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컨피덴셜을 다시 봤습니다

- 벌써 14년이나 묵은 영화이긴 하지만 어쨌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아주 오랜만에 다시 보는 건데, 왜 진작에 다시 보지 않았나 싶더군요. 정말 재밌고 참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을 새삼 했습니다. 이 때만 해도 커티스 핸슨의 앞날은 탄탄대로로만 보였는데 말입니다. 어제 저녁 밥 먹으면서 잠깐 틀어 놓으려고 한 거였는데 그대로 그냥 끝까지 달려 버렸네요.


 - 50년대 미국이나 그 근방을 무대로 한 형사물은 앞으로도 계속 사랑받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장 차림의 형사들이 예쁘게 생긴 옛날 자동차를 몰고 고풍스런 차림새의 미인(...)들과 얽히는 그림 자체가 참 좋구요. 또 핸드폰, 컴퓨터, 인터넷, CCTV, DNA 감식 같은 게 존재하지 않던 시절의 '옛날 탐정'스러운 수사도 그 나름의 멋과 재미가 있고 말입니다.


 - 다시 보면서 가장 감탄스러웠던 건 별로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것 저것들을 참도 자연스럽게 이어 붙여 놓은 감독의 솜씨였습니다. 건조한 하드 보일드(혹은 필름 느와르) 형사물의 분위기와 인종 차별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특히 그 성폭행 피해자 여성... ㅠㅜ;), 그리고 이리 망가지고 저리 망가졌다가 특별한 사건을 계기로 개심하여 힘을 합하고 우정까지 쌓아가는 끈적한(?) 남자들 이야기에다가 오우삼을 방불케 하는 총격전 액션씬들까지. 어찌 보면 톤이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이렇게 저렇게 얽혀 있는데도 그게 어딘가 특별히 튀는 느낌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넘어가진단 말이죠. 이런 감독이 어쩌다 요즘 이렇게 소리 없이 묻혀 버렸는지 원.


 - 이젠 좀 묵은 영화다 보니 완전 뽀샤쉬한 주연 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상당합니다. 특히 그 때까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 하고 있었던 러셀 크로우가 그렇죠. '퀵 앤 데드'에서 샤론 스톤이 완전 섹시한 배우라며 극찬을 퍼부었을 땐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왜? 어디가? 무엇이?' 라는 생각 밖엔 안 들었었는데. 이 영화에선 아주 근사하죠. 단순, 우직, 거칠면서도 순수한, 충직하고 덩치 큰 개(...) 같은 성격의 버드 형사 캐릭터와 아주 잘 어울릴뿐더러 그냥 비주얼이 좋습니다. 특히 '여자를 괴롭히는 놈들은 죄다 총알을 박아 주마' 라는 식의 무대뽀 캐릭터 덕에 (제 주변) 여성 관객들의 호응이 유난히 좋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뺀질거리는 스타 경찰 역의 케빈 스페이시도 연기 참 좋았구요. 특히 가이 피어스와의 대화 후에 정신 차리기로 결심하는 장면이나 형사 반장의 총에 맞은 후 가까스로 '롤로 토마시'라는 말을 뱉은 후 '넌 이제 이 한 마디 땜에 x될 거임ㅋ' 이라는 듯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죽어가는 장면의 연기는 정말 좋았습니다. 이 배우도 이후로 커리어가 그다지 아름답진 않습니다만(...) 가이 피어스는 완전 맞춤형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이 배우가 잘 생긴 듯 하면서도 어찌보면 노골적으로 찌질-_-하게 생긴 면이 있는데 그게 이 역할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립니다. 이 캐릭터가 사실 여러모로 좀 답답하고 찌질한 구석이 있잖아요. 그러면서도 필요하면 주저 없이 나쁜 놈들(?)과 협상도 던지고. 어쨌거나 머리가 좋고. 그냥 얼굴 생김새와 표정 연기만으로도 너무 완벽해서 더 이상은 필요가 없어 보일 지경.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세 캐릭터가 모두 매력적이라는 겁니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 얽히고 싶은 사람은 그나마 끽해야 좋게 봐 줘도 케빈 스페이시 정도 밖엔 없지만;;

 + 더들리 반장 아저씨의 경우엔 '꼬마 돼지 베이브'의 베이브 주인 아저씨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이 되어 처음 이 영화를 볼 땐 참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14년이 흐르고 다시 보니 그래도 괜찮네요(...)


 - 얼마 안 되는 개그들도 많진 않지만 타율이 높아서 기억에 잘 남구요. 라나 터너에게 '네가 아무리 라나 터너처럼 꾸며도 넌 창녀일 뿐이라능!' 이라고 외치다 개망신 당하는 장면에서 이미 다 알고도 일부러 냅두고 뒤에서 히죽거리는 케빈 스페이시의 표정이라든가 마지막 싸움 직전에 나오는 '아버지처럼 되고 싶어 경찰이 되었지.' '곧 꿈을 이루겠구먼. 아버지께서 근무 중 순직하셨지?' 라는 대화라든가... 아. 적어 놓으니 참 재미 없네요;


 - 유일하게 볼 때마다 거슬리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엑슬리가 킴 아줌마에게 낚여서 뒹구는 장면은 너무 갑작스러워서 좀 깨요. 나름대로 심리적 동기는 조금 깔아놓은 것 같긴 하지만 상대방의 정체(?)를 충분히 의심하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충동적으로 데굴데굴거리는 게 캐릭터의 성격상 이해가 안 가서리. 물 흐르듯 흘러가다 여기서 갑자기 레코드 판이 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 모텔에서의 마지막 총격전은 정말 맘에 들어요. 워낙 그 전까지 본격적으로 때리고 부수는 액션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제대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죠. 영화 내내 반목하던 두 캐릭터가 뜻을 모으고 서로 의지하게 되는 모습을 액션으로 잘 풀어서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액션 자체도 합이 잘 맞아서 보는 재미가 있구요. 뭔가 첩혈쌍웅의 마지막 성당 총격씬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뭐 그 정도로 많이 죽어 나가진 않죠. 사실 그게 유일한 아쉬움이기도 합니다. 너무 빨리 끝난다는 것. 물론 진짜 첩혈쌍웅이 되어 버리면 그것도 곤란하니 영화 성격상 이 정도가 적절하긴 하겠습니다만.


 - 케빈 스페이시 + 대니 드 비토 콤비 때문에 인생 꼬여서 살해당하는, 그래서 케빈 스페이시 각성(?)의 바탕이 되는 배우 지망생 역의 배우가 '멘탈리스트'의 주인공이더군요. 한참 젊을 때다 보니 어쩜 그리도 뽀송뽀송 상큼 고우신지(...) '멘탈리스트'에선 능구렁이처럼 보이는 웃음이 이 영화에선 백치미까지 좔좔 흐르는 느낌이더라구요. 다시 보는 것이다 보니 곧 죽을 거라는 걸 잘 알기에 더 불쌍. 


 - 킴 '베신져'는 이 영화를 찍을 때 한국식 나이로 이미 45세였죠. 러셀 크로우는 34세였으니 11살 차이나는 배우들이 커플로 출였했네요. 한국에서 이렇게 11살 많은 여자 + 연하남 커플이 나온다면 그것 자체가 영화 속에서 중요한 설정으로 나올 텐데, (혹은 '킴 배신져의 나이가 너무 많아 커플로 어울리지 않았다'는 평이 쏟아져 나온다거나) 역시 서양쪽 문화는 이런 나이 차이에 상대적으로 많이 관대한 걸까요. 러셀 크로우는 '퀵 앤 데드'에서도 6살 연상의 샤론 스톤과 커플(?)로 나온 바 있으니 나름대로 누님들의 아이돌이었다고 우겨봐도... (되지 않아!;)


 - '아방궁' 주인 역할의 David Strathairn(성을 뭐라고 읽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_-;;)은 얼굴에 '음모' 라고 적혀 있는 듯한 인상에다가 은근히 카리스마 + 품위도 있어 보여서 이러한 역할에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본 시리즈 마지막편('이었'죠;)에 나왔을 때도 참 멋졌습니다. 이 영화에선 너무 허망하게 퇴장해 버리긴 합니다만;


 - 블루 레이로 보고픈데 출시가 안 되었죠. 화질에 대한 평이 매우 안 좋다는 걸로 위안을 삼습니다;

    • 저도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에요.
      엑슬리가 충동적으로 킴아줌마랑 뒹구는 장면은 버드에 대한 묘한 경쟁심리가 원인이었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에게도 남성적?인 면이 있다는 걸 보이고 싶은 마음도 어느정도 있었고.. 충동적인 행동이었더라도 버드처럼 킴베신저에게 감정적으로 끌린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자존심 문제였기 때문에 엑슬리의 캐릭터에 나름 부합한다고 생각했어요.
    • 전 이 영화를 부대 정훈실에서 혼자 봤네요.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영화. 기억은 잘 안나요.
    • 저는 러셀 크로우가 의자 뿌시고(!!!) 들어가서... 용의자 입에다 총 쑤셔넣고 "여자는 어디있나!!!" 라고 진짜 왕무대뽀로 물어보던 장면이랑
      여자 성폭행한 용의자들 걍 쏴서 죽여놓고(;;;) 정당방위로 위장하고 나오는데, 가이 피어스가 이상하게 생각하니까 그쪽으로 건들건들 걸어가서 어깨 툭! 밀치면서 한판 붙으려고 하는 그장면!

      아흑...진짜 좋아해요. 몇 번을 돌려봤는지 몰라요.

      또 보고 싶다... 이 글 보니까 막 장면장면이랑 대사가 다 생각나네요. 정말 재미있게 잘 만든 영화같아요.

      이 영화보고 러셀 팬이 되었는데 몇년간은 잘 안보이더니 2000년에 글래디에이터로 대스타가 되어서 돌아오더군요.
    • 영화를 좋아해서 원작소설을 찾아 읽었다가 영화에서는 단 몇개월에 끝나는 사건이(블러디 크리스마스에 시작해서 담해 여름에 끝나죠 아마?) 소설에선 몇년에 걸쳐 벌어진 일이고, 세 주연은 말할 것도 없고 각종 조연들이 저마다 복잡한 배경을 들고 등장하는데 당황한 기억이 나네요. 책도 나름 유명하지만 이 얽히고 설킨 이야기를 이렇게 압축적으로 만들다니 정말 각색이 중요다는 걸 느끼게 한 경험이었습니다.
      커티스 핸슨 감독이 최근 활동이 그렇게 없나요? 8마일 이후로 좀 뜸하긴 하네요.
    • 제임스 엘로이는 마지막 총격씬을 아주아주 마음에 안들어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거야 그 아저씨 사정이고, 저한테는 정말 최고였죠. 타이타닉만 아니었음, 논란의 여지없는 그 해 최고의 영화였죠.
    • 이 영화 몹시 좋아합니다. 저는 이상하게 더들리에게 끌리더군요. 베이브에서의 우직한 이미지를 갖고 있던 양반이 신임하는 부하에게 더러운 일을 살살 기를 살려가며 넘기는 그 유들유들함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김여사는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저의 훼이버릿 금발미녀이고요. 다시 보고 싶네요.
    • 타이타닉만 아니면 오스카를 휩쓸영화 였거늘.....각색과 여우조연에만 그쳤죠 쩝
    • 타이타닉만 아니면 오스카를 휩쓸영화 였거늘.....222
    • 제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버드화이트에요.. 지금까지 봐온 영화중에서 저의 마음을 그렇게 흔들어 놓은

      캐릭터는

      없었습니다..정말 타이타닉만 아니었으면 ㅠㅠ
    • KIDMAN/ 남자들에겐 공포스런 장면이지요. 볼 때마다 힘들... 진 않지만 무서워요 정말로. ^^;

      폴라포/ 그렇게 생각하니 전보다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원작 소설을 보면 좀 더 자세한 뭔가가 있으라나요.

      가라/ 꼭 다시 한 번 보세요. 정말 좋습니다. ^^

      라곱순/ 그 전혀 이성적이지 못 한 무대뽀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적은 나의 적!' 이란 모토(?) 덕분에 참 사랑 많이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하.

      ally/ 저도 원작 소설을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아마 '절대 영화로 못 만들어질 소설' 비슷한 얘길 듣던 원작이었다고 알고 있어요. 커티스 핸슨은 이 영화 -> 원더 보이즈 -> 8마일까지 괜찮은 평을 받고 그 후론 영...;

      Roybatty/ 왠지 원작자 취향은 아닐 것 같긴 했습니다. ^^; 그래도 그 씬은 너무 좋아요.

      달진/ 맞아요 그 유들유들함이 참 징그럽고 무서웠습니다. 베이브 아빠가!! ;ㅁ; <- 처음 볼 때의 제 기분이었습니다. 흐흐;

      감동, 쿤쿤, 제주감귤/ 그래서 유독 이 영화 팬들에게 타이타닉이 욕을 많이 먹던 기억도 나네요. ^^
    • 과장해서 제 인생의 영화 중 한 편 ㅎㅎ

      극장에서 세 번 보고 비디오로 또 보고 ㅠㅠ

      책은 5배 쯤 더 재밌지만 전 제임스 엘로이가 좀 무섭더라고요.
    • 다시 보고 싶어지는군요. 어딘가 비디오테이프가 있는데. 앗, 비디오가 없구나.
    • 재밌죠. 하도 여러번 봐서 거의 외웁니다. 롤로 토머시. ㅎㅎ
      근데 소설은 어쩐지 엄두가 안나는 포쓰가 있어서 도서관에서 대출햇다가 고대로 돌려준 기억이.ㅡ,.ㅡ;;;
    •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이 영화는 "타이타닉" 보다 훨씬 재미있고, 짜임새 있게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걸작이죠. 영화 초반부에 버드의 동료형사(부패형사)가 경찰서 유치장으로 쳐들어가 주먹을 날리는 장면부터 푹 빠졌습니다. 와! 이 영화 물건이네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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