 신도시 주민들은 자꾸만 번져가는 러브호텔에 대한 도덕적 분노로 끓어올랐다. 연일 시위가 벌어졌다. 시장과 교육감은 속수무책으로 쩔쩔매었다. 시장은 시위대 앞에 나와서 “러브는 규제대상이 아니다. 행정력으로는 러브를 막을 수 없다”라고 절규했다. 좀 희화적이기는 하지만 시장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행정력뿐 아니라 군사력이나 경찰력을 동원해도 러브를 막을 수는 없다. 종교나 교육의 힘도 러브 앞에서는 무력해 보인다. “종말이 가까워왔다”고 겁주어서 될 일도 아니다. 욕망에는 종말이 없고, 욕망에는 회개가 없다. 시장의 그 절규는 틀린 말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러자 행정력을 동원해서 러브호텔 주차장의 비닐커튼을 걷어내라는 분노의 함성이 일었다.(이후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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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에서 한 부분 발췌해봤습니다.
읽다가 ‘절규했다’에서 괜히 혼자 빵 터져서는 자면서도 웃고, 아침 출근길에 버스 안에서도 혼자 실실 쪼갰던 기억이 나네요.
저 문장이랑 김훈 작가님의 그 진지한 무표정, 미간의 주름이 떠올라서.... 흐윽..
근데 러브 호텔의 모양새가 요샌 저렇지 않죠. 뾰족기둥이나 풍차나.... 꽤 오래전이라 요상한 양식들이 많았던 듯...
아래 러브호텔 관련글과 모텔 사진들 보고 끄적여봤어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