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 학습만화를 읽었어요.
종종 책 빌리러 가는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센터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일본 역사 만화가 있더라구요. 총 20권 정도 되는...
한번쯤 일본 역사를 쭉 훑어보고 싶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개설서 중에 가볍게 읽을만한 건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던 중이었기에 일본어의 압박을 이겨가며(그래도 만화로 되어 있으니 볼만하더라구요) 일본어 사전과 위키백과의 도움을 받아 읽어나가고 있어요. 러일전쟁이 끝나가는 부분까지 읽었는데, 흥미로운 부분이 몇 있더라구요.
- 철저한 고증.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만화면 대강대강 넘어가도 될만한 부분도 철저하게 해놓았더라구요. 먼 옛날의 복식이라던가 관직명, 지명 같은 것도 최대한 그 당시에 불렀던 것으로 하려고 노력하고, 불가피하게 당시의 것으로 할 수 없을 때에는 각주를 다는 식으로. 예를 들면 전국시대의 나가시노 전투의 모습은, 오다 군이 철책을 쌓고 2교대로 조총을 쏘는 방식으로 다케다 군의 기병을 막는 것으로 많이들 그려지는데, 이 만화에선 2교대로 조총을 쏘는 장면이 나오지 않길래 의아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오다 군이 그런 전법을 썼다는 것은 학술적으로 증명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 역사적 사실의 '이면적'인 모습을 철저하게 그립니다. 어떠어떠한 토지 정책을 실시했을 때, 예를 들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검지 정책을 시행했는데, 결국 농민들의 생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식으로, 기대를 보상받지 못하고 절망하는 농민들의 모습이 '정말 꾸준하게' 나옵니다. 과연 진정 농민들의 살림살이가 낫게 해준 정책이 있긴 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근데 이게 어느정도 사실이긴 하잖아요. 아이누와 류큐를 묘사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수 천년간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다 '일본인'의 등장으로 살 터전을 잃어가는 아이누 인들의 모습이 리얼하게 그려지죠.
- 일본이 '근대화'를 이루고 강대국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릴 때에도 근대화가 가져왔던 부작용을 빼놓지 않습니다. 러일전쟁을 묘사할 때에는 대부분의 민중들이 정부의 선전에 넘어가 전쟁을 외치는 모습이 그려지구요. 몇몇 깨어있는 사람들이 전쟁을 해도 윗사람들에게만 이익이 돌아갈 뿐이라며, 조선이나 청과 같은 이웃나라의 땅에서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된다며 반전론을 외치지만 무위에 그칠 뿐이죠. '학습 만화'의 취지에 맞게 '교훈'을 주려는 멘트가 보이지 않는 건 아닙니다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이런 멘트는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여기까지가 원래 써 놓았던 내용이구요
이렇게 좋은 코멘트들을 써놓고 쇼와 이후 부분을 읽었는데, 도죠 히데키 같은 태평양 전쟁 당시 장교들을 극화풍으로 (상당히 '멀쩡한 모습으로') 그려놓은 걸 보고, 역시 일본인이 그린 만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더라구요. '중립(여기서 중립이란 당시 일본이 저질렀던 나쁜 짓들을 가감없이 알려주는 것이겠지만)'을 지키려는 모습은 계속 보입니다. 난징 대학살도 언급되고 있고, 무려 종군위안부까지 그려져있는 것은 상당히 놀라웠습니다. 물론 '아동' 대상 만화이니만큼, 빨래하고 있는 처자들을 어떤 뚱뚱한 아저씨가 와서 돈 많이 줄테니 따라와- 하는 정도로 묘사되긴 하지만요. 단어 그대로 '위로'를 위해(일본어로는 癒し였던 것 같습니다) 끌려갔다고 정도로 기술되어 있어요
일본이 군국주의로 치닫는 부분 이후의 내용에서 인상깊었던 건, 중일전쟁/태평양전쟁의 진행 과정을 설명하는 중간중간에, (철저히 통제되고 있던) 신문이라 라디오를 통해 전쟁 상황을 지켜듣던 일반 민중들의 모습을 계속해서 그려넣는다는 점입니다. 살림이 어려워지고 젊은이들이 속속 전쟁터로 끌려가는 와중에서도, 전쟁에서 이기면 무언가 나아질 거라고 끊임없이 위안을 삼는 이들을 보면서 참 복잡한 생각이 들더군요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의 학생들/젊은이들은 역사 공부를 하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생각이 들었어요(아마 우리가 '우리 역사'에 대해 하는 생각과는 많이 다르겠죠). 또 가르치는 이들은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지도요.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고, 그들이 저질렀던 잘못을 다시는 저지르면 안된다고 가르치겠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것이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 이들은 별로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뉴스나 신문, 인터넷 같은 곳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일본 학생들에게 현대사에서 일본이 저질렀던 일들에 대해 물어봤더니,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아 잘 모른다고 하더라구요. 하긴 우리나라도 뭐라 할 처지는 못되죠. 근현대사보다는 고대사나 중세, 근세 부분이 더 비중있게 다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니...일본도 진도상 문제로 메이지유신 근처에서 수업이 끝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마지막으로 인상깊었던 얘기를 하나 적자면
일본 학생들이 단체로 여행을 왔을 때 일정을 짜고 가이드를 하는 일을 해주시는 분과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어요.
상당히 놀랐던 게, 서대문 형무소나 독립기념관을 가보고 싶다고 하는 친구들이 꽤 많았다는 거예요.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는 여쭤보지 않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