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이슈를 분석하는데 있어 경제학적 고려가 유해한 이유.
경제학은 사회적 이슈를 분석하고 사회적 정책을 만드는 데 사용되기에는 너무 유해한 학문입니다. 정치학과 사회학이 더 괜찮습니다. 경제학자들은 복잡한 수식과 그래프를 사용하는걸 좋아합니다. 예전에는 쟤들이 왜 저러지? 라고 생각했고, 나중에는 쟤들이 통계적으로 실증하기 위해서 저러나? 싶었지만 그들은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냉철하고 이성적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네들이 하는 말을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레토릭으로써 저런 수리 모형을 만들어 사실을 기술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경제학은 현실에 기인하지 않고, 인간은 합리적 존재라는 이상한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소설이기 때문에 잘 안맞습니다. 그렇기에 영리한 경제학자들은 레토릭을 사용해서 사람들에게 사기를 칩니다. 반면에 멍청한 경제학 전공자들은 그러한 자기들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네들이 맞다고 우깁니다.
일제 식민주의 지배 하에서 조선의 경제 성장률이 높았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는 이영훈 교수와 같은 경제사학자들이 밝혀낸 사실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여기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않았습니다. 경제학이 비판받는 이유는 역사학자의 공을 자기들의 공로라고 우기는 헛소리를 하거나 아니면 차별 철폐의 가장 큰 원인이 경쟁이라는 식의 헛소리를 실증적 근거도 없이 "함부로" 하기 때문이지 대중의 도덕에 어긋나는 소리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꾸 경제학 전공자들은 착각을 하고 있어요.
과거의 경제 수준을 조사하는 것은 경제학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건 역사학자들과 통계학자들의 일입니다. 어떠한 수치들이 경제적 수준을 나타내는 지를 알기 위해서 경제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면 그건 회계학을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지식입니다.
미국에서 남녀 평등을 개선하는 법 때문에 미국 여성들이 질이 낮은 남성들하고 결혼하게 되었다는 것을 분석하는데에도 경제학적 방법은 필요가 없습니다. 사회학에서도 충분히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학과 경제학의 차이는 경제학은 사실은 인간은 합리적 존재라는 이상한 전제에 기반해야 하는 관념적 학문인데 반해서 사회학은 이러한 전제 없이도 할 수 있는 학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학이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데 경제학보다 더 나은 역할을 합니다.
경제학자의 눈에는 "자신의 병역을 대신할 사람"을 구하겠다는 것이나 "모병제"를 시행하겠다는 것이나 별다른 차이를 못 본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제학자들의 장님과 같은 무능력이 바로 경제학이 사회 문제를 접근할 때 해악을 일으키는 이유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합리적 존재이기 때문에 이러한 메커니즘의 구조가 동일하다는 이유 때문에 이것이 동일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는 철저하게 나이브한 생각입니다. 이는 한 사람의 국가가 국민에게 부여하는 의무가 사적 시장에서 매매될 수 있는 상품이냐 아니면 국민들의 동의 아래서 이뤄지는 정책적 대상이냐의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의 것은 시장 가격에 의해 보상을 받을 것이지만 후자의 것은 국민들의 동의 아래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상황에서라도 전자의 경우와 후자의 경우의 보상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명백히 존재하는 현실을 부정하는 경제학은 "반지의 제왕"과 같은 판타지 소설로 분류되야 할 것입니다. 그 내용이 빈약한 걸로 보아, "가즈나이트"류의 양산형 판타지 소설에 불과하지만 말입니다. 물론 그 주인공 이름은 "Mr. Market"이겠지요. 이러한 내용을 분석하는데는 정치학이 더 유효한 역할을 합니다.
현실 속에서 대부분의 경우 경쟁이 심화될수록 양극화가 벌어지고, 그렇게 자본 축적이 심해지면 자본가가 그러한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권력을 행사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자신들의 권력을 행사하여 자신들의 마음에 들게 제도를 바꾸고 문화를 바꿉니다. 경제학자들은 "인간은 합리적 존재이기 때문에 싸고 좋은 제품을 많이 만들면 시장에서 사람들의 선택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는 것은 래미안과 제네시스입니다. 그리고 이는 정보의 비대칭성이나 시그널링 효과와 같이 바보같은 소리 때문이 아니라, 광고에서 소비자들에게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유혹하는 광고들 때문입니다. 기업에서는 경제학자들을 고용하기 보다는 인문학자나 심리학자, 혹은 자신들이 권력을 더 잘 행사할 수 있는 제도를 설계할 수 있는 행정학 전공자를 고용하는 것이 낫습니다.
유일하게 경제학자들이 유효한 부분은 바로 경제 시스템을 운용하는 거시 경제학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거시 경제는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명제를 버린다는 것입니다.
중앙은행의 금리가 오르면 소비가 줄어듭니다. 사람들이 왜 소비를 안하냐면 사람들이 합리적이어서가 아니라 쓸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시 경제 영역에서 경제학이 유효한 이유는 많은 나라의 거시 경제 시스템을 경제학자들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역시나 경제학자들이 만든 것이 모두 다 그렇듯이 경제시스템은 10년에 한번씩 경제학자들이 아무도 예측치 못한 공황을 일으킵니다. 아마 소설가들이 경제시스템을 만들었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경제학 전공자들이 인간은 합리적이기에 시장의 가격은 대체로 신빙성 있다는 주장을, 그 많은 반증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떤 대학의 청소부는 하루 10시간 동안 45개의 강의실을 쓸고 닦으면서 일주일에 6일을 근무하고 한달에 100만원이 조금 안되는 돈을 받았습니다. 무척이나 유명한 그들의 식비는 한달에 3500원이었습니다. 반면에 어떤 증권회사에 다니는 경제학 전공자는 하락장에서 한달 동안 고객 돈 2억 5천만원을 날려먹고 다시 상승장에서 고객돈 2억 6천만원을 벌어주고 한달에 400만원 정도 되는 임금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괴물과 같은 시장의 움직임에 자기들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들이 운좋게도 "상승장"에 있었기에 돈을 벌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시장의 수익률 이상의 수익률을 지속적으로 내는 브로커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렇기에 경제학 전공자들이 청소부 아줌마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중요한 사람이라고, 스스로에게 거짓말 하기 위해서는 봉급, 즉 가격이 능력을 반영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믿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구조적 특혜를 받기에 능력이 없어도 돈을 많이 받는 스스로에게, 그러한 삶의 부조리를 정당화하는 가여운 사람들에 불과합니다.
제 글의 요지는 이것입니다.
1. 사회 문제에 있어서 경제학적 접근은 해악적이다.
2. 현실주의적 접근은 경제학의 독점적 태도가 아니다. 정치학과 사회학, 행정학, 회계학, 그리고 인문학은 모두 "현실주의적 접근"이다. 현실주의적, 합리적 접근을 모두 경제학적 접근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3.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가정에 기반한 미시경제학은 소설이다. 프로파간다이자, 이데올로기이다.
4. 경제학자들은 자기들이 잘할 수 없는 분야에 쓸데없이 껴들지 말고, 자기들만이 할 수 있는 거시 경제학에 치중하여 좀 괜찮은 시스템을 만들어라. 못만들겠으면 자신들의 무능을 깔끔하게 선언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