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타이라와 포르노이_성매매와 인간소외
1.
어제 게시판을 달궜던 성매매 이슈와 관련한 글입니다. 잘못 클릭하신 분들께 미리 말씀 드립니다.
덜 된 글이 길기까지 하다는 것도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쓰고싶은 말이 많았습니다. 성노동자를 어떤 존재로 규정하고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단순히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으로 구분이 불가할 정도로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자들, 공리주의자들, 시장경제주의자들, 칸트주의자들, 롤스주의자들, 보수적 페미니스트들, 급진적 페미니스트들,
기독교-프로테스탄트들, 심지어 과학자들 까지 모두 다른 관점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성노동자들의 현재 상황을 어떻게 개선 혹은 규제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가 매우 어려운 이유입니다.
어제 글 쓸 시간은 없고 논쟁들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역시
저런 다양한 관점들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퇴근하니 10시, 집에가서 관련 책들을 좀 꺼내보니 금방 12시 이더군요.
정리를 얼마나 안 해 두었는지 몇 권의 책은 책장 하단을 가린 장애물에 막혀 꺼내기를 포기했습니다.
오늘은 새벽 출근이 필요한 날이었는데, 이렇게 뒤늦게 떡밥을 다시 꺼내드느니 밤을 새서라도 쓸까 하다가
유혹에 약한 인간인지라 그냥 자버리고 말았어요.
그래서 회사에 와서 글을 쓰는데, 당연히 찾아둔 책들은 집에 있고,
사실관계 확인용으로 꺼내두기만 한 것이라서 내용은 기억에 없고...나는 어제 뭘 한 것이지 싶기도 하네요.
연구들이나, 사실관계의 출처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기재하고 싶었습니다만 결국 기억에 의존하게 되는군요.
2. 3700년의 차별
어제 듀게에서도 언급되었습니다만,
1700년대 주요한 주장이었던 보건의료적인 문제를 우선하는 관점이 아직도 유효하게 여겨지는 것은 오히려
유구한 성산업의 역사에서 고작 300년 정도, 인식이 정체된 것에 불과합니다.
아직 매독의 원인이 성관계 때문이라는 것도 확실시 되지 않았던 시절에 성노동자들에게 원인을 뒤집어 씌운 것이지만,
2차대전 중 성노동자들을 강제로 병원에 보냈던 것보다 군인들의 성병을 검사한 케이스에서 성병 감소율이 더 컸다고도 하지만,
이미지라는 것은 언제나 위정자들의 필요에 따라 조작되기 쉬운 것이니까요.
아직도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성매매에 대한 인식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설득력있게 남아있는데, 300년 정도야 애교에 불과하겠지요.
필요악인 시궁창, 창녀들이 성직자의 정욕을 해소해 성인이 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이율배반적인 자기합리화는
성매매를 통해 정욕을 해소해야 남성들이 강간 등 기타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된다는 주장과 매우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면 신전 창녀로 불리웠던 고대 여사제들의 성혼의 시대가 존재할 수 있겠습니다마는
사실은 이 시대의 여사제들의 지위에 대한 분석마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대치하고 있어, 통일되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 시절부터 여성 억압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이들도 있고
그 시절에는 왕이 백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여사제 중 하나와 성관계를 가짐으로써 지지를 확보해야 했으므로
모계 사회의 상징 중 하나라고 분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 때야 어쨌건, 성노동자에게 일종의 표식을 붙여(옷차림, 특정 장신구 등) 일반 여성과 구분하기 시작한 행위가 처음 시작된 것은
기원전 2000년 수메르시대 부터입니다. 프랑스에서 법적으로 그러한 구별 표식이 사라진 것은 1700년대입니다.
최소한 3700년간, 성노동자는 사회적으로 차별과 격리, 착취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성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착취의 역사는 기실 성노동의 본질 때문이라기 보다는
시대마다 정치적, 계급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성노동자에 대한 일관된 법령이 유지되지 않았고, 법령이 발표되어도 제대로 실행되지도 못했고,
당연히 성산업을 철폐하지도 못했으며,
불결하고 문란하며 사회 규범을 해치는 게으르거나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성노동자에 대한 이미지만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결국에는 그것이 성노동의 본질인 양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성노동의 본질에 대해 군더더기가 제거된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먼저 명확히 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너의 가족이면 어떻겠느냐, 혹은 인간의 본능이 아닌가, 하고 개인적 문제로 치환하는 것이나
여성 억압의 문제이다, 자본주의의 문제이다, 하고 단편화 시키는 것은 좀 억울할 것 같습니다.
시대별로 착취와 차별의 주체가 누구였는지 정확히 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대강 정리하자면 (저의 관점에서) 이렇습니다.
흔히 고대그리스를 자유로운 사랑과 쾌락의 시대로 그립니다만
아테네 위정자 솔론은 성매매를 억압하면서 동시에 그들로부터 거둔 막대한 세금으로 군사도시를 유지하였습니다.
전쟁의 시대에, 대표적으로 로마는 정복과 팽창을 거듭하며 성산업의 확장에도 기여하였습니다.
새로운 도시를 정복하여 군대가 주둔하게 될 때에, 기존 주민들이 가지는 군사들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는 한 방편이
'우리에겐 성노동자가 있고, 너희 정숙한 여자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발달된 상업도시에서는 거래의 성사를 위한 향응이 필요했습니다.
자본가들이 나타난 이래, 결혼을 할 수 없었던 빈민 남성들 또한 성노동자에게서 성적 욕구를 해소하고는 했는데,
이것은 사실 빈민 남성들의 이해보다 더 크게
자본가와 위정자들의 '그들이 우리 여자들(아내와 딸들)을 건드리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불안함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로마시대 이후, 영국 런던에서 처음 성매매라 할 수 있는 행위가 목격된 것은 1500년대 초입니다.
목욕탕이 발전하면서 성산업이 따라온 것인데, 이 당시에 성매매는 풍기문란과 같은 경범죄의 수준이었습니다.
죄는 죄이나 사회악까지는 아니었고, 이는 이후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 성노동자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질 때
성산업에 종사하지 않았던 일반 여성들이 성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시위에 동참하는 태도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당시의 빈빈 여성들은 이미 같은 계급의 남성으로부터 처녀성을 상실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그들이 '정해진 곳, 정해진 상대에게서만 욕구를 해소하도록' 통제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재산(인 여성들)이 위협받는다는 생각에서 안심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합니다.
이후의 성노동자에 대한 탄압은, 15~17세기(범위가 넓은 것은 제 기억력의 부족 때문입니다)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국영 공창 운영에서 심화됩니다.
이미 13세기 프랑스에는 궁정에 등록된 포주가 있었습니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창의 소유권이 종교계로 넘어가면서 더 심각해집니다.
성노동자들은 임종시 재산의 절반 정도를 국가나 교회에 기부하도록 강요받기도 했고
스스로 근무 시간과 거주지를 결정할 수 없었으며 때로는 도시 외곽으로 쫓겨났습니다.
교황은 자신 소유의 공창에서 거둔 세금을 가지고 새로운 성당을 짓는 데 사용했습니다.
'(국가가 정해준)남자 마담을 없애고 성노동에 직접 종사하는 여성들이 마담이 되어 스스로의 수익과 노동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해 달라'
는 프랑스 성노동자들의 요구는 이들의 지위 변화와 노동환경 악화가 심화되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 당시에는 산업적 의미로서 현대와 같은 포주 개념이 형성되기 전입니다.
국가와 종교계가 나서 착취와 억압을 시행했던 시대였는데, 이 때 현대 포주 개념의 씨앗;이 생겨났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매매가 점점 더 위험해지고 은밀해지고 어려운 것이 되자 성구매자도 성판매자도 중개인을 필요로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최초의 포주들 역시 빈민 계층의 남성이었다는 것은 계급적 의미에서 시사점이 큽니다.
빈민 계층의 남성들은 위험하지만 많은 보수를 얻을 수 있는 포주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3. 성노동의 자발성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계급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성노동자 여성들을 단순히 피해자로 규정짓는 것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그리스의 헤타이라, 르네상스의 코르티잔 등 막강한 권력과 자율성을 가진
'고급 성노동자'의 존재는 일반적인 피해자적 이미지와 대척점에 있습니다.
헤타이라와 포르노이의 차이는 아마도 서울 텐프로 여성들과 탑골공원 박카스아줌마의 차이보다 클 겁니다.
둘째로, 수천년의 시간동안 언제나 누군가의 것(아버지 혹은 남편)이었던 여성들에게 모두의 것이 된다는 것은
역으로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자기 자신이라는-점에서, 실제 이 일을 자발적으로 택했던 여성들이 존재합니다.
셋째로, 자본주의 중에서도 소비경제의 시대가 도래한 이후 성의 상품화가 공공연히 진행되어왔기 때문에 도덕적 가치판단에 혼란이 있습니다.
넷째로, 여성에 대한 차별과 직업 제한이 보편적이었던 시대에, 성산업은 유일하게 여성들에게 높은 수익을 보장해 주었으며
이는 '왜 성산업에 종사하는가' 보다 '왜 성산업에 종사하지 않고 잡역부일을 하는가'가 더 자연스러운 질문일 정도라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즉, 성노동자 여성이 피해자로 억압받아온 역사만큼이나 같은 현상을 두고도 반대로 해석할 수 있는 역사가 존재합니다.
최소한 뜬금없이 등장한, 완전히 근거없는, 물질 만능주의에만 경도된 합리화인 것은 아니며
나름대로 각각의 시대 속에서 성노동을 직업으로서 선택한 여성의 자율권에 대하여 분석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위의 네 가지는 주장은 급진적 페미니즘 중; 한 부류;;;의 주장으로 등장해 선대..페미니스트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19세기에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연구들과, 그 결과들을 부정합니다.
성노동자들은 게으르고, 문란하며, 가정환경이 어려우며, 기타 등등의 불완전하고 비정상적인 존재라는 낙인을요.
국제적으로 성노동자 조합이 만들어지고 (물론 그 이전에도 프랑스 등에는 있었습니다만) 법적 안전망을 요구했습니다.
최근 제기되는 '자발적 성노동자'의 개념을 논의함에 있어서 주요한 근거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포주의 비합법적/폭력적 착취 행위,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나오기 힘든 구조적 문제 등은
그 하나 하나 행위 자체의 불합리함에 대하여 처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억압적이고 착취대상이 되는 성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인식만으로는
성노동 자체에 반대하는 근거가 되기에 불충분합니다. 그렇다면 합법화해서, 음지에서 양지로 이끌어내자는 반론이 뒤따르지요.
역시 성노동의 본질에 대한 답변은 되지 못하겠습니다.
4. 인간 소외
현실은, 헤타이라와 포르노이가 구분되듯이 다양한 층위의 면면이 존재합니다.
저는 다른 임노동과 성노동이 구분되는 이유가 인간 소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본주의 하의 모든 노동은 인간의 소외를 야기합니다.
우리는 모두 봉급을 받고 누군가를 위하여 자신의 시간과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모욕적이고 불합리한 대우를 받기도 합니다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그만둘 수 없는 현실은
우리가 '자본의 노예'가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나, 일반 임노동자와 성노동자들이 모두 노예이니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은
모든 여성이(성매매와 결혼제도가 모두) 창녀라는 주장과 비슷하게 정교하지 못합니다.
경제위기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자발적 성노동자로 만들었습니다.
IMF이후 한 때 한국에 '아빠방' 이 유행했다는 사실은 구조조정으로 갈 곳을 잃은 남성들도 성노동 산업에 뛰어들었음을 의미합니다.
성산업은 노동자로서 진입 장벽이 매우 낮은 직종입니다. 일단은 남자로서의 또는 여자로서의 신체가 있으면 가능한 일이니까요.
경제가 어려울 때 많은 이들이 그러한 유혹에 이끌리는 것은
그들이 가진 물질적/지적/시간적/재능적 자본들을 총합하여 비교해 본 합리적 결과라 해도 앞뒤가 어긋난 말은 아닌 듯 보입니다.
온전한 개인적 주체로서(무연고적 자아) 선택한 결과라는 얘기인데,
무연고적 자아의 선결 조건은 삶의 제반을 지배하는 조건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의 권리입니다.
앞서 얘기했던 고대 신전의 여사제 시대를 제외하고, 상류 계급 여성은 헤타이라든 포르노이든 종사할 이유가 없습니다.
신분제가 확실했던 과거 사회에 돈을 번다는 것은 되려 천한 일로 여겨졌으니까요.
즉 상류사회의 여성이 자유 연애를 하며 선물을 받아 챙겼을지는 모르나 그녀는 직업으로서 성노동을 했던 자는 아닙니다.
헤타이라도 포르노이도 경제적 억압(빈곤)이건 도덕적 억압(여성의 사유재산화)이건 사회적 억압(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종의 제약)이건
조건에 지배받은 선택을 한 것이고 무연고적 자아의 개념으로 다른 직업을 선택하듯이 선택했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성노동자들이 '우리를 몸 파는 사람이라 부르지 말고,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라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두 말의 뉘앙스가 어떻게 다른지 짐작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성적 서비스라는 것이 과연 교환가능한 상품으로 취급될 것인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현대 사회에는 다양한 종류의 서비스업이 존재합니다.
혹자는 서비스업에 대하여 가치를 재생산하지 못하는, 생산과 동시에 소멸되는 죽은 노동이라 혹평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감정노동자들 중 정신적 후유증을 겪는 사례가 27%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소를 짓는다는 것', '화를 참는다는 것' 이런 것은 '기계를 작동시키는 것', '자료를 수집해 분석하는 것'과는 다른 노동입니다.
일반적으로, 최소한 상대에게 호감이 있다는 정도의 인간적 관계를 전제로 보일 수 있는 '관계적 행동'입니다.
(전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서비스의 대상에 대하여 호감이 그냥 생기는 것은 아니므로 마치 스스로가 인간이 아닌 것처럼
미소짓는 기계인 것처럼 자신의 감정을 거세하고 관계적 행동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여성이, 애인과 성관계를 가지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다시 애인을 바꾸는 관계를 지속한다고 해서,
남성이 데이트비용을 상당부분 부담하며 그 관계가 유지된다고 해서, 우리는 그녀를 성노동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녀를 성노동자와 구분짓는 것은 인간 대 인간의 교류, 관계의 질 입니다.
위의 사안들 중 행위와 거래만 남겨놓으면 성노동이 됩니다.
대상은 특정할 수 있는 '애인'이 아니라 특정할 수 없는 '고객'입니다.
성행위는 그 자체로 관계의 방식입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실없이 미소짓지 않듯 그보다 더 친밀한 관계를 전제로 한 행위인데,
애인이나 친구를 살 수 없듯이 관계를 사고 팔 수는 없는 것이기에
이 거래에서는 상대가 나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대상이라는 사실, 인간이라는 사실이 외면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성노동은 그 자체로 인간을 소외시키는 활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대합니다.
성노동은 성의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에게서 인간성을 거세합니다.
성격이 맞아 성노동자와 친구가 된다고 해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위안을 잠시 얻는다고 해서 그러한 속성이 변질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녀 역시 인간이기에(당연히도) 가능한 일이었을 뿐,
전적으로 구매자의 행태에 따라 발생하기도 하고 발생하지 않기도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노동자가 맺는 어떠한 관계에서도, 일반적으로는, 상대가 인간이라는 사실 자체를 거부할수는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노동자를 부리는 사용자는 법적 제재를 받습니다. 그런 식으로 노동자를 대하는 손님은 진상입니다.
노동으로서 그러한 측면을 일부 가지고 있지만, 계약의 핵심 속성이 인간성의 소외인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성노동이 타 임노동과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매매를 범죄화 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인간 소외에 반대하면서 성산업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성노동자들을 타자화하고 소외시키는 것은 모순입니다.
오전이 다 갔고, 상사분이 곧 돌아오실테니...
언젠가 대안에 대해서, 다음에 또 이같은 이슈가 생기면 듀게분들과 의견을 교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긴 글을 끝까지 읽으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밤에 쓰기는 피곤했는데, 몇 일 뒤 주말에 쓰면 또 너무 뜬금없을 것 같고..
관심 많던 주제라 그냥 지나치자니 아쉬움이 남고 해서 월급을 훔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